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1화 타란 제국 내전 (7)
용신의 파편 자체가 고대 마룡을 이끌어 내는 열쇠나 마찬가지.
그걸 타란 제국의 황궁 내에서 꺼내놓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이 왔다.
무언가의 충격으로 인해 황궁 전체가 흔들리는 것은 물론.
우리가 들어왔던 석굴 쪽으로 정찰을 좁혀오던 용기사단들도 천장을 올려다보고는 깜짝 놀라 외쳤다.
“젠장. 고대 마룡 녀석. 또 온 거냐.”
“겨우 물러났다 했는데…….”
“황궁까지 흔들리다니. 아예 작정했군.”
“이런 피해라면…… 우리도 곧 소환되겠는데?”
“쯧. 안 불러도 올라가 봐야지. 늦게 가면 위에서부터 깨진다고.”
각자 한숨과 함께 우리에게 걸어오던 길을 그대로 멈추더니 오던 길을 돌아 다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챠밍이 참고 있던 숨을 짧게 내쉬고는 말했다.
“다행이에요. 모두 돌아가나 봐요.”
확실히 바깥에서 난리가 났는데 한가하게 여기서 정찰이나 돌 순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정찰을 돌던 용기사들이 멀리 떨어지자 은신 망토를 풀고는 통로 바깥으로 걸어 나왔다.
“완전히 멀어졌어. 나와도 돼.”
챠밍 역시 안심을 하고는 통로로 나왔고.
이곳에는 이제 우리 둘만이 있을 뿐이었다.
“잠시만. 주변을 한 번 살펴봐야겠어.”
그리고는 그대로 감각을 퍼트려서 통로 너머의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지하 통로를 따라 흐르는 공기의 흐름과 바닥에서 튀어 오르는 진동들이 분주하게 느껴지는 걸 보면.
다른 용기사들 역시 급하게 지상으로 올라간 듯했다.
“이거 효과 만점인데? 통로가 다 비워졌어.”
이렇게까지 제대로 먹히다니.
효과가 상상 이상이었다.
내 감탄에 챠밍도 근정을 표했다.
“전에 고대 마룡이 여길 한 번 휩쓸고 갔다고 했잖아요. 그럼 조심할 수밖에요.”
챠밍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시 기다렸다가 완전히 통로가 비워졌다는 걸 확신하자마자 챠밍과 함께 통로를 따라 이동했다.
“혹시 갑자기 뭔가 튀어나올 수 있으니 조심해.”
“걱정말아요.”
황궁 도처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현재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
지금은 최대한 안 들키고 움직이는 게 최선이고.
쿠구궁!!
쿠궁!!
고대 마룡이 얼마나 신나게 놀고 있는지 황궁 전체가 흔들렸다.
그때마다 사용인들의 비명도 늘어났고.
어디론가 도망가는 것 같은 소리들도 들렸다.
그렇게 비워진 통로를 따라 계속 움직이다가 누군가가 나오면 숨어 있고 다시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얼마나 움직였을까.
계단을 따라 지상으로 올라오자마자 챠밍이 내 팔을 살짝 잡아당겼다.
“응? 무슨 일 있어?”
내 감각에 걸리는 건 딱히 없는데.
기껏해야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용인들의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용기사들은 다들 성벽으로 빠진 듯 크게 걸리는 것도 없었고.
그때 챠밍이 손가락을 들어 한쪽을 가리켰다.
“저걸로 갈아입으면 어때요?”
“응?”
그리고 챠밍이 가리킨 곳에는 미처 정리하고 가지 못한 옷가지들이 잔뜩 쏟아져 있었다.
다들 너무 급하게 움직인다고 신경 쓰지 못한 듯했다.
“위장하자고?”
“어차피 다들 정신없잖아요. 모습만 조금 바꾸면 못 알아볼 거예요.”
챠밍의 말에 우리 모습을 보니 확실히 눈에 띄는 복장이긴 했다.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에 아크 드래곤 로브라…….
겉에 둘러쓴 망토가 있긴 한데.
그렇다고 이걸 전부 가려주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망토를 뒤집어쓰고 다니면.
그게 더 수상할 수도 있고.
“나쁘지 않네.”
“그렇죠?”
그리고는 바로 몸에 맞는 사용인들의 옷을 가져와 위에 가볍게 걸쳐 올렸다.
챠밍 역시 적당한 옷을 위에 걸쳐 입었고.
그러자 바로 앞에서 자세히 보지 않는 한 들킬 위험은 사라져버렸다.
상황이 조금 여유가 생기자 챠밍이 내게 물었다.
“이대로 황궁을 더 돌아다닐 거예요?”
“글쎄.”
확실히 좋은 기회이긴 했다.
안쪽의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기도 했고.
하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더 빨리 해결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벽의 큰 창문 너머로 바깥을 바라보자 저 멀리 하늘 전체가 반구형의 투명한 방어막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방어막을 지금 고대 마룡이 검은 용암으로 연신 두들겨 대는 중이었고.
그런데 그런 검은 용암이 저 방어막에 닿자마자 폭발과 동시에 좌우로 충격이 흩어지면서 곧 원래의 투명한 방어막으로 돌아왔다.
“저건 문제네.”
“타란 제국의 방어 시스템 말이에요?”
“응. 고대 마룡의 검은 용암을 저렇게까지 막아내다니. 생각 이상이야.”
내 평가에 챠밍도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방어력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어지간한 유저들의 방어 마법은 명함도 못 내밀걸요?”
“너도 마력만 충분하면 할 수 있지 않아?”
그러자 챠밍이 잠시 고민해보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마력만 충분하다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어요. 그렇다고 해도 이렇게 광범위한 장소를 방어하진 못해요.”
“마왕의 스태프로도 이건 안 된다는 거네.”
챠밍이 안 된다는 건.
현재 서버의 그 누구를 데리고 와도 절대 불가능하다는 말과 동일했다.
뭐 영웅 NPC들이라면 좀 다를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이걸 커버할 영웅 NPC라면 거의 고대 마룡과 맞먹는 수준이라는 건데.
말이 안 되지.
그 말은 곧 지금의 방어 시스템이 그 이상의 무언가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 된다.
방어력은 마왕의 그것과 거의 필적하는데.
범위와 마력이 상상을 초월한다라…….
이런 게 평범한 방법으로 가능할 리가 없지.
같이 고민을 하던 챠밍이 한 가지 말을 꺼냈다.
“이렇게 넓은 제국을 전부 커버하려면. 분명 중앙에 무언가 마법적인 장치가 있을 거예요.”
“장치……?”
“네. 거기다 방대한 마력 공급을 위해 엄청난 마법석이 들어가겠죠.”
“역시 영웅 NPC로는 안 되겠지.”
“음…… 그럼 전부 다 마력이 탈진해서 이미 쓰러졌을 거예요.”
그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대 마룡의 마법을 막아낼 마법적인 장치라…….
그때 챠밍이 타란 제국의 지도를 불러내더니 바로 한 곳을 찍어냈다.
“지금 이 마법 방어를 형성하는 반구를 살펴보면…… 중심이 바로 이곳이에요.”
그렇게 챠밍이 찍은 곳은 익히 아는 곳이었다.
“황궁…… 인건가?”
정답을 말하자 챠밍이 미소 지었다.
“보통 이런 마법진은 중심에 핵이 있을 거니까. 분명히 여기 황궁 안에 있을 거예요.”
그리고 바로 챠밍이 말을 이었다.
“무엇보다 이 근처에서 구할 수 있는 최대의 마력원은 베르탈륨 광석이잖아요. 그 광석이 가장 많은 곳도…….”
“그래. 황궁이겠지.”
챠밍의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저 바깥의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깨부셔야겠는데…….”
“네?”
“그 마법 장치라는 거. 없애버려야 할 것 같아.”
“설마…….”
챠밍이 놀란 듯 물어오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응. 그 설마가 맞아.”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으로 들어오게 할 생각이네요.”
“그렇지. 그리고 이대로 마력원이 끊어지지 않는 이상은 상황만 고착될 뿐이고.”
“우리도 바깥으로 못 나가겠죠.”
카샤스 대공령을 공격하지 못하게 여기까지 고대 마룡을 끌고 온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막상 오고 나니 우리가 못 나갈 상황이라.
뭐 원래 왔던 곳으로 비밀 통로로 빠져나가도 되긴 하겠지만.
챠밍을 바라고는 다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껏 여기까지 날아왔는데 황제에게 한 방 정도는 먹여주고 가야지.”
빚지고는 못 사는 성격이라.
내 말에 챠밍도 마주 웃음 지었다.
“먼저 건드린 건 황제죠.”
챠밍 역시 쌓인 게 많은 듯했다.
만약 그놈의 황제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돌아오진 않았을 테니까.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타란 제국 내전에서 밸런스를 맞추려면.
지금 이곳에서 타란 제국 황제에게 꽤 심각한 피해를 입혀놔야 한다.
어떻게 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봐야 하나?
“그 마법 장치가 있을 만한 장소가 어딜까?”
“으음……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챠밍도 그다지 아는 게 없는지 이번에는 말을 아꼈다.
황궁의 구조에 대해서 아는 게 우리 둘 다 없긴 매한가지라.
그러자 챠밍이 다시 말을 꺼냈다.
“카샤스 대공 찬스!”
“아. 그 녀석이 있었지.”
아무래도 우리보다야 이곳 구조를 훨씬 잘 알 테니까.
그리고 타란 제국의 방어 시스템을 잘 알만한 녀석이기도 했다.
바로 재중이 형에게 연락했다.
<주호> 형. 한 가지만 더 알아봐 줘요. 지금 타란 제국 황궁 내부인데…….
간략하게 지금 상황을 설명하자 재중이 형도 크게 웃어버렸다.
<불멸> 이놈 또 거기 가서 사고 치네.
<주호> 온 김에 겸사겸사죠.
<불멸> 좋아.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연락이 돌아왔다.
<불멸> 아이샤 황녀가 그러는데 황궁 지하에 있다는데? 위치는 바로 전송했다.
그렇게 재중이 형에게서 위치를 받자마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여기…… 우리가 왔던 곳인데?”
“네?”
그러더니 챠밍이 뭔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래서 용기사단이 정찰을 돌고 있었나 봐요.”
“그러게. 그 녀석들이 지하를 굳이 돌 필요가 없는데.”
“으음. 그럼 우리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어쩔 수 없지.”
다소 위험이 따르기는 한데.
이미 한 번 와 봤던 길이라 그렇게까지 위험할 것 같진 않았다.
바로 왔던 길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는데 뭔가 걸려서 챠밍의 앞을 막아섰다.
“멈춰.”
“있어요?”
“응.”
언제 돌아왔는지 모르겠지만.
용기사단으로 추정되는 녀석들이 우리가 왔던 곳을 다시 돌아서 들어가고 있었다.
이거…….
귀찮게 됐는데.
아마도 바깥의 상황이 괜찮아지자 다시 돌아온 듯했다.
그렇다는 건.
곧 다른 녀석들도 더 돌아온다는 뜻인데.
“시간이 별로 없겠어.”
녀석들과 전투를 하는 것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만약 전투가 길어지게 되면 바로 타란 제국의 용기사단에게 둘러싸이게 될 수도 있고.
잘못하면 빠져나가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염두에 두어야 했다.
고개를 돌려 챠밍을 보고는 말했다.
“위험하다 싶으면 바로 빠져나가자.”
내 말에 챠밍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 마룡이 타란 제국의 방어막을 뚫고 들어오는 것보다.
우리가 안전하게 나가는 게 훨씬 중요하니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정찰을 도는 용기사단의 뒤를 따라 지하로 들어갔다.
한참을 따라가던 중.
우연찮게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아, 진짜! 우리가 왜 베르탈륨 광석까지 날라야 하냐고.”
“귀찮게. 사용인들 다 어디 간 거야?”
“이런 걸 하려고 기사단 하는 게 아니잖아.”
계속 불평을 늘어놓는 용기사단들의 모습에 나와 챠밍의 시선이 중간에서 마주쳤다.
“흐음. 이거 써먹을 수 있겠는걸?”
나와 같은 생각인지 챠밍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할 거예요?”
“그럼.”
“못 말려.”
그러면서 챠밍도 내 뒤에 바싹 붙었다.
곧 대놓고 용기사단 녀석들에게 우리 모습을 드러냈다.
“어? 잘 됐다. 너희 일로 와봐.”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반가운 표정으로 녀석들이 우리를 불렀다.
“무슨 일이십니까?”
“젠장. 너네가 일을 똑바로 안 하니까 우리까지 불려가잖아. 지금 바로 베르탈륨 창고로 가서 광석들을 옮겨 와. 중앙 시설에서 부족하다고 난리도 아니야.”
“바로 가면 됩니까?”
“그래. 우린 분명히 너희 보냈다?”
그리고 용기사단이 알려준 위치로 가자 그곳에서는 우리를 포함한 몇몇 사용인들이 정신없이 베르탈륨 광석들을 퍼 나르는 광경이 보였다.
지하의 거대한 창고 전체가 베르탈륨 광석으로 꽉 차 있는 광경이란…….
산처럼 쌓인 압도적인 물량에 자동으로 입이 벌어졌다.
슬쩍 챠밍을 보고 물었다.
“이 정도 양이면 얼마나 버틸 수 있어?”
“으음…… 아마도 고대 마룡이 먼저 지쳐 쓰러질 것 같아요.”
그때 먼저 온 사용인들이 부랴부랴 베르탈륨 광석을 실은 카트들을 끌고 우르르 바깥으로 나가자 나와 챠밍만 덩그러니 광석들과 남아버렸다.
“이거 봐라? 대놓고 도와주네.”
그리고는 곧장 챠밍에게 말했다.
“아이셔스 스태프…… 저장 공간이 얼마나 돼?”
내 말에 챠밍이 이해했다는 듯 더없이 밝은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전부 다 쓸어 넣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