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2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8)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쏘아낸 검은 용암이 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그 어떤 용들도 멀쩡하게 남아 있지 못했다.
대부분 녹아서 사라지거나.
혹은 큰 피해를 입어서 지상으로 추락하거나.
우리를 포위하듯 빽빽하게 모여 있던 타란 제국의 용들이 마치 지우개로 지워 버린 듯 깔끔하게 지워져 버리자, 주변의 남은 용기사들이 화들짝 놀라며 좌우로 거리를 벌렸다.
아무것도 없던 공간에서 갑자기 검은 용암이 쏘아져 나왔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그들 입장에서는 타란 제국으로 잘 날아가다가 날벼락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카브레시아다!”
“모든 병력들 전투 대형으로!”
“뭉쳐 있지 마라! 당한다!”
“최대한 거리를 벌려서 포위해!”
이미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와의 전투를 몇 번 겪어서인지 한 자리에 몰려 있으면 한꺼번에 쓸려버린다는 것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래서 타란 제국군의 병력이 자연스럽게 넓게 벌어지며 서로 거리를 띄우기 시작했다.
용기사들보다는 다소 느린 비공정들도 뭉쳐 있던 대형을 옆으로 펼친다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도 보였다.
앞에 나선 용이 한둘 당하는 것보다는 비공정이 날아가는 게 피해가 월등히 커지니까.
반격은 일단 뒤로한 채 대형을 바꾸는데 모든 신경을 쏟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반격을 하려고 해도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위치를 제대로 잡을 수 없으니.
내게는 저 고대 마룡의 위치가 잘 느껴졌지만 그들에게는 그냥 아무 것도 없는 허공으로만 보일 것이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타란 제국 함대의 움직임을 보더니 말을 꺼냈다.
“쟤들 대처가 아예 안 되는데?”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의 평가에 웃으면서 답했다.
“뭐가 보여야 잡지.”
“하긴 그런가?”
아마 타란 제국군에서도 뭔가 방법이 있기는 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그냥 날아가다가 갑자기 당한 거라 수습하는데 시간이 좀 필요할 뿐.
지금 떠올려 보면 타란 제국 함대의 속도가 거의 최대 속도에 가까웠었다.
그렇다는 말은 이미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를 놓쳤다고 상정하고는 최대한 속도를 올려서 타란 제국으로 귀환하려고 했다는 뜻이 될 것이다.
저들 입장에서는 고대 마룡이 정확히 어디로 날아간 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 비어 있다시피 한 타란 제국의 본진일 테니까.
어떻게 생각해 보면.
여기서 고대 마룡을 마주한 건.
저들에게도 기회일 수도 있었다.
타란 제국의 수도에서 고대 마룡과 맞부딪히는 것보다야 이쪽이 부담이 훨씬 덜할 테니.
거기서 붙으면 일단 타란 제국의 본진이 반은 날아간다고 봐야 한다.
나야 어느 쪽에서 붙든지 크게 상관은 없지만.
일단 여기서 시간을 벌어야 하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였다.
슬쩍 타란 제국의 함대를 내려다보고는 미소 지었다.
“이대로는 타란 제국군이 너무 불리하겠지.”
“뭐하려고?”
마왕 헤르게니아의 물음에 고대 마룡 쪽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말했다.
“제대로 하려면 밸런스를 맞춰야 하지 않겠어?”
내 말에 챠밍이 알겠다는 듯 답했다.
“고대 마룡을 저들에게 보이게 할 생각이에요?”
“빙고.”
지금 타란 제국군에게 가장 큰 문제는 고대 마룡이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었다.
반대로 말하면 그걸 해결만 하면.
타란 제국군도 충분히 고대 마룡을 상대로 싸움을 걸어볼 만하다는 뜻이 된다.
병력의 숫자와 화력 면에서 타란 제국군이 압도적으로 밀린다거나 하는 건 또 아니니까.
서로 싸울 수 있게 판을 벌여 줄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나은 선택지는 없을 것이다.
안 그래도 검은 용암을 잔뜩 쏘아낸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고개를 들어 우리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는 상황.
이왕이면 우리가 아닌 저 녀석들과 싸워주는 게 더 좋기도 하고.
“그럼, 간다.”
일단은 고대 마룡을 타란 제국군에 최대한 가깝게 붙여줘야 한다.
그래서 실피드의 속도를 끌어올려서 타란 제국 함대의 진형 중 후방으로 이동시켰다.
그러자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는 검은 용암의 공격 범위에서 벗어났는지 바로 우리를 따라 날아오기 시작했다.
당연히 타란 제국 함대와의 거리는 더욱 가까워져 갔고.
이를 모르는 타란 제국군은 아직도 함대를 정비한다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뭐 처음보다야 고대 마룡과의 전투에 훨씬 용이한 진영으로 바뀌긴 했다만.
그렇게 완전히 고대 마룡을 타란 제국 함대의 근처까지 끌어들인 다음.
바로 방향을 거꾸로 틀어서 고대 마룡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자신의 공격 범위에 들어오자 고대 마룡이 검은 용암을 일제히 내가 날아오는 방향을 향해 쏘아내었다.
콰아아아!!
나와 고대 마룡의 사이에 위치해 있던 비공정 몇 대가 그대로 검은 용암에 배의 중앙이 꿰뚫리면서 힘없이 바닥으로 추락해 버린 것은 덤이고.
몇 대의 비공정은 그 힘을 버티지 못해 아예 그 자리에서 폭발하면서 모든 타란 제국군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쿠아아앙!!
멀쩡하게 날고 있던 비공정이 갑자기 터져 버렸으니 당연히 시선이 돌아갔고.
그제야 고대 마룡이 자신들의 진영 깊숙이 들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부랴부랴 다시 진영을 옆으로 벌리는 모습이 보였다.
너무 느려.
안 그래도 기동력이 좋은 고대 마룡을 상대로 저런 느린 대처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밥을 입에 떠먹여 줘야 하나…….”
그런 말을 하면서 곧장 고대 마룡의 검은 용암의 궤적들을 스치듯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자 공격권 안에 고대 마룡이 들어왔다.
특히 비공정들이 폭발하면서 그 폭발 여파로 시야가 어지러워졌고.
그런 폭발들은 우리의 움직임을 감춰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중간에 들어오는 피해는 챠밍이 바로 얼음 방벽을 만들어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여주었다.
그렇게 완전히 고대 마룡을 턱밑까지 접근한 뒤.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외쳤다.
“헤르게니아! 한 방 날려!”
그러자 전에 했듯이 마왕 헤르게니아의 아티팩트들이 환하게 빛을 발했고.
수없이 많은 검은 창들이 생성되어 쏘아지더니 고대 마룡의 뱃가죽을 거칠게 찢어놓기 시작했다.
푸우욱!!
콰아아앙!!
동시에 검은 창들이 고대 마룡이 뱃가죽에 박혀 폭발을 일으켰고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
카아아아악!!
주변을 떠나가라 지르는 고통스런 비명과 함께.
큰 피해를 입어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은신이 그 자리에 바로 풀려버렸다.
저 거대한 덩치로 아무렇지도 않게 타란 제국 함대 사이를 돌아다닐 수 있게 해준 건 저 은신의 영향이 가장 컸다.
그런 녀석이 갑자기 피를 철철 흘리는 모습으로 타란 제국 함대 정중앙에 나타나자 다들 혼비백산하면서 사방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타란 제국군의 비공정들이 일제히 고대 마룡을 향해 뱃머리를 빠르게 돌렸다.
“지금이 기회다!!
“모든 주포 발사!!”
고대 마룡이 자신들의 진영 한가운데서 갑자기 나타나면 충분히 당황할 법도 한데.
의외로 일사분란하게 공격을 주도하는 것을 보면.
타란 제국군 내에 저런 상황에서도 잘 대처할 수 있는 영웅이 존재하는 듯했다.
동시에 그동안 당한 것을 한꺼번에 갚기라도 하겠다는 듯.
비공정들의 주포들이 폭발적으로 불을 뿜어냈다.
아마 그동안 쏠 수가 없어서 모두 대기시켜놓은 것도 한몫했을지도.
퍼어엉!!
콰아아앙!!
쿠아아앙!!
모습을 드러낸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을 향해 모든 비공정들의 주포가 이빨을 드러냈고.
수백에 가까운 주포의 화력이 한 점에 모이자 눈이 부시게 폭발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타란 제국의 비공정이 에센시아의 그것보다는 못하다고는 해도.
숫자가 숫자인 만큼.
그 위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그게 아무리 고대 마룡이라고 할지라도 말이지.
이 정도 폭발력이면.
고대 마룡 할아버지가 와도 절대 버티지 못한다.
특히 이미 마왕 헤르게니아의 광역기에 방어가 한 번 벗겨진 상태의 카브레시아라면 더 그렇고.
녀석이 멀쩡한 상태라고 해도 버티기 힘들 텐데.
지금은 뱃가죽이 뚫리는 피해를 입은 상태였다.
당연히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입에서 찢어지는 괴성이 튀어나왔다.
카아아아아!!!
계속 터지는 주포들의 폭발 소리를 뚫고 나올 정도의 비명에 다들 흠칫했지만.
어렵게 잡은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다는 듯 다시 한 번 주포들이 불을 뿜어냈다.
“절대 빠져나갈 틈을 주지 마라!”
“여기서 잡아야 한다!”
“집중해!!”
“주포, 사이드포 할 것 없이 전부 쏟아부어!”
그와 함께 근처를 호위하듯 날아다니던 용들이 일제히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쪽으로 고개를 돌려 입을 벌려댔다.
그리고는 그대로 각자의 용들이 브레스들을 고대 마룡을 향해 토해냈다.
콰아아아!!
지금 이 일대를 날아다니는 용들의 숫자만 해도 거의 수천 마리는 넘어갈 것이다.
앞에서 고대 마룡에게 꽤 숫자가 상하긴 했어도.
그 숫자가 많다는 것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정도로 용들의 숫자가 많았다.
허공을 수놓는 수천에 달하는 용들이 일제히 브레스를 뿜어내는 광경이란…….
아름답다는 말이 부족할 압도적인 광경에 나와 챠밍, 마왕 헤르게니아가 입을 벌리고 감탄했다.
“이건…… 굉장한데?”
“정말요. 눈이 부실 지경이에요.”
“쟤들도 모아놓으니 꽤 세네?”
백 단위의 비공정과 수천 단위의 용들이 한꺼번에 주포와 브레스를 쏴대는 걸 지켜보는 일은 쉽게 볼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어떻게 생각해 보면 타란 제국 함대의 모든 힘이 한 점에 모였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일반적인 전투 상황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랄까.
이걸 영상으로 담아 올리기만 해도 조회수가 바로 폭발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지금의 광경은 충분히 감탄할 만했다.
당연히 그 위력은 그동안의 그 어떤 광역기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다고 할 수 있었다.
아마 보통 같으면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도 회피 기동을 해서 대부분의 주포와 브레스를 피해 냈을 텐데.
하필 은신이 풀리며 그 모습을 드러낸 곳이 타란 제국의 함대 정중앙이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거리상으로 타란 제국의 모든 힘이 집중될 수 있는.
딱 그런 거리였으니까.
콰아앙!!
콰아아앙!!
쿠아아앙!!
계속해서 연쇄 폭발이 일어나면서 그 힘을 더해가는 폭발들을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부터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비명소리가 끊겨 버렸다.
이상함을 느낀 챠밍이 내게 물었다.
“혹시 카브레시아가 죽었을까요?”
그런 챠밍의 물음에 잠시 지켜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시스템 메시지도 나오지 않았고…… 무엇보다 이 정도로 죽을 녀석이라면 성마대전 시대의 악몽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았을 거야.”
분명 지금의 주포와 브레스들의 집중이 강하긴 한데.
아크 드래곤을 잡을 당시.
들이부은 화력을 고려해 본다면…….
부족하다고 느껴진달까.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살짝 인상을 구기더니 내게 말했다.
“온다!”
“뭐?”
“제대로 된 게 온다고!”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갑자기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주변에서 폭발이 눈에 보일 수준으로 줄어들어 갔다.
특히 주포와 브레스가 중간에 소멸되는 것처럼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마치 뭔가에 흡수되는 것처럼.
그 모습을 보고는 등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저 고대 마룡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너무나도 잘 보였으니까.
“……설마 저걸 빨아들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