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3화 용 수호자 (5)
장로회가 이 시점에 접근한다?
그것도 타란 제국의 중요 인사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이런 장소에서?
이건 대놓고 나와 접촉하겠다는 걸 보여 주겠다는 건데…….
도대체 이 녀석들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네.
고개를 돌려 타란 제국 황제 쪽을 바라보니 의외로 이쪽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가신들을 전부 이끌고 영지성 내로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흐음.
황제에게 장로회는 신경 쓸 정도도 안 된다는 거려나?
만약 장로회가 내게 접촉하는 게 신경 쓰였다면 어떤 제스처를 취했을 텐데.
지금은 그런 반응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건 알면서도 묵인하겠다는 말이지.
다시 장로회에서 나온 노장 기사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말했다.
“황제가 겁나지 않는가 봅니다.”
황제에게 까일 걸 알면서도 굳이 이래야 했는가를 물어보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노장 기사 역시 상관없다는 듯이 답했다.
“장로회는 언제나 공정한 용혈 앞에 설 뿐이지요.”
음.
아이샤 황녀에게 들은 것과는 많이 다른데?
그때 듣기로는 이 녀석들이 카샤스 대공에게 붙을 거라고 했었다.
정확하게는 카샤스 대공을 부추기는 쪽이지만.
“공정하다라……. 그럼 지금의 제국 황제는 공정하지 못하다는 겁니까?”
대놓고 타란 제국 황제를 까는 멘트를 날리자 노장 기사의 표정이 살짝 경직되었다가 이내 표정을 풀고는 웃는 얼굴로 답했다.
“황제께서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뭐 그렇죠.”
겉으로 보기만 말이지.
그때 살짝 짚이는 점이 있어서 노장 기사에게 물어 보았다.
“방금 황제가 선심 쓰듯 쉽게 내어준 용기사단…… 장로회 소속이겠죠?”
순간 웃던 표정의 노장 기사의 표정이 다시 한 번 경직되어 버렸다.
이거 참.
역시나였나.
갑자기 장로회가 접근한 것도 그렇고.
원래 이렇게 접근할 예정이었다면 타란 제국 황제 몰래 접근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그럼 굳이 타란 제국 황제의 이목을 끌지 않더라도 여러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테니까.
이를 테면 카샤스 대공에 대한 이야기라던지.
그런데 지금은 그것과는 꽤 거리가 먼 접근 방식이었다.
이건 아마도…….
그때 재중이 형이 옆으로 와서는 노장 기사를 보고는 말을 꺼냈다.
“제국 황제에 대한 불만을 이렇게 시위하는 겁니까?”
“흠…….”
재중이 형의 말에 노장 기사가 딱히 아니라는 뜻을 표하진 않았다.
“죽으라고 등 떠미는 용기사단이 마침 장로회 소속이라……. 황제에게는 어지간히 장로회가 우습게 보이는가 봅니다.”
“그건……!”
“그것도 아니라면…… 죽으라 등 떠밀려 가는 용기사단을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큭.”
재중이 형이 날카로운 미소를 지으면서 노장 기사에게 경고했다.
“장로회의 문제를 우리와 엮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재중이 형의 경고에 노장 기사가 인상을 쓰면서도 할 말이 없어졌는지 잠시 침묵을 지켰다.
<불멸> 대놓고 보란 듯이 우리에게 접근한 건 제국 황제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였겠지.
<주호> 황제가 계속 이런 식으로 나오면 장로회가 우리와 손을 잡을 수도 있다 뭐 이런 건가요?
<불멸> 겸사겸사? 자기들 부하들도 좀 챙겨야겠고.
재중이 형이 노장 기사에게 다시 한 번 물었다.
“방금은 본인의 단독 행동입니까? 아님 장로회 전체의 뜻입니까?”
이 답변에 따라 앞으로 장로회와의 관계가 확실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단순히 용기사단을 부탁하기 위한 청탁 정도라면 개인의 일탈이겠지만.
반대로 장로회가 정식으로 움직인 거라면…….
우리도 그에 맞는 대응을 해야했다.
그때 내 옆으로 카샤스 대공이 끼어들었다.
그리고는 장로회의 노장 기사에게 타이르듯 말했다.
“이런다고 변하는 건 없습니다. 타누스 후작.”
“흠. 하지만…….”
“제 쪽에서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 이만 돌아가시죠.”
이 노장 기사가 후작이라고?
순간 잘못 들은 건가 싶었지만 확실히 후작 정도의 작위가 아니라면 카샤스 대공이 이렇게 대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타누스 후작이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후…… 잘 부탁드립니다. 카샤스 대공.”
완전히 그가 사라지고 난 뒤에야 카샤스 대공이 살짝 한숨을 쉬면서 내게 말했다.
“황제가 정말 여럿 피곤하게 만드는군.”
“장로회가 무슨 일로 접근한 거지?”
정확한 연유를 묻는 내 물음에 카샤스 대공이 용기사단 쪽을 가리키면서 말을 꺼냈다.
정확하게는 중앙에 있는 한 기사를 찍으면서.
“저 녀석이 타누스 후작의 직계다. 그것도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흐음. 자식이라 이건가.”
그리고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카샤스 대공에게 물어보았다.
“타란 제국 황제는 이걸 알고 있고?”
“아마 알고 했겠지.”
“장로회에 대한 경고라면…… 대놓고 자식을 볼모로 잡고 장로회를 휘두르려는 건가?”
“아니라고 할 순 없겠군.”
죽을지 살지 모르는 장소에 투입되는 용기사단.
그런데 그게 알고 봤던 장로회 소속이었다.
문제는 그중에서도 타누스 후작의 직계도 포함되어 있다는 말이었고.
“타누스 후작의 직계만 따로 빼내는 건?”
“불가능하지. 타란 제국에서 명령 이행 불복종에 용기사단 이탈은 중범죄다.”
뭐 여기만 그렇겠냐만은.
“어쨌든 자기 자식은 못 빼낸다는 뜻이잖아.”
“용기사단은 죽음 앞에 굴복하진…….”
“혹시 거기에 죽으라고 등 떠미는 것도 포함이냐?”
“……흠.”
내 말에 할 말이 없는지 카샤스 대공이 말을 아꼈다.
이 녀석이 아는지 모르는지 확신할 순 없지만.
처음 내 의도는 저 용기사단을 전부 소모해서 5층의 괴물의 힘을 최대한 깎을 생각이었거든.
카샤스 대공이 이걸 어렴풋이 눈치라도 채고 있었다면 지금의 반응이 이해가 된다.
장로회 소속의 용기사단이 카샤스 대공에게 직접적인 관계는 없어도 그래도 같은 타란 제국의 기사단이기도 하고.
“그래서 굳이 내게 부탁하러 온 거네.”
“그렇겠지. 아니면…….”
“아니면?”
“장로회의 장로가 당장 타란 제국 황제에게 가서 머리를 조아려야 하니까.”
“자식 좀 빼달라고?”
“딱히 아니라고 할 순 없겠군.”
그러니까.
카샤스 대공의 말을 종합하자면.
장로회 장로인 타누스 후작의 자식을 두고 힘겨루기를 했다는 말이었다.
알아서 찾아와서 머리를 숙이라고.
“그래서 타란 제국 황제가 보고도 모른 척 그냥 간 거였나?”
조금 있으면 알아서 찾아와 머리를 조아릴 걸 아니까.
굳이 내게 오는 걸 막지 않았을 터다.
“그런데 이건 타누스 후작의 직계만 따로 살려놓으면 되는 문제 아냐?”
내 물음에 카샤스 대공이 다시 한숨을 쉬면서 답했다.
“방금 황제가 찍은 기사단에는 그런 녀석들이 꽤 된다.”
“흠. 대놓고 빼는 건 안 된다 이거군.”
카샤스 대공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사단의 사기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다른 기사단에서 해체 요구가 빗발칠 거다.”
용기사단.
이건 에센시아 제국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거대한 권력이자 세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용기사단이 불미스러운 일로 해체되면 타격이 없다고 하긴 힘들다.
“그래서 황제에게 머리 숙이긴 싫으니 내게 왔다 이거군.”
“숙이는 순간. 꽤 많은 것을 내어줘야 하니.”
“어쩌면 황제에게 완전히 복속될 수도 있겠네.”
장로회는 일종의 중립 기관 같은 존재라고 들었었다.
제국 황제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당대에 그 힘이 약하든 강하든 말이지.
문제는 정작 내게 저 용기사단을 딱히 살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거다.
부탁하러 온 곳의 주소가 한참 잘못된 거지.
흐음.
이걸 어쩐다.
그때 재중이 형이 옆에서 말을 꺼냈다.
“장로회에 빚을 하나 지워두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그래요?”
“여차하면 써먹을 수 있는 패는 많을수록 좋잖아.”
“확실히 그런긴 한데…….”
재중이 형 말대로 장로회의 힘 정도면 절대 나쁘지 않은 패였다.
그것도 타란 제국 황제에게 반발심을 가지고 있는 장로회라면 말이지.
일단 겉으로는 장로회가 타란 제국 황제를 따르고 있다고 보여주고 있긴 해도.
그건 결국 표면적인 것일 뿐.
가장 강한 용혈을 숭배하는 장로회의 특성상 카샤스 대공 쪽에 더 무게가 실린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놓고 장로회가 카샤스 대공을 밀 수 있느냐 하면…….
이건 또 아니란 말이지.
그건 곧 반역이 될 테니.
그런데 만약 여기서 장로회에 빚을 하나 지워두게 되면?
“일단 고민 좀 해보죠.”
<주호> 타란 제국 황제의 세력을 깎는다는 목적과는 이미 많이 어긋났으니까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야 5층을 뚫는데 어느 쪽 기사단이 죽으나 딱히 상관없긴 한데.
결론적으로 이게 타란 제국 황제의 힘을 더 키워주는 상황이 된다면…….
장로회의 기사단이 여섯 개나 박살 나는 건.
그만큼 타란 제국 황제의 힘이 상대적으로 오른다는 뜻이다.
휴.
그러니까.
저 녀석들을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말이 된다.
이건 뭐 쓰지도 못하는 칼을 주고 소를 잡아오라는 격인데…….
짧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어떻게든 되겠죠.”
안되면 다 엎어버리면 되고.
* * * * *
“이거. 그리고 이거.”
영지의 한 룸에서 레오나 에센시아를 불러놓고 예전에 복사해 둔 아이템들 중 그녀의 성향에 맞을 만한 물건들을 여러 가지 던져 주었다.
“이게 다…….”
놀란 듯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며 뜨고 있는 그녀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르아 카르테에 먹이라고요. 조만간 한 탕 뛰어야 하거든요.”
역대급 영웅이 옆에 있는데 놀리는 건 예의가 아니지.
그리고 계속 굴려야 영웅이 크는 걸 고려해 보면…….
결코 나쁜 마음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
내 말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눈빛을 빛내면서 물었다.
“전력이 꽤 부족한가요?”
“음. 정확하게는 전력은 넘치는데 막 쓰진 못하죠.”
“그게…….”
“아무튼 그런 게 있어요. 그러니까 최대한 강해지는 게 우선이에요.”
단기간에 확 강해질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건.
내가 아는 한 우리 중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유일했다.
르아 카르테에 아이템만 냅다 들이부어지면 되니까.
그렇게 둘이서 꽤 걸작이 될 만한 아이템을 만들어 내고는 만족스러운 듯 마주 웃었다.
내 르아 카르테 역시도 꽤 괜찮은 녀석을 만들어 냈고.
“제 것과는 확실히 다르네요.”
“이쪽은 정령의 가호가 걸려 있거든요.”
“아…… 느껴져요. 강력한 정령의 기운이.”
분명히 정령족의 후예라고 했으니.
금속의 정령을 알아볼 수 있을 터.
“그럼 한 번 가보죠.”
* * * * *
준비를 다 끝내고는 장로회의 여섯 기사단을 이끌고 베르탈륨 광산 내로 들어섰다.
우리 팀.
그리고 레오나 에센시아와 에센시아 5기사단.
거기다 기어코 따라나선 카샤스 대공과 아이샤 황녀까지.
여기에 화련까지도 같이 왔다.
용기사단은 입구에서부터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베르탈륨 광산이…….”
“여기 도대체 얼마나 큰 거야?”
“이런 규모는 처음 봐.”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나름 대륙의 4대 광산 중에 한 곳이니.
그들이 그동안 봐왔던 곳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주변을 둘러보는 녀석들을 보고는 입가에 미소와 함께 말을 꺼냈다.
“감탄은 거기까지 하시고. 일단 다들 테스트 좀 해볼까요?”
내가 안 죽게 한다고 했지.
안 굴린다고 하진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