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6화 타란 제국 내전 (12)
연신 천장이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과 거칠게 흔들리는 바닥을 지나 처음 우리가 들어왔던 장소까지 돌아왔다.
그리고 그대로 바깥으로 나가는 연못으로 잠수를 하려는데 저 멀리서 다시 용기사단들이 움직이는 것이 감각에 들어왔다.
“이제 얼음 장벽이 깨졌나 보네.”
“쫓아 와요?”
“응. 그런데 이미 늦었지.”
뒤늦게 이곳을 발견해봐야 이미 우리는 떠나고 난 뒤일 테니까.
그렇게 잠수해서 왔던 길을 빠져나가다가 챠밍에게 신호를 했다.
<주호> 아무래도 여길 무너뜨려야겠어.
<챠밍> 네?
<주호> 추격이 따라올 수도 있으니까.
다른 녀석은 몰라도 그 후작 녀석이라면 잠수를 해서 우리를 따라올 확률이 있었다.
그럼 일이 귀찮아지지.
애초에 안 마주쳐도 되는 일은.
미리 싹을 잘라버리는 게 상책이다.
잠수해 있는 상태에서 곧장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들을 꺼내 들었다.
【 대천사의 가호! 】
그러자 등 뒤로 환한 빛의 날개들이 쭉 뻗어 나왔고.
곧장 다음 스킬을 시전했다.
【 그랜드 크로스! 】
안 그래도 딱 몇 사람이 잠수할 정도밖에 되지 않는 좁은 통로 안에서 그랜드 크로스를 시전하자 엄청난 압력과 함께 빛의 십자가가 뻗어 나가며 통로 전체를 터트리기 시작했다.
쿠아아앙!!
그리고 그 압력으로 나와 챠밍이 폭발의 반대편인 통로 바깥쪽으로 쭉 밀려나갔다.
<챠밍> 꺅!
워낙 폭발이 강해 챠밍의 손을 잡아 쭉 잡아당겼고.
챠밍도 그대로 내게 몸을 맡기면서 바싹 붙었다.
그렇게 얼마나 거센 물결에 밀려왔을까.
어느 순간 시야가 확 트이면서, 넓은 강으로 이어지는 곳까지 흘러나오게 되었다.
“푸하!”
수면 위로 나오며 동시에 안도의 숨을 크게 내쉬었다.
“우리 나왔어요!”
“그래. 겨우 나왔네.”
동시에 저 멀리서 뭔가의 폭발이 계속 이어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고개를 돌려 폭발 방향을 바라보자 저 멀리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날아다니며 타란 제국의 방어 시스템을 향해 끝도 없이 검은 용암을 쏘아내는 광경이 보였다.
절대로 뚫어내려는 창과 어떻게든 막아내야 하는 방패의 싸움이라고 해야 하나.
연신 이어지는 폭발로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강 위에 올라온 우리의 얼굴도 덩달아 달아오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그게 착각이 아닌 듯 챠밍이 말했다.
“얼굴이 후끈거려요.”
“정말 그렇네.”
챠밍이 하늘을 돌며 계속 검은 용암을 뿜어내는 고대 마룡을 보고는 감탄하면서 말을 이었다.
“저런 고대 마룡을 피해서 여기까지 온 게 기적 같아요.”
“나도 그 생각 중이야.”
지금의 고대 마룡은 압도적이라는 말이 부족할 정도로 괴물이었다.
결과적으로 저 고대 마룡을 타란 제국과 붙이는 데 성공했으니.
온 소기의 목적은 거의 다 달성한 셈이었다.
거기다 베르탈륨 창고를 전부 털어놨으니.
이제 곧 저 방어 시스템도 멈추게 될 테고.
“이제 시간은 우리 편이겠네.”
내 말에 챠밍도 동의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내게 물었다.
“방어 시스템이 멈추는데 얼마나 걸릴까요?”
“흐음. 나도 그건 모르겠는데. 다섯 개의 베르탈륨 창고를 전부 털었으면 지금 당장이라고 확신하겠는데 말이지.”
역시 무리를 해서라도 마지막 베르탈륨 창고를 털었어야 했나 생각을 했다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마 거기서 조금만 시간을 더 지체했으면 내 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럼 챠밍 역시 위험해졌을 테고.
딱 여기까지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결과물이었다.
더 이상을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
“일단 추격은 못 할 거야.”
“그래서 일부러 터트린 거죠?”
“응. 괜히 여기까지 따라 나오면 일이 복잡해지니까.”
안에서 바깥의 강으로 나오는 통로 자체를 무너뜨렸으니 당분간은 추격은 불가능했다.
뭐 우리가 다시 들어갈 수 없겠지만.
이젠 굳이 들어갈 이유도 없고.
어차피 얼마 지나지 않아 타란 제국의 수도 자체가 무너지면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자. 볼일 다 봤으니 우린 이제 튀자.”
강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챠밍과 함께 하이딩 망토를 뒤집어썼다.
“여기서부터는 조심해서 가자.”
고대 마룡이 지금은 타란 제국에 온 신경을 쓰고 있다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괜히 녀석의 시선을 끌 필요는 없으니까.
그렇게 둘 다 은신을 한 상태로 한참을 걸어간 뒤.
완전히 고대 마룡이 보이지 않겠다 싶은 곳까지 오자 은신 상태를 풀었다.
그리고 챠밍을 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제 숨 크게 쉬어도 돼.”
“하아…….”
둘 다 조심한다고 숨소리마저 죽이고 걸어왔던 터라.
“여기까지 왔으니 모르겠죠?”
“응. 여기서 용신의 파편을 꺼내지 않는 이상은.”
그리고는 실피드를 꺼내서 둘 다 올라탔다.
타란 제국이 무너지는 걸 직접 보고 싶긴 한데.
굳이 우리가 없다고 해도 어차피 무너질 걸 여기서 시간을 죽이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왔던 길을 그대로 돌아 카샤스 대공의 대공령으로 돌아가는 도중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불멸> 어떻게 됐어?
<주호> 지금 돌아가고 있는 중이에요.
<불멸> 고대 마룡은?
<주호> 열심히 두들기고 있어요. 타란 제국 수도를.
그리고 베르탈륨 창고를 몽땅 털어버린 이야기까지 해주자 재중이 형이 감탄했다.
<불멸> 무서운 놈 같으니라고.
<주호> 칭찬 감사합니다.
<불멸> 애지중지 모아놓은 걸 싹 빼먹었네.
<주호> 적이 쓰는 것보다야 제가 쓰는 게 낫죠.
<불멸> 그렇지. 언제쯤 도착하냐?
<주호> 음.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이번엔 곡예를 안 해도 되니까.
전에는 고대 마룡을 피해서 하늘에서 곡예비행을 해야 했기에 시간이 오래 걸렸던 거고.
돌아가는 길은 그보다는 훨씬 수월했다.
<주호> 아. 유저들은 어때요?
<불멸> 나쁘지 않아. 이미 꽤 많이 모였어.
<주호> 생각보다 훨씬 빠르네요.
<불멸> 늦으면 재미없을 거라 생각한 거겠지.
확실히 재중이 형의 말이 맞았다.
남들보다 뒤처지면 결국 그만큼 기여도를 얻을 기회가 줄어들 테니까.
<주호> 타란 제국 황제 쪽에 붙은 녀석들은 없어요?
<불멸> 파악 중인데. 이쪽에선 확인 불가. 아마 고대 마룡 때문에 꽤 붙으려나?
<주호> 지금쯤 유저들도 알겠네요.
<불멸> 어. 고대 마룡. 빠르게 타란 제국까지 먼저 날아온 BJ 녀석들이 방송에 내보내서 이젠 다 알아.
<주호> 반응은 어때요?
<불멸> 어떻긴. 아주 난리가 났지. 성마대전 중후반부에나 나올 고대 마룡이 벌써 나와서 설치고 있으니…….
이제 유저들도 잘 알겠지.
뭔가 원래의 성마대전 역사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그만큼 이른 고대 마룡의 등장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주호> 일단 돌아갈게요.
<불멸> 그래. 고대 마룡 안 따라붙게 조심하고. 아. 그리고 혹시 유저들에게 찍힐 수도 있으니 들어올 때 잘 들어와.
<주호> 그러죠.
재중이 형과 연락을 끝내자 챠밍이 내게 물었다.
“벌써 다 알았나 봐요?”
“응. 이런 거 방송 한 번만 타도 어지간한 유저들은 다 알 테니까.”
그러자 잠시 생각을 하던 챠밍이 말했다.
“그럼. 고대 마룡을 잡기 위해 더 움직이겠어요.”
“응?”
“레이드 팀들요. 타란 제국 내전 정도로는 움직이지 못한 진짜 상위 팀요.”
“아. 그러려나.”
확실히 챠밍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타란 제국 내전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 고대 마룡 레이드로 얻을 수 있는 것들에는 엄연하게 차이가 존재하니까.
“그래도 아직은 무리란 걸 알 텐데.”
다른 상황과 달리 성마대전 시대는 한 번 죽으면 일단 아웃이다.
그런 패널티가 있는데 무리해서 고대 마룡을 잡으려 한다는 걸 꽤나 무리하는 일이다.
그러자 챠밍이 내게 물어보았다.
“만약 오빠 같으면 지금 같은 상황에 어떻게 움직일 것 같아요?”
“응? 나?”
“네. 오빠라면요.”
“흐음…… 보자…… 나 같으면…….”
잠시 고민을 해보다가 그냥 내가 할 수 있을 만한 일을 말해주었다.
“고대 마룡이 워낙 덩어리가 크니까 좀 약하게 만들 필요는 있겠네. 그러려면 그 부담을 대신 지워줄 상대가 필요할 테고…….”
순간 머리에 스치는 생각들.
“나 같으면 아마도 타란 제국 황제나 카샤스 대공의 세력을 이용하려 하겠지. 몸빵 대용으로. 그렇게 그들이 먼저 고대 마룡을 쳐 주면…… 약해진 고대 마룡을 잡는다.”
그러자 챠밍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빠가 그렇게 생각하면 다른 유저들은 어떨 것 같아요?”
“그래. 다른 녀석들도 좀 머리가 돌아간다 싶으면 다 그 방법을 쓰겠지.”
이건 어떻게 보면 정공법에 가까운 방법이었다.
너무 단순하다 생각할 수도 있지만.
가장 효과가 좋은 방법이기도 했고.
만약 죽어도 다시 부활할 수 있다면.
굳이 그렇게까지 번거롭게 하지 않아도 될 테지만.
성마대전을 여기서 끝내고 싶지 않은 이상에야…….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방법도 그 방식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타란 제국 황제를 잡기 위해 고대 마룡을 이용한다는 점이 좀 다르긴 해도.
곧 챠밍이 내게 말을 꺼냈다.
“어차피 유저들이 아무리 타란 제국 내전을 잘 마무리한다고 해도 황제는 되지 못해요. 타란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이 동시에 죽어버린다면 또 모를까.”
아니다.
이 경우에는 아이샤 황녀가 황제가 될 수 있다.
한 마디로 챠밍 말대로 유저들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트로피는 딱 거기까지일 것이다.
황제 바로 아래.
공작 급의 보상.
이게 매력적인가를 물어본다면.
누군가에게는 충분할 수도 있겠지만.
글쎄.
최강의 무구를 원하는 유저들에게는 좀 약하긴 하겠지.
용신검이라는 보상이 있긴 한데.
이건 기여도 1위라는 딱 한 명에 대한 보상이다.
“그래서 결국 고대 마룡에 몰릴 거다?”
“네. 이쪽이 트로피가 훨씬 크잖아요.”
“확실히…….”
고대 마룡 레이드를 성공함으로써 나오는 아이템의 질과 양을 고려해본다면…….
새로 떠오른 고대 마룡 레이드는.
유저들에게 선택을 하게 만들 것이다.
“내전이냐 레이드냐…….”
“어쩌면 둘 다 할 수 있겠죠?”
“그래. 타란 제국이나 카샤스 대공의 세력을 고대 마룡과 붙여서 말이지.”
이건 유저들 입장에서는.
그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 해야 한다는 뜻인데.
“생각보다 타란 제국 황제에게 붙는 녀석들이 많을 수도 있겠네.”
현재 타란 제국은 고대 마룡과 붙고 있는 중이었다.
이 조건은…….
아까 말했듯이 고대 마룡을 힘을 대신해서 깎기에는 최적의 조건이랄까.
우리가 고대 마룡을 타란 제국에 붙여줌으로 오히려 유저들이 타란 제국에 붙을 확률이 올라간 셈이었다.
고대 마룡이 왜.
어떤 식으로 거기까지 간지 전혀 모르겠지만.
그때 챠밍이 날 보면서 미소 지으면서 물어 보았다.
마치 정답을 찾아내길 바라는 눈치로.
“모두가 오빠처럼 생각한다면…… 이제 오빠는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글쎄.”
모두가 나처럼 생각한다라……
그럼 여기서 한 번 더.
생각을 꺾을 필요가 있었다.
그럼 나오는 결론은 한 가지.
챠밍이 뭘 말하려고 했는지 잘 알 것 같았다.
“먹이 사슬의 꼭대기에 서면 되겠네.”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챠밍이 더할 수 없이 환한 웃음을 지었다.
“네. 모두가 서로를 이용해먹고 만신창이가 됐을 때……”
“전부 먹어치우라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