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7화 깨어나는 마룡 (5)
베르탈륨 광산 지하 5층에서부터 용마족 같은 녀석이 있던 이유는.
아래에 몇 개의 층이 더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바로 이곳만 지나면 고대 마룡의 봉인지였기 때문이었다.
재중이 형이 입가에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생각보다 일이 쉽게 돌아가겠는데?”
“네. 한참 더 내려가거나 했으면 문제가 생겼을 거예요.”
잠시 뒤 눈앞의 5층 아래의 고대 마룡의 봉인지는 지금까지 봐 왔던 베르탈륨 광산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띠고 있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공동과 같은 모습이랄까.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는데 뛰어올라서는 도저히 닿을 수 없을 정도의 높이를 자랑했다.
아마 고대 마룡이 있을 곳이라 그런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규모였다.
멀리 떨어진 벽과 천장 곳곳에 베르탈륨 광석의 미묘한 검은 광택이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런 베르탈륨 광석들의 경계가 대략 이 공간의 크기를 잘 알 수 있게 해주었다.
전사 형이 이리저리 눈을 돌려보더니 감탄하듯 말했다.
“지하 공간에 이 정도로 큰 공동이라니…… 너무 큰데? 도시 하나 들어와도 될 정도야.”
다들 그런 전사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크고 넓다.
단순히 고대 마룡 하나 존재하는 장소라고 하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이건 흡사…….
챠밍 역시 주변을 둘러보다가 말을 꺼냈다.
“꼭 뭔가 전투를 대비한 크기 같아요.”
“그러게.”
단순히 고대 마룡이 오가는 정도라면 이렇게까지 클 필요는 없었다.
아님 고대 마룡이 이렇게 큰 공간을 차지할 정도로 크던가.
하지만 그간 봐 왔던 어떤 드래곤도 이 수준의 크기를 가지고 있진 않았다.
그게 아크 드래곤이라 할지라도 말이지.
고대 마룡이 그것보다 크다는 건 생각이 안 된다.
우리뿐만 아니라 카샤스 대공도 놀랍다는 듯 주변을 쳐다보았다.
“흠. 이곳이 고대 마룡의 봉인지인가.”
“여길 알고 있었어?”
그러자 옆에 있던 아이샤 황녀가 카샤스 대공을 대신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봉인지는 타란 제국의 황족들이 보는 문헌에서 전해져 내려온답니다.”
아이샤 황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의 정보를 습득했습니다. 》
《 카브레시아에 대한 정보를 열람할 수 있습니다. 》
곧장 손을 뻗어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에 대한 정보를 확인했다.
이건 외부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내용이라.
그간 조사했던 내용에서도 없는 사항이었고.
그리고 아이샤 황녀가 추가적인 내용을 알려주었다.
“고대 마룡 카브레시아는 용신에 의해서 봉인되었다고 알려져 있어요.”
“용신…… 입니까?”
“네. 인간계에 풀려난 고대 마룡은 도저히 인간들의 힘으로 제압할 수 없었기에 용신이 직접 나서서 고대 마룡을 제압했다고 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잠시 이상한 생각이 떠올랐다.
용신이 직접 나선다라…….
실제로 신급 존재를 본 적이 없어서 실감이 나지 않는 것과는 달리.
내 생각은 전혀 다른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과연.
용신이라는 존재가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인간들을 도와주었을까 하는 의문.
이전에 타란 제국의 용신제를 지낼 때만 해도 그렇다.
그만한 제물이 바쳐졌으니까 용신의 가호 같은 걸 내려준 것이다.
용신검을 매개로 해서 말이지.
그 용신검을 가지고 타란 제국의 황제가 수도 없이 많은 용들의 힘을 흡수했는지 고려해 본다면.
그것도 용신의 가호 정도가 아닌.
가호를 내려줄 수 있는 용신이 직접 나섰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제물이 필요했을까.
아이샤 황녀를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땐 얼마나 많은 제물이 있어야 했죠?”
“그건…….”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아이샤 황녀가 순간 깜짝 놀라면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대답하기 힘들다는 것을 대신하듯.
“뭐 굳이 말 안 해도 대충은 알 것 같기도 하네요.”
용신 같은 존재를 불러내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규모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아이샤 황녀만이 알고 있을 테고.
보아하니 카샤스 대공도 이것들에 대해서는 자세히는 알지 못하는지 난색을 표했으니까.
하긴 전투에 특화된 카샤스 대공이 제사장인 아이샤 황녀가 아는 걸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겠지.
물론 카샤스 대공이 아예 모른다고 하긴 힘들지도.
“아. 굳이 그런 것을 따지자고 물어본 건 아니니 긴장 푸시죠. 애초에 외부인인 우리가 따질 이유도 없고요.”
내 말에 아이샤 황녀가 안도하는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왜 이야기를 꺼내신 거죠?”
“음.”
잠시 우리 쪽 전력을 살펴본 뒤.
이 거대한 공동 어딘가에 있을 고대 마룡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용신. 불러내는 건 역시 어렵겠죠?”
“네?”
마치 못 들을 말을 들은 것처럼 아이샤 황녀가 당황한 듯 눈을 커다랗게 하고 나를 바라보았다.
“일단 들어오기는 했는데. 지금 전력으로 그 용신이 직접 봉인했다는 고대 마룡을 상대하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여서요.”
베르탈륨 광산의 고대 마룡.
굳이 비교를 하자면 에센시아 제국의 아크 드래곤과 맞먹거나 혹은 그 이상.
어쩌면 더 약할 수도 있긴 하겠지만.
이전 성마대전 시대에 재앙이라고 불릴 정도라면.
절대 지금 우리가 가진 전력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곳엔 나와 우리 팀.
카샤스 대공.
레오나 에센시아뿐이니까.
아이샤 황녀가 전투에 도움이 될진 모르겠지만.
딱히 기대는 되지 않는다.
일단 마왕 헤르게니아가 있긴 한데 이쪽은 정체가 문제라 직접 나서지도 못한다.
결국 이 반쪽짜리 전력으로 고대 마룡을 잡거나 테이밍 해야 한다는 건데…….
막상 들어오긴 했지만 막막한 건 사실이라.
히든카드로 용신검이 있긴 해도.
이게 먹히지 않는 상황이라면 어떨까.
모두의 시선이 아이샤 황녀에게 모이자 그녀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답을 내놓았다.
“아마 부를 수는…… 있을 거예요. 그에 합당한 대가만 있다면요.”
그런 그녀의 말에 재중이 형이 흘리듯이 말했다.
“합당한 대가라……. 듣기에 따라 굉장히 무서운 말이군요.”
과연 용신이 원할 만한 합당한 대가가 뭐가 있을까.
우리가 그런 것을 가지고 있을 확률도 그렇고.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 쪽으로 가서 물었다.
“혹시 마신 같은 것도 불러지나? 용신은 되는 것 같은데.”
“미쳤어?”
내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마왕 헤르게니아 입에서 미쳤다는 말이 나왔다.
“음. 미쳤다니…….”
“그럼 미치지 않고서야 마신을 왜 불러?”
“문제가 되나?”
“안 되겠냐?”
저 마왕조차 학을 떼는 걸 보면.
마신을 불러냈다가는 정말 큰 일이 날 듯했다.
무엇보다 그 마신이라는 게 우리에게 우호적이라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라.
아이샤 황녀가 말한 용신과는 달리 컨트롤이 안 될 확률이 더 높을지도.
“그래도 일단 부를 수는 있다는 거네?”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마왕 헤르게니아의 표정이 바로 구겨졌다.
“난 말렸다?”
“알았어.”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 건데. 미친 짓 하지 마.”
마왕 헤르게니아의 협박에 바로 두 손을 들었다.
아마 이쪽도 합당한 제물이 있다면 부를 수는 있는 모양이었다.
정말 마신 같은 걸 불러내는 건 둘째 치더라도 말이지.
카샤스 대공이 내게 시선을 돌리면서 물었다.
“대책이 있어서 들어온 것 아니었나?”
그런 카샤스 대공의 물음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답해 주었다.
“보험은 많을수록 좋잖아.”
“흠. 틀린 말은 아니군.”
“불러낼 수 없으니 문제지만.”
그때 아이샤 황녀가 하나의 힌트를 주었다.
“용신검이 있다면. 이곳에서도 부를 수는 있을 거예요.”
“황제가 가진 용신검 말인가요.”
“네. 제물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와 재중이 형의 시선이 중간에 마주쳤다.
재중이 형이 추측한 것을 먼저 말했다.
“제국 황제가 당당하게 나온 이유를 알겠는데?”
“용신검 말이죠?”
“어. 진짜 황제가 용신을 부를 수도 있다면 테이밍 정도는 걱정하지 않겠지.”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불멸> 진짜 용신검이 우리한테 있다는 것만 빼면 말이야.
<주호> 네. 진짜는 여기 있죠.
아마 타란 제국 황제가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진 않겠지만.
우리도 딱히 방법이 없는 건 마찬가지라.
그때 화련에게서 연락이 왔다.
<화련>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네 계획보다 더 빨리해야 할 거야.
<주호> 네?
<화련> 용마족. 황제가 더 막진 못할 것 같아.
화련의 말에 재중이 형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흠. 그 황제도 용마족을 못 막는 건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잠시라면 막을 줄 알았는데 말이죠.”
카샤스 대공이 바로 내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너네 황제가 뚫렸다네.”
뚫렸다는 말에 흠칫한 표정을 지은 카샤스 대공이 허공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아. 죽었다는 뜻은 아니고.”
만약 용마족에게 황제가 죽었다면 화련이 말해주지 않았을 리가 없으니까.
그냥 이건 용마족이 돌아오는 걸 막지 못했다고 보는 게 맞았다.
“곧 용마족과 황제들의 세력까지 이곳으로 우르르 몰려올 거야.”
“시간이 없다는 말이군.”
“그래.”
그래도 타란 제국 황제가 시간을 좀 벌어줄지 알았는데.
이렇게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할 줄은 몰랐다.
바로 고대 마룡의 봉인지로 감각을 풀어냈다.
그러자 미세한 바람의 흐름이 스쳐 지나가는 모든 곳의 정보가 내게 모이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어 완벽하진 않지만.
그래도 확실한 것 하나는.
“고대 마룡 말고는 몬스터가 없어요.”
재중이 형이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함정은?”
“숨겨진 것까지는 모르겠어요.”
“일일이 해체하고 갈 여유는 없을 텐데.”
그러자 바로 나르샤 누나가 나섰다.
“앞장설게. 다들 따라와요.”
그리고는 내게 지형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바로 영웅의 활을 튕기며 무형시를 이곳저곳으로 날려대면서 앞으로 달려 나갔다.
곧 무형시들이 닿은 몇 곳이 폭발이 일어나면서 함정이 해제되었다.
어떤 곳은 무너지거나 용암이 쏟아졌고 화살비까지 떨어지며 함정들이 하나둘씩 드러났다.
아마 함정이 있을 만한 구조에 전부 무형시를 날려서 확인하는 듯했는데.
그 짧은 사이에 얼마나 정교하게 잘 찾아내는지 뒤따르는 사람들이 놀라는 눈치였다.
“조합해야 통과할 수 있는 함정 같은 건 없어서 다행이야.”
“의외로 단순하네요.”
“밖에 용마족이 지키고 있는데 굳이 복잡할 필요는 없잖아?”
“하긴 그렇죠.”
애초에 용마족을 뚫는 존재가 이런 쉬운 함정에 걸릴 리도 없고.
혹시라도 용마족 같은 녀석이 하나 더 튀어나오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수고했어요.”
함정을 죄다 터트리거나 간파해서 길을 튼 나르샤 누나를 따라 도착한 곳은 거대한 사원이었다.
마치 뭔가를 기리기 위해 준비된.
챠밍이 사원을 바라보다가 슬쩍 아이샤 황녀 쪽을 바라봤고 이내 내게 다가와 말했다.
“어디선가 많이 봤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비슷하지?”
“네. 너무 똑같아요.”
이건.
우리가 봤던 타란 제국의 용신제의 그 사원과 거의 흡사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모르는 누가 봤다면 정말 용신제의 사원으로 착각할 만큼.
용신이 고대 마룡을 봉인했다는 것까지는 이해하겠는데…….
왜 이렇게까지 사원의 모습이 비슷하지?
재중이 형도 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그 사원을 빤히 쳐다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우리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
이런 찝찝한 기분은 좋지 않은데.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저 멀리에서 뭔가가 내 감각에 걸려들었다.
특유의 묵직한 발 울림과 날개의 거친 파공음.
멀리서부터 이런 존재감을 보일 녀석은 하나뿐이다.
“서둘러야겠어요. 용마족이 돌아왔습니다.”
이젠 죽이 되었든 밥이 되었든.
고대 마룡부터 깨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