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2화 타란 제국 내전 (8)
마왕의 스태프인 아이셔스 스태프에는 조금은 특별한 기능이 들어가 있었다.
그건 바로 인벤토리와 별도로 쓸 수 있는 아공간.
특히 유저들의 인벤과 다른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아공간에 들어가는 물건들의 무게에 전혀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인벤에 무거운 물건이 많이 들어가면 유저들의 움직임이 둔해지는 것과 달리.
아공간은 말 그대로 아공간의 역할을 해주었다.
챠밍이 가진 아이셔스 스태프 안에 아무리 많은 물건을 넣더라도.
그 무게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만약 인벤과 같이 무게에 제한이 있었다면.
전에 아크 드래곤의 잔해 같은 아이템을 절대로 가지고 다니지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아공간이 제일 잘 쓰일 수 있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바로 이 산과 같이 쌓여 있는 베르탈륨 광석들.
순도야 어찌 되었든.
아니다.
그 순도가 낮을수록 양과 무게가 올라간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이 정도 양은 절대 인벤에 집어넣지 못한다.
반대로 챠밍의 아이셔스 스태프라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애초에 양이나 무게에 제한을 받지 않으니까.
물론 너무 많이 넣으면 초과가 되긴 할 테지만.
그래서 챠밍에게 물어본 것이었다.
남은 저장 공간이 얼마나 되는가.
그러자 챠밍은 아이셔스 스태프의 아공간 잔량을 확인하고는 괜찮다는 듯 웃으면서 답했다.
“전부 다 쓸어 넣어요?”
긍정적인 챠밍의 반응으로 봐서는 이 창고 안에 들어 있는 베르탈륨 광석 정도는 충분히 집어넣을 수 있는 듯했다.
“응. 가능한 많이 집어넣어.”
“전에 넣어둔 아크 드래곤 잔해가 꽤 많이 남아 있어서 완전히 다 넣지는 못할 거예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해.”
일단 베르탈륨 광석은 마력의 집합체였다.
가끔 르아 카르테로 베르탈륨 광석의 마력을 흡수하는 것도 이 광석들이 순수한 마력의 결정이라 가능했고.
그런데 지금 이 마력 덩어리인 베르탈륨 광석이 쓰이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산처럼 쌓여 있는 베르탈륨 광석의 산을 올려다보고는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당장 여기 있는 베르탈륨 광석들이 사라지면 어떻게 되려나.”
내 말의 뜻을 잘 알고 있다는 듯 챠밍 역시 신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방어 시스템이 멈출 거예요.”
“맞아. 타란 제국 수도를 보호하고 있는 저 방어 마법진이 멈추겠지.”
솔직히 처음에는 카샤스 대공이 알려준 장소로 가서 방어 시설이 있는 곳을 몰래 부셔버리려고 했었다.
그런데 이 방법은 상당히 위험이 따른다.
현재 타란 제국을 보호하는 마법진을 부수도록 그냥 놔둘 리가 없으니까.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마법 시설의 주변을 지키는 용기사단은 물론 꽤 다수의 마법사들까지 존재하고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래서 여차하면 방어 시설에 그랜드 크로스라도 한 방 날리고 바로 빠져나올 생각이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베르탈륨 광석의 산을 보고는 생각을 완전히 고쳐먹었다.
아니.
이쪽은 오히려 아무런 위험도 없이 안전하게 타란 제국의 방어 시설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해야 하나?
타란 제국 전체를 보호하는 방어 마법을 돌리려면.
그에 상응하는 어마어마한 마력이 필요한데.
그런 마력의 대부분이 이 베르탈륨 광석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이 상황에서 우리가 베르탈륨 광석의 보급을 끊어버린다면?
뒤는 안 봐도 뻔하지.
이건 거의 손도 대지 않고 타란 제국의 방어 시설을 부수는 것과 마찬가지인 효과를 보여줄 것이다.
방어 시설이 멀쩡히 있으면 뭐하겠나.
그걸 돌릴 마력이 없는데.
곧 챠밍이 아이셔스 스태프를 꺼내더니 바로 주변의 베르탈륨 광석들부터 아공간에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조금 시간이 걸려요. 주변 탐색 부탁해요.”
“알았어.”
챠밍이 아이셔스 스태프의 아공간으로 베르탈륨 광석들을 흡수하는 동안에는 완전히 무력화되니까.
그동안 접근하는 모든 위협은 내쪽에서 막아내야 한다.
그래서 곧장 주변에 감각을 퍼트렸다.
근처를 싹 살펴본 다음 안도의 숨을 쉬었다.
“아직은 접근하는 녀석들이 없어.”
“다행이에요.”
“그래도 곧 카트를 끌고 간 녀석들이 돌아올 거야.”
아마도 주기적으로 베르탈륨 광석을 운반했었을 텐데.
지금은 위급 상황이다 보니 거의 대부분의 카트들이 방어 시설로 가버린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렇게 많은 베르탈륨 광석이라면 지키는 이들이 있을 법도 한데 말이지.
의아할 정도로 관리인이나 사용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감각을 계속 퍼트리다 보니 저 멀리 꽤 다수의 NPC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거기다 그곳 말고도 다른 몇 곳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아, 이거. 베르탈륨 창고가 여기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정말요?”
챠밍은 내 말에 꽤 놀랐다는 듯이 반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눈앞에 있는 베르탈륨 광석들만 해도 숫자가 상당했으니까.
당장 이 베르탈륨 창고 하나만 털어가도.
적게 잡아 길드 몇 개는 새 베르탈륨 아이템들로 무장시킬 수 있는 분량이 나올 것이다.
이 숫자를 긁어모으는 것만 해도 충분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을 터.
그런데 이곳 타란 제국 황성 지하에 그런 베르탈륨 광석을 모아둔 창고가 몇 개는 더 있었다.
“흐음. 이걸 로또라고 해야 하나…….”
본의 아니게 베르탈륨 창고까지 온 셈이긴 한데.
열어보니 완전 황금밭이었다.
만약 좀 전에 챠밍의 말대로 사용인의 옷으로 갈아입지 않았다면.
절대 이렇게 쉽게 들어오지 못했겠지.
챠밍을 바라보면서 환하게 웃음 지으며 말했다.
“네 덕분에 너무 일이 쉽게 풀렸어. 정말 이 옷이 신의 한수가 됐어.”
“칭찬 고마워요.”
정말 챠밍이 아니었으면.
애먼 방어 시설 부셔 보겠다고 지금쯤 용기사단하고 드잡이를 하고 있었겠지.
천만다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주변을 경계하고 있을 때 챠밍에게서 신호가 왔다.
“아이셔스 스태프에 거의 다 담아가요.”
확실히 챠밍 말대로.
처음에 들어왔을 때와 달리.
지금은 베르탈륨 광석들의 산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원래 창고가 이렇게 컸나 싶을 정도로 횡하게 빈 창고를 보고는 나도 모르게 웃음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거…… 황제 녀석이 보면 뒷목 잡고 넘어가겠는데.”
“정말요.”
챠밍 역시 이 상황이 재밌다는 듯 미소 지었다.
졸지에 타란 제국의 재산을 탕진해가는 중이라.
그것도 이렇게 쉽게 말이지.
아마 타란 제국 황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자기 곳간이 탈탈 털리는걸.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부터 이미 나갔었던 카트들이 다시 되돌아오는 진동이 느껴져 왔다.
“사용인들이 돌아온다.”
그러자 챠밍이 다 됐다는 듯 아이셔스 스태프를 걷어 들였다.
“끝났어요. 저 잘했죠?”
이제는 완전히 텅텅 비어버린 통장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은 창고를 자랑스럽게 챠밍이 가리켰다.
“완전. 너무 잘했어.”
바로 챠밍이게 엄지를 치켜세워주고는 챠밍의 손을 잡고는 들어오는 사용인들의 시선을 피해 시야가 어두운 벽으로 붙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르탈륨 창고로 들어온 사용인들이 화들짝 놀라서는 외쳤다.
“베르탈륨 광석들이……!”
“전부 사라졌어?”
“뭐야? 벌써 다 옮겨간 건가?”
우왕좌왕.
사용인들은 베르탈륨 광석이 없어졌다는데 한 번 놀라고.
혹시나 누가 이미 다 옮겨간 건가 의심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많던 양을 한 번에 옮기는 건 불가능하지.
결국 사용인들 중 대표로 보이는 녀석이 용기사단에게 상황을 알리기 위해 달려나갔다.
“우리도 나가자.”
이 어수선한 틈을 타서 빠져나가는 게 지금으로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조금만 시간이 더 지나면 용기사단이 돌아와서 귀찮은 일이 벌어질 테니까.
그때는 빠져나가려고 해도 빠져나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곧 우르르 사방으로 달려나가는 사용인들 틈에 섞여서 챠밍과 함께 도망 나왔고.
그런 우리를 아직까지는 아무도 제지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다 사용인처럼 보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바깥 상황이 바쁜 와중에 용기사단이 여기까지 오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리는 것도 한몫했다.
곧 통로를 완전히 지나 원래 우리가 들어왔던 비밀 석굴까지 돌아왔고 추격이 없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둘 다 크게 한숨 돌렸다.
“휴. 겨우 도망 나왔어요.”
“그러게. 조금만 늦었으면 못 나올 뻔했어.”
그런데 그 와중에 계속 아까 감각으로 살펴봤던 다른 베르탈륨 창고들이 마음 한구석에 밟혔다.
“아, 다른 창고까지 다 쓸어왔으면 대박인데.”
우리가 털어온 창고가 분명 영향을 주긴 할 터였다.
하지만 다른 창고에 베르탈륨 광석들이 상당히 남아 있으니 소진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터.
“어쩔 수 없잖아요. 지금 가져온 것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아요.”
그런 챠밍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인벤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그걸 본 챠밍이 깜짝 놀란 듯 물었고.
“오빠? 그건?”
“아. 이거. 전에 챙겨둔 베르탈륨 광산에서 죽은 용기사단 장비들.”
챠밍이 이 아이템들을 꺼내든 이유를 추측했는지 깜짝 놀라 외쳤다.
“설마…….”
“응. 그 설마가 맞을 거야.”
“위험해요!”
“음. 그래도 고양이가 생선을 그냥 두고 갈 순 없지.”
“그럼 어떻게 하려고요?”
챠밍의 물음에 손을 내밀었다.
“비밀 통로 끝에서 기다리고 있어. 혹시나 잘못되면 혼자서는 빠져나올 수 있는데 둘은 힘들 거야.”
“하지만.”
“그리고 우르르 달고 올 수도 있는데 바로 막아줄 사람이 있어야지.”
내 말에 할 수 없다는 듯 챠밍이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하면 바로 돌아와요.”
“응. 해보고 안 되면 돌아올게. 나도 여기서 죽고 싶진 않으니까.”
“정말 못 말려.”
그러더니 내게 각종 버프들을 걸어주기 시작했다.
“어디 죽기만 해봐요. 그냥 두나.”
“아아. 밖에 나가서 너한테 안 맞으려면 반드시 살아올게.”
사실 저게 더 무섭기도 하고.
곧 용기사단 장비를 착용해서 모습을 바꾼 뒤.
아무렇지도 않게 통로 바깥으로 걸어나갔다.
그렇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나가는데 반대편에서 다른 용기사를 마주쳐버렸다.
흐음.
이거 잘못되면 그냥 튀어야겠지…….
적진 안에서 둘러싸이면 바로 고생 시작이다.
날 발견한 상대 용기사가 바로 짜증을 내더니 외쳤다.
“하! 지원 온다더니 고작 한 명이야?”
“음. 위에서 급하게 가보라고 하더군. 대체 무슨 일이지?”
“말도 마. 어떤 미친놈이 베르탈륨 창고를 털어갔어. 이게 말이 돼? 그 많은 광석을 무슨 수로 가져간 거야.”
워낙 상황이 엉망진창이라 그런지 용기사도 딱히 내게 다른 걸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래서 뭘 하면 되는 건데?”
“아. 몰라. 다른 지시 내려올 때까지 창고를 지키라는데. 인원이나 제대로 보내주고 시켜야지.”
“음. 그럼 난 어디로 가면 될까?”
그러자 용기사가 한 쪽 방향을 가리켰다.
“3번 창고. 거기 아직 지키는 녀석이 없으니까 네가 가서 좀 지키고 있어.”
지키는 녀석이 없다고?
아주 노났네.
속으로 키득거리면서 3번 창고로 가자 정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용인들은 아예 내보낸 듯 인적이 보이지 않는 창고를 보고는 바로 인벤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잔뜩 쌓여 있는 베르탈륨 광석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데서 복사한 아이템을 쓰게 될 줄은.
“다 빨아들여. 아이셔스 스태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