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4화 먹고 먹히는 싸움 (8)
원래라면 카샤스 대공령의 병력이 베르탈륨 광산을 지키고 있는 요새에 몰래 침투해서 무너뜨리는 시나리오가 나왔겠지만.
실제 벌어지고 있는 전투들의 양상은 그것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었다.
미리 약속이라도 되어 있다는 듯 타란 제국의 병력들이 베르탈륨 광산을 지키고 있었고 카샤스 대공령의 병력들이 들이닥치자마자 바로 응수했다.
그런데 그걸 또 카샤스 대공령의 병력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회피하더니 비공정을 써가면서 다시 폭격을 해버렸고.
또 그런 비공정의 폭격을 기다렸다는 듯이 타란 제국군이 방벽 너머로 숨어버리고는 폭격이 끝나자 다시 튀어나오기를 반복했다.
이건 마치 한 편의 잘 짜여 있는 연극을 보고 있다고 해야 하나?
서로의 패가 나오면 반대로 뒤집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자, 옆에 있던 재중이 형이 헛웃음을 지었다.
“서로 공격할 걸 뻔히 알고 있는데 제대로 한 방 먹일 수가 있나.”
“네. 너무 잘 알고 있죠.”
카샤스 대공령의 병력들이 베르탈륨 광산을 기습한다는 건 이미 타란 제국군에 널리 알려져 버렸다.
애초에 먼저 정보를 풀어버리기도 했고.
꼭 그게 아니더라도.
각 진영에 속해 있는 유저들의 커뮤니티를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한 다리만 건너면 이해관계가 얽힌 길드에 연합들인데.
돌려 말하면 상대측의 정보를 원하면 얼마든지 얻어낼 방법이 있다는 소리였다.
특히 상대의 병력 구성이라던가.
준비한 무기들을 고려해보면.
어떤 식으로 공격해올지는 대략적으로 감이 잡힌다.
“공성전 한두 번 해 보는 애들도 아니고. 어지간해서는 베르탈륨 광산을 뚫는 건 힘들 거야.”
재중이 형은 이 베르탈륨 광산 탈환 작전이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가는 중이었고.
스무 곳에 달하는 베르탈륨 광산 중에 아직 그 어떤 광산도 뚫리지 않았다.
카샤스 대공령의 병력을 적절히 배치했지만.
반대로 타란 제국군의 병력 역시도 그에 딱 맞춰서 배치된 덕분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전사 형이 영상 몇십 개를 동시에 올려놓고 지켜보다가 재중이 형의 말이 맞다는 듯 말했다.
“이러면 무조건 소모전으로 갑니다. 어느 한 곳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 않으면요.”
소모전.
사실 이게 우리가 가장 원하는 그림이었다.
지금 저 전장에서 갈려 나가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각 왕국의 유저들이었으니까.
카샤스 대공령에서 유저들을 동원했듯.
타란 제국군 역시도 똑같이 유저들을 앞세우고 지금의 전쟁을 치르는 중이었다.
정작 서로의 진짜 군대는 아껴두면서 말이지.
하지만 퀘스트라는 미명하에 유저들은 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서 발을 빼기에는 좀 늦은 감이 있으니까.
물론 피해가 심하다고 판단했을 경우 지금이라도 발을 뺄 수 있겠지만.
그러면 앞으로 타란 제국이나 카샤스 대공 쪽 어느 한 곳에도 발을 붙일 수 없게 된다.
단독으로 연합을 만들어서 중립 세력으로 나와봤자 양쪽 세력에 두들겨 맞고 끝나게 될 것이다.
전쟁들을 일일이 지켜보던 전사 형이 뿌듯한 듯이 재중이 형을 보면서 웃어 보였다.
“제가 이 그림 만들려고 얼마나 고생한 지 압니까?”
“아아. 고생했다.”
중간에서 제일 고생한 사람이 바로 전사 형이었다.
카샤스 대공령과 타란 제국군 양쪽 모두의 병력 정보를 동시에 취합해서 그 규모를 딱 맞춰버렸으니까.
한 마디로 지금 저 병력들은.
전부 전사 형이 잘 짜놓은 체스판 위에 올라 와서 전투를 하는 중이었다.
“아. 그래도 어디 한 군데는 분명 어긋날 겁니다. 양쪽 세력에 속한 길드원들의 개별 전투력까지 전부 고려할 순 없으니까요.”
“개중에 튀는 놈이 있을 거라는 거지?”
“네. 그것도 왕국의 영웅 버프를 받은 녀석들요. 각 길드의 에이스들에게 몰아줬을 테니 전투력 차이는 확 나겠죠.”
“프로 팀 애들 말이야?”
“네. 그쪽에 왕국의 영웅 버프를 주면 거의 사기죠.”
전사 형의 말에 재중이 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답했다.
“그런 녀석들이 양쪽에 다 있으면 어떻게든 균형은 맞춰져.”
“흠. 그래도 날아다니는 녀석은 있을걸요?”
“그것까지는 할 수 없지.”
그 다음 이어지는 재중이 형의 말은 모두를 웃게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나대다가 확 죽어버리면 최곤데 말이야.”
“하하…….”
“정 안 되면 왕국의 영웅들도 있으니까. 다들 알아서 틀어막겠지.”
이건 유저들 중에 튀는 녀석들을 상대 쪽 왕국에서 어떻게든 막아주길 바라는 모양새였다.
그러자 전사 형이 궁금한지 물어보았다.
“카샤스 대공령의 영웅들은 투입 안 합니까?”
“아. 그건 하지 마. 아직은 쓸 때가 아니야. 카샤스 대공도 원하지 않을 테고.”
“흠. 확실히 그건 그렇죠. 타란 제국에서도 영웅을 투입하지 않을 테니까요.”
“이건 그냥 전초전일 뿐이야. 서로 간만 보는.”
“그 와중에 유저들이 갈려 나가면 더 좋다는 거죠.”
실제로 지금 이 순간에도 카사스 대공령의 유저들과 타란 제국의 유저들이 동시에 갈려 나가고 있었다.
누가 이겨도 이상한 그림이랄까.
서로 왜 갈려 나가는지 이해 하지도 못 한다.
이쁜소녀가 재중이 형과 전사 형의 대화를 듣다가 무심코 말을 꺼냈다.
“우리 엄청 악당 같아요!”
나르샤 누나도 마찬가지였고.
“무슨 흑막 같네. 그 있잖아. 뒤에서 전쟁을 조정하는 애들.”
둘의 말에 모두가 웃어버렸다.
그때 막내별이 생각나는 게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런데 유저들이 죽는 것만으로는 이득 볼 게 없지 않아요? 장기적으로 보면 경쟁자가 사라지는 건 맞지만요.”
그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쟤들 싸우고 있는 동안 베르탈륨 공급이 끊기잖아. 광산이 아예 무너지면 제일 좋겠지만. 그러면 아예 포기해버리니까 이쪽은 질질 끌고 가는 게 베스트지.”
확실히 재중이 형 말대로 전투가 계속 이어지면 베르탈륨 공급 자체가 부족해진다.
그렇다고 우회해서 운반하기에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가장 취약한 순간이 바로 광산 요새를 나와서 운반을 하는 상황일 테니까.
“이대로 베르탈륨 공급이 끊기면…… 우리는 최대로 비싸게 팔아먹는다.”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어때? 화련은 준비가 됐어?”
“아. 물어볼게요.”
<주호> 베르탈륨 광석은 어떻게 됐어요?
<화련> 다행히 1층은 캘 만 하네. 일단은 NPC들 죄다 동원해서 캐고 있어.
<주호> 그럼 공급에는 문제없겠죠?
그런데 의외의 문제가 생겨버렸다.
<화련> 하아. 캐는 속도는 그럭저럭 괜찮은데. 운반이 문제야. 타란 제국에서 여분의 비공정을 싹 쓸어가 버렸어. 누구 덕분에.
<주호> 아…… 그렇군요.
<화련> 우리 애들 비공정 다 써봐야 얼마 옮기지도 못해. 이대로는 아무리 캐봐야 헛수고라고.
<주호> 잠시만요. 이쪽에 가용한 비공정이 있나 물어볼게요.
바로 전사 형에게 물어보았다.
“전사 형. 베르탈륨 광석을 캘 수는 있는데 옮길 비공정이 부족하다네요. 수배 좀 해줄 수 있어요?”
“응? 그거 어려울 건데. 지금 죄다 전투에 동원되고 있어서 말이야.”
“그렇게 부족해요?”
“전시잖아. 그리고 카샤스 대공령에 여유가 있긴 해도 비상시에 써야 하니까 함부로 내줄 수 없을걸?”
이건 아무리 카샤스 대공이라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타란 제국군이 맘먹고 대공령으로 직접 전진해올 경우 그걸 막기 위한 비공정 수는 보유해야 해. 아니면 공중전에서 밀릴 테니까. 안 그래도 제국에 비해 탈 것과 비공정이 부족한데 여기서 공중을 잡히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지?”
“흐음. 알겠어요.”
방법이 없나…….
비공정은 어디서 뚝딱하고 바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만들어놓은 전투 때문에 그 비공정들이 대부분 사용되는 중이었다.
한 번에 많은 양을 옮기려면 몇 대 가지고는 어림도 없는데…….
그때 옆에서 챠밍이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오빠.”
“응?”
“오빠라면 충분히 가능해요.”
“나?”
그러더니 챠밍이 손에 쥐고 있던 아이셔스 스태프를 좌우로 흔들면서 미소 지었다.
“아……!”
“기억나죠?”
“그러게.”
우리 둘의 대화를 듣던 모두가 궁금한지 쳐다보자 바로 챠밍의 아이셔스 스태프를 복사했다.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그러자 복사된 아이셔스 스태프가 바닥에 우수수 떨어졌고.
하나씩 잡고는 만족스러운 듯 웃어보였다.
“이거 하나, 하나가 전부 다 창고거든요.”
얼마 전에 타란 제국의 베르탈륨 창고를 털 때도 이 방법을 썼으니 이번에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이건 거의 무한의 창고라고 해야 하나.
그러면 굳이 많은 수의 비공정이 없더라도.
충분히 원하는 만큼의 베르탈륨 광석을 운반할 수 있다.
“실피드를 타고 가면 비공정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자 다시 챠밍이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오빠. 거기 좌표 이미 입력해놨어요.”
챠밍이 모두를 보면서 미소 지었다.
“그럼 저희 다녀올게요.”
【 텔레포트! 】
그렇게 챠밍이 텔레포트를 쓰자마자 바로 눈앞의 배경이 확 뒤집어지더니 곧 익숙한 곳으로 변했다.
“화련의 영지네.”
“전에 왔을 때 저장해놨어요. 마음에 들어요?”
“완전.”
내 칭찬에 챠밍이 환하게 웃어 보였다.
확실히 챠밍 덕분에 실피드를 타고 올 필요도 없어졌다.
<주호> 베르탈륨 광석 좀 모아줄래요? 가져가게.
<화련> 응? 무슨 말이야?
<주호> 아. 저 지금 화련의 영지에 와 있어요.
<화련> 그 먼 거리를 바로 왔다고? 텔레포트? 어지간한 마력으로는 안 될 건데.
<주호> 유능한 마법사가 있어서요.
<화련> 지금 자랑질이야?
<주호> 하하. 그럼 광산에서 보죠.
곧장 실피드를 타고 베르탈륨 광산까지 날아가자 이미 복구가 어느 정도 된 건지 NPC들이 쉴 틈 없이 베르탈륨 광산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총알 같이 오네.”
“베르탈륨 광석은요?”
“저쪽에 쌓아놨어.”
시선을 돌리자 상당수의 베르탈륨 광석들이 쌓여 있는 게 보였다.
챠밍을 보면서 물었다.
“저 정도면 창고 세 개 분량 정도는 나오겠지?”
“전에 봤던 거라면…… 네.”
“나쁘지 않네. 협상하기에는.”
그리고는 곧장 챠밍에게 말했다.
“타란 제국 수도 좌표. 저장해놨어?”
내 물음에 챠밍이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지상에 갔을 때 해놨어요.”
“오케이.”
그리고는 화련을 불렀다.
“가요.”
“뭘?”
“우린 얼굴이 팔려서 안 되거든요. 가서 대신 팔아줘야겠어요.”
“지금 가자고?”
곧장 아이셔스 스태프들을 써서 베르탈륨 광석들을 싹 쓸어 담자 화련이 깜짝 놀라서 날 쳐다봤다.
“그건 또 뭐야?”
“영업 비밀요. 아. 그리고 운반을 우리가 하니까 40% 먹습니다.”
“와. 날강도 같으니라고.”
그러면서 화련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수긍했다.
직접 운반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다 됐다는 신호를 주자 챠밍이 곧장 화련까지 합쳐 타란 제국 수도로 텔레포트했다.
“편하네.”
타란 제국 한가운데 들어오자마자 화련을 따라 몇 번의 골목을 돌고 돌아 숨져진 NPC를 만났다.
여긴 상업 조합인가…….
하여간 능력도 좋아.
언제 이런 곳에 인맥을 만들어 둔 건지.
그렇게 몇 번 이야기가 오간 뒤.
화련이 두 손바닥을 모두 펼쳐 보이면서 상업 조합장에게 말을 꺼냈다.
“일단 가볍게 열 배부터 시작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