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1화 깨어나는 마룡 (9)
이전 용신제에서 용신검 아스카론을 빼돌린 건.
새로운 무기 콜렉션을 추가한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언젠가 모를 이런 상황을 상정해서 준비한 일이었다.
바로 타란 제국 황제가.
용신검으로 무언가를 노리는 이런 상황 말이지.
솔직히 아이샤 황녀를 제물로 삼을 거라고 예상하진 못 했어도.
그에 준하는 뭔가의 일을 꾸미고 있다면 반드시 방해가 될 것이라 예상했었다.
특히 고대 마룡을 얻는 일에 대해선 더 그렇고.
곧장 챠밍이 내게 연락해왔다.
<챠밍> 카샤스 대공은 곧 회복될 것 같아요.
<주호> 그래? 다행이네. 이 이상 시간을 끌면 이쪽도 위험할 것 같거든.
그러면서 카베스 황제의 용신검에 상처 입어 힘없이 쳐진 아이샤 황녀를 바라보았다.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난 저 용신검을 복사해 봐서 잘 알고 있다.
일단 저 용신검이 짝퉁이기는 해도.
그렇다고 아예 옵션이나 기능을 잃어버렸다는 뜻은 아니었다.
용혈 같은 용과 관련된 제물을 탐하는 능력이 발동되지 않을리 없었다.
그 증거로 지금.
아이샤 황녀의 출혈 부위에서부터 흘러나온 용혈을 용신검의 검신이 꾸역꾸역 빨아들이고 있는 중이었다.
저 타란 제국 황제가 자신이 들고 있는 용신검이 짝퉁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기능적으로는 아무 이상이 없으니까.
만약 카베스 황제가 저 짝퉁 용신검을 들고 직접 용마족과 치고 박았다면 단번에 깨져버렸겠지만 말이지.
하지만 지금은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용마족을 맡겨둔 상태라 절대 알 수 없었다.
당연히 오만하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와 재중이 형.
그리고 카샤스 대공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더 할 건 없는가?”
마치 이미 자신이 확실하게 이겼다는 듯이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용신검에 타란 제국의 황족 중 가장 용혈이 짙은 아이샤 황녀의 피를 먹이고 있으니까.
짝퉁이라고는 하나 용신검의 능력이 얼마나 개방되었을 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 용신검의 진정한 힘을 알고 있는 이는.
미래 성마대전 시대의 카샤스 대공뿐이기도 하고.
물론 그런 용신검을 들고 있는 카베스 황제도 카샤스 대공은 신경이 쓰이는지 앞에서 대치 중인 우리보다 오히려 카샤스 대공에게 더 시선을 집중했다.
여기서 카베스 황제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는 건 카샤스 대공 쪽일 테니.
그리고 카베스 황제도 이제 눈치챈 듯 했다.
챠밍과 막내별이 계속 회복 스킬을 써서 카샤스 대공의 상태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것을.
곧장 카베스 황제가 대기 중이던 자신의 가신들을 향해 외쳤다.
“저 녀석들을 죽여라.”
그러자 용마족을 상대하고 있던 공작 급 영웅들을 제외한 나머지 귀족들이 일제히 챠밍과 막내별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챠밍과 막내별 앞으로 전사 형과 이쁜소녀가 뛰어들면서 둘을 보호하기 위해 진을 쳤다.
“여긴 안 되지!”
“아무도 못 지나가!”
전사 형이 바로 발뭉을 바닥에 내려찍으며 마왕의 결계를 시전해 달려들던 녀석들을 일제히 내리 눌렀고.
이쁜소녀가 토르를 크게 횡으로 휘둘러 강렬한 번개로 만들어진 벽을 만들어내었다.
쿠구궁!!
콰지지직!!
전사 형과 이쁜소녀가 들고 있는 무기들은 둘 다 마왕과 영웅 급에 해당하는 무기들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강하다고 한들.
어느 정도 녀석들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은 충분히 보여 주었다.
물론 길게 잡아 두진 못하겠지만.
나르샤 누나 역시 좌우로 화살을 끊임없이 날리면서 전사 형과 이쁜소녀를 우회해서 달려들던 녀석들을 견제해주었다.
바로 레오나 에센시아를 보면서 말했다.
“저쪽을 도와줘요.”
상황을 심각함을 잘 아는지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 르아 카르테를 꺼내들고는 전사 형 쪽으로 가세했다.
다시 고개를 돌려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말을 꺼냈다.
“라인이 뚫리지만 않게 부족한 부분을 막아 줘.”
“흐응. 그 정도라면.”
비록 직접 나서진 못해도 빈곳을 메우는 정도면 정체를 들키지 않고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카샤스 대공을 둘러싸고 우리 팀이 라인을 잡고 버티자 타란 제국 황제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불멸> 우리도 시작하자. 혹시라도 카샤스 대공에게 달려드는 건 못하게 막아야 해.
<주호> 네. 알았어요.
그리곤 다시 카베스 황제에게 달려들어 공격하며 말했다.
“네 마음대로는 안 돼.”
지금 이 황제에게는 딱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바로 그 강력한 용신검을 휘두를 수가 없다는 점.
적어도 아이샤 황녀의 용혈을 전부 흡수하기 전에는.
절대 카베스 황제는 아이샤 황녀의 몸에서 용신검을 빼내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움직임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고.
특히 우리의 공격을 피해 아이샤 황녀를 달고 이동하는 건 더 힘든 일이었다.
우리가 거리를 벌릴 듯 말 듯 견제만 하며 움직이자 카베스 황제가 이를 갈면서 외쳤다.
“감히!”
카베스 황제도 당장 우리를 떨쳐내고 싶겠지만.
녀석에게도 아이샤 황녀의 존재는 문제였다.
용신검이 흡수를 다 하기 전에는 적어도 녀석에겐 족쇄나 마찬가지.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역시 아이샤 황녀가 먼저 죽어 버릴 것이다.
그 순간 르아 카르테를 넣어버리고는 바로 다른 아이템을 하나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바로 아이샤 황녀에게 스킬을 시전했다.
【 리버스 힐! 】
이건.
일전에 미리 복사해 두었던.
파우스트 완드에 있는 고유 스킬이었다.
무려 몬스터의 체력을 갉아먹으면서.
흡수한 체력을 다시 아군에게 나눠주는.
그때 당시에 사기라고까지 생각했던.
막내별은 마력 회복에 특화된 마왕급 스태프를 들고 나온다고 제한에 걸려 아쉽게 들고 나오지 못 했지만.
난 다르다.
인벤이 허락하는 한.
죄다 복사해서 들고 나왔으니까.
내가 파우스트 완드를 꺼내들고 리버스 힐을 사용하자 바로 타란 제국 황제 머리 위로 타겟 표시가 뜨면서 체력을 흡수해오기 시작했다.
딱히 강화를 해둔 것은 아니라서 비록 효율은 그렇게 좋지 못했지만.
그 대상이 다르다.
일반 몬스터가 아닌.
네임드에 준하는 NPC.
타란 제국 황제의 체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고려해본다면.
한 번에 흡수해서 넘어오는 양 역시도 절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파우스트 완드가 흡수해 내게 넘어온 체력을 아이샤 황녀에게 죄다 몰빵해서 넘겨주었다.
그 순간.
아이샤 황녀의 핏기 없는 얼굴에 바로 화색이 돌며 체력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아마 전투 직종이 아니라 체력이 낮은 것도 한 몫 한 듯 했고.
곧장 일정치 이상의 체력이 돌아오니 그녀에게 걸려있던 기절과 경직이 풀려 버렸다.
“여기는……?”
“좀만 버텨요. 아이샤 황녀.”
용신검은 아이샤 황녀의 용혈을 흡수해서 힘을 키우고.
그 부족한 피는 다시 카베스 황제에서 뺏어서 주는 꽤 이상한 그림이 나와 버렸다.
곧 자신이 카베스 황제에게 공격당해 쓰러졌다는 걸 이제 인식했는지 아이샤 황녀가 자신의 배에 꽂혀 있는 용신검과 황제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힘겹게 말했다.
그런데 저건 뭔가 안쓰럽다는 그런 눈빛이려나?
왜 아이샤 황녀가 카베스 황제를 보며 저런 눈빛을 보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카베스…….”
“……칫.”
카베스 황제가 인상을 확 쓰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마치 그녀를 정면에서 마주 볼 생각이 없는 것처럼.
그리고는 이를 바득 갈면서 말했다.
“그냥 그대로 죽어버렸으면 좋았을걸.”
그러자 아이샤 황녀도 짧게 한숨을 쉬고는 카베스 황제에게 말을 건넸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했니?”
순간 카베스 황제가 다른 한 손으로 아이샤 황녀의 목을 움켜쥐었다.
“이대로 죽일 수도 있다.”
“하아…… 그게 네 마음이 편하다면…….”
그리고는 아이샤 황녀가 눈을 그대로 감아버리자 카베스 황제의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곧 불같이 화를 내면서 외쳤다.
“젠장. 그럼 나보고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냐. 황제 자리를 내어주기라도 하라고?”
쩌렁쩌렁 울리는 분노 가득 담긴 외침에 순간 몸에 경직이 걸리려 했는데 바로 마왕의 플레이트가 방어해내었다.
<불멸> 저 녀석. 완전 빡쳤는데?
<주호> 그러게요. 아까와는 딴 판이죠.
여유가 넘치던 때와 이전과 달리.
아이샤 황녀가 깨어난 뒤에는 평정심을 다소 잃은 모습이었다.
아니.
거의 제정신이 아닌 것 같은 모습이랄까.
아무래도 아이샤 황녀가 황제의 무언가 건들지 않아야 할 문제를 건든 모양이었다.
<주호> 일단 파우스트 완드로 살려내기는 했는데. 이제 어떻게 해요?
카베스 황제의 체력을 뺏어서 아이샤 황녀를 회복시킨 것까지는 괜찮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인 변했다던가 하는 건 아니었다.
당장 저 카베스 황제가 다른 마음을 먹으면.
저 아이샤 황녀의 목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더 준다면 죽어 버리는 건 매한가지라.
<불멸> 일단 상황을 지켜보자. 바로 죽일 거라면 아까 전에 죽였을 거야.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저 타란 제국 황제의 성정에 죽이려고 들려면 벌써 아이샤 황녀를 죽이고도 남았을 터.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꽤 묘했다.
목을 틀어쥐고 있으면서 죽이지는 못하는.
절대 타란 제국 황제 같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 카베스 황제가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니 이를 갈았다.
“로가슈 왕자. 네 녀석부터 죽여 버려야겠군.”
아무래도 내가 파우스트 완드로 아이샤 황녀를 살려낸 게 타란 제국 황제의 심기를 많이 거스른 모양이었다.
그러자 입가에 미소를 지으면서 녀석을 도발했다.
“할 수 있으면 해보시던가.”
오히려 아이샤 황녀가 아닌.
내 쪽에 관심을 가져둔다면 땡큐다.
그녀가 죽어버리면 여러 가지로 곤란하니까.
그때 카베스 황제가 용신검을 들고 있지 않은 팔을 들어올렸다.
팔 전체가 무언가 정체 모를 마법진 같은 문신으로 가득한 모습이랄까.
그리고 그 팔에 감긴 문신들이 번쩍이더니 카베스 황제가 외쳤다.
“키로아 소환!”
어……?
순간 재중이 형도 놀랐는지 외쳤다.
“여기서 소환한다고?”
보통 탈 것들은 이런 던전 지역에서 소환이 안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특히 날아다니는 것들은 더 그렇다.
이곳 사원의 공동이 고대 마룡의 사원이다 보니 확실히 크긴 한데.
그래도 저건 좀…….
“선 넘었네요.”
“그러게.”
곧장 타란 제국 황제의 고유 탈것인.
키로아가 황제의 옆에 소환되어 나타났다.
저게 고대 마룡급은 아니라고 하더라.
분명 사기급 탈것인 건 부인할 수 없었다.
특히.
그 전투력도 절대 무시할 수 없을 테고.
당장 저 타란 제국 황제만 해도 상대하기 힘든데.
여기에 키로아라는 괴물용까지 불러들이다니.
재중이 형이 바로 고대 마룡의 창 카브레시아를 들어올리고는 앞으로 나섰다.
“넌 최대한 아이샤 황녀를 살려. 저건 내가 어떻게든 해본다.”
재중이 형이 상대하지 못할리는 없겠지만.
이것도 시간의 문제이려나.
곧 황제의 용인 키로아가 크게 하울링을 터트리자 사원 전체가 우르릉 울렸다.
동시에 거대한 흑색 날개를 펼쳐 올렸고.
가공할 마력을 사방으로 뿜어내기 시작했다.
바로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에서 여러가지 디버프를 방어했다고 계속 알림이 뜨는 걸 보면.
어지간한 존재들은 이곳에 서 있지도 못할 듯 했다.
이거 정말 쉽지 않겠는데.
그렇게 키로아가 작정하고 우리에게 달려드는 순간.
갑자기 저 옆에서 무언가 하얀 개체가 빠르게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
그것도 거의 키로아에 맞먹는 덩치를 가진 무언가가.
이건.
“실피드……?”
카아악!!
크에엑!!
그대로 날아들던 실피드가 몸채로 키로아의 동체를 들이박고는 저 멀리 벽까지 밀치고 날아갔다.
쿠우웅!!
그리고 곧 카샤스 대공이 그 뒤를 따라 걸어 나왔다.
“좀 늦었군. 이제부턴…… 내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