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39화 (1,239/1,404)

#1239화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 (5)

하늘을 가르다시피 길게 뻗어 나가는 검은 용암의 여파에 실피드의 몸체가 거칠게 흔들렸다.

“꺄악!!”

워낙 여파가 커서 그런지 스치듯 옆을 지나갔음에도 실피드가 크게 흔들리자 챠밍과 이쁜소녀, 막내별이 동시에 비명을 질러댔다.

동시에 실피드의 꼬리 쪽을 스치듯 또 다른 검은 용암이 쏘아져 내리자 그 압력에 의해 실피드의 동체가 앞으로 튕겨 나가듯 밀쳐져 버렸다.

이건 거의 컨트롤이 안 되는 롤러코스터에 올라탄 딱 그런 느낌이랄까.

앞뒤, 양옆 할 것 없이 검은 용암이 스치듯 지나가기만 하면 실피드는 끈 풀린 연처럼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대체 저거 위력이 얼마나 되는 거지?

단지 스치고 지나가는 게 이 정도라면…….

직격 당했을 경우에는 절대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전사 형이 실피드의 비늘 사이를 꽉 잡고는 이를 악물면서 외쳤다.

“와. 저거 완전 필살기 아닙니까?”

그런 전사 형의 감탄 아닌 감탄에 재중이 형이 전혀 아니라는 듯 말했다.

“필살기는 무슨! 또 온다!!”

갈라진 구름들 사이로 지나가는 거대한 물체에서 연이어 검은 용암이 아래쪽을 향해 무수히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숫자를 세기 겁날 정도로 엄청난 수의 검은 용암이 하늘을 뒤덮자 실피드에 올라타고 있던 모두의 표정이 경악으로 변해 버렸다.

동시에 카샤스 대공이 실피드를 급하게 가속시켜서 어떻게든 광역 범위를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다.

파아아아!!

정면의 공기를 찢듯이 갈라내며 실피드가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를 끌어올리자 겨우 검은 용암들이 지나간 뒤로 쏟아져 내리며 무사히 벗어날 수 있었다.

다만 이번에도 검은 용암들이 쏘아진 여파에 실피드가 흔들리는 건 막지 못했다.

“꺄아악!!”

거침없이 흔들리는 실피드의 동체를 카샤스 대공이 겨우 컨트롤해 원래의 위치로 돌려놓았다.

한 발, 한 발의 위력은 필살기급인데, 연타로 계속 쏘아낼 수 있는 능력이라니.

저건 도를 지나쳐도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여기가 그나마 공중이라서 어떻게 피하기만 하면 허공을 찢고 지나갈 뿐이지만.

공중이 아닌 지상이라면?

그것도 타란 제국 위라면 어떨까.

상상만 해도 아찔한 장면이 나올 것 같은데.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위를 올려다보더니 바로 감탄을 했다.

그리곤 조금 의아한 듯 의문을 담아 말을 꺼냈다.

“흐응? 내가 알던 고대 마룡하고는 많이 다른데?”

그녀의 다르다는 말에 모두가 귀를 쫑긋했다.

카샤스 대공, 아이샤 황녀, 레오나 에센시아 같은 경우 그녀가 마왕이라는 걸 모르니까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애초에 이미 알고 있는 대상이라 저렇게 표현한다는 것을.

“달라?”

“응. 다르네. 아마 저 상태면 아크 드래곤보다도 센 것 같아.”

아크 드래곤을 직접 만든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렇게 평할 정도라면.

확실하다고 봐야겠지.

그리고 잠시 올려다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원인을 알겠다는 듯이 손바닥을 쳤다.

“아. 베르탈륨 광산.”

응?

베르탈륨 광산이 왜…….

그 순간 뭔가 떠올랐고.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하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시 베르탈륨 광석의 힘을 흡수했다는 말이야?”

“아마도. 아니면 고대 마룡이라고 할지라도 저렇게까지 강할 순 없을 거야.”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가 봉인되어 있던 곳은 다름 아닌 베르탈륨 광산의 중심부였다.

주변에 있는 거라고는 죄다 베르탈륨 광석뿐.

당연히 그것에 담긴 마력은 충만했을 테고.

봉인이 되어 있던 그 오랜 시간 동안 고대 마룡이 그 힘을 흡수했다면?

지금처럼 강해진 것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안 그래도 괴물이었는데 지금은 더 강하다는 거네.”

“응. 이미 상위 마왕급은 아득히 넘어선 것 같기도 하고…….”

골치 아프네.

상위 마왕급을 넘어섰다는 마왕 헤르게니아의 표현에 다들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특히 우리 팀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더 그렇고.

마왕이라는 게 어느 정도 괴물인지 잘 아는 입장에서야…….

그런 마왕보다 아득히 강할 것 같다는데 놀라지 않는 게 더 이상했다.

“혹시 저걸 포획할 방법이 있겠어?”

아무래도 이쪽으로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전문가다 보니 물어본 건데 그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면서 내게 말했다.

“미치지 않고서야……. 저 정도면 거의 반신급이야. 마왕 몇이 동시에 달려들어도 상대가 안 될걸? 거기다 죽이지 않고 포획? 죽으려면 혼자 가서 곱게 죽어.”

음.

마왕 헤르게니아가 적나라하게 까기는 했는데.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할 말이 없긴 하네.

혹시라도 고대 마룡을 묶어 둘 방법이 있으면 시도해보려 했는데.

지금은 접근조차 불가능해 보였다.

일단 가장 큰 문제는.

저 은신 능력.

대체 얼마나 마력이 넘쳐나면 저런 거대한 덩치를 은신 상태로 해둘 수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심지어 날아가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분명히 구름이 옆으로 밀려나는 것은 보이는데…….

만약 고대 마룡이 구름 근처를 날아다니지 않는 경우에는 눈으로 파악하는 건 거의 불가능.

그런 상태에서 갑자기 옆으로 와서 검은 용암을 쏘아대면.

그 자리에서 바로 아웃이다.

당장 실피드를 몰고 있는 카샤스 대공만 해도 고대 마룡이 어디서 날아왔는지 전혀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재중이 형이 마왕 헤르게니아의 설명을 듣고는 말했다.

“공중에서 싸워서는 답이 없겠는데?”

그 말에 전사 형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슬쩍 카샤스 대공의 눈치를 보더니 할 수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네. 기동력도 밀리고 원거리 타격 능력은 더 딸립니다.”

이건 카샤스 대공의 실피드의 능력을 까내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실제 그만큼의 비교가 가능할 정도로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능력이 출중했다.

지금도 카샤스 대공이 최선을 다해 실피드를 몰고 있지만.

저 고대 마룡을 꼬리에서 떼어놓지 못하고 있었다.

멀리 위로 보이는 구름들이 계속 좌우로 갈라지면서 따라오고 있는 걸 보면 말이지.

마치 바다가 반으로 갈라지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저런 구름이 갈라지는 현상마저 없었다면 진짜 다가오는 것도 모를 것이다.

거기다 속도 역시 마찬가지.

이동속도.

가속.

무엇 하나 실피드가 앞서지 못하니 자연히 녀석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원거리 공격력의 차이.

실피드도 물론 강력한 브레스를 뿜어 낼 능력이 있긴 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정면에서 오는 녀석을 향해 뿜어내는 거니까.

지금 같이 쫓기는 상황에서는 쏘려면 아예 반전해야 하는데.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만약 여기서 회전해서 속도를 줄이기라도 하면 진짜 바로 따라잡힐 터.

뒤를 잡힌 이상 계속 쫓기는 상태였다.

반대로 저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는 그런 제약에서 자유로운 편이었다.

뒤에서 따라가면서 브레스를 쏘면 되는 일이라.

아니.

딱히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미 허공에서 검은 용암을 방향에 전혀 구애 받지 않고 막 쏘아대는 중이라…….

이쪽이 권총 수준이라면.

고대 마룡은 원거리 공격을 거의 기관총 수준으로 쏴대고 있었다.

이러니 공중전에서 상대가 될 리가 있나.

지금은 겨우 녀석을 떨쳐내는 게 최선이었다.

그나마 실피드 정도 되는 녀석이니 속도 싸움이라도 해보는 거지.

다른 일반 용들이었다면…….

이미 저 검은 용암에 녹아 버렸을 것이다.

“또 온다!!”

나르샤 누나가 외치자마자 또다시 수도 없이 많은 검은 용암들이 구름을 뚫고 쏟아져 내렸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과 달리 우리의 진행 방향 앞쪽으로도 다수의 검은 용암들이 시간차를 두고 연이어 쏘아졌다.

마치 전진 방향을 방해라도 하려는 듯이.

아니.

그 짧은 사이 학습이라도 한 것인가?

같은 방법으로 쏴봐야 우리가 피하니 아예 방법 자체를 바꾼 것이다.

재중이 형이 그걸 보더니 혀를 찼다.

“쳇. 머리를 쓴다 이거지?”

“네. 이대로는 못 잡을 것 같으니 아예 전진을 막을 생각인 것 같아요.”

그때 챠밍이 아이셔스 스태프를 들어 올리고는 바로 스킬을 시전했다.

그러자 실피드 위쪽으로 얼음 방벽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이전에 봉인지에서 썼던 것과는 달리.

강력한 얼음 방벽을 좁은 범위로 압축시켜 그 두께를 두껍게 만들어 냈다.

그렇게 만들어진 얼음 방벽들이 실피드의 진행 방향으로 떨어지는 검은 용암과 공중에서 강하게 부딪혀갔다.

키이이잉!!

콰드드득!!

얼음 방벽이 검은 용암과 부딪히더니 빙석들이 갈려 나갔다.

동시에 사방으로 얼음 파편이 터져 나가더니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앙!!

쿠아앙!!

검은 용암의 압력과 함께 얼음 방벽과 부딪히면서 터지는 폭발력이 동시에 실피드를 흔들어대자 또다시 실피드가 거칠게 비명을 질러 댔다.

카아아악!!

정말 쉽지 않네.

이번엔 챠밍이 막아 주었으니 이 정도지.

그것도 실피드가 피할 수 없는 경로로 오는 검은 용암만 겨우 막은 거다.

나머지는 어떻게든 카샤스 대공이 피해내면서 실피드가 받을 부담을 줄여 나갔다.

하지만 여전히 실피드에 가해지는 피해는 무시 못 했다.

당장 급한 대로 막내별이 실피드의 등에 대고 힐 스킬을 들이붓고는 있지만.

막내별이 채워주는 힐량 이상으로 깎이는 체력이 월등히 많을 터.

그 증거로 실피드의 날개와 몸통 곳곳에서 막대한 출혈이 일어나면서 힘겹게 비행을 이어가고 있었다.

동시에 아이샤 황녀 역시 힐을 시전해 도와주었지만.

역부족인 건 마찬가지였다.

“이런 식으로는 실피드가 얼마 못 버텨요.”

굳이 막내별이 어렵겠다고 말하지 않더라도.

그냥 딱 봐도 안다.

실피드의 속력이 처음보다 점점 떨어져 가고 있었으니까.

이내 고대 마룡이 헤치고 지나오는 구름과 근접할 수준까지 거리가 좁혀졌다.

당연히 검은 용암을 피할 만한 여유가 더욱 없어졌고.

여기서 더 따라잡히면.

반드시 죽는다.

아니.

꼭 죽진 않더라도 실피드가 추락하면 상황이 종료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하고는 이내 모두를 쳐다보면서 외쳤다.

“이대로는 실피드가 따라잡혀서 죽습니다. 어쩌면 그전에 죽을 수도 있겠네요.”

실피드를 움직인다고 바쁜 카샤스 대공을 제외한 모두는 고개를 올려 카브레시아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어렵다는 걸 다 아는 눈치였고.

방법이 없다는 것도 다 안다.

지금 상황에서 실피드보다 빠른 용은 존재하지도 않으니까.

당장 존재하는 용들 중 최강인 실피드로도 제치지 못한다면.

그 어떤 용도 고대 마룡을 떨쳐내지 못한다.

굳이 하나 꼽자면 타란 제국 황제의 키로아 정도일 텐데.

그 키로아는 지금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타란 제국의 병력들이 고대 마룡을 제대로 막아주기만 했어도 이렇게까지 고생하는 일은 없을 텐데.

도무지 도움이라고는 받을 수가 없네.

타란 제국의 용기사들이 우수하다고 말한 카샤스 대공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으나.

지금 카샤스 대공은 검은 용암을 피해낸다고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카샤스 대공의 비행 능력도 나쁘진 않은데.

이번엔 그냥 상대가 나쁜 것뿐이다.

보이지도 않는 허공에서 갑자기 검은 용암들이 엄청난 속도로 불쑥 튀어나오는데 피하는 게 쉬울 리가 있나.

그나마 카샤스 대공 정도 되니까 여기까지 실피드를 끌고 온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가 한계다.

바로 고개를 돌려 모두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모두 여기서 갈라져야겠어요.”

“네?”

“무슨?”

다들 의아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자 망설이지 않고 카샤스 대공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카샤스. 실피드를 내게 넘겨.”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