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1화 용 수호자 (13)
이게 맞는지는 나 역시 확신할 순 없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지켜본 용마족 녀석의 반응만을 살펴봤을 때.
유일하게 적극적으로 반응을 보인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내 시선이 뒤쪽으로 돌자 재중이 형 역시 광산 통로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뭔가 눈치챈 듯 바로 내게 물었다.
“레오나 에센시아…… 아니지. 지금 경우에는 아이샤 타란이 맞겠네.”
“가능성이 있겠죠?”
우리와 달리 용마족 녀석이 제대로 관심을 가진 건 딱 한 명뿐이었다.
아이샤 황녀.
왜 그녀에게만 반응을 보이는지는 확신할 순 없지만.
적어도 그녀가 이곳에서의 키가 될 거라는 건 고려해볼 만했다.
그런데 약간의 우려도 있었다.
같은 걸 생각했는지 재중이 형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내게 물었다.
“만약 아이샤 타란을 죽이기 위해서 관심을 두었다면 어떨까?”
“그것도 배제할 순 없겠죠.”
나 역시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용마족이 단순히 관심만 가진 건 아닐 테니까.
“그렇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라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예요.”
그냥 침입자를 죽이기 위한 반응이었다면 우리 역시도 그런 관심에 포함이 되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런 관심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그렇다는 건.
아이샤 타란을 데리고 오더라도 크게 문제되진 않을 수도 있어.
반대 상황이라면 꽤 골치 아프겠지만.
이 경우에는 우리 편에 카샤스 대공이 있으니 어떻게든 대처가 될 터다.
“카샤스 대공을 믿고 한번 해보죠.”
“썩 좋아하진 않겠는데?”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허락이 필요하겠죠.”
“좋아. 해보고 안 되면 일단 접자. 용마족 상대로 누구 하나 죽지 않으면 이길 수 없을 테니.”
재중이 형도 지금 전력으로는 저 용마족을 확실히 누른다는 확신이 없던 모양이었다.
무엇보다 지금 이곳의 환경이 그리 좋은 상태가 아니었다.
화련의 길드원들이 전부 귀환한 상태에다 이쪽의 용기사단이 죽어 나가면 그만큼 전력비가 기울게 된다.
이곳에서 죽은 용기사단은 바로 부활해 칼을 거꾸로 쥐게 될 테니.
무엇보다 저 용마족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 문제였다.
만약 우리를 무시하고 당장 달려 나가 고대 용기사들과 대치 중이던 용기사단부터 싹 죽이고 다니면?
이건 거의 최악의 상황이 될 테다.
솔직히 지금은 저 녀석이 그러지 않아 주는 게 고마울 정도였다.
재중이 형과 말을 맞춘 뒤 곧장 카샤스 대공에게 다가갔다.
“방법을 찾았나?”
“아. 그게 문제가 좀 있어.”
“문제?”
“아이샤 황녀를 이곳으로 불러와야 할 것 같은데.”
내 말을 들은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선택의 여지도 없다는 듯 거절했다.
“안 돼. 잘못하다가 저 녀석에게 죽을 수도 있다.”
“네가 막아준다면?”
“지금 상대하는 것도 버겁군.”
카샤스 대공은 용마족을 당장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상대라 여겼는지 내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할 상황은 아니긴 한데…….
고개를 돌려 아직은 얌전히 서 있는 용마족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대로 싸워서 이길 순 없을 거야.”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할 수 없다는 듯 답했다.
“그럼 철수하도록 하지. 더 이상의 위험을 감수할 순 없다.”
카샤스 대공은 여기서 누구 하나 죽어 나가는 상황까지는 허용하진 않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게 아이샤 타란이라면 더욱더 그럴 테고.
흠.
할 수 없나.
솔직히 아이샤 황녀가 오면 상황이 해결될 거라 생각했는데.
카샤스 대공이 완강히 거부하는 상황이라면 오히려 그녀를 데리고 오는 것 자체가 내겐 부담이 된다.
이 일로 카샤스 대공과 대립각을 세우게 되면 안 하니만 못하니까.
그리고 여기서 카샤스 대공이 빠지면 어차피 안 되는 건 마찬가지다.
곧 돌아와서는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안 되겠어요. 카샤스 대공은 아이샤 황녀를 데리고 올 생각 자체가 없어요.”
“역시 그렇지? 저 녀석. 보기와 달리 아이샤 황녀를 상당히 감싸고 도니까.”
확실히 지금까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카샤스 대공은 아이샤 황녀의 안전을 가장 중요시한다.
어떻게 그녀를 두고 성마대전에 나갔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말이지.
완전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카샤스 대공에게서 원하는 대답을 얻긴 힘들 터.
“할 수 없죠. 아쉽지만 일단 후퇴하고 다시 노려보죠.”
“황제가 달달 볶겠군.”
“꼬우면 자기가 와서 해 보라죠 뭐.”
“크큭. 그래.”
재중이 형도 두 손 들었는지 우리 팀에게 전했다.
“다들 철수한다.”
그러자 고대 용기사들과 한참 싸우고 있던 전사 형이 잘못 들었다는 듯 물었다.
“뭐라고요?”
“튀자고. 아무래도 이 녀석, 우리를 보내줄 생각이 없는 것 같거든.”
“그렇습니까?”
전사 형도 방금 전 용마족 녀석이 쏜 용마포의 위력을 본 이후라 아무렇지도 않게 재중이 형의 말에 따랐다.
솔직히 그때 내가 막아주지 않았다면 이곳 광산은 완전히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 걸 쏘아대는 괴물을 상대로 튀는 건 그리 잘못된 선택은 아니었다.
성마대전 시대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일은 능력 이상으로 욕심을 부리다가 죽어서 탈락하는 일이었다.
그렇게 성마대전에서 탈락한 녀석들이 한둘도 아니고.
곧 챠밍을 비롯한 우리 팀 모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뒤로 빠진 나르샤 누나가 용기사단장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 녀석들은?”
“살려서 가야죠.”
괜히 놔뒀다가 죽어 버리면 곤란하지.
고대 용기사들은 어차피 우리가 빠져나가면 좀 쫓아오다가 안전지대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과연 저 용마족 녀석이 가만히 지켜볼까가 문제긴 한데.
지금도 움직이지 않는 걸 보면 문제가 될 것 같진 않고.
“대충 눈치 봐서 빠지라고 해요.”
전사 형에게 말하자 바로 전사 형도 전투 중이던 용기사단장에게 전달했다.
“적당히 하다가 빠집니다. 용기사단은 알아서 챙겨서 빠지시죠.”
그러자 용기사단장들이 놀란 듯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여기가 죽을 자리는 아닌가 보군.”
“저런 괴물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어?”
용기사단장들도 딱히 내키지 않은 싸움인 듯했다.
하기 여기 들어올 때도 황제에게 거의 등 떠밀려서 들어온 셈이라.
철수한다는 말에 그들이 제일 기뻐하는 모습이었다.
황제가 좀 불만을 가지겠지만.
그렇다고 안 되는 일을 피해까지 입으며 감수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
의외의 사람에게 연락이 들어왔다.
<화련> 여기 문제가 생겼어.
<주호> 네?
<화련> 황제가 움직였어.
<주호> 뭐라고요?
<화련> 못 들었어? 지금 황제가 그쪽으로 가고 있다고. 전 병력을 끌고.
순간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는 옆에 있던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형. 화련이 문제가 생겼다네요.”
“왜? 황제가 대접이 시원찮다고 목이라도 가져오래?”
농담스럽게 말하면서도 재중이 형의 관심은 내 뒷말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러면 화련이 벌써 튀었겠죠. 그보다 지금 황제가 움직이고 있다네요.”
“뭐?”
재중이 형도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지 약간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리말을 들은 전사 형을 포함한 우리 팀 모두 같은 표정들이었고.
그리고 황제라는 말에 용기사단장들 역시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설마하니 황제가 이곳으로 직접 움직일 거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라.
바로 화련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화련> 애들에게 듣기로 황제가 베르탈륨 광산 주변으로 용기사들을 배치해 놨었나 봐.
<주호> 일종의 감시인가요?
<화련> 아마도? 이런 일을 맡겨놓고 그냥 기다릴 정도로 바보는 아닐 테니까.
확실히 화련의 말이 맞았다.
딱히 감시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우리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확인 정도는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런데 그런 용기사들에게 방금 용마족의 위력을 보고받았다면?
베르탈륨 광산을 녹이며 그대로 뚫어 버리고는 하늘 높이 솟구치는 용마포를 보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오히려 황제가 더 이상한 놈일 테다.
자기 앞마당에서 정체불명의 괴물이 나왔는데 말이지.
그것도 좀 강한 정도가 아니라.
이 일대에 지진을 일으킬 수준의 괴물이니까.
화련의 말에 고개를 들어 지금을 사라지고 뻥 뚫린 베르탈륨 광산의 천장을 바라보았다.
안에서 하늘이 그대로 보이는 광경이라.
그리고 그런 광경에서 아주 작게.
공중을 날아다니는 뭔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이곳을 정찰이라도 하는 듯이 주변을 배회하는.
재중이 형도 고개를 들어 올려 그 모습을 보고는 혀를 찼다.
“용이네.”
“네, 용이네요. 그것도 용기사들이 타고 있고요.”
타란 제국의 용기사들이 탄 몇 마리의 용들이 날아다니며 계속해서 이곳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황제에게 보고를 한 건 저 녀석들이겠네.
잠시 그들을 보던 재중이 형이 살짝 짜증이 난다는 듯 말을 이었다.
“흠. 꽤 귀찮게 됐는데?”
“그러게요.”
후퇴를 하려고 했는데.
위에서 저렇게 내려다보고 있으면 그것도 힘들어진다.
적을 보고도 도망간 셈이 되니까.
일단 우리야 외부인이라서 상관없긴 하지만.
카샤스 대공은 또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 역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뒤 살짝 인상을 구겼다.
“감시인가.”
“그런가 봐. 어떻게 할 거야?”
“흐음.”
잠시 고민하는 카샤스 대공에게 말을 꺼냈다.
“황제가 지금 이곳으로 오고 있어.”
그러자 예상하지 못한 말을 들었다는 듯 놀란 눈을 하더니 이내 용마족 녀석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녀석이 이곳을 벗어나면 황제도 골치 아프겠지.”
“네가 못 잡을 거라 생각한 건가?”
“아마도 그렇겠지.”
그러면서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공중의 정찰병들.
확실히 우리가 전투하는 모습을 저 멀리서 지켜봤다면 충분히 그렇게 판단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승부가 나지 않은 채 소강상태로 있는 것도 그렇고.
“그리고 좋은 기회일 거다. 황제에게는.”
“기회?”
기회라는 말에 나와 재중이 형의 시선이 카샤스 대공에게 돌아갔다.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살짝 한숨을 쉬고는 말을 꺼냈다.
“대공인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처리하면. 타란 제국 내에서 황제의 입지가 그만큼 더 올라가겠지. 그것도 모든 귀족들을 앞에 두고서 말이야.”
타란 제국의 정치적인 문제였던 건가.
확실히 타란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 사이에서는 세력 싸움이 물밑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었다.
카샤스 대공은 그에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지만.
저 황제 녀석은 전혀 아닌 것 같으니.
“보여주기식인가?”
“그렇다고 보면 된다.”
“굉장히 황제다운 생각이네.”
내 비꼬는 말에 카샤스 대공이 맞장구는 치지 않았지만 아니라는 말도 하진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할 생각인데?”
“잘 모르겠군.”
황제가 오기 전에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은 이미 말했듯이 아이샤 황녀를 데리고 오면 가능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카샤스 대공이 원하는 상황은 아니니까.
그렇다고 다시 2차전을 하기에는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딱 하나 남은 방법은.
황제의 도움을 받아서 이곳을 제압하는 방법인데.
그건 카샤스 대공의 입장에서는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황제가 더 그 상황을 바라겠지.
그리고 무엇보다…….
잠시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은 앞으로 벌어질 상황이 잘 그려지는지 이미 웃고 있는 중이었다.
곧 피식 웃더니 내게 말했다.
“뭘 고민해? 그냥 황제에게 맡겨.”
그리고 나 역시 마주 웃음 지으면서 대답했다.
“역시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