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6화 먹고 먹히는 싸움 (10)
캬아아악!!
그냥 듣기만 해도 공포에 절여질 것 같은.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피어 소리가 다시 타란 제국 수도에 울려 퍼졌다.
게다가 이미 몇 번은 고대 마룡과 마주쳤던 수도의 병력들은 긴장감 가득한 얼굴로 다시 무기를 들고 성벽을 향하기 시작했다.
전과 달리.
이번에는 수도의 방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모두의 표정에는 결연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자신들이 뚫리면 끝난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에.
“비상!!”
“용기사들 전부 소집해!”
“어떻게든 고대 마룡을 막아야 한다!”
“준비되는 대로 전부 용에 올라타라!”
“우리가 늦으면 수도가 당한다! 서둘러!”
시선을 돌리니 큰 대로에 각자의 용들을 끌고 나와 올라타기 무섭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타란 제국 곳곳에서 용들이 날아오르는 광경이란…….
촤악!!
파아악!!
용들이 거칠게 날갯짓하며 일제히 날아오르자 주변으로 먼지구름이 일어나 시야을 가릴 정도였다.
발리스타 같은 공성 기구를 밀고 오는 병사들 역시 바쁘기는 매한가지.
성벽을 쳐다보니 수많은 방어포를 끌어 올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지상 병력은 고대 마룡을 방어하는데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준비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다면.
저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타란 제국 전체가 비상이 걸려 난리통이 난 모습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바라보며 말했다.
“다들 바쁘네요.”
그러자 옆에서 화련이 미친놈을 보듯 날 쳐다보았다.
“이 상황을 만든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건 같지 않아?”
“제가요?”
“그래. 너.”
“에이, 설마요. 제가 무슨 힘이 있어서 고대 마룡을 움직여요.”
“지금 장난해? 방금 그거. 네가 고대 마룡을 부른 거잖아.”
눈치 빠른 걸로 치면 화련도 어디 가서 절대 뒤지지 않는다.
방금 내가 꺼낸 용신의 파편과.
그걸 꺼내기 무섭게 저 멀리 하늘에서부터 날아오는 고대 마룡.
화련이 이 둘의 연관성을 유추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터.
거기까지 이어졌다면.
당연히 다음 질문이 나올 것이다.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전에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 수도를 공격했을 때도 너였어?”
“으음. 전 전혀 모르겠네요.”
아닌 척 살짝 시선을 피하자 화련이 더욱 매서운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그러더니 곧 졌다는 듯 바로 손을 들었다.
“하아. 전부터 뭔가 이상하긴 했었는데. 진짜구나.”
“노코멘트 하죠.”
“됐거든?”
그럴 리는 없겠지만 화련이 이 대화를 다른 곳에서 풀면 꽤 귀찮아지니까.
여기서는 최대한 말을 아끼는 게 좋았다.
물론 말을 하지 않는다고.
화련이 모를 리는 없다.
저 눈빛은 이미 확신을 하는 모양새라.
용들이 빽빽하게 날아오른 하늘을 올려다 보던 화련이 성벽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베르탈륨 광석이 모자라 돌리지 못하는 방어 시스템.
하지만 곧 저 방어 시스템에도 다시 불이 들어오게 될 것이다.
지금쯤 누군가가 부랴부랴 수도성으로 달려가고 있을 테니.
그 사실을 너무 잘 아는 화련이 짧게 한숨을 쉬고는 내게 말했다.
“베르탈륨 광석을 다 쓰게 만든다는 게 이거였어?”
그런 화련에게 웃으면서 답해 주었다.
“여유가 있으면 안 사겠죠. 하지만 다 쓰면 또 찾을 거예요. 화련을.”
계속 베르탈륨 광석을 소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면.
당연히 재고가 부족할 테고.
지금 그만한 물량을 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 화련을 찾게 될 것이다.
그게 아무리 비싸다고 하더라도.
필요하면 살 수밖에.
“너…… 진짜 무서운 녀석이구나.”
“칭찬 감사합니다.”
“됐고. 이러면 타란 제국이고 유저들이고 죄다 네 손에서 놀아나는 중이겠네.”
확실히 화련은 어느 정도 핵심에 근접한 듯 했다.
“아, 통행증은 잘 받았죠?”
“네가 무조건 받아달라면서? 그런데 그게 왜 필요한 거야? 어차피 텔레포트해서 들어올 수 있으면서.”
“그게…… 방어 마법진이 있을 때는 텔레포트 할 수 없거든요. 몰래 들어오기 힘들어서.”
통행증을 받아달라는 건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니었다.
말 그대로 통행이 불편하니까.
앞으로 베르탈륨 광석들을 팔아먹으려면.
수시로 타란 제국 수도를 들락날락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방어 시스템이 켜져 있으면 들어가기가 곤란해진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화련이 다시 성벽을 쳐다보았다.
“그 말을 왜 이제 해? 안 튈 거야?”
“하하…… 튀어야죠.”
이제 방어 시스템에 다시 불이 들어오면 텔레포트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되니까.
괜히 남아 있다가 전투에 휘말리면 귀찮아진다.
바로 챠밍을 쳐다보자 챠밍이 나와 화련을 잡더니 동시에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그리고 시야가 반전되고 나온 곳은 화련의 영지에 있는 집무실이었다.
“아예 내 집무실에다가 해놓은 거야?”
“편하죠?”
“그러게.”
그 먼 거리를 한 번에 오갈 수 있는 건 아마 챠밍이 유일한 것이다.
화련이 챠밍을 흘깃 보더니 아깝다는 듯이 내게 말했다.
“우리도 마법사 좀 키워야겠어.”
“그건 알아서 하시죠.”
현재 챠밍은 전 서버의 마법사들 중에서는 단연 탑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왕의 스태프에 아크 드래곤의 로브 정도는 차고 있어야 챠밍만큼 지력과 마력을 낼 수 있을 테니까.
이건 따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지.
동급의 장비를 어디서 뚝딱 구해오지 않는 이상에야.
곧 화련이 이번에 얻은 수익을 보고는 만족한 듯이 말했다.
“계속 적자만 봤는데 한 방에 역전이네.”
화련은 그간 타란 제국에 인맥을 만들고 영지를 사들였으며.
이 영지와 베르탈륨 광산 개발을 한다고 꽤 투자를 많이 한 상태였다.
그런 어마어마한 투자금을 고작 이번 한 번의 거래로 해결한 셈이었다.
“만족해요?”
“괜찮네. 몇 번만 더 하면 어지간한 왕국 하나는 그냥 통째로 살 수 있겠어.”
뭐 화련이 그 돈이 없어서 왕국을 사지 않고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만큼 지금의 수익이 나쁘지 않다는 걸 돌려 말한 것이었다.
곧 화련이 궁금한지 내게 물어보았다.
“얼마나 뽑아먹을 생각이야?”
“으음. 타란 제국 재정이 휘청일 정도로 뽑아먹으려고요.”
“쉽지 않을걸? 걔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계속 이런 식으로는 힘들다고.”
화련도 잘 알고 있었다.
무한정 베르탈륨 광석을 팔아 뽑아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리고 이번에야 상업 조합장을 구슬려서 해 먹었지만. 다음에는? 몇 번 해보면 걔도 목이 날아갈 걸?”
무려 스무 배나 남겨 먹는 장사를 했다.
확실히 이만큼 지속적으로 지출하게 된다면 그 상업 조합장의 목도 화련 말대로 간당간당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상업 조합장의 자금만으로 그 많은 베르탈륨 광석을 소화하긴 어렵다.
분명히 타란 제국 내의 축척된 자금을 불법적으로 끌어왔을 터.
화련이 상업 조합장을 찾아간 것도.
그게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곧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화련이 걱정하는 그 상황은.
이미 예전에 재중이 형과 회의를 통해 한 번 잡고 넘어갔었다.
“전 꼭 NPC에게만 팔아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요?”
아마 이건 화련도 생각하지 못했을 테지.
NPC가 아니라는 말을 하자 화련도 바로 깨달은 듯 외쳤다.
“지금 유저들한테 팔자고 하는 거야?”
“네. 유저들요. 그것도 왕국을 잡고 있는 돈 많은 유저들요.”
내 말에 화련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가 있네. 걔들은 타란 제국에 기여도를 쌓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을 테니까. 귀족 작위를 얻을 수 있으면 더 좋고.”
역시 화련은 바로 이해를 했다.
지금 누구보다 기여도에 눈이 돌아간 건 다름 아닌.
타 왕국을 차지한 유저들이었다.
굳이 지금 저 베르탈륨 광산 쟁탈전에 뛰어들어서 노가다하는 이유도.
그놈의 기여도 때문이었다.
퀘스트 진행도 포함이고.
“그리고 유저들만큼 타란 제국의 귀족들도 베르탈륨 광석이 필요할 거예요.”
“타란 제국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뭐 그런 셈이죠. 그들도 작위 상승 기회를 마다하진 않을 거예요.”
“하! 너 지금 아예 타란 제국의 귀족들과 유저들을 경쟁 붙이겠다는 거네?”
“안 될 건 없죠. 지금 눈 먼 돈이 저 바닥에 막 굴러다니잖아요.”
내 설명을 다 들은 화련이 질린다는 듯이 날 쳐다봤다.
“너 대체 어디까지 이런 계획을 잡아둔 거야?”
“으음…… 적당히 털어먹으면 놓아주려고요.”
그냥 날 죽이려 했던 타란 제국 황제를 좀 털어먹고.
와중에 참여한 왕국들에게도 좀 뽑아내면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물론 유저들도 바보가 아니니.
아주 오랜 시간 끌 수는 없었다.
“화련은 최선을 다해 베르탈륨 광석을 캐 주세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해서.”
“그건 걱정마. 새로 자금이 들어왔으니 NPC들도 더 고용하면 돼.”
“부탁할게요. 곧 다시 찾을 겁니다.”
확실히 돈 되는 일이다 보니 화련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모양새였다.
폭발적으로 자금이 들어오는 이 상황을 마다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화련 말대로.
정말 왕국 몇 개 살 돈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으니.
* * * * *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타란 제국 수도를 습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공급한 베르탈륨 광석이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방어 시스템이 다시 복구되었고.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고대 마룡이 방어 시스템이 무력화되는 시점까지 계속 공격을 퍼부어댔다.
그만큼 베르탈륨 광석들이 소진되어갔다.
그런데 전과 다른 점이라면.
바로 유저들.
타란 제국 수도에 남아 있던 왕국의 유저들이 대거 방어전에 투입되었다.
아마도 타란 제국 황제가 방어전 퀘스트를 내린 듯 했고.
방어전 같은 경우는 기여도를 쌓기 나쁘지 않았다.
죽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유저들도 목숨은 하나라 최대한 몸을 사려서 그런지 그렇게 많은 이들이 죽진 않았다.
물론 제때 발동한 방어 시스템도 한몫했겠지만.
만약 방어 시스템이 발동되지 않았다면.
유저들이 몰살했을 지도 모르겠네.
용기사도 겨우 버티는 마당에 유저들이 제대로 버틸 수 있을까.
그렇게 또 한 번의 방어전을 치르고 난 뒤.
어느 정도 피해가 누적되었다 싶을 때.
전사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방패전사> 음. 베르탈륨 쟁탈전 쪽에서 좀 곤란한 상황이 생겼는데?
그 말이 끝나자마자 챠밍과 시선을 맞췄다.
“역시 균형이 안 맞는 곳이 있나 보네.”
“네. 처음부터 예상했잖아요.”
베르탈륨 광산의 쟁탈전은 거의 다 왕국과 왕국의 전력이 붙고 있는 중이었다.
전사 형이 맞춘다고 최대한 맞췄겠지만.
그래도 균형이 어긋나는 곳인 분명히 생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곳은.
수비군 쪽이 너무 강했을 때다.
베르탈륨 광산을 지키는 수비가 훨씬 강하다면.
다시 타란 제국 수도에 베르탈륨 광석이 전달될 확률이 높아질 테니까.
지금 베르탈륨 광석이 공급되면 장사에 큰 지장이 생기게 된다.
그건 막아야겠지.
<주호> 바로 처리할게요.
<방패전사> 오케이.
이럴 땐 더 많은 병력을 투입하거나.
혹은 내가 직접 나서거나.
바로 챠밍을 보면서 말했다.
“12번 베르탈륨 광산으로 가자.”
“네. 알았어요.”
곧 챠밍과 함께 텔레포트로 미리 저장해둔 12번 베르탈륨 광산의 부근에 도착했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유저들이 정신없이 치고받는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을 쭉 지켜보다가 품에서 용신의 파편을 꺼내 들었다.
“균형이 안 맞으면 맞춰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