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화 용 수호자 (7)
분명 전에 우리 팀끼리 내려왔을 때는 5층의 괴물이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다.
그때야 안전지대에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보면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었던 모양이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게 바로 경고를 줬다.
“조심해.”
“알고 있어.”
이곳의 다른 사람들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내겐 분명히 느껴진다.
녀석의 발자국의 방향이 분명히 우리 방향 쪽으로 이동했다.
아직까지 접근하거나 하는 건 분명히 아니었지만.
옆에서 재중이 형 역시 녀석의 움직임을 느꼈는지 내게 말했다.
“한 번 올 생각인가 본데?”
“네. 확실히 이쪽을 봤어요.”
재중이 형도 고대 마룡의 창을 꺼내들면서 녀석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언제라도 뛰어나갈 수 있도록 경계 태세를 갖추고서.
나 역시도 르아 카르테를 꺼내들자 우리 팀을 비롯한 모두가 나와 재중이 형을 보고는 긴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곳까지 오면 한 번도 우리가 무기를 꺼내든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 우리가 경계하는 모습을 본 것만으로 충분히 그들에게 경고가 된 듯 했다.
화련이 내게 바로 물어보았다.
“여기서 싸우는 거야?”
“모르겠어요. 여기가 안전지대라 싸움 자체는 피할 수 있을 것 같긴 한데…….”
“전진은 못한다는 거잖아.”
“그렇죠.”
“결국 싸워야겠네.”
화련 역시 녀석과의 일전을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슬쩍 뒤를 쳐다봤다가 화련에게 물었다.
“녀석은요?”
“칫. 하필 접속 시간에 걸려 있어서. 당장은 못 들어와. 그러게 접속 시간 조절 좀 하라고 했는데.”
“흐음. 당장은 못 써먹겠네요.”
내심 화련이 키운 괴물을 옆에서 한 번 보고 싶은 생각이 있긴 했는데 정작 접속 제한에 걸려 못 들어온다니 좀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휴. 두들겨 패서 말 좀 듣게 해야 하는데…….”
그 말에 화련에게 농담하듯이 말했다.
“좀 패줄까요?”
그러자 화련도 맞장 치면서 웃어버렸다.
“그래주면 좋고.”
“그럼 나중에 시간 나면 한 번 두들겨 보죠.”
“너무 세게 패진 말고. 그래도 어디 가서 사고치고 다니진 않으니까. 말을 드럽게 안 들어 먹어서 문제지.”
보아하니 아무래도 화련이 제어를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이쪽은 나중에.
지금은 눈앞에 괴물을 상대하는 게 먼저였다.
재중이 형을 보면서 물어 보았다.
“형. 타란 제국 용기사들. 먼저 투입해볼까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돌려 용기사단을 쳐다봤다가 애매한 듯 고개를 저었다.
“기사단장들 빼고는 상대가 안 될 것 같은데?”
“역시 그렇죠?”
여기까지 내려오면서 지켜봤던 내 평가와 재중이 형의 평가는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한 마디로 기사단장들 수준을 제외하고는 녀석과 제대로 붙을 수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잠시 용기사들이 반발하려는 모습이 보였지만.
바로 테이먼이 나서서 손을 들어 그들을 막아섰다.
“단장!”
“됐다. 그리고 저 너머에 있는 건 너희가 상대할 수 없어.”
제11 용기사단장.
테이먼 타누스.
바로 이 자가 타누스 후작의 직계였다.
여기서 죽지 않게 후작에게 부탁받은 인물이기도 했고.
곧 테이먼 타누스가 바싹 긴장을 하고는 내게 물었다.
“주호 왕자님. 저 너머에 있는 게 대체 멉니까?”
“보이나요?”
“보이진 않지만. 소름 돋을 정도로 강하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재중이 형은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불멸> 제법이네.
<주호> 네. 적어도 발목은 안 잡겠어요.
아예 짐 덩어리가 되면 어쩌나 했는데.
사실 제국의 기사단장들은 어디 가서 실력이 모자라서 죽을만한 인물은 아니긴 했다.
어느 정도 감각이 있다 보니 어둠 너머의 상대를 경계하는 듯 하고.
애초에 실력 자체가 모자랐다면 저 괴물을 인지하지도 못할 테니까.
굳이 비교를 하자면 영웅 급에 겨우 발을 걸칠 정도의 능력은 지니고 있을 것이다.
당장 전력이 되는 건 기사단장 여섯 정도.
나머지는 굳이 데리고 갈…….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갑자기 근처에 퍼트려 놓은 내 감각에 뭔가가 마구잡이로 걸려들기 시작했다.
이건?
바로 인상을 구기면서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형. 아무래도 기사단 전부가 필요할 것 같은데요?”
내 말에 재중이 형 역시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쓴웃음을 지었다.
“쳇, 평범한 녀석은 아니라고 예상했는데. 소환까지 하는 거냐.”
재중이 형 역시도 어둠 속의 상황을 인지한 듯했다.
“최소한 4층의 고대 용기사단 정도는 될 겁니다. 걸음 폭과 무게감이 거의 비슷해요.”
그리고는 감각으로 녀석들의 숫자를 세다가 살짝 인상을 구겼다.
“대략…… 백 단위…… 이백…… 삼백.”
“많네.”
“그것도 이쪽으로 전부 몰려오는 중이에요.”
소환된 고대 용기사단 삼백이 넘어간다는 말에 안전지대에 있던 모두가 놀란 눈빛을 했다.
삼백이라면 우리 쪽 용기사단의 숫자에 거의 두 배가 넘어가는 숫자였다.
“아예 5층으로의 접근 자체를 막아버릴 생각 같은데요.”
내 말에 전사 형 역시 타이탄 풀 플레이트를 모두 창작하고는 경계 태세를 취했다.
“복잡해서 어디 싸울 수야 있겠어?”
이 정도로 많은 숫자가 미로와 같은 던전에서 동시에 얽히면 그야말로 개싸움이 될 확률이 높았다.
좁은 통로에서야 블록을 쌓고 버티면 된다지만…….
아쉽게도 아군 쪽은 5층의 구조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흐음.
할 수 없나.
“잠시만요. 작전을 좀 짜야겠어요.”
그리고는 모든 감각을 한꺼번에 개방해서 5층 전체를 훑기 시작했다.
내가 가만히 서서 움직이지 않자 화련이 뭔가를 물으려 했는데 재중이 형이 바로 막아섰다.
“잠시 대기.”
“왜 그래?”
“얘가 좀 바빠서.”
그러자 화련도 눈치가 있는지 바로 물러섰다.
그렇게 얼마나 5층을 훑었을까.
바로 전사 형을 불렀다.
“전사 형. 지도 작성 좀.”
“그래.”
그리고는 내가 던전의 구조를 불러주자 바로 그에 맞는 지도를 작성해서 하나의 완성본을 만들어냈다.
화련은 옆에서 깜짝 놀란 듯 나를 빤히 바라보았고.
“지도 제작 스킬? 던전 안의 지도를 만드는 건 들어본 적도 없는데?”
아마 화련은 내가 하고 있는 게 그냥 스킬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다.
뭐 대충 저렇게 생각해주면 난 편하지.
완성된 지도를 전부 펼치고는 전사 형이 아군들에게 하나씩 전달했다.
“우리 숫자가 압도적으로 부족하니까 전략을 잘 짜야 합니다.”
그리고 전사 형이 몇 가지 포인트들을 찍어주며 용기사단장들과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11기사단이 막아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이쪽 통로는 14기사단이. 반대로 저쪽 구간은…… 지원조도 따로 구성하죠. 라인이 무너질 경우를 대비해…… 마법과 원거리 지원은 이쪽에 라인을 잡아주시고.”
전사 형이 일일이 설명을 해주자 각 용기사단장들도 자신들이 지원할 수 있는 자원을 보여주면서 인원을 맞춰나갔다.
“용기사단은 최대한 죽지 않도록 하고 불록을 만들어 버티는 게 목적입니다.”
“단순히 버티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예. 용기사단장들과 우리 팀이 저 괴물을 상대하는 동안 시간을 벌어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전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충분히 간격도 벌려주셔야 하고요.”
그러다 전사 형이 용기사단장들을 보면서 하나의 주의를 주었다.
“죽지 말아야 하는 다른 이유는…… 용기사단이 죽어나가면 저 괴물이 네크로멘시를 쓸 겁니다.”
네크로멘시라는 말에 모든 용기사단들의 표정이 한꺼번에 굳어졌다.
그들도 이미 4층에서 보고 온 것이 있으니까.
“죽으면 그들처럼 되는 겁니까?”
“네. 죽어버리면 높은 확률로 적이 되어 일어납니다.”
전사 형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 바로 저 네크로멘시였다.
당장은 지형의 이점을 이용해 숫자가 적은 우리 쪽 라인이 버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어느 순간부터는 용기사단이 무너지는 시점이 올 것이다.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이 한꺼번에 무너질지도 모른다.
죽어나간 우리 쪽 용기사단들이 죄다 언데드가 되어 적들의 숫자를 불려줄 테니까.
“절대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겁니다.”
전사 형의 말에 용기사단들의 눈빛이 전의에 불타올랐다.
“각오했습니다.”
“맡겨주시죠.”
“최대한 살아 임무 완수하겠습니다.”
나쁘지 않네.
적어도 적들의 수에 전의를 상실한다던지 하는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재중이 형도 만족스러운지 웃음을 보이며 내게 말했다.
“쫄병들은 용기사단들에게 맡기고. 우린 저 녀석을 어떻게 할지 고민해보자고.”
고대 용기사들을 쫄병으로 언급했지만.
사실 저 고대 용기사 하나하나가 밖에 나가면 다 괴물급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녀석들이 몰려오는 걸 버티는 것 자체가 엄청난 미션이라는 뜻이고.
챠밍이 용기사단의 전력비를 고려했는지 재중이 형에게 말했다.
“오래 버틸 수 없을 거예요. 적어도 30분 안에는 싸워서 이겨야 해요.”
“생각보다 빡빡한데?”
“그 이상되면 후퇴해야 해요. 아님 영영 5층으로 못 내려와요.”
“그렇긴 하지.”
지금 우리가 데려온 용기사들이 죄다 언데드가 되어버리면.
다음에는 이보다 더 많은 용기사들을 데리고 내려와야 하는데.
과연 타란 제국 황제가 그걸 용인해줄까?
설사 된다고 하더라도 쉽지 않은 결정이 될 것이다.
거기다 장로회도 걸리고.
재중이 형이 바로 화련에게 말했다.
“그쪽 길드는 용기사단들 펑크나는 곳을 메워줘. 그 전에 직접 나서지는 말고.”
“알았어. 우리도 여기서 죽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한 번 죽으면 성마대전에서 아웃이라 화련도 몸을 사리는 듯 했다.
딱히 임무에 불만도 가지지 않았고.
바로 재중이 형이 카샤스 대공을 보면서 말했다.
“직접 싸워주셔야 하는데 가능합니까?”
재중이 형의 제안에 카샤스 대공이 자신의 대검을 꺼내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전사 넌 카샤스 대공의 보조 탱으로 나가고.”
“알겠습니다.”
혹시라도 카샤스 대공이 전투 불능이 되면 뒤를 막는 역할일 것이다.
그럴 일은 없긴 하겠지만.
만약의 일도 대비를 해야 하니까.
마왕 헤르게니아에게도 시선을 돌려서 재중이 형이 임무를 전달했다.
“저 괴물이 멋대로 멀리 날뛰지 못하도록 눌러주실 수 있습니까?”
“그것만 하면 돼?”
그녀에게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은 미션인지 안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네. 카샤스 대공이 정면에서 붙을 수 있게만 도와주면 됩니다. 굳이 직접 싸울 필요는 없습니다.”
아마 재중이 형은 이곳에서 마왕 헤르게니아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 자체를 우려하는 듯했다.
그러니 딱 역할을 한정해놓고 싸우라는 거겠지.
그리고 확실히 언급해 주었다.
“만약 문제가 생겨도 본체는 안 됩니다.”
“나도 알아.”
우리만 있다면 몰라도.
아직은 정체를 드러내면 안 되지.
그럼 오히려 반대로 우리가 적이 되어버릴 수도 있었다.
용기사단장들도 한 명씩 불러서 설명을 하더니 곧 마지막으로 내게 와서 말했다.
“너와 난 녀석을 직접 친다. 할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