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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70화 (1,270/1,404)

#1270화 분열 (2)

보통 물량이 많으면 값이 싸지는 건 상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는 아니지.

독점.

오직 우리만이 베르탈륨 광석의 물량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그 가격을 결정할 수 있는 것 역시도 우리가 할 수 있었다.

특히 전시 상황에 들어가는 필수품에 가까운 물건이기도 했고.

그런데 우리가 물량이 많다고 굳이 가격을 낮춰줄 이유가 있을까?

전혀.

이건 배짱 장사를 해도 충분히 먹힌다.

화련도 여기에는 긍정을 표했다.

가격을 낮출 이유가 전혀 없다고.

오히려 더 올려도 살 놈들은 무조건 산다고 했던가?

그래서 시작부터 올려 불렀다.

이 정도 가격으로도 못 사는 놈은.

그냥 병풍이니까.

내가 통상가의 삼십 배를 부르니 오히려 상업 조합장이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네? 정말 그렇게 가도 되겠습니까?”

그러자 화련이 바로 나섰다.

“어차피 살 놈들은 사. 못 사는 놈들은 꺼지라고 하고.”

“허…….”

상업 조합장 자신은 스무 배에 샀었는데.

이젠 시작이 삼십 배였다.

속으로는 그때 사서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그런데 당황했던 상업 조합장의 표정이 바로 밝아지더니 이내 히죽거리며 웃는 표정으로 변했다.

“흠흠. 알겠습니다.”

기쁨을 애써 참는 딱 그런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네.

그때와 달리 지금은 경매를 이끄는 입장이니까.

무엇보다 비싸게 팔면 팔수록.

자신에게 떨어지는 수수료가 커진다.

한 마디로 상업 조합장 입장에서는 이 상황이 훨씬 좋은 상황이라는 거다.

곧 호흡을 가다듬고 웃는 표정을 감추더니 기다리고 있던 귀족들에게 외쳤다.

“시작가는 통상가의 삼십 배입니다.”

그러자 바로 귀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몇몇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성을 질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전에 말할 땐 스무 배라고 하지 않았나?”

“지금 장난해?”

“가격을 이렇게 올리는 게 어딨어?”

아마도 저들 몇몇은 이전 상업 조합장이 샀을 때의 가격을 전해 들은 듯 했다.

그리고 그 가격에 맞게 자금을 준비했을 확률이 높아 보였다.

반면 가만히 그 상황을 지켜만 보는 귀족들은 딱히 이 상황에 대해서 별말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가 있다는 듯 주변 귀족들의 반응을 살펴보는 모습이었고.

그런데 아예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 이들도 있었다.

주변의 귀족들은 관심도 없다는 듯이.

<주호> 저들이 진짜네요.

<화련> 응. 원래 자금이 부족한 녀석들이 더 빨리 손을 드니까. 그리고 진짜 돈이 넘치는 놈들은 스무 배든 서른 배든 상관없거든. 오히려 비싸게 사가면 사갈수록 더 값어치가 높아지니 황제에게 생색내기도 좋을 거야.

<주호> 내가 널 위해 이 정도 큰돈을 썼다…… 이런 느낌입니까?

<화련> 그런 거지. 아니면 반대로 황제를 압박할 좋은 카드가 될 수도 있어.

<주호> 압박요?

의외의 말이 나와서 그런지 화련을 쳐다보자 화련이 짧게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화련> 너, 타란 제국 귀족들 관계는 전혀 모르는 거야?

<주호> 딱 알만큼만 알죠.

타란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의 관계라던가.

그들 사이에 껴 있는 장로회의 존재도 있고.

그러다 보니 용기사단 역시도 그런 파벌에 나눠져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휘하의 귀족들의 서열이라던가 하는 것들까지는 크게 관심을 두진 않았다.

애초에 귀족들과 마주칠 기회도 없었으니까.

굳이 마주칠 이유가 없기도 하고.

그리고 시작점부터가 화련과는 많이 다르다 보니 알고 있는 정보 역시 확실히 차이가 났다.

<화련> 현재 귀족들 파벌이 셋으로 나뉜다는 건 알고 있지?

<주호> 황제파. 카샤스 대공파. 장로회 아닌가요?

<화련> 그건 잘 아네. 그런데 여기서 카샤스 대공파는 싹 빠졌잖아.

화련의 말이 맞다.

카샤스 대공이 역적으로 몰리자 타란 제국 내의 모든 카샤스 대공파는 타란 제국 수도에서 빠져나갔다.

그러니까 지금 이 장소에 있는 귀족들은.

황제파가 아니면.

장로회 소속의 귀족이라는 말이다.

<화련> 최근 장로회에서 고대 마룡을 제대로 못 막아내는 타란 제국 황제에게 불만을 토해놓기 시작했어. 안 그래도 사이가 안 좋은 장로회가 황제를 트집 잡을 건수로 여긴 거야.

이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장로회가 원래는 카샤스 대공을 밀었다는 것 역시도.

<주호> 장로회는 애초에 카샤스 대공을 원했죠.

<화련> 알고 있었어?

<주호> 전에 장로회의 귀족과 대화를 해본 적이 있어요.

딱히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용혈 관련해서는 귀가 따갑게 들었으니까.

장로회의 귀족들이 성마대전에서 타란 제국이 살아남기 위해서 보다 강한 용혈을 원한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기도 했고.

한 마디로.

현재의 황제파와 장로회가 사이가 좋지 않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로회가 카샤스 대공을 따라 타란 제국 수도를 떠나지 않은 이유는.

어찌 됐든 장로회는 타란 제국의 수호를 위해 싸워야 한다는 그들만의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날뛰는 마당에 타란 제국 수도를 비우고 떠난다?

이건 장로회의 설립 목표와 완전히 반대되는 상황이라…….

만약 그런 식으로 타란 제국 수도를 떠났다면.

장로회가 있어야 할 명분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장로회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해야 하나.

<화련> 알고 있으면 이야기는 쉽겠네. 사실 장로회는 어떻게든 카샤스 대공을 다시 제국의 수도로 불러오고 싶어 해.

고대 마룡 때문에 타란 제국의 수도가 위협을 받으니 장로회가 반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간 눌러두고 있던.

강렬한 용혈을 원하는 그 목표가 말이지.

그러니까.

더 강한 용혈인.

카샤스 대공을 원하는 거다.

지금의 황제가 아닌.

<주호> 하지만 그건 불가능이죠. 타란 제국 황제의 목을 치지 않는 이상에야.

<화련> 맞아. 불가능한 건 장로회도 너무 잘 알지. 그래서 열심히 작업 중이지.

<주호> 무슨 작업요?

<화련> 타란 제국 황제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작업. 그중에는 만약 카샤스 대공이 있었다면 고대 마룡을 잡았을 거라는 소문도 포함되어 있어.

아까 지나오면서 화련이 했던 말이 있었다.

타란 제국 황제의 평판이 많이 떨어졌다고.

그때는 그냥 지나가면서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화련은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주호> 귀족이나 평민들 할 것 없이 전부 흔들리겠네요.

<화련> 그게 바로 장로회에서 원하는 거야. 카샤스 대공에 대한 여론을 바꾸는 것.

<주호>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카샤스 대공이 다시 돌아오긴 힘들 텐데요.

소문이 상황을 호전시켜준다고 한들.

타란 제국 황제와 이미 너무 많이 틀어졌다.

카샤스 대공이 자신의 목을 치려는 타란 제국 황제와 손을 잡는 건 애초에 말도 안 된다.

이건 진짜 타란 제국의 황제를 목을 쳐야 가능한 일이다.

<화련> 그런데 웃기게도. 상황이 자꾸 장로회의 손을 들어주네?

<주호> 무슨 말이죠?

<화련> 너 말이야. 네가 타란 제국에 있는 베르탈륨 광산을 죄다 못 쓰게 만들었잖아.

<주호> 그게 무슨 상관이…….

<화련> 당연히 있지. 지금 네가 하고 있는 이 일들 말이야. 타란 제국의 수도가 위태로운 이유 중에 하나잖아.

<주호> 음. 그게 그쪽으로 연결되는 건가요.

<화련> 장로회 입장에서는 제국 황제를 뜯기 딱 좋은 상황이거든.

<주호> 고대 마룡을 막을 능력이 없으면 나가라 뭐 이런 건 아니죠?

<화련> 그랬다간 목이 날아가겠지. 하지만 이 상황을 더 어렵게 만들 수는 있어.

화련의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주호> 설마 그게 우리가 푸는 베르탈륨 광석이라는 건가요?

<화련> 어. 잘 아네? 네 말대로 장로회는 베르탈륨 광석을 전부 쓸어갈 생각을 하고 있을 거야.

<주호> 베르탈륨 광석을 바쳐서 황제에게 잘 보일 생각은 없을 테니…….

아마 장로회는 베르탈륨 광석을 사들여서 황제에게 주지 않을 생각일 것이다.

혹은 다른 방법으로 사용한다든지.

이를테면 황제에게 무언가의 이권을 받아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굳이 베르탈륨 광석을 큰돈 들여 살 이유가 없었다.

<주호> 그런데 그러면 타란 제국 수도도 위험해지는 것 아닌가요?

장로회의 목적은 타란 제국 수도를 지키는 것.

정확하게는 타란 제국의 용혈을 보존하는 것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고대 마룡이 마음대로 설치게 놔두는 건.

그들의 이상과는 완전히 배치되는 상황이 된다.

베르탈륨 광석을 황제에게 주지 않겠다는 말은.

타란 제국을 고대 마룡의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시킨다는 뜻이니까.

물론 이권을 받아내는 방법도 고려해볼 법도 하지만.

황제를 몰아낼 정도의 이권이라.

만약 있다고 해도 그걸 황제가 내어줄 리도 없다.

<화련> 그렇게 해서라도 황제를 몰아내고 싶은가 보지.

<주호> 차라리 그냥 처음부터 카샤스 대공에게 붙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화련> 나도 이상했는데. 장로회는 그게 안 되나 봐.

이건 뭐…….

직접 반역은 못 해도.

황제를 말려 죽이는 건 가능하다 그런 거려나?

장로회에 걸려 있는 제한이 정확히 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고려해보면 이쪽에 무게가 많이 실린다.

<주호> 그럼 오늘 경매는 활활 타오르겠네요.

반드시 베르탈륨 광석을 구해가야 하는 황제파의 귀족과.

반대로 그걸 무조건 저지해야 하는 장로회라…….

그 두 집단이 우리가 캔 베르탈륨 광석을 차지하기 위한 돈다발을 잔뜩 싸 들고 찾아온 셈이었다.

이 정도쯤 되면.

진짜 콩가루 집안이라고 해야 하나?

화련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경매는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다.

처음에는 물량을 조금씩 풀면서 귀족들의 돈을 점점 털어낼 예정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지금은 두 파벌의 싸움 같아 보이니까.

그럼 굳이 나눠줄 필요가 없었다.

괜히 물량을 어설프게 나눠봐야.

양쪽이 적당히 받아가는 상황이 나오면 서로 가격을 올리지 않을 것이다.

바로 화련을 보면서 말했다.

<주호> 이왕 이렇게 된 거. 한쪽에 몰아주죠?

저들의 경쟁 구도를 알고도.

이를 이용해먹지 않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러자 화련이 괜찮다는 듯 미소 지었다.

<화련> 오늘 한쪽은 죽어 나가는 거네.

황제에게 죽든 말든.

어차피 우리 알 바는 아니다.

비싸게만 팔면 되니까.

결정이 나자 상업 조합장을 불렀다.

“흠. 뭐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귀찮게 오래 끌지 말고. 한방에 갑시다.”

내 의견에 당황한 상업 조합장이 시선을 돌려 화련을 보자 화련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흠…… 제값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만…….”

“아니. 한 번 두고 봐. 얼마나 받을지.”

잔인한 미소를 짓는 화련을 쳐다보며 상업 조합장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더니 다시 경매로 돌아갔다.

자신의 몫이 줄어들 거라 생각한 거려나?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업 조합장의 표정이 확 펴졌다.

“모든 물량. 사십 배.”

단 한 번에 사십 배를 부른 한 귀족을 보고는 상업 조합장이 입을 쩍 벌렸다가.

이후 다른 귀족의 말이 나왔을 때는 다리를 후들거렸다.

“오십 배 줄 테니 여기서 끝내지.”

그러자 두 귀족이 허공에서 서로를 노려보면서 시선을 마주쳤다.

아마 저들은 서로가 누군지 아는 것 같네.

하긴.

각 파벌의 대표 급 귀족이 나왔다면.

모르려고 해도 모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저 액수는.

개인이 아닌 그 파벌에서 나오는 돈이다.

“육십 배.”

“육십오 배.”

.

.

.

물량을 몰아버리니 서로 경쟁이 붙어서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갔다.

이건 다시는 볼 수 없는 가격이라고 해야 하나?

하급의 베르탈륨 광석이 소모품이라 상대적으로 싸다고는 하지만.

그 물량이 거의 창고 열 개 분량이라는 걸 고려해보면…….

어느 파벌이 되었든.

엄청난 부담이 될 것이다.

파벌 자체가 휘청거릴 수 있을 정도로.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경매가 한쪽의 승리로 끝이 나자 바로 화련에게 말했다.

<주호> 방금 경매에 진 쪽에 접촉해줄 수 있어요?

<화련> 이긴 쪽이 아니고?

의아한 듯 쳐다보는 화련에게 웃으며 다시 말을 이었다.

<주호> 진 쪽도 털어줘야 공평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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