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7화 타란 제국 내전 (3)
『 용신의 파편 - ?? 』
역시 설명은 없네.
이 등급의 아이템들이 흔히 그렇듯 불친절함의 끝을 달리는 설명을 보여 주었지만.
만약 이런 아이템들과 연관된 무언가를 본인이 지니고 있다면.
방금과 같은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일단 하나는.
“용신검이 용신의 파편에 반응하네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둘 다 같은 용신 쪽 계열이니까. 그리고 아마 용신의 파편이 용신검의 봉인을 푸는 열쇠일 수도 있겠지.”
그간 용신검 아스카론은 내가 원주인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한데.
강한 용혈이 아니라서 제대로 쓰지 못하는 점도 있었다.
그러니까.
이 용신의 파편이 있으면 용신검을 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
일정 수준 이상은 써낼 수 있을 것이다.
“나쁘지 않네요.”
어차피 용신의 파편 자체가 공짜로 얻은 아이템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용신의 파편을 써서 용신검을 제대로 활성화시킬 수 있다면 무조건 남는 장사지.
지금 용신검에 계속 빛이 들어오는 건.
분명 이 용신의 파편을 원한다는 뜻일 테니.
하나 아쉬운 건.
이 방법을 쓰면.
여기서 용신의 파편이 소모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었다.
그간의 경험들을 떠올리면 백이면 백 그렇게 되겠지.
빤히 용신의 파편을 내려다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를 무려 신급에 준하는 존재로 만들어 주는 아이템을 이걸로 소모하긴 확실히 아쉽긴 하죠.”
내 아쉬운 말투에 재중이 형도 동감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용신검이야 하다 보면 언젠가 풀리긴 할 테지. 반면 용신의 파편은 여기서 소모해 버리면 끝이고.”
용신검이 성마대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강력한 아이템인 건 확실했다.
성마대전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으니.
하지만 역시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다.
“잠시 미루죠.”
“좋을 대로.”
재중이 형도 딱히 선택을 강요하진 않았다.
당장 용신검이 없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진 문제가 되진 않으니.
하지만 어느 순간 선택의 시간이 온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
일단은 용신검을 한곳으로 밀어내고 다른 또 하나의 아이템을 끌어왔다.
재중이 형이 내가 꺼낸 아이템을 보더니 흥미롭다는 듯 말했다.
“그거 전에 네가 얻은 그 알 아냐?”
“네. 마왕 헤르게니아가 몰래 말해 주었던 그 알이에요.”
무려 고대 마룡과 실피드의 혈통을 동시에 타고난.
어떻게 보면 그 혈통이 사기와도 같은 알이었다.
뭐 일단은 먼 조상의 혈통이 옅게 합쳐진 정도겠지만.
어쨌든 둘 다 섞였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그런데 이 용의 알이 용신의 파편에 강렬한 반응을 보내왔다.
“용신검은 원래 용신 계열이니 그렇다 치고. 얘는 왜 이래?”
재중이 형의 물음에 나 역시 난색을 표하면서 답했다.
“저도 모르겠어요. 중간에 얻어온 다른 용의 알들은 전혀 반응이 없는데…… 아마도 얘만 특별한 모양이죠.”
그 말에 재중이 형이 빤히 용의 알을 쳐다보았다.
“흐음. 용신의 파편에 반응하는 알이라……. 그럼 이거 최소 용신 계열이라는 건데…….”
그런 재중이 형의 추측에 깜짝 놀라서 다시 용의 알을 바라봤다.
“용신 계열이라면……?”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용신급의 뭔가가 될 확률이 굉장히 높다는 거겠지. 그럼 망하더라도 최소한 고대 마룡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음. 너무 간 거 아니에요?”
“그런가? 그럼 좀 줄여서 실피드 급?”
“그쪽은 가능성이 있겠네요.”
그 말을 하면서도 둘 다 이 용의 알에서 시선을 놓지 못했다.
생각지도 못한 변수가 튀어나와서.
만약 정말 실피드급이라면 굳이 용신의 파편을 써서 알을 부화시킬 이유는 없었다.
필요하면 카샤스 대공에게 빌려서 탈 수도 있는 실피드급을 얻으려고 용신의 파편을 소모하는 건 최악의 선택이겠지.
그런데 만약.
정말 이 알에서 고대 마룡급의 뭔가가 튀어나온다면……?
이쪽은 이야기가 아예 달라지지.
당장 카샤스 대공만 해도 성마대전 시대에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를 얻은 후 최강의 영웅 소리를 듣지 않았던가.
동급 혹은 최소한 그와 엇비슷한 등급만 나오기만 하면.
그야말로 대박이 터지는 거다.
그리고 정말 초대박이 터져 고대 마룡급보다 더한 놈이 나오는 경우는…….
“완전 긁지 않은 복권이네요.”
“그렇지. 그것도 당첨 확률이 꽤 높은.”
재중이 형과 잠시 침묵을 지키면서 용신검과 용의 알을 번갈아 쳐다보다가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보았다.
“성마대전에서도 용신의 파편이 있지 않았어요?”
“아마도?”
“그럼 카샤스 대공은 어떻게 썼을까요? 분명 타란 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얻었을 텐데.”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잠시 고민하더니 답을 찾은 듯 대답해 주었다.
“카샤스 대공 같은 경우는…… 무조건 용신검에 썼겠지.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를 눌러서 테이밍 하려면 그 방법밖에 없었을 테니까.”
“역시 그런가요.”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다.
카샤스 대공 때는 아이샤 황녀 같은 조력자도 죽고 없었을 테고.
혼자서 고대 마룡을 잡으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역시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려나…….
카샤스 대공처럼 용신검을 다루지는 못하니 장담은 못 하겠지만.
여차하면 카샤스 대공에게 용신검을 넘겨주고 처리해 달라고 해도 되겠지만.
이건 진짜 최악의 경우에 해볼 만한 일이다.
누가 들으면 행복한 고민을 한다고 하겠지만.
선택지에 따라서 내 손에 남는 물건이 달라진다.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잠시 고민을 해보다가 짧게 한숨을 쉬고는 이내 아이템들을 모두 인벤으로 집어넣었다.
“상황이 돌아가는 걸 지켜보고 결정하죠.”
내 선택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래. 어차피 용신의 파편은 하나밖에 없으니까.”
“네. 그리고 고대 마룡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고요.”
용신의 파편 때문에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타란 제국을 침공한 건데.
아쉽게도 지금 녀석은 용신의 파편은 구경도 할 수 없었다.
이미 우리가 들고 날라버렸으니.
덕분에 타란 제국 황제는 죽을힘을 다해 고대 마룡의 화를 막아내고 있을 테고.
“아. 타란 제국은 어떻게 됐어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화면을 하나 띄우더니 보여주었다.
“아주 개판이지. 함락되진 않았지만. 온전한 것도 아니야.”
영상에 보이는 광경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와 타란 제국의 전 병력이 맞붙으면서 그 여파가 거칠게 타란 제국의 영토를 훑고 지나갔다.
재밌는 건.
타란 제국 황제가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를 상대로 타란 제국의 수도를 지켜냈다는 점이었다.
“용케 버텨냈네요.”
솔직히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타란 제국의 수도를 박살 내고 타란 황제를 죽이거나 몰아냈을 거라 예상했는데.
그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결과물이 나왔다.
“그러게. 생각 이상으로 타란 제국에 저력이 있었나 보네.”
심지어 거의 이틀이 넘는 시간 동안 고대 마룡과 싸워 댔었다.
우리가 카샤스 대공의 대공령에 와서 기다린 시간이 그 정도는 되니까.
중간에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고 수도로 진격하려던 카샤스 대공을 말리기까지 했었고.
카샤스 대공 역시도 타란 제국의 수도가 끝날 거라 예상했었다.
지금에 와서는 보기 좋게 그 예측이 빗나갔지만.
순간 생각나는 게 있어서 물어보았다.
“설마 천사 진영 쪽에서 개입한 건 아니겠죠?”
“아직. 그쪽에 손을 벌린 것 같진 않아.”
“그럼 자력으로 버텼다는 건데…… 대단하네요.”
그리고는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계획을 좀 변경해야겠네요.”
“어. 설마 버틸 줄은 몰랐으니.”
원래 계획은 폐허가 됐을 타란 제국의 수도를 탈환하면서 타란 제국 황제를 추격해 잡을 생각이었는데…….
고대 마룡이 일을 제대로 해주지 못해서 망한 계획이 되었다.
잘못하다가 내전이 장기화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고.
어찌 되었든 타란 제국 황제의 목을 따야 이 내전 이벤트가 끝이 날 테니까.
그러다 다시 생각나는 게 있어서 물었다.
“고대 마룡은요? 설마 아직도 싸우고 있나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니. 화련 쪽에 물어보니까 한참 공격하다가 결국 빠졌다던데?”
“그래요? 포기할 만한 녀석이 아닐 텐데.”
실피드를 집요하게 따라오던 걸 보면.
고대 마룡은 한 번 당하면 절대 놓아주지 않을 녀석이었다.
그런데 완전히 박살 내지 못한 타란 제국의 수도를 두고 이탈했다고?
상황이 전혀 맞지 않는데…….
그러자 재중이 형이 무언가 생각난 것이 있는지 말을 꺼냈다.
“아마…… 공격하다가 타란 제국 내에 용신의 파편이 없다는 걸 눈치챈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아…… 확실히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미 용신의 파편은 우리가 빼돌렸으니.
고대 마룡 입장에서는 있지도 않은 용신의 파편 때문에 죽어라 싸운 꼴이라.
중간에라도 그걸 눈치챘다면 굳이 타란 제국을 물고 늘어지지 않았을지도.
“그래서 고대 마룡은 지금 어디 있어요?”
“아까 궁금해서 물어봤는데 화련 애들은 전혀 모르겠다더군.”
모른다는 말에 바로 이해가 갔다.
“하이딩이겠네요.”
“어. 은신으로 숨어 버리는데 얘들이 뭔 수로 찾아. 그것도 하늘을 자기 맘대로 날아다니는 녀석인데.”
재중이 형 말대로 공격을 포기하고 은신해 숨어 버렸다면 찾아 낼 방법은 전혀 없었다.
고대 마룡 정도의 네임드가 마력이 부족해서 중간에 은신이 풀릴 리도 없고.
먼저 공격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에야 상대측에서 찾아내는 건 정말 사막에서 물을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잠시 재중이 형과 아무 말 없이 쳐다보고 있는데 재중이 형이 뭔가 떠올랐는지 내게 물었다.
“용신의 파편. 우리가 인벤에서 얼마나 꺼내놨었지?”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나 역시 눈치채 버렸다.
재중이 형이 지금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아마 몇 분은 넘겠죠.”
“이런…….”
그리고는 바로 우리 팀들에게 연락을 넣었다.
동시에 내게도 말했다.
“빨리 카샤스 대공에게 전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라고.”
“고대 마룡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어. 전에 그 먼 베르탈륨 광산에서도 용신의 파편을 느끼고 타란 제국 수도까지 이동한 놈이다. 그때보다 이곳이 오히려 더 가까워.”
그 말을 한 지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보다 먼저 전사 형이 방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외쳤다.
“고대 마룡……!”
“알고 있어!”
“어? 이미 알고 있습니까?”
아마 대공령 근처까지 고대 마룡이 온 듯했다.
그걸 카샤스 대공의 병력이 우연찮게 발견한 듯했고.
비상사태인지 전사 형이 열고 들어온 문 바깥으로 병사들이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모습이 보였다.
재중이 형이 전사 형을 쳐다보고는 물었다.
“전사, 대공령에서 고대 마룡을 막을 수 있을까?”
그러자 전사 형이 단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절대 무리죠. 여기가 타란 제국 수도라면 또 모를까.”
“쳇. 역시 그런가.”
그 순간.
바로 문밖으로 뛰어나가자 재중이 형과 전사 형이 따라 달리면서 물었다.
“어디 가게?”
“고대 마룡이 노리는 건 어차피 하나잖아요.”
그리고는 카샤스 대공의 방으로 뛰어가면서 외쳤다.
“여기서 싸울 수 없다면…….”
대공령에서 싸우는 건 최악.
내전을 해보기도 전에 끝난다.
그러면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다시 배달 가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