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3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9)
거대 네임드 몬스터를 잡는 방법 중에.
흔히 유저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방법이자 효과가 좋은 방법은.
폭발력이 강하거나 범위가 넓은 광역기들을 네임드에게 들이붓는 것이었다.
소형이나 중형 몬스터들과는 달리.
일단 그 덩치가 워낙 크다 보니 어지간한 광역기는 거의 빗나가지 않고 잘 맞는 편이라고 해야 하나.
개중 속도가 느린 거대 네임드 같은 경우에는 눈을 감고 쏴도 맞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뭐 빠른 개체는 어차피 안 맞는 건 매한가지긴 한데.
표적 범위가 넓으니 상대적으로 잘 맞는다는 건 상식에 가까웠다.
그러다 보니 거대 네임드의 방어와 체력은 꽤 높은 편이었고.
보통은 대규모의 유저들이나 세력, 길드들로 레이드를 하는 게 당연시되었다.
어차피 네임드 자체가 화력이 부족해서 못 잡는 거지.
그 화력만 충분하다면.
충분히 해볼 만한 전략이고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다.
당연히 지금 상대하고 있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역시 강력한 광역기나 주포, 브레스들로 두들겨 패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아크 드래곤 때도 그랬고.
보통은 이런 방법이 잘 통하니까.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그 상식을 완전히 뒤엎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 중이었다.
거대 네임드의 어마어마한 체력을 깎아야 하는.
비공정의 주포와 드래곤의 브레스들이.
마치 블랙홀에 흡수되는 것처럼.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주변에서 소멸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니.
정확하게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흡수되고 있다고 해야 하나?
단순히 피해 감소 스킬이었다면.
고대 마룡에게도 어느 정도 대미지가 분명히 들어갔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은 그런 피해가 누적되는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저건 그냥 피해를 아예 안 입고 있다는 뜻이 된다.
챠밍이 놀란 듯 그 모습을 보고는 말했다.
“설마 저 많은 공격들을 전부 흡수하는 걸까요?”
“아마도…… 그런 것 같아.”
재중이 형이 있었으면 더 잘 알아봤을 텐데.
아쉽다는 생각이 들 때쯤 옆에 있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을 꺼냈다.
“단순히 흡수하는 게 아니야!”
“그럼?”
“잘 봐. 흡수된 마력이 어떻게 되고 있나.”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더욱더 집중해서 고대 마룡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자 전에 보이지 않던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았다.
분명 전에 없던.
묘한 흔적들이 보인다.
“마력 방벽의 일종인가?”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상위의 네임드들은 유저들이 흔히 알고 있듯.
피해를 감소시키기 위한 마력으로 된 방어벽을 치고 있었다.
신체 방어력에 앞서 몸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고 해야 하나.
이걸 다르게 표현하면 유저들이 입고 있는 방어구와 비슷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적어도 그 방어벽 정도는 깰 수준이 되어야 딜이 들어갈 테고.
그러니까 어쭙잖은 무기나 공격력으로는 상위 네임드의 체력을 1도 깎지 못한다.
애초에 그 방어벽에 모든 대미지가 상쇄되어 사라져 버리니 대미지가 들어갈 리가 있나.
물론 그렇다고 아예 딜이 들어가지 않냐고 하면.
또 마냥 그렇지는 않았다.
물량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니까.
어쨌든.
마법 장벽이라는 게.
보통은 그런 피해를 앞서 감소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편인데.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저 마법 장벽은 좀 달랐다.
아니.
개념 자체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피해를 감소시키는 게 아니라.
그 피해를 흡수하는 중이니까.
정확하게 피해만 흡수하는 중인지.
아니면 마력을 흡수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런 의문은.
마왕 헤르게니아의 이어지는 말에 바로 풀려 버렸다.
살짝 눈썹을 찡그리던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쟤들 그만 쏘라고 해.”
“그만 쏘라고?”
“어. 저러다 다 죽어.”
다 죽는다는 말에 챠밍의 시선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가서 멈추더니 궁금한 걸 물어보았다.
“무슨 뜻인가요?”
“말 그대로야. 지금 멈추지 않으면 다 죽는다고.”
그러자 챠밍이 뭔가 떠오른 듯 바로 시선을 돌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를 쳐다보았다.
“마력을 흡수해서 본체를 회복하는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닌가 보네요.”
“눈썰미 좋네.”
마왕 헤르게니아의 칭찬이 끝나기 무섭게.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에게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녀석의 닫혀 있던 입이 크게 열리며 그 사이에 강력해 보이는 무언가가 소용돌이치는 모습이 보였다.
저걸 보고 생각나는 건 딱 하나뿐이다.
“브레스!”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껏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검은 용암 같은 광역기를 계속 쏘며 그 미친 화력을 뽐내면서도 단 한 번도 쓰지 않은 게 있었다.
그건 바로 녀석의 브레스.
분명히 용 계열이라면 브레스를 쓸 만도 한데.
워낙 검은 용암 광역기가 강력해서 그런지 그간 브레스를 쓰지 않았다는 것조차 잊어먹을 정도였다.
애초에 브레스를 쓰지 않아도 싹 다 녹이고 다니는 수준이라.
그런 녀석이 지금에서야 브레스를 꺼내들었다는 것은…….
“설마 저 흡수한 마력을 브레스로?”
이전에도 저런 능력을 쓰는 개체가 있긴 했다.
드래곤 슬레이어 역시도 브레스를 흡수해서 방출하는 능력이 있긴 했고.
그런데 그렇다고 저런 방대한 흡수력을 지니고 있진 않았다.
특히 자신에게 들어오는 모든 공격을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 흡수하는 건 말도 안 되지.
그 말도 안 되는 걸.
지금 저 고대 마룡이 하는 중이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지금 저 브레스에 대해서 알고 있는 녀석이 타란 제국군 쪽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만약 진작 눈치챘다면 비공정의 위치를 변경한다던가 용기사들을 흩어놓았을 텐데…….
이걸 알려줘야 하나 생각하다가 이내 한숨을 쉬고는 포기해버렸다.
지금 알려줘 봐야 이미 늦은 상태고.
알려준다고 해도.
내 말대로 움직일 확률은 제로에 가까웠다.
오히려 날 공격하지 않으면 다행이려나.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 팔을 툭 치고는 말했다.
“시작한다!”
그 말에 시선을 돌리자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주변으로 흡수하던 주포와 브레스들이 상당히 사라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거의 다 흡수했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폭발이 점점 사그라들자 타란 제국군 쪽에서도 이상함을 느꼈는지 이제야 진형을 바꾸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날개들이 일제히 펼쳐지더니 이내 녀석에게서 강렬한 충격파와 함께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콰아아아아!!!!
일대의 대기를 찢어버리는 거친 파동과 함께.
그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압도적인 두께를 자랑하는 브레스가 허공을 가득하게 수놓으면서 타란 제국군의 중앙을 그대로 뚫고 지나갔다.
콰콰광!!
쿠아앙!!
동시에 브레스에 직격당하거나 스치는 모든 비공정들이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그리고 반쯤 스치고 지나간 비공정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서 강한 폭발을 일으키면서 폭발해 버렸다.
용기사?
이쪽은 그냥 지우개로 지우듯 아예 싹 녹아버리며 용과 함께 사라졌다.
그야말로 재앙의 빛이랄까.
거치고 지나가는 모든 공간의 존재를 말살해 버리는 저 브레스를 다른 어떤 걸로 표현해야 할지…….
문제는 여기서 끝이 나는 게 아니었다.
브레스가 끊이지 않고 계속 뿜어졌고.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고개를 돌리는 대로 마치 검을 휘두르듯 정확히 그 궤적을 따라 브레스가 타란 제국군의 병력들을 쪼개며 그대로 갈라냈다.
단 한 방이라면 어떻게 피하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저런 식으로 계속해서 뿜어진다면 이야기 다르다.
“그동안 흡수한 마력이 고스란히 돌아오네.”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바로 답했다.
“그러니까 그만 쏘라고 했잖아.”
분명히 그녀가 아까 전에 말했었다.
다 죽으니까 그만 쏘라고.
그러니까 이 상황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알고 있었어?”
“저거 말이야?”
“그래.”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한숨을 쉬면서 말해 주었다.
“마왕 중에 저걸 모르는 애들이 있나? 마계에서도 재앙이라고 불리는데.”
으음.
미리 알았다면 대처라도 했겠지만.
지금 와서는 별로 의미도 없는 일이고.
고개를 돌려 타란 제국군 쪽을 바라보니.
이미 그 많던 타란 제국군이 반쯤 쪼개져서 완전히 분열되어 있었다.
중간의 전열이 완전히 박살 났으니 뭐…….
“설마 타란 제국 황제도 방금 죽어버린 건 아니겠지?”
이대로 타란 제국 황제가 죽어 주는 게 베스트이려나?
그러면 굳이 손 안 들이고도 목적을 어느 정도 달성한 셈이라.
하지만 마냥 그렇게 쉽게 일이 풀리지는 않았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손가락으로 한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아까 저쪽으로 튀던데?”
“흠. 역시 쉽게 되는 일은 없네.”
아쉽다는 듯 말하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입가에 미소와 함께 다시 한쪽을 가리켰다.
“그래도 완전히 피하진 못한 것 같은데?”
자세히 바라보니 확실히 그 말이 맞았다.
키로아로 보이는 거대한 용이 피해를 입었는지 상당한 피를 흘리면서 주변 다른 용들의 호위를 받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원래 타란 제국 황제가 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비공정은 이번 공격에 녹아 사라진 지 오래였고.
아마도 겨우 빠져나온 듯했다.
“정말 아쉽네.”
타란 제국 황제도 무작정 공격을 들이부은 것이 실수였다는 걸 이제 확실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타란 제국의 수도에서 이런 식으로 싸웠다면…….
지금쯤 타란 제국은 대륙 지도에서 말끔히 지워졌을지도 모르겠다.
저 브레스가 지상을 쓸면서 지나갔다면.
말 그대로 잿더미밖에는 남지 않을 테니까.
타란 제국 황제 입장에서는 다행이겠지.
용기사 병력하고 비공정 좀 날리는 것에서 그친 셈이라.
다만 그 날린 숫자가 좀 뼈아프긴 할 테다.
그냥 단순히 헤아려 봐도.
처음의 그것과 비교해 보면 거의 반의 반에 가까운 병력이 날아갔으니.
이러면 오히려 카샤스 대공 쪽이 더 우위에 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타란 제국 황제보다 카샤스 대공에게 부족했던 건 결국 병력의 전체적인 규모니까.
이대로 둘이 붙는다면.
카샤스 대공도 절대 밀리지 않을 것이다.
다만.
둘이 붙기 전에.
당장 타란 제국이 먼저 망해 버릴 것 같은데 말이지…….
“정말 저걸 잡을 수 있으려나?”
내 말에 챠밍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챠밍도 옆에서 같이 지켜봤으니 너무 잘 알 것이다.
견적을 내봐도 답이 안 나온다는 걸.
물량과 화력으로 찍어 눌러야 어떻게든 잡을 텐데.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는 그게 아예 불가능한 존재였다.
화력이 집중되었을 때.
그걸 오히려 흡수해서 되돌려주는 능력.
이러면 대규모 레이드라는 게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차근차근 조금씩 체력을 갉아먹어야 하는데…….
이쪽은 또 답이 없고.
적어도 저 녀석과 같은 능력을 가진 뭔가를 소유하고 있거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아크 드래곤은 역시 힘들겠지?”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물어보자 바로 고개를 저어 보였다.
“만들 수 있었으면 벌써 만들었어.”
“흐음…… 결국 저쪽에 기대할 수밖에 없는 거려나.”
그러면서 우리와 떨어져 날아갔던 재중이 형이 있는 타란 제국 방향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잡을 방법이 없다면.
다른 쪽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
그리고 그때.
기다리던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불멸> 그쪽은 아주 난리던데?
<주호> 봤어요?
<불멸> 화련이 보내 줬다. 어디 무서워서 레이드나 하겠냐. 정말 잡으라고 만든 건지도 궁금할 정도야.
<주호> 성마대전 중후반에 나오는 녀석이잖아요. 이 정도는 해줘야 잡을 맛이 나죠.
<불멸> 잡을 자신은 있고?
<주호> 없으니까 계속 기다렸죠. 갔던 건 어떻게 됐어요?
내 말에 한 번 크게 웃은 재중이 형이 말을 이었다.
마치 자랑이라도 하듯.
<불멸> 겨우 손에 넣었지. 용신의 파편.
<주호>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요.
또 다른 하나의 방법.
용신의 파편이 손에 들어온 이상 우리에게도 강력한 패가 생긴 셈이다.
그럼 어디 다시 한 번 붙어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