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화 용 수호자 (4)
타란 제국 황제가 결정을 하자 뒤는 일사천리였다.
실제로 하늘을 수놓고 있던 수많은 용들 중 다수가 화련의 영지 근처로 착륙해 용을 두고 기사단대로 진형을 형성했다.
정말 여섯 개 용기사단을 줄 생각인가.
예상 이상으로 타란 황제가 통 큰 결정을 하니 오히려 타란의 귀족들과 장로회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저들끼리 웅성거리면서 뭐라고 막 말은 하는데.
그렇다고 대놓고 타란 제국 황제에게 태클을 걸지는 못하는 듯했고.
타란 제국 황제가 물러나고 카샤스 대공이 다가오자 슬쩍 물어보았다.
“쟤들은 왜 저래?”
“아. 용기사단 자체가 장로회와 귀족들의 세력이 섞여 있어서.”
그 말에 다시 멀어지는 타란 제국 황제를 바라보았다.
“아직 황제의 세력은 건재하지.”
그러면서 카샤스 대공이 고개를 들어올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 역시 올려다 봤는데 확실히 카샤스 대공 말대로였다.
아직도 하늘에는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용기사단들이 배회하는 중이었다.
자신들의 세력을 증명이나 하듯이.
“많네.”
“많지. 그리고 말했든 지금 저 여섯 개의 용기사단은 황제 직속도 아니다.”
“아. 대충 이해했어.”
이건 에센시아 제국에서도 있었던 일이었다.
황제 직속 기사단이 있는 반면.
다른 귀족들의 세력도 있었고.
후에 줄을 갈아타는 귀족도 있을 테다.
“저걸 내어주고도 자기 세력은 온전히 유지했다는 거네.”
“시작부터 힘 뺄 녀석은 아니지.”
카샤스 대공도 딱히 아니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흐음. 자기 손은 안 대고 코 풀겠다는 건가?”
“꽤 비슷한 정답이군.”
카샤스 대공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지만 이것 역시 부담이 되는 건 마찬가지였다.
“네 쪽은 어때?”
“딱히.”
그런 타란 제국 황제도 카샤스 대공의 세력은 손대지 못한 듯해 보였고.
만약 이쪽을 손대려고 했다면 반발이 꽤 있었을 듯했다.
“공평하게 반반 내놓자는 말은 안 하네.”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그저 웃음만 지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황제는 강하다.”
이 녀석도 참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는데.
“원래는 네게 절대 나서지 말라고 할 생각이었거든.”
“그런가?”
카샤스 대공이 갑자기 관심을 가지는 모습이었다.
“어, 안에 괴물이 있어.”
“괴물이라면?”
그리고는 살짝 소리를 낮춰서 카샤스 대공에서 전달했다.
“음. 그냥 마왕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은데?”
내가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듣기로 분명히 그 정도 급은 된다고 여겼다.
적당히 강했으면 굳이 마왕 헤르게니아가 거기서 발을 돌릴 필요는 없었을 테니까.
“예상 이상으로 심각하군.”
그러더니 카샤스 대공이 사열 중인 여섯 개의 용기사단 쪽을 바라보더니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잘못하다가는 다 죽겠는데.”
“마왕하고 붙어 본 적이 있어?”
“한 번. 성마대전의 경계에 갔다가 잠시 마주친 적이 있었다.”
“그래?”
이 시점에서 카샤스 대공이 마왕과 직접 마주칠 일이 있었던가?
아니다.
생각해 보면 분명 전용기인 실피드를 타고 정찰 임무를 했었다고 하니까.
적진 깊숙한 곳을 발견했을 수도 있겠는데…….
실피드 자체가 탈것 중에서는 최상급이기도 하고.
“정말 네가 말한 대로 그 괴물이 마왕과 비슷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부족하겠군.”
한 번 봐서 그런지 카샤스 대공은 전력 비교가 확실했다.
그냥 네임드 하나 상대하는데 에센시아 기사단 넷이 갈려나갈 뻔 했으니까.
기사단 좀 더 붙은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거다.
“황제는 모르고 있을 테고.”
“뭐 그렇지.”
“네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닌가?”
“아. 황제가 결과를 내어 오라고 한 거 말이야?”
“실패하면 문제 삼을 지도 모른다.”
그런 카샤스 대공의 말에 그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딱히. 황제는 날 어쩌진 못해. 원하는 게 있으니까.”
“그런가. 혹시라도 문제가 된다면…….”
“아, 걱정 마. 설마 타국의 왕자를 죽이기라도 하겠어.”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여차하면 내가 참전하도록 하지.”
“그거 눈물 나게 고마운데.”
사실 카샤스 대공까지 끼어들면 이쪽엔 마왕 헤르게니아가 있으니 어떻게든 잡긴 할 터였다.
이쪽도 괴물이 둘이 있는 건 마찬가지라.
그런데 딱히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이번 일의 목적은 그게 아니니.
“여기서는 적당히 소모하고 넘어가자고.”
소모라는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다시 굳어져 버렸다.
“혹시 일부러…….”
“알면 적당히 연극을 도와주기나 해. 괜히 나서서 초 치지 말고.”
연극이라고 언급하자 카샤스 대공의 표정이 좀 풀린 것 같아 보였다.
그리고는 날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너…… 무서운 놈이었군.”
“새삼스럽게.”
이 연극이 뜻하는 게 뭔지 카샤스 대공이 제일 잘 알지 않으려나.
황제와의 세력 비를 좀 맞춰주겠다는데 카샤스 대공이 나서서 설치면 그것도 웃기는 일이지.
“타란 제국이 쪼그라드는 건 내게 크게 의미가 없거든. 어차피 내 나라도 아니고.”
뭐 카샤스 대공이 생각하기에 이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면 날 말리겠지만…….
슬쩍 카샤스 대공을 바라보자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곧 카샤스 대공은 다시 자신들의 지지 세력에 돌아갔다.
아마 베르탈륨 광산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설명할 게 많을 거다.
이번엔 레오나 에센시아가 시야에 들어왔다.
“하던 건 잘 됐어요?”
“아, 덕분에 고마워요.”
그러면서 슬쩍 자신의 허리에 있는 르아 카르테의 검신을 내게 보여주었다.
확실히 쓸 수 있게 만들어냈네.
옆에서 드워프 대장로 바그날이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다.
“허허. 시간을 단축한다고 꽤 애를 먹었지. 황녀가 얼마나 빨리 해내라고 닦달하던지. 내 허리가 부러질 뻔했지 뭔가.”
바그날의 놀리는 말에 레오나 에센시아의 볼일 살짝 빨갛게 물들었다.
흐음.
에센시아 제국에서는 표정이 없어 보이더니 꽤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하긴 여기서는 자신을 억제할만한 문제도 없을 테고.
그리고 닦달한다고 빨리 해낸 바그날도 대단하긴 했다.
드워프 왕이나 해낼 만한 일인데 말이지.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거려나.
“이제 제대로 쓸 수 있는 건가요?”
“그럼. 내 최선을 다 했다네.”
레오나 에센시아를 보면서 슬쩍 손을 내밀자 그녀가 아무렇지도 않게 르아 카르테를 내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확인을 해보고는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금속의 정령 가호 없이는 좀 부족한 면이 있네.
내가 가지고 있는 옵션 수보다는 두 개가 줄어든 상태였다.
원래의 르아 카르테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내가 금속의 정령을 내어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뭐 이 정도만 해도 레오나 에센시아는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을 터다.
바로 레오나 에센시아를 보면서 말했다.
“이젠 뭘 해야 하는지 알겠죠?”
내 물음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검들을 모으라는 말이죠?”
“네. 정확히는 성장에 도움이 될만한 강력한 무구들을 모으는 편이 좋을 거예요. 그게 검이 되었든 창이 되었든 상관없이.”
내 조언에 다시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건 르아 카르테가 어떤 무기든 흡수할 수 있다는 걸 대놓고 알려준 셈이라.
“아. 그렇다고 사라지면 곤란한 무기들은 안 됩니다. 가령 예를 들면 용신검 같은 것들요.”
뭐 필요하다면 그것들도 흡수해 버리면 되겠지만.
좀 아깝긴 하지.
굳이 내가 말 안 해도 이건 레오나 에센시아가 알아서 잘 할 것이다.
그 정도 판단력은 있을 테니.
“아. 몇 개 선물 좀 줄까요.”
어떻게 보면 내 후계자쯤 되는데 그냥 넘어가긴 그랬다.
“선물요?”
“아마 괜찮을 만한 물건들이 있거든요. 여기서 당장 보여주긴 좀 그렇고요. 이따 영지의 방으로 찾아오세요.”
아직은 깡통에 가까운 르아 카르테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을 터.
반대로 난 인벤에 여러 가지 아이템들을 상당히 복사해둔 상태였다.
그녀가 바로 성장하는데 큰 도움이 될 터.
“아. 이따가 찾아뵐게요.”
그렇게 레오나 에센시아와의 이야기도 끝내자 이번엔 5기사단장인 베인 테스가 내게 다가왔다.
“넌 레오나 에센시아의 호위를 해야 하는 것 아냐?”
그러자 슬쩍 웃음을 보이면서 베인 테스가 레오나 에센시아 쪽을 가리켰다.
“몇 명을 붙여두었습니다. 왕자님. 그리고 이런 곳에서 문제 일으킬만한 녀석들은 없겠죠.”
“흠. 그렇긴 하겠네.”
아무리 간 큰 녀석이라고 해도 이런 자리에서 타국의 황녀를 건드릴 순 없었다.
그리고 명목상 호위일 뿐.
오히려 레오나 에센시아가 호위들보다 더 강했다.
그들을 부른 이유는 다름 아닌.
“네가 알아봐 줘야 할 게 있어.”
이건 에센시아 5기사단장으로서가 아닌.
마계 군단 특수대 침투조가 알아야 하는 내용이었다.
“흠. 말씀하시죠.”
“베르탈륨 광산에 왜 용마족이 있는지 확인해 봐. 그리고 용마족에 대한 모든 정보가 필요해.”
용마족이라는 말을 언급하자 바로 베인 테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방금 용마족이라 하셨습니까?”
“어. 그것도 최상급이란다. 너네 계급대로 치면 거의 마왕급이지?”
“흠…… 딱히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그렇다고 부정하지는 않는 걸 보면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이 어느 정도 맞는 모양이었다.
마왕만큼이나 강할 거라고.
“마계에서도 용마족이 모습을 감춘지 꽤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용마족이라……. 혹시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습니까?”
“나도 몰라. 어둠 속에서 대충 보고 온 거라.”
그러면서 마왕 헤르게니아 쪽을 쳐다보자 베인 테스가 알겠다는 듯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현 마왕이 그렇다는데 이것보다 확실한 건 없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렇다고 위에 보고는 하지 말고. 괜히 귀찮은 일 서로 만들지 말자고.”
내 말에 베인 테스가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이곳 타란 제국에서는 연락할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다.
녀석의 말과 다르게 연락할 수단이 있긴 했다.
난 이미 원 역사를 알고 있으니까.
이곳 타란 제국 역시도 마족의 입김이 들어간 세력이 있거든.
그보다는 용마족에 대해서 알고 싶은 게 있으니 그냥 말해준 것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베르탈륨 광산으로 내려가면 보게 될 테니.
“좋아. 그 거짓말은 눈감고 믿어주지.”
내 말에 베인 테스가 뜨끔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어, 그러니까 장난 칠 생각하지 말고. 시키는 일이나 잘 해. 문제 생기면 네 녀석 목을 제일 먼저 날려버릴 거야.”
“하하. 알겠습니다.”
일단 아쉬워서 써먹기는 하는데 영 미덥지 못하단 말이야.
그렇게 베인 테스마저 물러나자 곧장 사열해 있는 용기사단을 향해 다가갔다.
이미 타란 제국 황제의 명령을 들어서 그런지 그들 역시 긴장을 하고 있었고.
분명 전달받았을 것이다.
나와 타란 제국 황제 사이에서 했던 말들을.
“그럼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내 대신 몸빵해줄 녀석들인데 이 정도 인사는 해줘야…….
그렇게 용기사단들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데 갑자기 한 명의 노장 기사가 내 앞길을 막아섰다.
응?
여기서 내게 볼일이 있는 녀석은 이제 없을 텐데?
고개를 돌려 빤히 바라보자 노장 기사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주호 왕자님이라고 하셨습니까. 타란 제국의 장로회에서 나왔습니다.”
장로회?
지금 장로회에서 딱히 내게 접근할 이유가 있나?
뭐 언제 한 번 접근할 거라 생각하긴 했는데.
지금이라…….
타이밍 참 애매하네.
잠시 멈춰선 내게 곧 장로회의 노장 기사가 의사를 전달해왔다.
“잠시 시간 좀 내주시죠. 주호 왕자님.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