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0화 용 수호자 (2)
원래는 이렇게 일찍 베르탈륨 광산을 공개할 생각은 없었는데.
어차피 타란 제국 용기사들이 이 근처를 배회하다 보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이곳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화련이 내 말에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이곳으로 직접 데려오라는 거지?”
“뭐 그런 셈이죠.”
그러자 화련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녀석들이 먼저 발견하는 것과 내가 알려주는 건 차이가 클 거야.”
“네. 아무래도 그쪽이 화련에게 유리할 거예요.”
베르탈륨 광산이 자신의 영지에 있다는 걸 알면서 타란 제국황제에게 보고하지 않고 쓰고 있었다는 사실과.
발견하고 먼저 타란 제국 황제에게 보고하는 일 사이에는 아주 큰 간격이 존재한다.
전자는 타란 제국 황제를 엿 먹이는 일이고.
후자는 제국의 귀족으로 할 일을 다하는 셈이라.
어차피 곧 들킬 거라면.
그냥 화련 쪽에서 까버리는 편이 화련에게는 훨씬 이득이 될 것이다.
나중의 분쟁에 대해서 생길 문제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 테고.
“일단 알았어. 좋은 시절은 다 갔네.”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는 화련에게 또 다른 말을 전달했다.
“카샤스 대공하고도 바로 접촉하세요. 조금만 늦어도 꽤 곤란한 일이 생길 겁니다. 아니. 지금 같으면 카샤스 대공을 먼저 접촉하는 편이 낫겠네요.”
그러자 화련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카샤스 대공이 내 방패막이 되어줄 거라는 거.”
예전에 한 번 이야기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화련 역시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곳 베르탈륨 광산의 소유권을 가지고 타란 제국 황제가 덤벼들면 지금의 화련으로는 그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당장 영지를 회수하니 어쩌니 이런 식으로 나와 버리면 일개 개인의 귀족 작위 수준으로는 답도 안 나온다.
만약 그게 공작이나 대공쯤 되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화련은 아직 그 단계까지는 올라가지 못했으니까.
반대로 카샤스 대공이 중간에 끼면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진다.
“줄타기도 잘 하시고요.”
“그래. 아직 타란 제국 황제하고 척질 생각은 없으니까.”
카샤스 대공이 대놓고 화련의 편을 들면 화련이 중간에 끼어 꽤 난감할 수도 있었다.
이건 화련에게 맡겨야 하겠지.
알아서 잘 할 거라 생각한다.
“좀 있다가 봐. 당장 움직여야 하면 바쁘겠어.”
“네. 아. 그리고 사냥터에 길드원들 다 철수시켜야 할 겁니다.”
“휴. 내 사냥터를 내 마음대로 쓰지도 못하네.”
“억울하시면 타란 제국을 통째로 드시던가요.”
내 농담에 화련이 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정말 그럴까?”
“농담이었다는 거 알죠?”
사실 화련이라면 정말 돈으로 사버릴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농담이 아닌 것 같아진다.
“시덥잖은 소린 됐고. 너도 내 영지에 가 있어. 괜히 여기서 얼쩡대다가 눈에 띄면 곤란하니까.”
“그러죠.”
그렇게 화련은 길드원들을 이끌고 베르탈륨 광산에서 빠져나갔고 우리 팀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시간차를 두고 광산을 빠져나왔다.
베르탈륨 광산에서 다소 떨어진 곳까지 무사히 나오자 챠밍이 내게 물었다.
“잘 됐어요?”
“응. 이젠 화련이 어떻게 하는지 지켜봐야지. 그리고 우린 이제 화련의 영지로 갈 거야.”
그러면서 저 멀리 날아다니는 타란 제국의 용들을 손가락을 가리켰다.
“여기서 저 녀석들하고 부딪히면 곤란하니까.”
내 말에 우리 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마왕 헤르게니아는 좀 다른 말을 했지만.
“그냥 다 바닥에 떨어뜨려줘?”
“하하. 그러면 곤란해요.”
“알고 있어.”
음.
농담이었던 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더 곤란하지.
“그럼 가죠.”
* * * * *
한참을 달리다 나르샤 누나가 먼저 넓은 시야로 화련의 영지를 발견하더니 정말 놀랍다는 듯 말했다.
“걔는 대체 저기에 돈을 얼마나 처바른 거야?”
“왜요?”
“좀 있으면 너도 보일 거야.”
그러더니 내게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화련이 영지를 얻은 지 얼마나 됐다고?”
“음. 얼마 안 됐죠? 우리가 여기 성마대전 시대에 떨어지고 한 며칠 차이 안 나니까요. 작위를 얻고 어쩌고 하면 대략 일주일 정도?”
나르샤 누나가 주변을 탐색하듯 시선을 돌리더니 이내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꺼냈다.
“주변엔 아무것도 없어. 이건 원래는 발전된 영지가 아니라는 말이거든.”
“그래요?”
그렇게 조금 더 달려다가 우리 역시 화련의 영지가 눈에 들어왔다.
곧 이쁜소녀가 감탄을 터트렸다.
“와! 화려하다.”
막내별 역시도 마찬가지.
“번쩍번쩍해요.”
화려하고 번쩍하다라…….
딱 그 말이 맞는 듯했다.
이게 과연 일개 작위를 가진 귀족이 맞는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재중이 형도 피식 웃더니 말했다.
“화련 얘는 베르탈륨 광산을 자기가 가지고 있다고 광고할 것도 아니고.”
“그러게요.”
아마도 원래 낙후되었던 광산 지대의 영지를 자신의 입맛에 돈을 들이부어서 저렇게 만들어낸 듯했다.
전사 형은 어이가 없는 듯 말을 이었고.
“걔는 죽으면 날아갈 영지에 이렇게 정성을 쏟냐.”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고는 대답했다.
“돈이 넘치나 보죠.”
“음.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네.”
전사 형의 말이 아예 틀린 게 아닌 건.
성마대전 시대에서 죽어버리면 다시 참가할 수 없었다.
지금 여기 들인 돈도 공중으로 증발해 버린다고 봐야지.
흐음.
화련은 안 죽을 자신이 있는 건가?
그것도 아니면…….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화련의 영지에 도착하자 안내인이 미리 나와 있었다.
“주호 왕자님이십니까?”
“그렇다.”
“안으로 안내하겠습니다.”
당장 황실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수준급의 영주성에 들어가자 바로 정비를 할 수 있도록 화련이 신경을 써준 듯했다.
“영주님은?”
“아. 바쁘게 떠나셨습니다.”
“그런가?”
알겠다는 듯 손을 휘저으니 안내인이 사라졌고.
영지를 지나오다가 재중이 형이 뭔가 발견한 것들이 있는지 바로 날 보면서 말을 꺼냈다.
“화련 역시 보통이 아닌데?”
“네?”
모두의 시선이 재중이 형으로 향하자 설명을 해주었다.
“베르탈륨 광석으로 제조할 수 있는 시설물을 전부 증축해뒀어. 무기, 방어구 공방. 악세서리 제작소뿐만 아니라 비공정 시설까지 미리 다.”
“그래요?”
아까 전부터 재중이 형이 멀리 시설들을 흘깃거렸던 게 그걸 확인하기 위함이었던 모양이었다.
“어. 당장 베르탈륨 광석만 들어오면 전부 돌아갈 수 있게 시설부터 만들어놨네. 이거 시간과 돈이 엄청 소요되는 일인데…… 아마 영지를 얻고나서부터 바로 준비했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까지 발전된 영지는 나오지 않을 테니까.”
재중이 형의 설명에 다들 놀란 눈빛을 보였다.
여기가 단순히 겉으로만 화려한 영지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화련은 한참 전부터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예상한 거죠?”
“그렇지. 순서가 좀 뒤바뀌긴 했어도. 결국 베르탈륨을 가공하고 돌리려면 시설이 필요하니까.”
확실히. 돈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셈이 빠른 화련이라.
“용케 안 들키고 준비했네요.”
“어차피 베르탈륨이 없으면 안 돌아가니까.”
재중이 형 말대로 공방이고 뭐고 그냥 놀리기만 하면 의미가 없었다.
다른 영지의 재정에 딱히 문제 삼지도 않았을 테고.
자신들에게서 나가는 돈도 아니니.
챠밍이 옆에서 놀랍다는 듯이 말했다.
“그럼 베르탈륨 광산에서 광석들이 제대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화련은 돈 방석에 앉는 거지. 이 영지와 시설을 뺏기지 않는 한 말이야.”
그때 전사 형이 궁금한 것이 있는지 물었다.
“그럼 베르탈륨 광석을 캐서 바로 타란 제국 황실로 가져가는 건 어떻습니까?”
“일단 거리가 멀잖아. 수송비와 인건비에. 중간에 베르탈륨 광석 보호를 위해 인력도 써야 하고. 단가가 한참 뛸 거다.”
“흠. 가까운 이곳 영지에서 만다는 게 훨씬 싸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화련도 그걸 노렸을 테고.”
나 역시 저 말에는 동감했다.
당장 내 지분의 베르탈륨 광석이 나오면 멀리 있는 타란 제국까지 번거롭게 갈 것이 아니라 바로 앞에 있는 화련의 영지에서 재련하거나 거래를 할 테니까.
누가 봐도 화련의 영지는…….
재중이 형이 졌다는 듯 웃음 지었다.
“화련이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맡는다니까?”
“손해 보는 게임은 안 하죠.”
뭐 우리에 한정해서는 화련이 매번 손해를 보긴 하는데.
그걸 손해라고 하긴 좀 애매한 점도 있었다.
재중이 형의 말에 다들 화련의 영지를 다시 한 번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저 멀리서부터 대형 비공정 특유의 비행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 대도 아닌.
수십 대가 동시에.
그 주변에는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용들이 따라 붙었고.
시야에 들어오는 하늘을 까맣게 덮고 날아오는 저 용들의 접근에 질린 듯이 전사 형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장관이네.”
이건 이것대로 에센시아 제국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른 진풍경이랄까.
나르샤 누나도 감탄을 토했다.
“역시 용들의 나라네. 저렇게 많을 줄이야.”
아마 타란 제국에 존재하는 용이란 용은 다 끌고 온 듯 한데…….
화련이 대체 뭘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 된 거지?
단순히 카샤스 대공과 타란 제국의 용기사를 어느 정도 데려오는 수준으로 예상했는데.
지금은 그 예상을 아득히 넘어가는.
그야말로 대규모의 군대가 화련의 영지에 들어오고 있었다.
아마 화련이 미리 영지를 이렇게 확장시켜놓지 않았다면 저들이 죄다 노숙해야 하는 상황이 왔을지도 모르겠는데?
먼저 거대한 비공정들이 일제히 화련의 영지로 내려섰고 하늘 위로는 수도 없이 많은 용들이 주변을 배회하면서 주변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려선 비공정들에서 익히 아는 인물들이 동시에 모습을 들러냈다.
한쪽은.
카샤스 대공과 함께 아이샤 황녀가 내려섰다.
대공과 황녀를 보호하기 위한 용기사들 역시 우르르 내려와 일대를 에워쌌고.
그 뒤로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 같이 내려오자.
당연히 5기사단이 레오나 에센시아를 지키기 위해서 비공정에서 내리더니 주변에 섰다.
여기에 드워프 대장로인 바그날도 동행했다.
반대편은.
타란 제국의 황제를 위시한 수없이 많은 용기사들의 호위를 하기 위해 내려와 진을 쳤다.
거기다 타란 제국의 귀족이란 귀족들은 죄다 한 자리씩 차지하려는 듯 내려와 자신들만의 진영을 만들었다.
마치 황제의 진형 주변을 감싸듯이.
그런데 문제는 그 귀족들 중 황제가 아닌 카샤스 대공 쪽으로 서는 녀석들도 상당했다.
황제파와 대공파인가…….
이렇게 갈라진 모습을 보니 대충 세력을 알 것 같기도 하고.
“모아놓고 보니 꽤 볼만하네요.”
“그래. 딱 봐도 서로 사이가 안 좋네.”
저건 선을 그어두기라도 한 듯이 딱 갈라진 진형이랄까.
그때 화련이 멀리 있는 비공정에서 내려 우리에게 뛰어왔다.
꽤 난감해 보이는 표정을 지어 보이면서.
“화련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건 미리 약속되었던 것과 규모가 달라도 너무 달라졌으니 궁금해서 묻는 것이었다.
곧 화련이 약간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칫. 황제가 중간에 끼어들었어.”
“네?”
“아마 카샤스 대공 쪽에서 정보가 새는 것 같아. 처음부터 알고 있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