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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20화 (1,220/1,404)

#1220화 용 수호자 (12)

타란 제국의 용기사단이 전멸하면 앞으로 골치 아픈 일이 생기긴 해도.

그렇다고 반드시 살려야 하는 건 아니다.

저들을 살리자고 우리가 죽으면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하고.

하지만 할 수 있음에도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건 아쉬움이 남는다.

무엇보다 용기사단만 있는 게 아니라 던전 외부에는 우리 쪽에서 데려온 에센시아 기사단도 있으니까.

다행히 이곳 베르탈륨 광산에서 귀환이 안 된다든가 하는 제약은 없었다.

만약 그런 제약이 있었다면 어차피 무조건 용마족 녀석을 잡아야 하니 선택권 자체가 없었을지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용마족 녀석을 향해 달려가자 녀석 역시도 내 쪽을 인식했는지 고개를 돌렸다.

챠밍의 빙계 스킬이 전혀 통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지금 저 녀석의 상태에서는 어떤 공격을 해도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다만.

꼭 그게 지금이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용마족 녀석의 팔이 마치 용의 머리처럼 변형되어 우리 쪽을 향해 브레스를 날릴 준비를 했다.

저기서 나오는 브레스가 터지면 이 일대는 죄다 무너지게 될 터.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차징이 되었는지 곧 앞쪽의 입 부분이 쩌억 벌어지며 브레스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 순간.

【 대천사의 가호! 】

【 이중 가속! 】

【 엑셀레이션! 】

라페르나의 대천사의 가호가 걸리며 등에 화려한 빛의 날개가 형성되었고 이어 마왕 올펠의 칠흑의 갑주가 내 힘에 추가로 가속을 불어넣어 주었다.

순식간에 용마족 녀석과 내 거리가 좁혀졌고.

곧장 자세를 최대한 낮추며 녀석의 변형된 팔 아래쪽으로 완전히 파고들었다.

내 움직임에 시선을 옮긴 용마족 녀석이 대응을 하려고 자세를 비틀었지만.

이미 브레스를 쏘려던 녀석이 급격히 방향을 틀어 움직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용마족의 변형된 팔 아래로 파고든 뒤.

곧장 위쪽으로 르아 카르테와 대천사의 검을 뻗어 녀석의 팔 아래쪽과 마주치자마자 바로 스킬을 시전했다.

【 그랜드 크로스! 】

콰아아아!!

눈이 부실 정도의 압도적인 빛의 십자가가 위쪽으로 터지며 동시에 그동안 꿈쩍도 하지 않던 용마족 녀석의 변형된 팔이 허공 위로 튕겨져 올라갔다.

콰드득!

억지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일까.

뭔가의 관절이 뒤틀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보다 더 강한 폭발음이 위쪽을 향해 터져 나왔다.

쿠아아앙!!

녀석이 베르탈륨 광산 안으로 쏘려던 브레스가.

완전히 방향을 꺾여 광산의 천장을 그대로 터트리고 녹여내면서 뻗어나갔다.

쿠구구궁!!

동시에 베르탈륨 광산 전체가 커다란 지진과 함께 굉음을 토해냈다.

용암과 같은 브레스가 천장을 완전히 녹여버리고도 계속 쭉 뻗어 나가더니 이내 힘이 다했는지 브레스의 줄기가 끊어져 버렸다.

용마포라고 했던가?

마왕 헤르게니아 말대로 정말 광산 하나쯤은 능히 박살 낼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내가 공중으로 방향을 바꿔놓지 않았다면.

분명 헤르마늄 광산이 그대로 터져 나가며 동시에 녹아버렸을 터.

설마 내가 자신의 용마포를 허공으로 쳐낼 줄은 생각도 못 했는지 용마족 녀석이 내 쪽을 계속 응시하는 것 같았다.

가면이 있어서 정확히는 확인하지 못하지만.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크르르.”

화가 난 듯 으르렁거리는데 흡사 용의 하울링과 꽤 유사한 파장이 일어나며 주변에 경직을 일으켰다.

하지만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가 그 경직 효과를 방어하면서 딱히 내게 피해를 주진 못 했다.

진짜 이 마왕의 플레이트가 어지간한 상태 이상은 다 방어해 주는 것 같네.

타이탄 플레이트만큼 물리 방어력이 강하진 않더라도.

이런 점에서는 확실히 우위에 있었다.

저런 녀석을 상대할 때는 오히려 마왕의 플레이트가 더 도움이 될 터.

다시 용마족 녀석과의 2차전을 하기 위해 라페르나를 집어넣고 테르타로스를 꺼내들었다.

대천사의 검이 한 방이 좋긴 한데.

아쉽게도 스탯이 너무 떨어져 버린다.

테르타로스만큼의 스탯을 주진 못하니까.

장기전으로 붙으려면 무조건 테르타로스와 조합이 좋았다.

아마 용마족 녀석이 쉽게 죽어주진 않을 것 같으니.

녀석의 브레스 공격을 방해했으니 분명 내게 달려들 터.

바로 전투 자세를 잡으면서 대응하려는데 의외로 녀석이 내게 달려들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자 재중이 형이 옆으로 빠르게 달려와 내 옆에 섰다.

“그걸 기어코 쳐냈네.”

“아. 될 것 같더라고요.”

재중이 형이 고개를 들어 올려 천장을 바라보는데 저 위로 하늘의 구름이 보일 정도로 완벽하게 베르탈륨 광산이 뚫려버린 상황이었다.

그것도 어지간한 비공정 한 대쯤 그냥 지나갈 수 있을 만큼이나 넓게.

정말 쳐내지 못했으면 이 광산은 무조건 무너졌을 거다.

“휘유. 넓게도 뚫었네.”

“그러게요. 이 정도일 줄은.”

잠시 멈춰선 용마족을 바라본 재중이 형이 말했다.

“아무리 네임드라고 해도 이 정도의 스킬을 마구잡이로 계속 쓸 순 없을 거다.”

그 말에는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광산 하나를 녹여 버릴 정도의 스킬을 난사한다면 그것 자체로 이미 밸런스 붕괴다.

만약 그게 가능했다면 타란 제국 같은 건 대륙 지도상에서 바로 지워질지도 모르고.

“그런데 저 녀석. 아예 안 움직이는데요?”

의아한 듯 쳐다보자 재중이 형 역시도 나를 지원하러 왔다가 그대로 멈춰서 녀석을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광역 스킬 후 경직…… 같은 거려나?”

“그렇다고 보긴 너무 길죠?”

“좀.”

네임드들 중 대다수는 강력한 스킬을 쏘고 잠시 동안 경직으로 뻗어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 상황을 이용해서 폭딜을 해서 체력을 깎는 건 레이드 좀 해본 유저들은 거의 다 알고 있었고.

그런데 지금의 녀석의 상태는 그런 것과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분명히 움직일 수 있음에도.

일부러 안 움직이고 있다고 해야 하나?

“우리가 먼저 칠까?”

“그것도 나쁘진 않죠.”

어차피 여기서 잡고 넘어가야 하는 녀석이었다.

가만히 있는다고 안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라.

그때 화련에게서 연락이 왔다.

<화련> 뭐야? 방금 지진은.

<주호> 혹시 튀었어요?

<화련> 네가 튀라며. 뒤도 안 돌아보고 귀환했지.

<주호> 그런데 지진은 어떻게…….

<화련> 여기 영지까지도 지진이 울리던데? 그리고 하늘 위로 뻗어 나온 붉은 기둥은 또 뭐고?

으음.

방금 베르탈륨 광산 천장을 뚫고 나간 충격으로 근접해 있는 화련의 영지까지 지진의 여파가 울린 듯했다.

거기다 멀리서도 보일 만큼 용마포의 브레스가 하늘로 계속 뻗어 올라간 듯했다.

그 순간 생각나는 게 있었다.

<주호> 황제도 봤겠죠?

<화련> 아마도? 붉은 기둥이 그렇게 높게 올라가는데 못 보면 죄다 옷 벗어야지.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화련의 말을 듣고는 잠시 한숨을 쉬었다.

“왜? 화련이 뭐라고 해?”

“네. 방금 브레스. 황제 쪽에서도 확인한 것 같아요.”

“하긴. 이렇게 강한데 모르면 이상하지.”

곧장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어쩌면 황제 측에서 직접 뛰어들지도 모르겠어요.”

그러자 재중이 형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답했다.

“그럼 땡큐지. 개고생 안 해도 되고.”

재중이 형이 눈결로 용마족 녀석을 가리키자 나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 이상으로 용마족이 강했다.

카사스 대공과 나, 재중이 형이 동시에 달려들어도 버거울 만큼이나.

오히려 타란 제국 황제가 참전한다면 손이 덜 가기는 할 텐데.

문제는 지금 그 황제가 들고 있는 용신검이 내가 만들어 낸 짝퉁이라는 거다.

괜히 싸운다고 휘두르기라도 한다면…….

“황제가 나서면 꽤 골치 아플 수도 있어요.”

뒤늦게 재중이 형도 약간은 뜨끔한지 웃어 넘겨버렸다.

“설마 황제가 직접 나서겠냐. 밑에 녀석들이 얼마나 많은데.”

“역시 그렇죠?”

“그런데 저 녀석은 왜 안 덤비지? 아까는 그렇게 죽일 듯 달려들더니.”

곧 카샤스 대공도 체력을 완전히 회복하고는 내게 다가왔다.

뒤를 돌아보니 챠밍과 막내별이 열심히 체력을 복구해준 듯했다.

정확하게 모르긴 해도 마력을 상당히 소모했을 터.

이쪽도 문제긴 하네.

카샤스 대공이 용마족을 쳐다보더니 물었다.

“안 싸우는 건가?”

“나야 모르지.”

“흠…… 용마족이라. 확실히 강하군.”

카샤스 대공 입장에서는 타란 제국 내에서 자신과 맞수조차 없었을 텐데.

이런 곳에서 자신보다 더 강한 존재를 만나니 호승심이 마구 샘솟는 듯했다.

그렇다고 일을 그르칠 정도로 나서진 않았지만.

눈빛이 활활 타오르는 걸 보면 확실히 의욕은 넘쳐 보였다.

마음 같아서는 카샤스 대공에게 용신검을 쥐여주고 싸워보라고 하고 싶은데.

그럼 아마 혼자서도 저 용마족을 상대로 충분히 싸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건 마지막 패 정도로 남겨놓고.

그때 갑자기 용마족 녀석이 입을 열었다.

그것도 나를 빤히 바라보면서.

“대천사…… 마왕…… 너…… 누구냐.”

또박또박하진 않지만.

확실히 의사를 표현할 수준의 말이 나오자 재중이 형이 놀라움을 표했다.

“저 녀석 말할 줄 아네?”

“그렇더라고요. 아까도 했는데.”

“흐음. 평범한 네임드는 아니라 이건가?”

“아마 이쪽에서 대천사와 마왕의 스킬을 동시에 쓰니까 알아본 것 같아요.”

“그렇단 말이지?”

단순히 흥미를 일으켰을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확신한 건.

당장은 녀석이 우리와 전투를 더 이어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는 것 정도일까.

만약 싸우려고 했다면 벌써 덤볐을 테니.

어쩌면 우리 전력이 생각 이상이라 고민하고 있을 수도 있으려나.

보통 네임드와는 다른 녀석이라.

분명 일정 이상의 지능과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잘하면 안 싸우고 넘어갈 수 있으려나?”

재중이 형도 비슷한 생각인 듯했는데 곧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 옆으로 다가와서 말했다.

“쟤 왜 멈춰 있어?”

“그러게. 이유를 알고 싶네.”

대치 상황이 좀 이상하긴 한데.

그렇다고 우리가 먼저 접근하진 않았다.

아까 같이 용마포라도 날리면 또 같은 상황이 이어질 테니까.

마왕 헤르게니아가 슬쩍 내게 귓속말을 전했다.

“나까지 싸우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말에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냐. 아직은.”

마왕 헤르게니아는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쓸 수 있는 최후의 패다.

당장 문제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아직은 아니다.

여전히 용마족 녀석의 시선 방향이 내게 있는 걸 봐서는 아까 물어봤던 것에 대한 답을 해주어야 할 것 같았다.

“일단은…… 타락 천사겠지.”

그러자 오히려 카샤스 대공이 의아하다는 듯이 내 쪽을 돌아보았다.

“너 무슨…….”

“아. 나중에 말해 줄게.”

어차피 카샤스 대공에게는 둘러대면 되는 일이라.

내 대답을 들은 용마족이 곧 답변을 내놓았다.

“타락 천사…… 넌…… 자격이…… 없다.”

이거 대놓고 자격이 없다고 하니 좀 기분이 나빠지는데?

재중이 형 쪽을 보면서 말했다.

“이곳의 통과를 위한 자격이겠죠?”

“아마도.”

일단 난 안 된다는 것 같고.

카샤스 대공 쪽을 보면서 말했다.

“이쪽은?”

내 물음에 용마족이 빤히 카샤스 대공을 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자격이 없다.”

이거 참.

무력으로 자격을 재는 건 아닐 텐데.

카샤스 대공의 용혈도 여기서는 도움이 되지 않는 듯했다.

그리고 재중이 형도 물어보았지만 잠시 재중이 형의 고대 마룡의 창을 흘깃거릴 뿐.

혹시나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재중이 형 역시 거부했다.

“자격이…… 되지…… 않는…… 자. 돌아가라.”

재중이 형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결국 지나가려면 무력으로 뚫어야 한다는 말이네.”

“그러게요.”

잠시 소강 상태였으나 이건 용마족이 우리의 자격을 평가하기 위한 자리였던 모양이었다.

일정 이상의 무력을 보인 이들에게 보이는 약간의 기회랄까.

흐음.

이거 참.

어차피 무력으로 뚫을 생각이었으니 상관없긴 하지만.

말이 통하는 상대라 방법이 보일 것 같은데.

그 방법을 모르니.

그때 순간 머릿속을 뭔가가 스쳐 지나갔다.

바로 시선을 돌려 저 뒤쪽에 있을 누군가를 생각해냈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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