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5화 먹고 먹히는 싸움 (9)
현재 타란 제국 수도 내의 베르탈륨 광석은 씨가 마른 상태였다.
베르탈륨 창고에 있던 물량을 우리가 다 털어 왔으니까.
그래서인지 외부에서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는 방어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
챠밍과 함께 텔레포트로 타란 제국 수도 내로 바로 넘어올 수 있었던 것도.
그 방어 시스템이 아예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시선을 돌려 타란 제국 수도의 전경을 바라보니 아직은 피해가 상당히 누적된 있는 상황이었다.
원래라면 벌써 복구를 해야 하는데 그만큼 여유가 없어 보이기도 했고.
복구 작업을 하는 NPC들이 곳곳에 위치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광범위하게 부서진 수도를 빠르게 고치는 건 아무래도 어려워 보였다.
인력 부족에 자원 부족이라…….
거기다가 지금은 우리가 벌려놓은 베르탈륨 광산 전쟁에 상당히 많은 전투 병력과 자원이 투입된 있는 상황이었다.
유저들을 내세운다고 해도 아예 타란 제국에서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서인지 타란 제국 수도의 시내는 그 어느 때보다 어두운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전경을 둘러보면서 화련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타란 제국의 자원을 관리하는 상업 조합이 있는 곳이었다.
타란 제국에 오가는 물자의 수출입을 관리하는 부처라고 해야 하나.
그리고 이곳에서는 베르탈륨의 관리 역시도 그 업무 안에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나나 챠밍은 같은 경우에는 이런 관리 부처와는 인연이 전혀 없었다.
그냥 다이렉트로 황제나 대공을 만나는 판에 굳이 이런 곳을 거칠 이유가 없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타란 제국 내에서의 인맥은 거의 전무하다고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화련은 전혀 아니었다.
시작부터 타란 제국에 홀로 떨어져 단신으로 모든 것을 일구어냈다고 해야 하려나.
위에서부터 인맥이 있는 우리와 달리.
화련은 전혀 반대 방향에서부터 인맥이 존재했다.
그녀를 베르탈륨 광석 거래에 데리고 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우리가 절대 할 수 없는 걸 화련은 할 수 있으니까.
화련이 상업 조합장에게 베르탈륨 광석을 언급하자 그가 화들짝 놀라면서 주위에 누가 듣는 사람이 있는가 싶어서 조심하는 모습이 보였다.
“방금 베르탈륨 광석이라고 했습니까? 화련 자작…… 아니 이젠 백작님이시죠.”
아무래도 화련의 직위가 올라갔다 보니 꽤나 어려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상업 조합장의 눈빛은 욕심이라는 두 단어를 숨기지는 못하는 듯 했다.
연신 두 손을 쓸어 담으면서 화련에게 정보를 얻으려고 하는 저 모습은 딱 그런 느낌이었다.
“그래. 베르탈륨 광석. 아마 타란 제국 수도에 베르탈륨 광석이 씨가 말랐다지?”
“흠흠. 그건 또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러면서 다시 주변을 돌아보면서 눈치를 보는 모습이었다.
욕심은 많지만.
엄청 조심스러운 스타일이네.
이곳이 자신의 안마당이라는 걸 알면서도 저렇게 조심하는 모습이라.
화련이 이곳을 선택한 이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아마도 화련에게는 베르탈륨 광석을 거래할만한 다른 선택지가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
이를테면 인맥이 있는 다른 상위 귀족들 중에 누군가를 선택해서 거래를 했어도 충분했을 터.
그런데도 화련은 이 자를 선택했다는 건.
그만큼 입이 무겁고 비밀이 새어나갈 확률이 적다는 뜻일 테다.
“이 난리가 났는데 내가 모를 것 같아?”
“흠흠. 그래도 베르탈륨 광석 보유량은 최고 귀족 회의가 주관하는 최고 기밀인데요…….”
“그거야 평상시일 때나 이야기지.”
그러면서 화련이 손가락을 들어 저 멀리 있는 타란 제국 수도의 성벽을 가리켰다.
“방어 시스템이 아예 꺼져 버렸잖아. 그럼 누가 봐도 베르탈륨 광석이 바닥난 거지. 세 살배기 애들이 와도 알겠다.”
“하하…… 그렇긴 합죠.”
방어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유지가 되고 있었다면.
타란 제국 수도 내에 남은 베르탈륨 보유량을 알아내는 건 사실 꽤 어려운 일이었다.
직접 수도 지하에 존재하는 베르탈륨 창고에 들어가서 일일이 확인해보지 않는 한에야.
하지만 지금처럼 완전히 방어 시스템이 꺼져버렸다면 화련 말대로 이야기가 아예 달라진다.
굳이 살펴볼 것도 없이 베르탈륨 광석 재고가 바닥이라는 뜻이니까.
무엇보다 고대 마룡이 수시로 들락거리는 이 상황에 방어 시스템이 꺼졌다는 건.
방어 시스템을 돌리고 싶어도 돌릴 베르탈륨 광석이 없다는 걸 뜻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곧 상업 조합장이 두 손을 세차게 비비면서 화련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렇게 제게 찾아온 것은…… 방도가 있단 뜻이겠죠?”
“아니면 힘들게 여기까지 왜 왔겠어.”
“그런다는 건…… 혹시 베르탈륨 광석을 보유하고 계십니까?”
지금 상업 조합장 정도 되는 위치라면.
어느 정도의 정보는 알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화련이 타란 제국 내 최대 규모의 베르탈륨 광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까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이건 애초에 타란 제국 황실과 연관된 있는 일이기도 하고.
실제로 베르탈륨 광산의 위치가 알려진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은 그 베르탈륨 광산은 고대 마룡에게 한 번 무너진 상태고.
상업 조합장이 어디까지 고급 정보에 접근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저렇게 화련에게 물어보는 것 자체가 모를 확률이 훨씬 높아 보였다.
“응. 가지고 있어. 그것도 꽤 많이.”
화련이 베르탈륨 광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자 상업 조합장의 눈빛이 더없이 간절하게 변했다.
“하하. 안 그래도 전쟁 통에 베르탈륨 광석 보급이 막혀서 어쩌나 했는데 말입죠. 상부에서는 어떻게든 베르탈륨 광석을 구해오라고 하지 않나…… 그런데 제가 없는 걸 어디 가서 구해옵니까.”
말하는 것을 들어보면 상업 조합장 입장에서도 난감한 상태였던 모양이었다.
위에서는 구해오라고 쪼지.
그런데 구할 방법은 없지.
중간에 껴서 계속 욕만 먹는 상황이랄까.
그러자 화련이 만족스럽다는 웃음을 지으며 상업 조합장에게 말했다.
“베르탈륨 광석 물량을 계속 대 줄 수는 있어. 그런데. 좀 비싸.”
계속 물량을 밀어준다는 말에 상업 조합장이 반색하면서 물었다.
“납기만 제 때 맞출 수 있다면 가격이야…….”
“열 배.”
화련이 두 손을 펼쳐서 열 배라는 가격을 제시하자마자 상업 조합장이 그 자리에서 바로 석상이라도 된 것 마냥 굳어버렸다.
“방금 뭐라고…….”
“아씨. 짜증나게 두 번 말하게 할 거야? 가볍게 열 배부터 시작해보자고.”
“허…… 아무리 그래도 그 가격은 좀…….”
“이십 배.”
상업 조합장이 은근슬쩍 딜을 놓으려고 하자 화련이 바로 가격을 더 올려버렸다.
“헉……!”
“지금부터 네가 말을 덧붙일 때마다 가격은 더 올라갈 거야. 잘 판단하라고.”
순식간에 가격을 뻥튀기 시키는 모습을 지켜본 챠밍이 놀랍다는 듯 눈을 깜빡이면서 말했다.
<챠밍> 와…… 화련이 완전 강도 같아요.
<주호> 우리하고 있을 때나 호구지. 쟤 무서운 사람이야.
워낙 내게 당한 게 많아서 그렇지.
보통은 화련 발 아래 놀아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지금은 딱 그런 모습이었고.
<주호> 그리고 그러려고 화련을 데리고 온 거거든.
이런 좋은 조건이 갖춰져 있을 때.
최고의 협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돈에 관한한.
화련보다 확실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상업 조합장이 어버버하면서 선택을 하지 못할 때.
화련이 몇 마디를 덧붙였다.
“혹시라도 타란 제국 내에 있는 다른 베르탈륨 광산에서 광석이 보급되기를 바라는 거라면. 꿈을 접는 게 좋을 거야.”
“네? 전쟁이 조기에 끝나면…….”
“아니. 그거 안 끝나.”
그러면서 화련이 내 쪽을 슬쩍 쳐다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역시 예리하네.
화련은 지금의 베르탈륨 광산 쟁탈전이 쉽게 끝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 했다.
<주호> 알고 있었어요?
<화련> 네가 직접 말했잖아. 베르탈륨 광산 다 못 쓰게 만들 거라고. 그럼 뻔하지. 지금 일어나는 광산 전쟁. 전부 네 작품이잖아.
<주호> 하하. 할 말이 없네요.
<화련> 광산 전쟁을 질질 끌거나. 아님 진짜 광산들을 부셔버리겠지. 무슨 방법을 쓸지는 모르겠지만. 아니야?
이거 너무 정확해서 할 말이 없네.
그런 화련의 질문에 웃음으로만 답해주었다.
그리고 이게 화련에게는 답이 되었을 것이다.
<화련> 그럼 마음 놓고 가격 올린다?
<주호> 알아서 해주세요.
여기서 더 올릴 거라는 뜻이려나?
하지만 상업 조합장이 당장 융통할 수 있는 자금에도 한계는 있을 터.
품질이 낮은 베르탈륨 광석이 상품보다야 많이 싸다고는 하나.
그래도 그 가격이 절대 낮지 않았다.
“흠. 스무 배는 좀…….”
확실히 상업 조합장이 부담을 느낄만한 금액인 듯 했다.
그러자 화련이 어림도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어차피 네 돈도 아니잖아. 당장 고대 마룡이 다시 나타나기라도 해봐. 파괴된 수도 복구 비용하고 베르탈륨 광석. 어느 쪽이 싸게 먹힐 것 같아?”
“흠……!”
“그리고 이 일. 잘 되면 바로 백작으로 승작할 건데? 평생 자작 작위에 상업 조합장만 할 거야?”
“그건 아니지만요.”
자작이었나?
하긴 귀족이 아니라면 저런 직책을 가지고 있지도 못할 것이다.
곧 상업 조합장이 바쁘게 눈을 굴리면서 주판을 튕기는 게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고대 마룡이 휩쓸고 가서 폐허가 된 구역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거기다 전과 다르게 지금은 광산 쟁탈전을 같이 치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여차하면 여기서 피해가 눈덩이 불어나듯 커질 수 있다.
그런 피해를 줄일 수 있다면.
베르탈륨 광석에 과하게 돈을 쓰는 건.
나쁜 선택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베르탈륨 광석을 구해온 상업 조합장은 그만큼 업적을 세우는 걸 테니까.
“흐음…… 하지만 당장 고대 마룡이 다시 나타난다는 보장도 없고…….”
“싫어? 그럼 나 그냥 간다? 너 말고도 돈 대줄 녀석들은 많거든.”
그대로 화련이 미련 없이 돌아서 버리자 이번에는 상업 조합장이 화들짝 놀라면서 외쳤다.
“잠시만!!”
설마 화련이 그냥 가버릴 줄을 상상도 못 했는지 상업 조합장이 급하게 불러 세웠지만.
스무 배는 역시 과한 금액이었던 것 같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업 조합장이 곧 눈을 질끈 감고는 말했다.
“열 배까지는 제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습니다…….”
“스무 배라니까?”
“하지만 몇 번 쓰지도 못할 물량을 구해가 봐야 의미도 없…….”
그 순간 화련이 손가락 세 개를 보란 듯 들어 보였다.
“수도 창고 세 개 분량이면 되겠어?”
“헉……!”
설마하니 이렇게 많은 물량을 언급할지 몰랐는지 상업 조합장이 벙찐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곧 정신을 차리더니 화련에게 물었다.
“정말입니까?”
“왜? 아닐 것 같아?”
“아닙니다…… 그 정도 양이라면…….”
스무 배를 주더라도 해볼만하다는 뜻이겠지.
싹 비어있던 곳간을 다시 채워준다는데.
승작은 무조건이라고 봐야 한다.
곧 결심이 섰는지 상업 조합장이 말했다.
“혹시 물건 먼저 볼 수 있겠습니까?”
협상이 끝나자 화련이 내 쪽을 쳐다보았고.
곧 창고를 하나 마련해서 가지고 있던 베르탈륨 광석 중 일부를 꺼내 보였다.
한쪽에 산처럼 쌓여가는 광석들을 본 상업 조합장이 놀라면서 말했다.
“헉! 진짜군요.”
“그럼 이런걸로 장난 칠 줄 알았어?”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르탈륨 광석을 전부 쏟아내었고.
우리 손에는 통상 가격의 스무 배에 달하는 자금이 손에 들어왔다.
“좋은 거래였어.”
“감사합니다.”
“그런데 통행증 몇 개 구해줄 수 있어?”
“통행증 말입니까?”
“전시라고 자꾸 막잖아.”
“아. 그런 거라면. 저희가 보증하는 통행증이 있습니다. 베르탈륨 광석 관련해서는 지금 무조건 통과거든요.”
“좋아.”
통행증을 받아 바깥으로 나오자 화련이 내 몫을 넘겨주면서 물었다.
액수가 워낙 커서 꽤 만족스러운 거래였다.
하지만 화련은 아직 만족을 못한 듯 했다.
“좀 더 부를 수 있었는데 아쉽네.”
“아쉬워요?”
“더 팔아먹어야 하는데. 당분간은 안 되잖아.”
저만한 물량을 줬으니 소진하기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화련과 챠밍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줬으면 바로 다 쓰게 만들어야죠.”
그리고는 품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들었다.
용신의 파편.
“응? 뭐야?”
“아. 그냥 떡밥이죠.”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 하늘 멀리에서부터 고대 마룡의 울음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근처에 있었던가?
생각보다 빨리 오네.
“그럼 우린 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