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5화 깨어나는 마룡 (3)
이곳 베르탈륨 광산 지하에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아주 강력하다고 느껴질 만한 건.
현재로선 딱 하나뿐이다.
“혹시 그게 마룡을 말하는 거야?”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마룡인지 아닌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아무튼 아까 전부터 강력한 기운이 계속 느껴져.”
아까 전이라고 하면.
타란 제국군이 이곳을 공격하고 부터일 것이다.
그 이전에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이런 식으로 언급하진 않았으니까.
아마도 소환 마법진이 계속 발동하면서 생긴 여파이려나…….
그 힘이 강하다보니 어쩌면 마룡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테고.
“일단 내려가 봐야 뭔지 알겠네.”
나 역시 지하 바닥을 가리키면서 말하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었다.
바로 용마족의 존재.
이곳 베르탈륨 광산 5층의 수문장인 저 용마족이 과연 우리를 얌전히 내려 보내줄 것인가 하는.
지금은 한참 타란 제국군과 싸우고 있는 중이라 아직 우리를 신경쓰진 않는 듯 하지만.
당장 우리가 이곳보다 더 아래로 내려가려고 하면 과연 어떻게 되려나.
“용마족이 문젠데…….”
내 혼잣말에 옆에 있던 재중이 형이 내게 말했다.
“용마족이 여길 전혀 신경 쓰질 못하게 만들면 되겠지.”
“그게 될까요?”
약간의 의문을 담아서 재중이 형을 보자 바로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그리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꺼냈다.
“이미 판은 만들어져 있잖아. 그리고 딱히 우리가 여기서 뭔가를 더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흠. 그런가요?”
재중이 형이 고개를 들어 저 바깥의 전장 쪽을 가리키자 나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겠네요. 아니. 오히려 아무것도 안 하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겠죠.”
“그래.”
사실 재중이 형 말대로 지금 여기서 우리가 무언가 행동을 해버리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그런 행동은 분명히 용마족의 시선을 끌게 될 테니까.
반대로 지금 이대로 가만히 둔다면?
그때 화련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화련> 지금 완전 개판인데?
<주호> 그래요?
<화련> 응. 용마족이 끌고 올라온 언데드들하고 타란 제국군이 제대로 한 판 붙고 있어. 안 그래도 용마족 하나만 해도 제국군에 문제였는데 지금은 더 난리야.
역시 예상했던 대로인가.
용마족이 부활시킨 언데드 용들을 타고 용기사들이 전투에 투입되자 부족했던 쪽수가 채워져버렸다.
그리고 그건.
이제껏 타란 제국군이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이점이 사라져버렸단 뜻이 되고.
무엇보다 큰 문제는.
그 비율이 점점 더 역전될 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언데드 용기사들과 싸우다보면 자연스럽게 타란 제국군들이 죽어나갈 거고.
그러면 그런 죽어나간 용기사들이 다시 언데드 용기사가 되어 용마족 쪽에 붙게 된다.
타란 제국군 입장에서는 악순환이랄까.
이건 저 용마족을 잡지 않는 이상은.
절대 해결할 수가 없는 문제였다.
그런데 그 용마족이 쉽게 잡을 수가 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
이전에 언데드 용기사들이 없을 때도 잡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아예 용마족을 보좌하는 언데드 용기사들이 바글바글한 상태였다.
<주호> 진짜 개판이겠네요.
<화련> 말도 마. 설마 하니 타란 제국군이 이렇게까지 밀릴 줄은 몰랐다니까?
이건 애초에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전개였다.
타란 제국의 황제가 군대를 끌고 올 때만 해도 당장 그들을 견제해야할 판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용마족이 그 역할을 완전히 대신해주고 있는 모양새라.
<주호> 하지만 아직 부족해요.
단순히 타란 제국군이 밀리고 있는 정도로는 안 된다.
여기서 보다 큰 뭔가가 필요했다.
최소한.
타란 제국의 황제가 직접 나설 정도의.
<화련> 저렇게 죽어나가는데 부족하다고?
<주호> 네. 여기서 더 불을 붙일만한 것이 없을까요?
<화련> 글쎄. 이쪽에서 직접 개입하긴 힘들 것 같은데?
확실히 화련은 아직 타란 제국 내에서 영향력이 그렇게 크진 않았다.
오히려 지금은 명령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
여기서 잘못 나섰다가는 그 화살이 화련에게 갈 수 있는 노릇이라 직접 나서는 건 위험하기도 했다.
뭔가 더 개판으로 만들 만한 게 필요한데…….
딱히 떠오르는 게 없네.
용마족의 시선을 확실히 끌어줄 뭔가라…….
“형. 뭐 좋은 거 없을까요?”
“흠. 용마족을 더 끌어내야 한다는 거지?”
“네. 아무리 용마족이라고 해도 발을 빼지 못할 정도의 상황이 필요해요.”
“그럼 답은 나와 있네.”
“그래요?”
“어. 용마족이 쉽게 빠지지 못하려면 결국 제국 황제 정도는 나와 줘야지.”
“황제가 여기서 함부로 참전할까요? 이대로 대치 상태가 되어도 크게 나쁘지 않을 텐데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응?
뭔지?
타란 제국 황제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딱히 그 상황이…….
순간 떠오르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갔다.
그리고는 곧장 고개가 옆쪽으로 돌아가서 한 사람을 찾았다.
“카샤스 대공.”
내가 카샤스 대공을 쳐다보자 재중이 형도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정답을 찾았다는 거겠지.
“빙고.”
“카샤스 대공을 이용하자는 건가요?”
“정확하게는 이용은 아니지. 어차피 카샤스 대공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니까.”
“흠. 하긴 그렇겠네요. 그럼... 다음 일은 화련에게 맡겨야겠네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으로선 우리에게 이쪽의 상황을 전달해준 사람은 화련 밖에 없으니까.”
재중이 형과 의견이 정리되자 바로 화련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한 가지 해줘야 할 일이 있어요.
<화련> 아. 뭐 맡겨놨어? 맨날 뭐 해 달래?
그러면서도 딱히 안 해줄 거라고 거절하지 않는 걸 보면 일단은 들어줄 모양새였다.
<주호> 음. 지금 상황을 더 활활 타오르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서요.
<화련> 그런 게 있어? 어차피 그쪽에서도 움직이진 못하잖아.
<주호> 그렇죠. 우린 움직이지 못하죠. 여기서 움직였다가는 바로 용마족이 눈에 불을 키고 다시 돌아올 테니까요.
<화련> 잘 아네. 그리고 어차피 나도 뭔가를 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야.
<주호> 하지만 꼭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건 아니죠.
<화련> 궁금하게 하지 말고. 일단 말해. 될지 안 될 지는 내가 보고 결정할 테니까.
화련도 꽤 궁금했던 것 같았다.
여기서 더 기다리게 했다가는 그냥 안한다고 할 것 같아 바로 이야기 해주었다.
<주호> 백작 정도면 그래도 어느 수준의 인맥은 있겠죠?
<화련> 아주 없다고 할 정도는 아니야. 그렇다고 핵심 인력에 직접 선이 닳을 정도는 아니고. 네가 타란 제국군을 움직이고 싶으면 어지간한 위치로는 입김도 안 들어갈 텐데? 오히려 그건 카샤스 대공 쪽이 더 빠를지도 몰라.
화련 역시 자신의 위치와 인맥이 아직은 어중간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아마 시간이 좀 더 있었으면 화련도 꽤 좋은 위치에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지금 할 일들이 그렇게 높은 위치를 요하는 건 아니었다.
<주호> 아뇨. 그 정도까지 가지 않아도 좋아요. 약간의 소문만 퍼트릴 수 있다면요.
<화련> 그래?
<주호> 네. 그러니까 화련이 접촉할 수 있는 타란 제국군의 인사들에게 카샤스 대공이 지금 마룡을 노리고 베르탈륨 광산을 내려가고 있다고 해주세요. 그것도 아예 얻기 일보 직전이라는 말까지 해주면 더 좋겠네요.
내 말에 잠시 멈칫하던 화련이 이내 웃음소리와 함께 내게 말했다.
<화련> 와. 너 완전 사기꾼이잖아?
음.
화련에게 이런 소리를 다 듣고.
좀 기분이 묘했지만 일단 일부터.
<주호> 해줄 수 있어요?
<화련> 그 정도는 어렵지 않아. 어차피 소문만 내는 거라. 밑에 애들 시켜서 퍼트리면 되거든.
그러더니 화련이 다시 말을 이었다.
<화련> 지금 카샤스 대공을 이용해서 타란 제국 황제를 도발하자는 거지?
<주호> 정확해요. 이대로는 타란 제국 황제가 끝까지 나서지 않을 거라서요.
용마족과 언데드 용기사들이 숫자가 계속 늘어나고 있다고 하나.
이것도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타란 제국군이 아무런 대처 없이 계속 당해줄 리는 없었고.
그럼 어느 순간부터 소강상태로 이어질 텐데.
그 사이 시간은 계속 흘러가기만 하면서 타란 제국군 쪽에서도 분명히 뭔가의 해답을 들고 나올 것이다.
아니.
반대로 용마족이 타란 제국군에 비해 너무 강해지는 것도 문제였다.
그럼 이 일대가 전부 용마족의 영역이 되어 버릴 것이다.
이건 아예 접근조차 불가능한 상황이 이어질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지금.
서로가 난전이고 전력이 애매한 상황일 때.
용마족에게 빠져나갈 수 없는 부담을 확 줄 수 있는 건.
딱 이 한 가지 패뿐이다.
<화련> 아주 양쪽으로 다 이용해 먹는 구나?
<주호> 할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죠.
용마족을 이용해 황제를 치고.
반대로 카샤스 대공을 이용해 황제를 움직인다.
우리는 손가락 하나 까딱이지 않고 말이지.
<화련> 됐고. 지금 애들 시켜놨으니까 곧 움직일 거야. 생각대로만 된다면.
<주호> 고마워요.
<화련> 나도 받을 게 있어서 하는 거니까.
그러면서 화련이 연결을 끊어버렸다.
흠.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연락이 끊어지자 재중이 형이 내게 물었다.
“잘 됐냐?”
“네. 일단은요. 화련이 잘 해줬으면 좋겠는데.”
“어지간히 알아서 하겠지.”
“그렇죠.”
화련이라면 자신이 드러나게끔 작업을 하진 않을 것이다.
그러려면 분명 2중, 3중으로 연막을 치면서 소문을 퍼트릴 테고.
이게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
정체를 내보이지 않고 하려면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이번 한 번만 쓰고 버릴 작위도 아니라.
그때 카샤스 대공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날 이용한다는 건가?”
“아. 미안. 미리 말해주지 못 해서.”
그리고는 카샤스 대공에게 몇 가지 사실을 말해주자 그 역시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선수쳤다고 하면 타란 제국 황제도 급해서 뛰어나오겠지. 황제의 목적도 일단은 마룡의 습득에 있으니까.”
“그래. 그러면 당연히 지금 앞에 있는 용마족이 눈에 거슬릴 거야.”
“어떻게든 용마족을 잡던가... 병력을 빼돌려서 베르탈륨 광산으로 진입하려고 하겠군.”
“어느 쪽이 빠를 것 같아?”
“후자.”
“그럼 과연 용마족이 가만히 있을까?”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고개를 저었다.
“무리해서 저지하려고 하겠군.”
“반대로 황제는 무리해서 돌파하려고 할 테고…….”
“그럼 서로 견제한다고 정신없겠지.”
“그래. 그리고 우린 그 점을 노릴 거야.”
내 말이 끝나자 카샤스 대공이 날 빤히 바라보고는 말했다.
“너. 무서운 녀석이었군.”
“뭘 새삼스럽게.”
목적이 해결할 수 있다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마 딱 한 번 정도 기회가 나올 거다.”
“용마족과 타란 제국 황제가 붙는 순간 말인가?”
“그렇지. 그리고…….”
슬쩍 고개를 돌려 아이샤 황녀를 바라보았다.
“황녀는 반드시 데리고 가야 해.”
“흠…….”
“용마족이 저렇게 신경쓰는 걸 보면. 분명히 그녀에게 뭔가가 있을 테니.”
잠시 고민하더니 굳은 표정으로 카샤스 대공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샤스 대공과 그렇게 기다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화련에게서 다시 연락이 들어왔다.
<화련> 드디어 황제가 움직였어.
그 말을 듣자마자 카샤스 대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지금이야. 움직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