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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69화 (1,269/1,404)

#1269화 분열 (1)

타란 제국에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를 불러내는 일은 그렇게 어렵진 않았다.

전에 상업 조합장에게서 받은 출입증을 이용하면 언제든지 타란 제국 수도 내로 들어갈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수도 안으로 들어가 용신의 파편을 꺼내 들기만 하면 언제든지 고대 마룡이 냄새를 맡고 제국 수도의 문을 두들겨댔다.

당연히 그런 고대 마룡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베르탈륨 광석의 소모량이 점점 커져만 갔다.

상업 조합장이 스무 배나 주고 사 갔던.

바로 그 베르탈륨 광석들 말이지.

웃돈을 줘서 무리를 해 사들였던 베르탈륨 광석이 아이스크림 녹듯 사르르 녹아내리는 데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만약 다른 베르탈륨 광산에서 제때 보급을 받았다면 어떻게든 버틸 만했겠지만.

지금은 타란 제국에 들어가는 베르탈륨 광석의 보급을 내가 죄다 끊어버렸다.

결국 예상했던 대로.

베르탈륨 광석이 바닥나자 타란 제국 수도의 방어 시스템이 다시 꺼져버렸다.

그러자 화련에게서 직통으로 연락이 왔다.

베르탈륨 광석을 팔아달라고.

정확하게는 전에 우리와 거래를 했던.

바로 그 상업 조합장에게서.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남겨놓았더니, 발등에 불이 떨어져 화련부터 찾은 것이었다.

조합장은 화련을 통한 루트가 아니면 지금 어떤 방법으로도 베르탈륨 광석을 구할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오빠 생각대로 되네요.”

“응. 그러라고 이 고생을 했던 거니까.”

챠밍과 수시로 타란 제국 수도와 베르탈륨 광산들을 돌아다니면서 작업을 했다.

이런 상황이 올 때까지.

“생각했던 것만큼 귀족들이 올까요?”

챠밍이 궁금하다는 듯 물어보자 바로 미소 지으면서 답했다.

“올 걸? 이번에 그 베르탈륨 광석을 가져다 바쳐서 상업 조합장이 백작이 되었으니까.”

이건 화련에게 따로 이야기를 들었다.

상업 조합장이 베르탈륨 광석을 보급한 공로를 높이 사 백작 직위로 올라갔다는 것을.

당연히 이 소식은 다른 귀족들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상업 조합장에게 다시 팔진 않을 거예요?”

“아. 그건…….”

원래라면 상업 조합장을 통해 계속 거래를 해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 상업 조합장의 자금력이 발목을 잡았다.

베르탈륨 광석 시세의 스무 배.

화련의 말에 따르면 이걸 꾸준하게 사들일만한 자금을 상업 조합장이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니까.

귀족들의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이미 파악을 끝낸 화련이 해준 말이니까 거의 정확하다고 봐야 했다.

“상업 조합장은 이제 돈이 없어.”

“아. 그래서 귀족들을 불러들인 거네요?”

“응. 다른 귀족들은 아직 자금력이 팔팔 하거든. 그만큼 뽑아먹을 것도 많을 거야.”

내 말에 챠밍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마른 수건을 아무리 쥐어짜 봐야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거죠?”

“그래. 나올 만한 구석을 찔러줘야 다 뱉어내지.”

단순히 한두 번쯤 털어먹고 끝낼 생각이었다면 이렇게까지 고생하지도 않았다.

“이왕 시작한 거 타란 제국 귀족들을 싹 털어먹고 끝낼 거야.”

그래야 타란 제국이 밑바닥부터 휘청이기 시작할 테니까.

* * * * *

챠밍과 함께 화련의 영지로 날아가자 미리 기다리고 있던 화련이 그간 준비해놓았던 베르탈륨 광석들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그 양이 생각보다 좀…….

옆에서 베르탈륨 광석들의 산을 올려다보던 챠밍이 바로 감탄했다.

“엄청. 많네요.”

“그러게…….”

이건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많은데?

우리 둘 다 예상치를 훨씬 웃도는 베르탈륨 광석 생산량에 놀라고 있자 화련이 당당하게 말했다.

“영지의 NPC란 NPC들은 죄다 쥐어짰지.”

“음. 이 정도면 거의 착취 수준 아닙니까?”

“하. 뭐래? 돈은 제대로 지불했다고. 그것도 초과 수당에 특별 보너스까지 지불해 가면서. 그러니까 영지에 일거리 생겼다고 아주 신나서 캐던데? 효율이 아주 미쳤다니까?”

“NPC에게 보너스 같은 것도 줍니까?”

이건 플레이를 하면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NPC에게 저런 접근 방식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도 처음 알았고.

보통은 NPC를 고용하면 NPC가 할 수 있는 딱 그만큼의 일을 하게 되어 있었다.

애초에 시스템이 그러하니까.

그런데 화련이 쓴 방법은 그런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개념이었다.

아니.

솔직히 어느 누가 NPC에게 초과 수당을 지급하겠나 싶기도 하고.

챠밍 역시 처음 듣는다는 듯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상식적으로 저게 맞는 반응이었다.

그런 우리에게 화련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애들을 제대로 굴리려면 그만큼 보상을 줘야 하는 거야. 기본 아닌가?”

“음…… 화련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굉장히 새롭네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화련이 어디서 돈을 착취한다거나 한 적은 기억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돈을 뿌렸으면 뿌렸지.

이래서 선입견이 무서운 거려나……..

뭐 확실히 화련의 말대로 일을 제대로 시키려면 돈을 그만큼 지급하는 게 맞긴 했다.

그게 NPC에게 적용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이건 화련처럼 NPC들을 마구잡이로 굴려볼 재력이 있는 사람이 할 법한 생각이랄까.

“덕분에 철야를 해도 아무도 불평이 없어. 이게 돈의 힘이라는 거야.”

그리고는 산처럼 쌓여있는 베르탈륨 광석들을 보면서 말했다.

“눈에 보이는 건 그 결과물이고.”

어떻게 보면 대단하긴 했다.

최대한 빨리 캐 달라고 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NPC들이 할 수 있는 일의 양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화련의 영지에서 고용할 수 있는 NPC들의 숫자도 마찬가지.

그런데 그 없는 자원에서 이만큼 결과를 내다니.

“화련 덕분에 일이 쉬워지겠어요.”

처음에는 부족한 물량으로 경매를 걸 생각이었다.

그럼 귀족들 사이에서 경쟁이 일어나 가격이 자연스럽게 올라갈 테니까.

하지만 그것도 한계는 존재했다.

애초에 물량이 너무 부족하면.

아무리 가격을 올려봐야 먹을 수 있는 파이가 적은 건 마찬가지라.

그런데 이 정도 물량이면…….

적당히 펌프질만 해줘도 충분해.

곧 아이셔스 스태프들을 꺼내서 화련이 준비해놓은 베르탈륨 광석 물량을 모두 쓸어 담았다.

화련이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더니 물었다.

“그거 나한테 팔면 안 되나?”

“스태프요?”

“어. 보니까 많은 것 같은데.”

검 종류가 아니라서 화련의 취향에 맞아서 달라는 건 아닐 테고.

지금처럼 창고로 쓸 수 있다는 걸 보고 나니 가지고 싶은 듯 했다.

하지만 이건 줄 수 없는 물건이다.

“아쉽게도 그건 어렵겠어요.”

“또 비싸게 군다.”

의외로 내가 거절을 하자 화련이 깔끔히 포기해버렸다.

“끝이에요?”

“어. 그냥 있으면 편하겠다 싶은 거지. 꼭 가지고 싶은 건 아니라서.”

딱히 미련이 없는지 다시 내게 말했다.

“어차피 지금 같은 경우가 아니면 그렇게 필요한 물건도 아니잖아.”

“뭐 그렇긴 하죠.”

베르탈륨 광석을 대규모로 보관해야 하는 이런 상황만 아니면 사실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긴 어려운 점도 있었다.

“그럼 됐어.”

그렇게 모든 베르탈륨 광석을 쓸어 담자마자 챠밍이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곧 주변 풍경이 바뀌면서 타란 제국 수도 근처로 이동되었고 출입증을 가지고 수도로 들어갔다.

수도 안에는 전과는 달리 방어 시스템이 사라진 것을 두고 지나가는 시민들이 모두 불안에 떠는 모습이 보였다.

당연히 그들에게서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그런 그들을 쭉 둘러보더니 화련이 내게 말했다.

“황제 평판이 많이 깎였겠는데?”

“아무래도 전시 상황이 길게 이어지니까요.”

그 상황을 해결해줘야 하는 황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저 황궁에 박혀서 나오지도 않았다.

이건 챠밍과 내가 수도를 몇 번이나 들락거리면서 계속 확인한 사실이었다.

단순히 고대 마룡과 전투가 두려워서 나오지 않는다거나 하는 건 아닐 텐데…….

전에 타란 제국 함대를 이끌고 고대 마룡과 붙을 때는 전혀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었으니까.

무언가 이유가 있긴 할 텐데.

우리가 황궁에 들어갈 수 없는 이상.

당장 확인해 볼 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타란 제국 황제가 제 발로 나오거나.

아니면 저 거대한 황궁이 불타오르거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예전의 상업 조합장을 만났던 장소로 가자 이전과 달리 녀석이 우리를 환한 미소와 함께 반겨주었다.

“어이구. 화련 백작 님. 오셨습니까.”

우리 덕에 단숨에 백작이 된 상업 조합장 입장에서는 우리가 최고의 고객이 아닐까 싶었다.

화련도 백작이고 상업 조합장도 백작이지만.

여전히 존칭을 써주는 걸 보면.

무엇보다 지금 역시도 우린 그에게 최고의 고객이었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물량의 베르탈륨 광석을 소유한.

“준비는 됐어?”

화련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물어보자 상업 조합장이 바로 우리를 안내했다.

“들어가시죠. 특별히 선별해서 모셔놨습니다. 아. 그리고 미리 말씀하신 대로 준비해 놨습니다.”

그리고는 우리에게 가면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무도 가면 같은 종류인데.

이걸 쓰면 아이디조차 사라져 확인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최고의 위장이랄까.

“꽤 신경 썼네.”

“아닙니다. 덕분에 손님들을 더 모셔올 수 있었습니다. 사실 이곳에 오면 안 되는 분들도 제법 오셨거든요.”

“그래?”

“네. 정체가 드러나면 곤란한 분들도 많고요. 그만큼 다들 이게 확실합니다.”

그러면서 상업 조합장이 엄지와 검지를 모아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총알이 많다 이거네.”

“네?”

“아냐. 돈 많은 녀석들이 많이 왔다는 말이잖아.”

“하하. 그럽죠.”

“수수료는 알아서 챙기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중계 수수료.

이게 바로 저 상업 조합장이 두 손을 비벼가면서 화련에게 저 자세로 나오는 이유였다.

백작에 올라가기 위해 쓴 돈이 적지 않았으니.

이번 기회에 제대로 한 몫 챙기려는 속셈이었나.

전과 달리 이번에는 물량 자체가 넘친다.

당연히 그 수수료도 비교할 수도 없었다.

상업 조합장은 아마 이번 한 번의 거래로 이전의 거래에서 본 손실을 모두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렇게 상업 조합장이 미리 준비해둔 비밀 거처로 이동을 하니 거의 서른에 가까운 귀족들이 동시에 우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다들 상업 조합장과 함께 등장한 우리가 주인공이라는 걸 잘 알 테니.

가면을 쓰고 있어서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저 자인가…….”

“흠. 어디서 베르탈륨 광석을 공수한 거지?”

“지금 모든 광산들이 다 막혔을 텐데…….”

꽤 웅성거리는 걸 보면 어지간히 몸이 달아있는 듯 했다.

여기서 베르탈륨 광석을 구해갈 수 있으면.

황제의 신임을 듬뿍 얻을 수 있을 테니.

특히 그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어디 다들 숨겨둔 자금이 얼마나 많은지 한 번 보자고.

곧 상업 조합장이 선단에 서서 외쳤다.

“귀한 분들을 모셔놓고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기다리는 게 딱히 상관없는지 다들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그보다는 빨리 물건을 내놓으라고 한 귀족이 외쳤다.

“물건은 확실한 건가?”

상업 조합장이 백작임을 모르지 않을 텐데.

그런데도 반말을 할 수 있다는 건.

최소한 저 자가 후작 급은 된다는 뜻이었다.

“제가 이미 확인을 거쳤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원하는 물량은 확실히 책임질 수 있습니다.”

“흠. 두고 보지.”

물건이 많다는 말에 다소 안도하는 듯 대답했지만.

사실 물건이 많은 것과.

그걸 누가 가져가는가는 전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물량이 많아서 가격이 쌀 거라는 추측 역시도 마찬가지.

상업 조합장이 내게 시선을 주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가는 통상가의 삼십 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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