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4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10)
카아아악!!
브레스로 타란 제국 함대의 전열을 쓸어버린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기분 좋다는 듯이 사방으로 하울링을 퍼트렸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걸 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쟤 지금 기분 째지나 보다.”
“확실히 그렇게 보이네. 딱히 따라올 생각도 안 하고.”
자신에게 집중포화를 날려대던 타란 제국 함대를 날려 버렸으니 기분이 좋을 법도 했다.
그리고 고대 마룡의 시선이 한동안 타란 제국군에 가 있다 보니 우린 어느 순간 완전 잊혀져 버렸다.
그 사이를 틈타 실피드를 그대로 하강시켜 고대 마룡의 시야에 들어가지 않도록 구름 사이로 숨어들었다.
구름을 헤치며 비행하는 방법은 시야가 상당히 제한적이긴 해도.
반대로 적에게서 우리를 숨길 수 있는 좋은 수단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고대 마룡의 모든 관심이 타란 제국 함대로 모인 상황에서는 더 그렇고.
다행히 우리가 움직였음에도 아직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는 따라오지 않았다.
고대 마룡과 어느 정도 거리를 벌려 안전해졌다는 판단이 들자 챠밍이 내게 물어보았다.
“바로 타란 제국 수도로 갈 거예요?”
“응. 재중이 형이 용신의 파편을 손에 넣었다니까. 아무래도 우리가 그쪽으로 가는 게 더 나을 테고.”
용신의 파편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와 용신의 파편이 가까워져서 좋을 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당연히 재중이 형이 용신의 파편을 들고 이쪽으로 왔다가는 한참 타란 제국 함대와 싸우고 있는 고대 마룡의 시선을 끌고 말 것이다.
이럴 땐 우리 쪽에서 이동하는 편이 훨씬 나았다.
“용신의 파편이 있으면 고대 마룡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흐음. 그건 나도 모르겠는데…… 정보 올라온 건 있어?”
성마대전에 대한 정보를 물어보자 챠밍이 잠시 생각해 보더니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알다시피 고대 마룡에 대한 정보는 거의 다 숨겨져 있잖아요.”
“뭐 하긴 그렇겠지.”
상위 네임드에 대한 정보가 마구잡이로 나돌지도 않을 테고 유저들이 쉽게 정보를 구해 그렇게 수월하게 플레이하게 두진 않을 터.
결국 이쪽은 몸으로 때워야 한다는 뜻인데…….
과연 용신의 파편만으로 해결이 될지 모르겠다.
잠시 생각해 보다가 그저 웃으며 말했다.
“하다가 안 되면 튀어야지.”
내 말에 챠밍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같이 웃음 지었다.
“그래도 해볼 수 있는 건 다 해봐요.”
“응. 해봐야지. 그리고 고대 마룡을 여기서 못 잡으면 앞으로 욕 좀 먹을 거 같으니까.”
무려 성마대전의 재앙이라고 불리던 녀석이다.
지금 이 시대로 넘어온 어지간한 유저들은 대부분 알고 있을 내용이기도 했고.
저런 녀석을 풀어놨다가 어떻게 될지는 안 봐도 뻔하지.
그때 뭔가가 떠오르자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물었다.
“혹시 천사 녀석들이 중간에 개입할 수도 있어?”
이렇게 화려하게 판을 펼쳐놨는데 과연 천사 진영 쪽에서 이 일을 모를까 싶기도 하고.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질색하는 표정을 짓더니 답해 주었다.
“충분히 하고도 남을 녀석들이야.”
“흐음…….”
여기서 천사 진영이 끼어들면 굉장히 일이 복잡해진다.
당장 전력이야 상승하겠지만…….
그간 지켜본 바로는 천사 진영 녀석들이 좋은 마음을 품고 개입할 리는 없을 테니까.
뭔가 바라는 것이 있어야…….
그때 챠밍이 조금은 다른 의견을 내었다.
“지금 타란 제국은 천사 진영의 도움을 아예 차단했잖아요.”
“아. 그렇겠네.”
에센시아 제국은 타이탄을 주고받으면서 천사 진영과 깊숙이 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타란 제국은 전혀 아니었다.
폐쇄적인 타란 제국의 특성상 천사 진영에서 개입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을 터.
잘못하면 타란 제국이 돌아서는 경우도 생길 수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천사 진영이 가장 까다롭게 여길 곳이 이곳 타란 제국일 것이다.
“적어도 타란 제국 황제나 카샤스 대공이 직접 개입해 달라고 요청하지 않는 이상은 바로 오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럼 다행이고.”
다 만들어 둔 판에 와서 숟가락 올리는 건 예의가 아니지.
만약 지금 천사 진영이 개입해 타란 제국 황제 쪽에 서기라도 하면 정말 일이 확 꼬여 버린다.
잘못하다가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을 떠야 하는 상황까지도 염두에 두어야겠지.
“일단은 우리만 잘하면 된다는 거네.”
“그러게요.”
그렇게 실피드를 계속 이동시켜 날아가다 보니 어느새 타란 제국의 수도 근처까지 도달했다.
챠밍은 계속 우리 팀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상황을 내게 알려주었고.
“수도 상황은?”
“카샤스 대공과 미리 준비시켜 두었던 대공의 세력들이 합세해서 중요 거점들을 차지했다고 하네요.”
“빠르네.”
마치 그동안 벼르고 있었다는 듯.
일사천리로 일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면 확실히 카샤스 대공이 전쟁에 특화된 영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 상황에서는 그 누구보다 판단력이 좋다고 해야 하나.
화련에게 말해 미리 빼두었던 자신의 세력들을 수도로 진격시킨 것도 그렇고.
지금 타란 제국 수도는 황제가 대다수의 병력을 끌고 나와서 그런지 그야말로 텅텅 빈 상태라.
핵심 구역을 차지하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을 것이다.
“이젠 완전히 내전이네.”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재밋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카샤스 대공 녀석도 꽤 하는데? 뒤통수도 칠 줄 알고.”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과연 그녀가 과거 성마대전 시대에서 카샤스 대공이 어떤 존재인지 알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싶기도 하고.
마왕군 전체를 상대로 싸워서도 쉽게 지지 않던 녀석인데 말이지.
전에 봤던 성마대전 기록에선 카샤스 대공에게 죽은 마왕 숫자만 해도 상당했다.
“어차피 타란 제국 황제가 먼저 시작한 거다.”
뭐 꼭 그게 아니더라도.
언제 뒤엎어져도 엎어졌을 것이다.
역사상으로는 카샤스 대공이 분명히 타란 제국을 뒤집으니까.
너무 시기가 좀 앞당겨진 감이 없잖아 있지만.
챠밍이 옆에서 내게 말했다.
“이런 큰 변화면 분명 유저들이 눈치채겠어요.”
“역시 그렇지?”
무려 네 제국 중에 하나인 타란 제국의 역사가 뒤바뀌는 일이었다.
조금만 정보가 빠른 녀석들은 분명히 이상함을 느낄 터.
그러다 다른 것들이 생각나서 웃음이 났다.
“흠. 어차피 다른 녀석들도 각각 자기들이 속한 왕국들을 뒤집는다고 정신없을걸?”
내 말에 챠밍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다들 바쁘겠어요.”
꼭 우리뿐만 아니라.
성마대전의 역사를 이용해서 왕국을 차지하고자 하는 녀석들을 널리고 널렸다.
제국이나 성국 같은 경우는 사이즈가 너무 커서 아직 손을 대지 못할 뿐.
그러고 보니 우린 벌써 제국 두 개를 거쳐 온 셈인가…….
그때 챠밍이 내게 말해주었다.
“동쪽 성벽으로 넘어오래요. 아직 북쪽하고 남쪽, 서쪽은 완전히 차지하지 못했다고.”
“그래? 생각보다 저항이 거센가 보네.”
그리고 성벽을 넘는 순간.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타란 제국 내전에 참가하시겠습니까? 》
《 타란 제국 황제 카베스 진영과 대공 카샤스 진영으로 참여가 가능합니다. 》
《 한 번 진영을 선택하면 사망 전까지 진영을 변경할 수 없습니다. 신중하게 선택해 주세요. 》
《 내전에서 패배 시 타란 제국에서 영구 추방되며 타란 제국군의 추격을 받습니다. 》
《 내전에서 승리 시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차등 지급됩니다. 》
그 시스템 메시지에 챠밍을 바라보자 같은 것이 떴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떴어요.”
“시스템으로 나온다는 건. 언제가 되었든 유저들이 참가할 수 있었다는 뜻이겠네.”
대놓고 유저의 참여를 종용하는 시스템 메시지에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바로 손을 놀려 카샤스 대공 쪽으로 선택해서 내전에 참여했다.
챠밍 역시 마찬가지.
마왕 헤르게니아야 어차피 그런 선택이 있을 리는 없을 테니.
그러자 머리 위에 카샤스 대공의 진영을 뜻하는 깃발이 표시되었다.
그리고 저 멀리 성벽 너머로 카샤스 대공의 진영과 카베스 황제의 진영이 얽혀서 싸우고 있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이 상황에 내전이라…….”
카샤스 대공 입장에서는 지금 이 상황이 내전을 걸어 보기엔 최적의 상황이긴 한데…….
그야말로 양쪽 다 피 터지는 상황이라고 해야 할까.
이건 누가 이기든.
손해가 막심한 전쟁이 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고대 마룡까지 이 내전에 합세했을 경우.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게 될지.
이젠 아무도 모른다.
“개판이네.”
“그러게요.”
“재밌겠는데?”
각자 지금 상황에 대한 평을 남기고는 실피드를 이동시켜 우리 쪽 진영이 몰려 있는 방향 쪽으로 날아갔다.
다행히 가는 길에 걸리는 적은 없어서 전투는 없었고.
그렇게 카샤스 대공의 진영에 도착하자 미리 마중 나와 있던 재중이 형과 우리 팀이 뛰어나왔다.
“여. 늦었잖아.”
“고대 마룡 녀석이 미쳐 날뛰는 바람에 이것도 최대한 빨리 온 거예요.”
“용케 따돌리고 왔네?”
재중이 형의 말에 웃으면서 대답했다.
“지금은 타란 제국군을 죽인다고 한참 정신없겠죠.”
그러면서 고개를 돌려 내전이 일어나고 있는 방향을 보며 물었다.
“상황은 어때요?”
원래라면 용신의 파편을 구해서 바로 빠져나오는 계획이었는데.
완전히 비어 있는 타란 제국 수도를 놓치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회였다.
꼭 그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카샤스 대공이 수도에 돌아오는 순간 공격받는 것 자체가 내전의 시작이었으니.
딱히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했다.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답했다.
“아주 개판이지. 내전이라는 게 원래 그렇기도 하고.”
“타란 제국 황제가 돌아오기 전에 타란 제국 전체를 차지하는 건 어렵겠죠?”
“아마도? 카샤스 대공의 세력이 온전한 상태라고는 해도. 주둔하고 있던 방어 기사단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고.”
타란 제국 황제도 바보가 아닌 이상.
최소한의 주둔 방어군 정도야 남겨놓고 갔을 것이다.
설마 카샤스 대공이 살아남아서 수도까지 치러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겠지만.
전사 형이 옆에서 설명을 더 붙였다.
“시간이야 걸려도 당장은 카샤스 대공의 세력이 훨씬 강하니까 결국 차지할 순 있을 거야.”
“결국 시간이 문제군요.”
고개를 끄덕인 전사 형이 저 멀리 하늘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타란 제국 황제의 병력이 얼마나 살아오는 것도 문제고. 마음 같아서는 고대 마룡에게 싹 죽어 버리면 베스튼데.”
“으음. 그건 어렵지 않을까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확실히 강하긴 했다.
하지만 다들 흩어져서 빠져나오면 고대 마룡이 일일이 전부 추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만약 내가 타란 제국 황제라면 당연히 그런 식으로 병력을 보존해서 도망 나올 터.
황제가 이 정도도 생각하지 못할 리는 없으니까.
“흠. 내전이 꽤 힘들어지겠네요.”
“솔직히 당장 타란 제국이 망하지 않으면 다행이려나? 온전한 타란 제국의 힘을 전부 모아도 고대 마룡을 잡을까 말까 일 텐데.”
전사 형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타란 제국 황제를 도와 고대 마룡을 잡아 봐야 남 좋은 일을 해줄 뿐이다.
거기다 일이 어떻게 잘 끝나고 나면 바로 우리 목을 치려고 할 테고.
멀리서 싸우고 있는 카샤스 대공의 진영을 잠시 빤히 바라보다가 순간 생각나는 게 있어서 입을 열었다.
곧장 고개를 돌려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형. 우리. 판을 좀 더 키워 보죠?”
“응? 무슨 소리야?”
“이대로 가면 그냥 양쪽 다 초토화될 거예요.”
내 말에 딱히 재중이 형도 부정하진 않았다.
돌아가는 상황이 그랬으니까.
“방법은 있고?”
“전에 말한 플랜 B요.”
“호오. 그걸 지금 하자고?”
“네. 어차피 이젠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이대로는 이기든 지든.
남는 게 없는 장사가 된다.
뭐 이기면 남기야 하겠지만.
잠시 고민하던 재중이 형이 곧 전사 형에게 시선을 주면서 말했다.
“전사. 판을 키운다.”
“정말 합니까?”
“그래. 지금 게시판에 올려. 타란 제국 내전. 다들 참가하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