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2화 깨어나는 마룡 (10)
쿵쿵!!
쿠우웅!!
고대 마룡의 봉인지는 현재 두 괴수의 난장판 싸움에 공동 전체가 들썩거리는 중이었다.
캬아악!!
크아아!!
한쪽은 타란 제국 황제가 풀어놓은 황제 전용 탈것인 키로아.
그리고 그와 뒤엉켜 맞붙고 있는 건.
바로 카샤스 대공이 불러낸 실피드였고.
타란 제국을 대표하는 두 거대한 용들이 서로를 죽일 듯이 싸워대자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괴수들이 지축을 흔들며 싸우는데 옆에서 집중해서 싸울만한 녀석들도 그리 많지 않았다.
타란 제국의 귀족들의 시선이 바로 두 괴수들의 싸움으로 돌아가자 잠시 우리 팀과의 전투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그 사이 전사 형과 이쁜소녀가 챠밍과 막내별, 나르샤 누나를 뒤로 빼냈다.
적들과 싸우던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도 뒤로 빠졌고.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대기 중이던 마왕 헤르게니아도 우리 팀이 모두 빠지는 걸 확인하자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로 이동했다.
쿠우웅!!
쿠웅!!
두 거대한 개체들이 한 번씩 격돌할 때마다 충격파와 함께 지축을 울리는 진동이 오는 와중에 카샤스 대공과 카베스 황제가 서로를 노려보면서 간격을 좁혀갔다.
어차피 이 둘이 불러낸 녀석들이라.
저 괴수들의 싸움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기도 했고.
“카베스……!”
카샤스 대공의 시선은 타란 제국 황제보다는 그에게 붙들려 있는 아이샤 황녀에게 더 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 섣불리 달려들거나 하진 않았다.
타란 제국 황제 입장에서는 카샤스 대공이 아까와 똑같이 당해 줄 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반대로 카샤스 대공은 전과 같은 일이 빌어지지 않기 위해선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었다.
혹여나 카베스 황제가 굳이 기다리지 않고 바로 아이샤 황녀를 이 자리에서 죽여 버릴 수도 있는 노릇이라.
아마 자신이 불리하단 판단이 드는 순간.
그런 선택을 할 확률이 아주 높아 보였다.
그만큼 카샤스 대공이 저 타란 제국 황제에게는 위협적인 존재이기도 했고.
아이샤 황녀를 옆에 달고 싸울 정도로 카샤스 대공을 얕봤다가는 오히려 그에게 바로 목이 날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타란 제국 황제가 아쉽다는 듯이 자신의 용신검에 피를 흘리고 있는 아이샤 황녀를 내려다 보았다.
“네 녀석이 조금 더 누워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지.”
저건 정말 아쉽다는 투라.
듣고 있던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당장 누님의 몸에서 용신검을 빼는 게 좋을 거다……!”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매서운 의지를 담은 카샤스 대공의 눈빛에 주변 공기가 얼어 버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아니 실제로 압도적인 기세가 이 주변 일대의 공기를 내리누르는 중이었다.
흡사 마왕의 그것과 유사한.
아마 영웅들도 그 급에 따라 마왕만큼의 힘을 낼 수 있는 모양이었고.
그리고 이건 카베스 황제 또한 다르지 않았다.
카샤스 대공이 기세를 끓어올리자 마자 카베스 황제 역시도 비슷한 기운을 뿜어내며 서로의 기운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기운을 약해진 아이샤 황녀가 버텨내지 못하는 게 문제였다.
“쿨럭!!”
파우스트 완드로 겨우 회복시켜놓은 아이샤 황녀의 입가에 붉은 피가 토해지자 카샤스 대공이 화들짝 놀라며 바로 기세를 걷어들였다.
그 순간 카베스 황제의 입가가 살짝 올라가면서 그런 카샤스 대공을 비웃었다.
“어디 더 해보지 그래? 네 기운에 내가 죽는 게 빠를지 네 누이가 죽는 게 빠를지 확인해 보고 싶지 않나?”
“젠장!”
아마 평소 같으면 아이샤 황녀도 충분히 그들의 힘에 대적할 수 있을 능력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그 사이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도 쉽지 않아 보였다.
머뭇거리는 카샤스 대공을 상대로 타란 제국 황제가 아이샤 황녀의 배를 관통하고 있는 용신검을 살짝 들어 올리자 다시 용신검을 따라 붉은 피가 확 쏟아져 내렸다.
“아악!!”
아까와 달리 지금은 제정신을 차리고 있는 아이샤 황녀라 고통스러움이 극에 달했는지 바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면서 타란 제국 황제가 카샤스 대공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조금만 다가오면 네 누이의 허리가 절반으로 갈라질 거다.”
“……큭.”
저건 절대 빈말로 하는 게 아니었다.
그간의 타란 황제의 평을 고려해보면.
불리하다 판단했을 때 정말 주저하지 않고 용신검을 휘둘러버릴 것이다.
그걸 너무 잘 알기에 카샤스 대공도 더 이상은 접근하지 못하고 멀찍이 서 있을 테고.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혀를 찼다.
<불멸> 저건 안 되겠는데.
<주호> 역시 그렇죠?
카샤스 대공이 성마대전 통틀어 최강의 영웅이 맞기는 한데.
그때야 아이샤 황녀 같은 약점이 없었으니까 가능했을 테지만.
지금은 그 아이샤 황녀가 인질로 잡혀 있는 상태였다.
싸울 수 있어야 최강의 영웅이지.
이래서야 답도 없는데.
그나마 타란 제국 황제가 불러낸 키로아를 카샤스 대공이 실피드를 불러내어 막아주어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쯤 저 타란 제국 황제가 원하는 대로 일이 진행됐을 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나와 재중이 형이 빠지게 되면 그야말로 황제의 세상일 테니.
슬쩍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우리 팀은 타란 제국 황제가 데려온 세력들과 라인을 긋고 그대로 대치 중이었다.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랄까.
그리고 저 멀리는 용마족과 타란 제국의 공작들이 치고 박는 모습이 보였고.
어차피 용마족이 키로아와 실피드를 신경 쓸 리는 없으니.
당연히 공작들 역시도 그런 용마족을 상대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이쪽은 아이샤 황녀 때문에 못 움직이는 상황이라.
그때 카베스 황제가 카샤스 대공을 향해 말을 꺼냈다.
마치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황녀에게 받은 용신검에는 문제가 있더군.”
그 순간.
나와 재중이형의 시선이 중간에서 마주쳤다.
<불멸> 가짜라는 걸 눈치챘나?
<주호> 설마요.
재중이 형의 우려에 나 역시 살짝 입가를 씹었다.
정말 가짜라는 걸 눈치 챈 거려나?
어디서부터 알게 된 거지?
처음부터?
아니면…….
아이샤 황녀를 공격했을 때부터인가?
그렇게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중에 카샤스 대공이 눈을 부라리면서 카베스 황제에게 말했다.
“봉인…… 말이군.”
“그래. 그 봉인 말이지.”
봉인이라는 말에 재중이 형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불멸> 일단 들키진 않았네.
<주호> 그런가 봐요.
“이놈의 봉인을 풀어보겠다고 얼마나 많은 용들을 죽였는지 네 녀석도 이미 들었겠지.”
아무래도 타란 제국 황제는 그 봉인 때문에 좀 골치 아픈 상황이었던 듯 했다.
실제로 아이샤 황녀가 카베스 황제에게 임시방편으로 알려준 게 바로 저 방법이었으니까.
원래대로라면 이야샤 황녀의 강한 용혈로 용신검을 유지했어야 했다.
거기다 아이샤 황녀가 따로 용신검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도록 봉인을 걸어두기도 했었다.
그러니까 지금껏 저 타란 제국 황제는 용신검을 받아놓고도 제대로 사용해보지 못했을 테지.
카베스 황제가 갑자기 아이샤 황녀를 내려다보더니 크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말했다.
“크크큭. 그런데 봉인을 푸는 방법이 따로 있다니 말이야. 네 녀석들은 결코 말해주지 않은 그 방법 말이지.”
카샤스 대공은 여전히 표정을 굳히고 있었고.
“어떻게 알았나…….”
“설마 타란 제국의 황제인 내가 모르는 게 있을 거라 생각한 건가?”
“황족에게는 전해지지 않을 텐데?”
“그렇지. 황위를 이은 황족에게도 전해지지 않는 사실이 있다는 게 처음엔 놀라웠지만…… 결국 알아냈지.”
그러면서 용신검과 아이샤 황녀를 빤히 쳐다봤다.
“제사장의 피가 답이라니. 진작 알았다면 네가 오기 전부터 처리했을 텐데.”
타란 제국 황제가 정말 아쉽다는 듯 카샤스 대공을 빤히 쳐다보자 카샤스 대공이 바로 이를 갈았다.
이건…….
우리가 중간에 개입함으로 인해 타란 제국의 역사가 뒤바뀐 게 확실했다.
만약 카샤스 대공이 에센시아 제국으로 가지 않았고.
다시 타란 제국으로 우리와 함께 귀환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그가 없었을 테니까.
그리고 예전에 예상했던 대로.
아이샤 타란은.
저 타란 제국 황제에게 죽었을 것이다.
당장 문제는.
지금 그 역사가 그대로 다시 흘러가는 중이라는 점이랄까.
“여기서 이대로 네 누이의 힘을 전부 흡수하면 용신검의 봉인은 풀리겠지. 그럼 고대 마룡을 제어할 수도 있을 테고. 네 녀석 역시 그땐 내 아래에 머리를 숙이게 될 것이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저 황제가 정확하게 알고 있기도 했고.
카샤스 대공도 인상을 쓰면서도 계속 빈틈을 살폈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말했다.
<불멸> 황제 녀석. 시간을 끌고 있었던 건가. 어떻게든 더 아이샤 황녀의 피를 흡수하려고.
<주호> 네. 그런가 보네요.
이번에 일부러 말을 걸어서 대치 상태를 고착화시킨 건 우리가 아니라 바로 저 황제였다.
<주호> 용신검을 활성화시키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거겠죠.
바로 카샤스 대공 근처로 이동해서 말했다.
“여기서부턴 네가 한다며?”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이를 꽉 깨물더니 고개를 저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휴. 몰랐다면 또 모를까. 황제가 봉인에 대해 알고 있는 이상 절대 빈틈을 보이지 않을 거다.”
“그래. 아이샤 황녀를 놓지 않을 거라는 거지.”
이 녀석도 살려놨는데 도움은 안 되네.
그렇다고 나와 재중이 형. 카샤스 대공이 동시에 싸움을 걸어도 문제다.
결국 아이샤 황녀를 어떻게든 빼내야 하는데.
“내 능력으로도 황녀의 목숨을 붙여놓는 게 한계야.”
파우스트 완드라고 만능은 아니었다.
그리고 문제는 이 와중에도 황녀의 피가 계속 흡수되고 있다는 점이겠지.
그렇다고 공격도 불가능하고.
뭔가 여기서 변수가 튀어나오지 않는 이상은…….
그런데 그때.
한쪽에서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간 용마족을 잡아두었던 공작들 중에 하나가 크게 피해를 입고는 벽으로 튕겨져 나갔다.
아마 더 이상은 용마족을 눌러둘 수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크윽!!”
그리고 다른 공작의 힘으로는 용마족을 완전히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
당연히 용마족이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남은 공작을 빠르게 쳐내고는 곧 신형이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나와 재중이 형의 시선이 타란 제국 황제 쪽으로 돌아갔다.
순간 주저하지 않고 바로 카샤스 대공에게 외쳤다.
“지금! 황녀를 빼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야!”
어느새 타란 제국 황제 뒤쪽에서 나타난 용마족의 변형된 날카로운 팔이 그대로 공격하자 카베스 황제가 이를 갈면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이 용신검을 빼내어 용마족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키기긱!!
그와 함께 재빠르게 날아든 카샤스 대공이 무너져가는 아이샤 황녀의 신체를 앉아들고는 바로 몸을 빼내었다.
됐어.
“젠장!”
카베스 황제 입장에서는.
아직 흡수를 다 하지 못한 아이샤 황녀를 용마족에게 들이밀 수는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든 살려야 하는 우리와 달리.
용마족은 정말 아이샤 황녀의 몸을 그대로 갈라버렸을 테니.
재중이 형도 피식 웃으면서 고대 마룡의 창을 들어올렸다.
“참. 살다 보니 용마족한테 도움을 다 받아 보네.”
나 역시 마찬가지였고.
이제 정말 걸릴 것도 없다.
바로 테르타로스와 르아 카르테를 정면으로 들어 올리며 웃음 지었다.
“어디 그럼. 제대로 한번 떠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