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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209화 (1,209/1,404)

#1209화 용 수호자 (1)

마왕 헤르게니아가 이렇게 경계를 하는 건 처음 보는데?

내 기억에 헤르마늄 광산에서부터 지금까지 같이 다니며 특별한 대상에 대해 경고나 적의를 드러내는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하물며 완전 적대적인 관계인 타란 제국 내에 들어오면서도 꺼려하는 기색은 있었지만 이 정도로 경계를 하진 않았었다.

“왜 그래?”

하지만 내 물음은 신경 쓰지 않는 듯 여전히 마왕 헤르게니아가 지긋이 어둠 속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은근히 내 앞쪽으로 서는 걸 보고는 나 역시 인상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지간해서는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내버려 두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이렇게 나온다고?

그렇다는 말은 지금 저 앞에 있는 녀석이 그만큼 우리에게 위협이 된다는 뜻이 된다.

“강한 녀석이야?”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슬쩍 고개만 까딱거렸다.

“귀찮게도. 꽤 강해.”

귀찮다라…….

아마 이건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은 넘어간다는 뜻이지만 마왕 입장에서는 대처가 가능하다는 말일 것이다.

“여기서 싸우면?”

다시 묻는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이번에는 어느 정도 정확한 답변을 해주었다.

“난 살고. 너랑 얘는 잘 모르겠는데. 쟤들은 확실히 다 죽어.”

그러면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나와 재중이 형을 가리키며 잘 모른다는 표현을 했다.

그리고 나와 재중이 형을 제외한 모두는 여기서 죽을 거라는 말은 우리 팀의 표정을 바로 굳게 만들었다.

전사 형이 꽤 놀란 눈치로 나를 보며 말을 꺼냈다.

이렇게까지 단호하게 죽음을 이야기할 정도면.

정말 쉽지 않은 상대라는 거다.

“대체 저게 뭔데 그러는 거야?”

“저야 모르죠.”

당연히 모두의 시선은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돌아갔다.

설명을 요구하는 딱 그런 시선이려나?

그리고 지금 이렇게나마 질문을 할 여유가 있는 건 여기가 보장된 안전지대이기 때문일 터다.

화련 쪽 역시 여기까지는 왔었고 결국 죽지 않고 돌아가긴 했으니까.

굳이 넘어오지만 않으면 쫓진 않는다.

반대로 여기서 한발 짝만 더 들어가면.

마왕 헤르게니아가 우려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그때 다시 안전지대로 들어오면 살기야 하겠지만…….

결국 이곳 이상은 지나갈 수가 없게 된다.

“이거 참…… 난감한 녀석을 만났네.”

재중이 형도 살짝 난처한 웃음과 함께 고대 마룡의 창을 꺼내들었다.

“싸워 보게요?”

“얼마나 강한지 간만 보는 건 괜찮지 않나? 안전지대도 있고. 상대가 어느 정도인진 알아야 대책을 세우지.”

그러면서 마왕 헤르게니아 쪽을 보는 걸 봐서는 여차하면 그녀의 힘도 빌릴 생각인 듯했다.

우리끼리 잡기 힘든 녀석이라면 필히 강력한 네임드일 테니.

마왕 헤르게니아가 합세하면 어지간한 녀석도 잡긴 할 터.

그런데 문제는.

그녀가 말한 살아남을 수 있는 목록은 마왕 헤르게니아와 나, 재중이 형밖에 없다는 거다.

분명히 그렇게 말한 데는 확고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물었다.

나나 재중이 형은 되는데.

우리 팀이 안 되는 이유.

어느 정도 예상되는 이유이긴 한데.

확실히 답을 듣긴 해야 한다.

“혹시 저 녀석 빨라?”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빨라. 네가 봤던 그 어떤 개체보다도.”

빠르다라…….

예상했던 답변과 맞아떨어지긴 했는데.

그게 어느 수준인지가 문제다.

빤히 마왕 헤르게니아를 바라보면서 다시 물었다.

“너와 비교하자면……?”

마왕과 비교를 할 수준이라는 것 자체가 문제지만.

지금 그녀의 반응을 보면 정말 그럴 것 같거든.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살짝 기분이 나쁘다는 투로 쏘아대듯 말했다.

“감히 마왕과 비교하라는 거야?”

하지만 곧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칫. 단순히 속도만 따지면…… 조금 더 빠를 수도 있어.”

순간 우리 모두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마왕보다 빠르다고?

“아이씨. 난 전투형 마왕은 아니라고 했잖아.”

확실히 전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비슷한 말을 해준 적이 있긴 했다.

사실 직접 몸으로 뛰는 일도 그다지 좋아하는 것 같지 않은 눈치였고.

아니.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마왕은 마왕이다.

단 한 부분에서라도 비교가 된다는 것 자체가.

저 앞에 있는 녀석이 괴물이라는 걸 뜻한다.

최소 최상위 마족은 넘어갈 텐데…….

문제는 단순히 마족 정도로 마왕 헤르게니아가 경계를 할 일은 없다는 거겠지.

짚이는 점이 있어서 그녀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대천사쯤 되는 거야?”

현 시점에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꺼려할만한 녀석들은 대천사 정도밖에 없지 않나?

여기 오기 전에도 뭔가 굉장한 녀석이 있을 거라는 늬앙스를 풍기기도 했었고.

용기사를 언데드로 만들 강력한 네크로멘시가 가능한 녀석.

그리고 아마 우리 지금 눈앞에 있는 녀석이 마왕 헤르게니아가 언급한 딱 그놈일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내 물음은 답이 되진 못했다.

“아쉽게도.”

아쉽다라…….

하긴 정말 대천사였다면 마왕 헤르게니아가 눈에 불꽃을 튀며 달려들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지금은 그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귀찮다’라는 표현을 썼을 뿐.

“그럼 마왕?”

대천사가 아닌 경우.

마왕 헤르게니아가 꺼릴 만한 대상은 하나 정도로 좁혀진다.

같은 마왕급.

이게 아니라면 굳이 그녀가 날 잡아챘을 리가 없을 테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 역시 그녀가 고개를 저어 보였다.

“아냐. 쟤가 진짜 상위의 전투형 마왕이었으면 여기 있는 애들 벌써 다 죽었을 거야. 그리고 저 위에 있는 애들도 다.”

아주 신랄하게 팩트를 날려주는 그녀를 보고는 다들 쓴웃음을 지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전에 마왕 올펠을 잡을 때는 다소 등급이 낮아도 어쨌든 마왕급이 앞에서 버텨줬으니 그렇게 싸운 거지.

물론 지금은 그때보다 전력이 더 올라갔으니 해볼 만은 하겠지만.

여기서 누구 하나 죽지 않고 잡아낼 수 있다고는 절대 장담할 수 없었다.

“마왕도 아니면 뭔데?”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잠시 인상을 쓰더니 말을 꺼냈다.

“용마족.”

“응?”

용마족이라는 그녀의 말에 순간 우리 팀이 모두 내 쪽을 바라보았다.

마왕 헤르게니아는 잘 모르겠지만.

우린 이미 용마족이라는 존재는 알고 있었다.

아스티아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순간.

그녀가 말을 이었다.

“그것도 그냥 용마족도 아니야.”

“그럼?”

“최상위 용마족.”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에 다시 물어보았다.

“최상위 마족하고 비슷한 거야?”

“아니. 그보다 훨씬 강해. 단순 전투력은 거의 하위 마왕하고 맞먹을 수도 있어. 쟤들은 마족의 힘에 용족의 능력도 같이 쓰니까.”

저 말을 듣고 나니 왜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렇게 경계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직접적인 전투력으로만 치면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렇게 높은 위치가 아니라고 보면.

현재 우리 눈앞에 있는 저 녀석은 그녀와 거의 비등한 전투력을 지닐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이씨. 준비만 되어 있으면 저런 녀석 한 주먹 거리인데…….”

“준비?”

“하. 몰라서 물어? 잘 준비된 마법사는 저런 녀석들을 마차로 가져다줘도 다 이겨.”

음…….

마왕 헤르게니아가 저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걸 봐서는 아마 저게 사실일 거라 생각되었다.

실제 그녀가 만들어낸 물건 중에는 아크 드래곤도 있지 않은가.

천사들의 부유 도시를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을 만드는 그녀인데 결코 허황된 말은 아닐 것이다.

다만.

정말 그녀의 말대로 지금은 그녀가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게 문제였다.

지금도 겨우 마력을 회복한다고 베르탈륨 광석을 캐고 있지 않은가.

정상도 아닌 상태에서 준비도 안 되어 있다.

그러니 마왕 헤르게니아가 날 붙잡은 거다.

여기서 저 녀석과 싸우면 그녀 입장에서도 골치 아파질 테니.

“좀 더 힘을 회복하면 어때?”

내 말의 뜻은 다시 윗층인 4층으로 올라가서 어느 정도 그녀의 마력을 회복하고 돌아오자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때 재중이 형이 어렵다는 듯이 말을 꺼냈다.

“아까 화련 말 못 들었어? 조만간 여기가 타란 제국 황제한테 들킬 거라고.”

“음. 확실히 그랬었죠.”

그리고 화련이 그다지 시간이 없을 거라는 말 역시도 덧붙였었다.

그때 옆에서 고민 중이었던 챠밍이 한 가지 의견을 꺼냈다.

“타란 제국의 용기사들을 동원해서 저 녀석을 잡는 건 어때요? 어차피 우리 힘으로 힘들다면 나쁘지 않은 방법이 될 것 같은데…….”

그러자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거 괜찮은 방법인데? 용기사들이 좀 죽는다고 우리가 손해 볼 것도 없고.”

여기에 챠밍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어차피 금방 들킬 거라면…… 그들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중간에 애매하게 방해를 받는 상황보다는요.”

챠밍의 의견에 나와 재중이 형의 시선이 중간에 마주쳤다.

“꽤 괜찮겠는데요?”

곧 재중이 형이 잔인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확실히 나쁘지 않네. 헤르마늄 광산에서도 타락 천사 네임드를 에센시아 기사단에서 상대했었잖아. 그리고 전사 말대로 용기사들이 여기서 좀 죽어 나가 주면 우리야 고맙지.”

“타란 제국 황제의 전력이 깎이면 그만큼 우리도 편해지겠죠.”

“반대로 카샤스 대공은 상대적으로 전력이 좋아지겠고.”

적을 이용해서 다른 적의 힘을 깎는다라…….

거기다 우리 편은 상황이 더 좋아지기까지 할 터다.

결정이 나자마자 바로 다시 5층에서 위로 돌아가는 계단을 밟았다.

“그럼 어디 약을 좀 치러 가볼까요?”

* * * * *

올라와서는 우리가 예상했던 대천사, 마왕이 아닌 존재가 있다는 걸 화련을 만나 넌지시 언급을 하자 화련의 표정 역시 굳어졌다.

그리고는 마왕 헤르게니아 쪽을 슬쩍 보더니 물었다.

“쟤가 알려준 거야?”

“뭐 그렇죠. 우리야 용마족을 알 리가 있나요.”

“그래? 마왕이 말했으면 확실하겠네. 그런데 용마족이라는 게 그렇게 강해?”

“음. 전투력만 보면 그렇다는데요?”

“그럼 걔들이 제일 강한 종족인가?”

화련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음.

이야기가 또 그렇게 되는 거려나?

그런데 그 정도로 강한 녀석이 많다면 아마 벌써 용마족이 세상을 먹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지금의 성마 대전 시대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딱히 개체수가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한 번 아스티아에게 제대로 물어볼 걸 그랬네.

내가 아는 용마족은 그녀가 유일하니까.

아니.

이젠 둘이 된 거려나?

그때 화련이 의아한 점이 있는 듯 내게 물었다.

“아니 그런데 왜 용마족이라는 게 여기 베르탈륨 광산에 있는 거야?”

“정말 그렇네요.”

일단 고대 마룡과 관련된 용이라는 공통된 점이 있긴 한데…….

그게 용마족과 연관이 된다는 건 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스쳐 지나가듯 나와 화련에게 말해 주었다.

“용마족 역시도 용신을 숭배해.”

“그래요?”

“응. 그게 마룡 계열이라는 것만 다를 뿐이지.”

그런 그녀의 답변에 나와 화련의 궁금증이 한 번에 날아가 버렸다.

“있을 만했네요.”

“그러게.”

그리고는 화련에게 밑에서 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니까. 타란 제국을 이용해 먹겠다고?”

“정확하게는 황제만 이용하는 거죠.”

“흐음. 그건 꽤 마음에 드네.”

곧 화련이 날 빤히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데?”

화련의 물음에 환한 미소와 함께 말을 꺼냈다.

“간단해요. 밖에 있는 친구들. 여기 안으로 들어오라고 해야죠. 우리 대신 몸빵해 줄 친구들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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