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6화 깨어나는 마룡 (4)
화련이 일을 제대로 했는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타란 제국군 쪽에서 확실한 반응이 왔다.
그동안 용마족의 활동을 그저 지켜보기만 했던 타란 제국군이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이 부산하게 움직임을 가져갔다.
특히 타란 제국 황제가 타고 있을 타란 황실 비공정과 그 주변을 보호하듯 둘러싸고 있던 모든 거대 비공정 역시도 한꺼번에 움직였고.
동시에 그 비공정들에서 그간 보지 못 했던 몇 가지 다른 개체의 비룡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재중이 형이 그걸 보고는 내게 말했다.
“본격적으로 타란 제국의 영웅들이 나설 생각인가 보네.”
“네. 다 처음 보는 용들이에요.”
타란 제국은 용들의 보금자리라고 불리는 만큼이나 다양한 용들이 존재했다.
그들 중 꽤 다수는 일반 유저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용들이었다.
기여도와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는 개체들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가 용 시장에서 봤던 것들도 대부분 그런 종류들이었고.
하지만 그런 개체들과 다르게.
절대 쉽게 구할 수 없는 개체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카샤스 대공의 전용 탈것인 실피드.
이건 애초에 황족이 아니면 죽었다 깨어나도 구할 수 없으니 아예 논외로 치더라도.
현재 각 용기사단장들이 타고 있는 용들 역시도 일반 유저들이 구할 수 없는 건 매한가지였다.
용기사단에 줄이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
이쪽은 용기사단의 상징과도 같은 개체들이니까 빼돌리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타란 제국 내에서 영웅급으로 불리는 녀석들이 타고 다니는 특수 개체들이었다.
용기사단장의 그것들보다는 급수가 높지만 카샤스 대공의 실피드보다 등급이 낮은.
그 중간 어디쯤 위치한 개체들.
지금 그런 영웅이 타는 용들이 일제히 거대 비공정을 빠져나와 좌우로 쫙 펼쳐졌다.
카샤스 대공 쪽을 바라보자 카샤스 대공은 이미 다 아는 얼굴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타란 제국의 공작과 후작들이다.”
“꽤 거물들이 나왔네.”
타란 제국 역시도 영웅 급쯤 되면 죄다 공작 아니면 후작을 달고 있었다.
역사 속 성마대전에서 절망의 기사라 불린 라첼 공작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였고.
똑같이 에센시아 제국에서 통곡의 벽으로 불렸던 비에른도 마찬가지.
지금이야 백작이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후작으로 올라설 것이다.
양쪽 제국 대부분의 공작이나 후작은 영웅급이라고 보면 된다.
그리고 지금 튀어나온 공작과 후작들은.
타란 황실에 충성하는.
다른 말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카샤스 대공과는 완전히 대척점에 있는 존재들이었다.
같은 타란 제국의 영웅이기는 하나.
어떻게 보면 적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의 사이랄까.
뭐 그렇다고 카샤스 대공과 저들이 같은 영웅이라고 불리기에는 좀 많은 무리가 있었다.
전사 형이 알려준 타란 제국 영웅들의 목록에서 카샤스 대공은 최상단에 위치하는 반면.
저들은 그보다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니까.
성마대전 통틀어서 최강이라고 불리던 카샤스 대공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카샤스 대공에게 무례인 셈이었다.
하지만 저들이 약하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최강인 카샤스 대공보다 약하다는 정도지.
그리고 그런 영웅인 공작과 후작들이 동시에 전투에 참전하자 용마족도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편안하게 날아다니진 못했다.
실피드만큼은 못해도 저들이 타고 있는 비룡들도 상당히 고급에 속했으니까.
일반 용기사들이 추풍낙엽처럼 힘도 써보지 못하고 떨어져 내리던 것과는 완전 차이가 났다.
속도에서 완전히 밀리는 모습도 아니었고.
어렵사리 용마족을 따라잡을 정도는 됐는지 용마족이 완전히 그들을 떨쳐내진 못했다.
곧 용마족도 일반 용기사들을 사냥하는 것을 그만두고 그들에게 신경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공중에서 수차례 용마족과 타란 제국의 영웅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더니 서로의 무기를 부딪히면서 강렬한 파격음을 냈다.
카가강!
카앙!!
키기긱!!
그간 부딪히는 족족 사라지던 용기사들만 보다가 저렇게 버티고 있는 걸 보면 확실히 영웅은 영웅이려나.
“용마족을 상대로 버티네요.”
“아아. 나쁘진 않네. 탈것도 속도가 밀리지 않으니까 어떻게든 달라붙을 수 있고.”
흡사 전투기들이 하늘에서 도그 파이팅을 하는 것처럼 타란 제국의 비룡들이 용마족의 꼬리를 계속 물고 따라붙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너무 붙으면 용마족이 공격을 해서 잠시 그들을 튕겨내는 정도랄까.
그러다가 너무 달라붙을 때는 한 번씩 소형 용마포를 날려대며 그들의 접근을 막아냈다.
완전히 직격을 맞진 않았지만 소형 용마포에 스쳐서 비틀대는 비룡들도 간혹 보였다.
그렇다고 용마족이 그 타격을 당한 비룡을 떨어뜨릴 수 있는 건 또 아니었다.
빠르게 다른 비룡들이 중간에 막아서면서 용마족의 접근을 막는 동안 회복한 비룡이 다시 날아올라 추격에 힘을 보탰다.
재중이 형이 그 모습을 보더니 피식 웃어 보였다.
“저 녀석들 그동안 가만히 지켜보면서 꽤 연구했나 본데?”
“그런가요?”
“어. 모르고 있었으면 직격 당할 뻔했는데 미리 다 알고 나왔다는 듯이 피하고 있잖아. 아슬아슬하게 피격 범위를 피하는 것도 그렇고.”
그러더니 이어지는 공중 전투를 보고는 말을 이었다.
“공중전은 타란 제국이 최고라더니…… 다른 제국은 게임도 안 되겠는데.”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에센시아 제국에서는 이런 전투를 본 적이 없었다.
애초에 저런 높은 수준의 용들이 에센시아 제국에 존재하지 않기도 했고.
그와 반대로 기술력이 좋아 비공정 쪽에서는 에센시아 제국의 것들이 훨씬 좋다고는 하지만.
저렇게 근접 전투로 들어가게 되면 역시 타란 제국의 용들이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걸 너무 잘 비교할 수 있는 건.
지금 타란 제국의 비룡들이 싸우고 있음에도 타란 제국 비공정들은 접근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곧 옆에서 지켜보던 카샤스 대공이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타란 제국의 전투 비공정들은 말이 전투용이지. 용들을 중간에 쉬게 하는 장소 정도밖에 안 된다.”
그런 카샤스 대공에게 미묘한 웃음을 보이면서 물었다.
“자기네 제국 전력을 너무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거 아냐?”
“사실은 사실이니까. 전쟁을 하는 사령관이 자신이 가진 전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 건 기본 중에 기본이다.”
딱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자기 세력의 전력도 파악 못 해 엉망으로 지휘하는 지휘관도 허다하니까.
그리고 그런 지휘관을 만나면 결국 아래에 있는 녀석들만 개고생하게 된다.
그러다가 엉뚱한 명령을 받아 사지에 몰려가서는 결국 죽어 버릴지도 모르지.
그런 면에서 눈앞에 있는 카샤스 대공은 최고의 영웅이자 최고의 사령관이었다.
실제 성마대전의 종반까지 버텨내는 일은.
보통의 지휘력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테니까.
타란 제국의 영웅들과 용마족을 지켜보다가 카샤스 대공에게 물어보았다.
“네가 보기엔 어때?”
“어느 쪽이 이길 건지 물어보는 건가?”
“뭐 그렇지.”
만약 정말로 타란 제국의 영웅들이 용마족을 세워 둘 수 있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화련에게 부탁까지 하지 않아도 됐을지도 모르지.
반대로 용마족이 이기는 경우는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잠시 생각을 하던 카샤스 대공이 고개를 내저었다.
“저들만으로는 용마족을 누르지 못할 거다.”
“역시 그렇지?”
방금 전에 전투에서 카샤스 대공이 용마족에게 밀리는 걸 보고 꽤 놀랐었다.
솔직히 카샤스 대공이 용마족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뚜껑을 열어보니 그게 아니었거든.
그런데 지금.
그보다 약한 영웅들이 우르르 몰려간다고 해서 저 용마족을 누를 수 있을까?
뭐 아까 전과는 달리 공중전이라는 점에서 결과가 다를 순 있겠지만.
용마족 자체가 공중전에 큰 이점을 가지고 있는 종족이라…….
아니나 다를까.
곧 용마족과 타란 제국의 영웅들 사이의 팽팽한 접전 중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카샤스 대공이 살짝 혀를 찼다.
“쯧. 승기를 잡고 있는 게 아닌데 너무 빨리 들어가 버렸군.”
“잘못된 판단이라는 거야?”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기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무리를 했다. 저렇게 한 녀석이 떨어져 나가면 바로 무너질 거다.”
설명을 듣고 보니 뭐가 그렇게 급한지 타란 제국 영웅들이 다소 불필요하게 치고 들어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아마도 저건 카샤스 대공이 먼저 베르탈륨 광산 지하의 마룡에게 내려갔다는 보고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는데.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는 우리와 달리.
저들 입장에서는 시간제한이 있는 게임이었을 테지.
타란 제국 황제에게서 최대한 빨리 용마족을 눌러야 하는 명령이 내려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걸 지키다 보니 저런 무리한 수를 뒀을 테고.
반대로 그냥 원래 저 정도 수준이라면.
애초에 상대도 안 됐을 테니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곧 카샤스 대공이 말한 대로 진행이 되어 갔다.
영웅 중 한 녀석이 타고 있던 비룡의 날개가 용마족의 비늘검에 찢겨져 나가면서 비행을 유지하지 못하자 바로 추락을 시작했고.
한 녀석이 커버하는 범위가 줄어든 만큼.
다른 영웅들이 커버해야 하는 공간이 그만큼 늘어나 버렸다.
안 그래도 빡빡하게 치고받는 중이었는데 한쪽의 균형이 무너지자 빈 곳이 너무 많이 보이게 되었다.
재중이 형 역시도 혀를 찼다.
“안 되겠는데. 저대로면 전멸할지도 모르겠다.”
“전멸은 곤란하죠.”
저 영웅 녀석들이 용마족을 더 잡아놓고 있어야 우리가 제대로 움직일 수 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했다.
차라리 아까 접전 상태일 때 좀 무리해서 움직일 걸 그랬나?
그런데 그때.
타란 제국군의 황실 비공정에서 뭔가가 빠른 속도로 튀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지금까지 보던 그 어떤 비룡들보다 크고 아름다운.
그리고 그건.
우리가 이미 한 차례 본 적이 있는 개체였다.
“황제가 직접 나섰네요.”
타란 제국 황실에 갔을 때 봤었던,
황제의 뒤에서 똬리를 틀고 있던 바로 그 용이었다.
카샤스 대공의 실피드와 맞먹는.
타란 제국을 대표하는 최강의 용 중에 하나.
“키로아.”
카샤스 대공의 입에서 타란 제국 황제의 용의 이름이 나왔다.
그런 용을 다들 신기하다는 듯 지켜봤다.
우아한 느낌의 실피드와 달리 완전히 흑빛을 내는 키로아는 더 포악하고 흉악한 자태를 보여주었다.
전사 형이 감탄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 전설 속의 용 중에 하나를 직접 보다니 영광이네.”
아. 그러고 보니 전사 형은 못 봤었나?
“어때요? 저 녀석은?”
“빠르고 강해. 성마대전에 나오는 용들 중에서는 아크 드래곤 바로 아래지. 이쪽의 실피드랑 동급이고. 거기다 더 중요한 건…….”
“뭐가 있어요?”
“그래. 저 키로아라는 개체는 사실 용신의 피를 이었거든. 아주 약간이기는 해도.”
그러면서 전사 형이 카샤스 대공을 바라보자 카샤스 대공이 놀랍다는 듯이 전사 형을 바라보았다.
“어떻게 알았지?”
“왕국에 내려오는 고대 문헌에 있었습니다.”
“흠. 그런가.”
타란 제국의 비밀을 알았음에도 카샤스 대공은 그다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황실에 내려오는 용의 혈통이니까. 당연한 거다.”
하긴 생각해 보니 용신을 숭배하는 황실을 대표하는 용이니.
혈통이 그쪽인 건 틀리지 않을 터.
그사이 타란 제국의 황제가 개입하면서 이전과는 양상이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오히려 용마족이 포위를 당해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랄까.
그걸 보자마자 바로 신호했다.
“다들 달려요. 시간 없어요.”
말과 함께 먼저 안전지대를 뛰어나가자 우리 팀과 카샤스 대공, 아이샤 황녀, 레오나 에센시아, 마왕 헤르게니아가 모두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이미 모든 용기사들은 떨어진 용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는지 5층이 휑하게 비어 있는 상태였고.
덕분에 너무 쉽게 5층을 돌파해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요. 곧 용마족이 눈치채고 내려올 겁니다.”
아마 용마족도 우리가 움직인 걸 눈치챘을 터.
다만 지금은 타란 제국 황제 때문에 발이 묶여 있었다.
바로 아래층으로 몸을 날리자 모두가 내 뒤를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그 순간 떠오르는 메시지를 보고는 손을 불끈 쥐었다.
《 고대 마룡의 봉인지에 입장하셨습니다. 》
“아무래도 바로 아래였나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