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1화 용 수호자 (3)
정보가 새고 있었다고?
고개를 돌려 카샤스 대공 쪽을 바라보니 그 역시 나를 발견했는지 잠시 시선을 맞췄다가 이내 다른 귀족들에 둘러싸였다.
카샤스 대공이 이런 정보를 아무렇게나 흘리진 않았을 터.
결국 최측근 중에 한 명이라는 건데.
흐음…….
카샤스 대공이 직접 정보를 흘릴 이유는 없을 테고.
그렇다고 아이샤 황녀가 타란 제국 황제를 도울 이유도 없었다.
레오나 에센시아는 애초에 그런 대상에서 제외였다.
이곳에서 아는 이도 없을뿐더러.
있다고 한들 굳이 할 이유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중간에 내가 모르는 누군가가 있는 거려나?
“꽤 일이 커져 버렸네요.”
“그러게.”
화련 역시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는 듯 황당하다는 눈빛을 보냈다.
“카샤스 대공이 나서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따라올 줄 누가 알았겠어.”
그러면서 화련이 타란 제국 황제 쪽의 세력을 쳐다보았다.
여기 와서 처음 보는 깃발을 가진 각 귀족들의 숫자만 해도 이미 백 단위가 넘어간다.
휘하에 기사단과 병사들 역시도 엄청난 수를 자랑하는 중이고.
“황제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나섰나 보네요.”
“역시 그런 것 같지?”
“네. 귀족이란 놈들은 이득 없이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뭐 황제가 명령해서 모였다면 할 말이 없지만.”
타란 제국은 강력한 용혈을 가진 황제의 명령이 곧 법이나 마찬가지다.
저들도 좋든 싫든 황제가 나선다면 무조건 따라 나서야겠지.
슬쩍 시선을 돌려 황제 쪽의 진형을 다시 살펴보았다.
“용기사단…… 예상보다 훨씬 많네요.”
내 말에 화련이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곧 고개를 들어 올려 저 하늘를 빽빽하게 수놓으며 날아다니는 용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우리 예측보다 몇 배는 많은 것 같아. 역시 제국은 제국이라고 해야 할까?”
그때 옆에 있던 전사 형이 대충 알겠다는 듯 말을 꺼냈다.
“에센시아 제국하고 다르게 이쪽은 성마대전에 제대로 참전하지 않은 상태니까. 전력이 온전한 편이겠지.”
“흠. 확실히 그렇겠네요.”
전사 형의 말을 듣고 보니 지금의 이 엄청난 군세가 이해가 되었다.
상당히 많은 영웅들과 병력을 성마대전에 보낸 에센시아 제국과 달리 타란 제국은 카샤스 대공과 일부 병력만을 보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금 그 카샤스 대공은 아예 타란 제국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그러니까 지금 타란 제국의 핵심 병력은 이곳에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타란 제국의 병력들을 쭉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내게 말했다.
“이 정도면 우리가 없어도 고대 마룡을 잡겠는데?”
“그래요?”
그럼 우리가 별로 의미가 없어지는데.
괜찮은 건가 싶은 생각에 다시 재중이 형을 보자 재중이 형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니. 아마 잡을 수 있긴 해도 엄청나게 피해를 볼 거야. 이곳의 있는 병력들이 전멸할 수도 있겠지.
“그럼 안 잡으니만 못하겠네요.”
“정신 똑바로 박힌 놈이라면 보통은 안 하는 선택이겠지?”
그런 말을 막 웃으면서 하니 왠지 타란 제국 황제를 놀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재중이 형이 타란 제국 황제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을 이었다.
묘한 웃음을 지으며.
“그런데 말이야, 저놈은 할 것 같거든.”
“아마도 그렇겠죠.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전 병력을 몰고 오진 않았을 테니까요.”
나 역시 재중이 형의 말에 동의했다.
단순히 간만 보고 끝낼 생각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병력을 모아오지 않았을 터.
“꽤 급하긴 한가 보네. 우리 황제님 말이야.”
재중이 형이 이번엔 카샤스 대공 쪽을 쳐다보는 걸 봐서는 카샤스 대공이 그 원인이라는 뜻일 것이다.
그때 전사 형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에게 물어보았다.
“설마 저들끼리 여기서 치고받진 않겠죠?”
그 질문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대답해 주었다.
“안 될 것도 없지.”
“그럼 여긴 쑥대밭이 되겠군요.”
그러면서 전사 형이 화련을 흘깃 쳐다보자 화련의 인상이 확 굳어졌다.
짜증 가득 섞인 목소리와 함께.
“아. 왜 내 땅에서 그러는 건데?”
그간 우리가 본 영지의 모습만 봐도.
여기 들인 돈이 결코 적지 않을 터다.
베르탈륨 광산이 제대로 돌아갔을 때를 대비해 투자를 엄청 해놓은 듯하니.
반대로 말하면 이곳 영지가 박살나면 화련 역시 큰 타격을 입는다는 뜻이었다.
들인 돈을 회수하지도 못할 테고.
그런 화련의 투정 아닌 투정에 두 세력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화련이 둘 다 끌고 왔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원하는 그림은 이게 아니라고.”
“저도 뭐…… 딱히 좋아할 만한 그림은 아니네요.”
무엇보다 타란 제국 황제가 직접 나섰다는 건 꽤 부담이 된다.
용기사 몇 상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
“휴. 일단 카샤스 대공을 믿어 봐야죠.”
지금 당장 타란 제국 황제에 맞설 수 있는.
믿을 만한 녀석은 카샤스 대공뿐이었다.
잠시 자리를 물린 카샤스 대공이 곧 내 쪽으로 걸어왔다.
곧 화련에게 시선을 돌린 카샤스 대공이 다소 미안한 눈치로 말을 건넸다.
“화련 백작에게는 불편한 일을 만들었군.”
“아닙니다. 감히 황제께서 움직이는데 어찌 제가…….”
방금까지의 불평은 쏙 집어넣고 바로 귀족의 태도를 보여주는 화련을 보고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이 나왔다.
할 때는 한다는 거려나…….
“그래도 함부로 움직이진 못할 테니 너무 걱정하진 말도록.”
그 말에 나와 화련의 시선이 중간에 마주쳤다.
<화련> 역시 카샤스 대공도 신경 쓰고 있었나 본데?
<주호> 네. 그런가 보네요.
지금 타란 제국 황제의 움직임이 단순히 구경만 하러 온 건 아니라는 것.
이걸 누구보다 카샤스 대공이 제일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겉으로 표를 내진 않더라도 말이지.
그때 놀랍게도 타란 제국 황제가 우리 쪽으로 먼저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찾아가도 모자랄 판에 직접 온다고?
슬쩍 백작위를 가진 화련을 보는 것 같다가 이내 흥미를 잃었는지 바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호 왕자. 다시 보는군.”
“네, 황제 폐하. 오랜만입니다.”
역시 황제를 마주하는 건 불편했다.
그것도 이런 장소에서 말이지.
“그래. 말을 들었다. 그대가 베르탈륨 광산을 발견했다고?”
응?
이건 또 무슨 개소리지?
갑자기 화련을 재껴 놓고 날 지목한다고?
화련을 슬쩍 쳐다보자 그녀도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깜빡여 보였다.
이거…….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야?
내가 발견했다고 하면 뭐가 변하는 거지?
그때 바로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들어왔다.
<불멸> 호오. 이것 봐라? 아주 후려쳐먹을 생각인가 본데?
<주호> 형. 그게 무슨 말이죠?
<불멸> 저거 그거잖아. 국외인인 네가 베르탈륨 광산을 발견해 봐야 어차피 소유권을 인정받진 못할 테니까. 적당히 보상 좀 받고 떨어지라는 뜻이잖아.
<주호> 흠. 그거 아주 신박한 짓거리네요.
<불멸> 대놓고 베르탈륨 광산의 권리를 가져가겠다는 거지. 아무리 네가 타국의 왕자라 해도 말이야.
황제 이 새끼 봐라?
겨우 말 한마디로 베르탈륨 광산을 홀라당 해먹겠다는 뜻인가 본데.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우리도 미리 준비해 놓은 패가 있었다.
살짝 고개를 돌려 카샤스 대공 쪽을 바라보자.
카샤스 대공 역시도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선 타란 제국 황제와의 관계에서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베르탈륨 광산을 통째로 넘겨주는 것보다야 백배 나은 선택이다.
어디 남의 떡을 홀라당 넘기라고 하고 있어?
“어떻게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 베르탈륨 광산은 카샤스 대공께서 먼저 발견하셨습니다.”
내 입에서 그 말이 나오자마자 타란 제국 황제가 시선이 카샤스 대공에게로 가서 닿았다.
방금 말이 정말이냐는 듯.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나섰다.
“제가 먼저 발견하고 주호 왕자에게 탐사를 의뢰했습니다.”
“……그런가.”
황제 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 말을 한 건지는 알겠는데.
이미 카샤스 대공과는 말을 다 맞춰 둔 상태였다.
화련도 돌아가는 상황을 대충 눈치챘는지 곧 날카로운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화련> 방금 황제 저게 내 광산을 날로 먹으려고 한 거지?
<주호> 아주 정확하게 보셨네요.
누가 발견했으냐에 따라서 지분 구도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만약 나나 화련이 발견했다고 말하면.
그 순간 황제가 베르탈륨 광산을 날로 먹어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카샤스 대공이 중간에 끼어들면?
아무리 타란 제국의 황제라고 해도 마음껏 숟가락을 올리긴 힘들게 된다.
<화련> 카샤스 대공을 방패 삼은 건 역시 괜찮은 선택이었어.
<주호> 네. 지금 시점에서는 최고의 선택이죠.
화련도 만족스러운지 미소를 지었다.
카샤스 대공은 타란 제국 황제와 달리 화련에게는 약속된 지분을 부여할 테니까.
나 역시 마찬가지고.
“흠. 그런가.”
카사스 대공을 빤히 쳐다보던 황제가 곧 김이 샜다는 듯 빠르게 상황을 정리해 버렸다.
방금 한 방 먹었다는 걸 본인이 제일 잘 알 테니.
이 자리에서 더 끌어봐야 자신의 얼굴에만 금이 간다.
곧 시선을 돌린 타란 제국 황제가 내게 물었다
“그래서 탐사는 어떻게 되었지?”
“성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만 중간에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
“꽤 강력한 존재가 있더군요.”
“그대가 어찌하지 못하는 수준인가?”
“가능하긴 합니다만…… 꽤 오래 걸릴 겁니다.”
“얼마나?”
“빨라도 두 달 정도……?”
두 달이라는 내 대답에 타란 제국 황제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마 이런 긴 공략 기간에 대해서는 중간에 보고를 받지 못했을 테니까.
사실 기간은 전혀 문제가 아니지만.
그만큼 오래 걸릴 공략이라는 걸 확실히 인식시켜 줄 필요가 있었다.
내가 보기엔 저 황제 녀석이 그렇게 긴 시간을 참아줄 만큼 인내심이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두 달이라…… 너무 길군.”
실망한 것 같은 타란 제국 황제의 말에 나 역시 할 말은 있었다.
“고대 마룡에 닿기 위한 관문입니다. 결코 쉬울 수가 없죠. 현재의 자원을 가지고는.”
쉽지 않다.
다른 말로 하면.
네가 제대로 지원을 해주지 않았는데 이게 빨리 될 수 있냐는 말을 빙빙 돌려서 한 말이었다.
그리고 타란 제국 황제는 아주 멍청이는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눈치가 굉장히 빠른 편에 속했다.
곧 내 말뜻을 알아차린 타란 제국 황제가 흔쾌히 팔을 벌리며 말했다.
“얼마나 필요하지?”
이건 공략에 필요한 병력을 내게 가져다 쓰라고 허락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순간 나 역시 주판을 튕겼다.
실패는 안 돼.
타란 제국 황제는 두 번씩이나 기회를 줄 만큼 너그러운 편은 절대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최대한 빡빡하게 병력을 운영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너무 많은 숫자는 허락해 줄 리가 없으니까.
“용기사단 네 개 부대 정도면 어떻게든 될 것 같습니다만…….”
순간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정적이 흘렀다.
멀리서 지켜보던 귀족들 역시 말이지.
특히 장로원으로 보이는 녀석들까지 놀란 눈치를 하고 있었다.
황제에게 용기사단을 넷이나 요구해서 놀란 건지…….
아님 그만큼이나 필요한 공략이라는 것에서 놀란 건지는 잘 모르겠다만.
사실 용기사단 넷을 가지고도 공략이 될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냥 이 정도면 어렵겠다 싶은 느낌이라.
그때 타란 제국 황제가 내게 다시 물었다.
“넷이면 가능한가?”
“음. 아마 반수 이상 죽거나 불구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전에 헤르마늄 광산에서의 경험에 따르면.
이 숫자면 분명 반 이상 죽는다.
그때도 그랬으니까.
지금은 더하면 더했지.
결코 모자라진 않을 터.
그러자 타란 제국 황제가 마치 선심 쓰듯이 허락했다.
“용기사단 여섯을 주지. 대신 반드시 결과를 내 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