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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53화 (1,253/1,404)

#1253화 타란 제국 내전 (9)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타란 제국 바깥에서 연신 마법 방어막을 두들기는 탓에.

오히려 이곳 베르탈륨 창고의 경계가 이전보다 구멍이 많이 나 있었다.

그 증거가 바로 지금의 상황이었다.

베르탈륨 창고를 지켜야 할 용기사들이 제때 도착하지 못한 것.

원래라면 일정 숫자 이상 배치가 되어 있어야 정상이겠지만.

고대 마룡이 바깥에서 저리 난리를 치니 현재 가용할 수 있는 모조리 빼야 했을 것이다.

덕분에 아무도 지키지 않는 베르탈륨 창고에 유유히 들어가 작업을 할 수 있었다.

감각을 풀어 완전히 베르탈륨 창고가 비어버린 것을 확인하고는 품에서 미리 복사해둔 아이셔스 스태프를 꺼내 들었다.

“전부 빨아들여.”

아이셔스 스태프는 복사한 아이템이기 때문에 내게는 그다지 효용 가치가 없었다.

옵션을 빼오려고 해도 대부분 마법사 계열의 옵션에 치중되어 있으니까.

직접 쓰는 건 더 의미가 없을 테고.

스탯의 대부분이 근력과 민첩에 가 있는 상황이다 보니 아이셔스 스태프를 쓴다고 챠밍이 했던 것과 같은 마법을 써내는 건 절대 무리였다.

게다가 몇몇 마법은 높은 제한이 걸려 아예 발동이 되지 않았고.

하지만.

그런 아이셔스 스태프도.

딱 하나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이 아이셔스 스태프에 내장되어 있는 아공간 기능.

유저의 인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아공간은 대단한 것이다.

다만 딱 하나 걸리는 건.

마력이 높은 유저가 써야 아공간의 크기가 커진다는 점 정도이려나.

챠밍 같은 경우에는 아크 드래곤의 잔해를 넣고도 베르탈륨 창고 하나를 비울 정도로 그 공간의 크기가 광활한 편이었다.

반면 나는 그만큼의 아공간을 쓰지 못한다.

마력 자체가 그렇게 높지 않으니까.

한참을 베르탈륨 광석들을 빨아들이던 아이셔스 스태프에서 곧 경고음이 일어났다.

《 아이셔스 스태프의 아공간이 76% 찼습니다. 》

《 아이셔스 스태프의 아공간이 91% 찼습니다. 》

.

.

《 아이셔스 스태프의 아공간이 가득 찼습니다. 》

《 아이셔스 스태프에 더 이상 베르탈륨 광석을 저장할 수 없습니다. 》

역시.

제한 없이 마음대로 쓸 수 있다면 마왕의 스태프가 아니지.

그렇게 완전히 가득 찬 아이셔스 스태프를 빤히 쳐다보다가 바로 인벤에 집어넣어 버렸다.

“이건 됐고…….”

그리고는 다시 인벤에서 또 하나의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누가 보면 같은 아이템을 다시 꺼낸 것으로 보이겠지만.

이건 아까의 아이셔스 스태프와는 다른 복사 아이템이었다.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복사된 아이템을 베르탈륨 광석으로 가져다 대며 말했다.

“전부 빨아들여. 아이셔스 스태프.”

그러자 아까와 똑같은 방법으로 아이셔스 스태프의 아공간이 베르탈륨 광석들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하나가 안 되면 두 개를 쓰면 되는 거지.”

챠밍과 같은 방대한 마력으로 아이셔스 스태프를 쓸 순 없지만.

얼마든지 그 단점을 상쇄할 수 있다.

아이셔스 스태프를 여러 개 복사해버리면 그만이라.

하나, 하나가 작은 아공간이라도 다 합치면 결국은 똑같은 효과를 낼 테니까.

그때 챠밍에게서 연락이 왔다.

<챠밍> 어떻게 됐어요?

<주호>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 중이야. 베르탈륨 창고도 비어있고.

내 말에 잠시 기다렸다가 챠밍이 다시 말을 이었다.

<챠밍> 좀 전에 베르탈륨 창고 방향으로 용기사들이 몇 지나갔어요.

<주호> 흠. 생각보다 지원이 빠른데?

편하게 베르탈륨 창고를 몇 개 더 털 수 있을 거라 예상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용기사들의 움직임이 빨랐다.

망설일 이유가 없기에 바로 감각을 보다 넓게 퍼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감각에 몇몇 용기사들이 걸려들었다.

챠밍 말대로 지원을 위해 급하게 내려온 듯했다.

이쪽의 베르탈륨 창고는 내가 맡았으니 굳이 더 보내진 않겠지만.

다른 쪽 창고는 어쩔까나…….

<챠밍> 조심해요. 걸리면 바로 포위당할 거예요.

<주호> 알았어. 걸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뽑아먹고 튈게.

《 아이셔스 스태프의 아공간이 가득 찼습니다. 》

《 아이셔스 스태프에 더 이상 베르탈륨 광석을 저장할 수 없습니다. 》

다시 새로운 걸 꺼내서.

《 아이셔스 스태프의 아공간이 가득 찼습니다. 》

《 아이셔스 스태프에 더 이상 베르탈륨 광석을 저장할 수 없습니다. 》

그렇게 베르탈륨 창고 하나를 다 터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몇 번을 더 반복하자 베르탈륨 창고 안이 텅텅 비어버렸다.

예상했던 대로 용기사를 추가로 보내진 않아 순조롭게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나오는 길에 창고 문을 완전히 잠가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고.

몇몇 사용인들이 안절부절하지 못 하면서 바깥에 서 있었는데, 슬쩍 그들을 내려다보고는 말했다.

“내가 여길 다 확인할 때까진 아무도 들이지 마.”

당장 누군가 이곳 베르탈륨 창고에 들어와 보면 바로 눈치챌 것이다.

싹 털려버린 창고를 본다면 말이지.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 사용인들 중 대표로 보이는 녀석이 난감한 듯 말을 흐렸다.

“헌데…… 베르탈륨 광석 수급이 모자라서…….”

“그걸 내가 신경 써야 해? 그리고 다른 창고도 있지 않나?”

“헙. 알겠습니다.”

마치 목이라도 벨 것처럼 검을 꺼내면서 노려보자 바로 사용인들이 다른 창고들로 뿔뿔이 흩어져버렸다.

“흐음. 보자…….”

현재 타란 제국 황성 지하에 있는 베르탈륨 창고는 총 다섯 곳.

그중 두 곳은 나와 챠밍이 이미 싹 털어버린 상태였다.

나머지 세 곳은 어쩐다…….

적어도 한 곳 정도는 더 털고 싶은데.

지금의 소비량을 고려해보면.

베르탈륨 광석 두 개를 털어버린 것만 해도 충분하겠지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일이었다.

잠시 서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 작업을 하려면 반드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작업 시간 동안 다른 이들의 시선을 끌어줄 누군가의 조력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했다.

그러니까.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방법이라는 거다.

바로 챠밍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일단 창고 하나는 더 털었어.

<챠밍> 휴. 안 들키고 잘 넘어갔네요.

<주호> 응. 그런데 아직 창고가 세 개나 남아 있거든.

내 말에 챠밍이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대답했다.

<챠밍> 나머지는 너무 위험부담이 커요. 베르탈륨 광석을 빼내려다가 무조건 들킬 거예요.

<주호> 그래서 나도 고민 중이야.

아까 생각했던 방법 중 하나는.

바로 그 시선을 끄는 역할을 내가 하는 것이었다.

내 감각으로 모든 용기사들의 위치를 파악한 뒤.

그들을 전부 끌고 다니며 혼란을 주는 것.

그리고 그 사이 챠밍이 내가 복사해둔 아이셔스 스태프들을 들고 각 창고를 돌면서 베르탈륨 광석들을 쓸어오는 방법.

이게 지금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 말을 챠밍에게 했더니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챠밍> 생각해볼 것도 없어요. 기각.

<주호> 역시 좀 어려울까?

<챠밍> 조금이 아니에요. 세 개나 되는 창고에 있는 베르탈륨 광석들을 어떻게든 턴다고 해요. 그 사이 오빠가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에요.

두 개의 베르탈륨 창고를 터는 동안 걸린 시간으로 나머지 창고들을 터는 시간을 유추해보면.

내가 혼자 도망 다녀야 하는 시간이 엄청나게 길어진다.

그리고 그만큼 내게 가해지는 부담이 가중될 터.

거기다 시간이 끌리는 만큼이나 추가적으로 다른 용기사들이 더 붙는 것까지 고려해야 한다.

<챠밍> 만약 앞뒤가 막힌 통로나 막다른 길로 막히면 그땐 정말 끝이에요.

<주호> 흠. 이건 힘들겠네.

챠밍 말대로 도망다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특히 이렇게 한정된 공간일 경우에는 더 그렇고.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

챠밍이 혼자서 작업을 하다가 누군가에게 걸리기라도 하면.

이쪽은 정말 답도 안 나온다.

<챠밍> 아쉽지만 여기서 접는 게 맞아요.

<주호> 그래. 욕심이 과했네.

아쉬운 건 아쉬운 거고.

목숨은 하나뿐이었다.

나와 챠밍.

둘의 목숨을 동시에 걸기에는 이번 일은 너무 크기가 작다.

그리고 시간이야 좀 걸리겠지만.

어쨌든 고대 마룡이 계속 두들기다 보면 베르탈륨 창고도 바닥이 날 테지.

그럼 초기 목적은 달성하는 거니까.

시간이야 얼마나 걸리든.

이곳 타란 제국 수도가 불바다만 되면 되는 일이다.

그렇게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복도를 걸어가는데 갑자기 품에서 금속의 정령이 튀어나왔다.

“내가 좀 도와줘?”

“응?”

그 순간.

머리 뒤를 해머로 두들겨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와.

정신이 번쩍 드네.

“아……! 내가 왜 이 생각을 못 했지.”

지금 이곳 타란 제국 황성 지하에 있는 건 나와 챠밍만 있는 게 아니었다.

바로 금속의 정령.

그것도 무려 금속의 정령왕이다.

“할 수 있어?”

할 수 있냐는 내 말에 금속의 정령이 바로 팔짱을 끼면서 우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 그걸 이 금속의 정령왕에게 물어본 거야?”

“아니. 내가 잘못 했다.”

비록 순도가 낮다고는 하나.

그 베르탈륨 광석이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는 창고.

금속의 정령에게 이보다 좋은 환경이 과연 또 존재할까.

곧 금속의 정령과 몇 가지 작전을 짜고는 그대로 통로를 따라 다음 베르탈륨 창고 쪽으로 걸어갔다.

“누구냐!”

모르는 이가 접근하자 베르탈륨 창고 바깥을 지키고 있던 용기사 둘이 창을 겨누었지만.

곧 같은 용기사라는 걸 알고는 김이 샌다는 듯 창을 거둬들였다.

“에이. 난 또.”

“새로 지원 왔나 봐.”

방금 살기를 내던 게 무색할 정도로 기세를 없앤 뒤 바로 하품을 했다.

“아, 남들은 다 고대 마룡하고 싸울 준비 하던데. 우린 이게 뭐냐.”

“그러게.”

와.

이것들 봐라?

창고로 빼준 걸 감사하게 여겨도 모자랄 판에.

진짜 고대 마룡하고 붙어보면 절대 저런 말이 나오지 않을 텐데.

자세히 보니 견습 같은 느낌도 드는 걸 보면.

전력 외라 생각해서 아래로 내린 모양이었다.

창고를 지키는데 그렇게 고급 인력이 필요하진 않을 테니.

뭐 그렇다고 해도 어쨌든 용기사는 용기사.

우습게 보는 건 안 되겠지.

주의하면서 옆으로 가서는 말을 걸었다.

“아. 나도 고대 마룡하고 싸우고 싶었는데 말이야…… 위에서 말이지…….”

용기사들의 시선이 내게 쏠린 사이.

금속의 정령을 몰래 베르탈륨 창고로 들여보냈다.

‘들어가면 베르탈륨 광석들 싹 먹어치워.’

‘알았어.’

‘아니다. 다 먹진 말고. 적당히. 안에만 파먹어.’

‘왜?’

‘다 먹으면 들키잖아.’

‘아하!’

미리 약속되어 있던 말들을 떠올리며 금속의 정령이 들키지 않고 베르탈륨 창고로 들어가자 안도의 숨을 쉬었다.

이제 뒤는 너한테 맡긴다.

그리고는 창고를 지키고 있던 용기사들과 몇 마디 말을 더 나눈 뒤 근처에 서서 같이 정찰을 하는 시늉만 했다.

딱히 용기사들도 내게 관심을 두는 것 같지 않았고.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챠밍과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에 베르탈륨 창고 내에서 금속의 정령이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자 다시 용기사들에게 가서 말을 붙였다.

“아, 이쪽은 괜찮은 것 같으니까 다른 쪽을 정찰 가도록 하지.”

“대충하라고. 어차피 여긴 못 지나가니까.”

“그래. 수고해.”

곧 베르탈륨 창고에서 멀어지자 내게 몰래 붙어 있던 금속의 정령이 위로 날아올랐다.

그것도 배가 아주 빵빵해진 상태로.

거기다 입가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가득했다.

나 역시 그 모습을 보고는 미소 지었다.

아주 제대로 먹어치웠네.

“그럼. 다음 창고로 가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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