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5화 고대 마룡의 둥지 (12)
베르탈륨 던전 3층은 그야말로 용아병 마법사들로 모든 방들이 꽉꽉 채워져 있었다.
애초에 사냥을 한 유저들이 한 명도 없었으니까 당연한 일이긴 한데.
문제는 이 녀석들이 한 녀석들만 건드려도 아주 줄기줄기 뿌리 뽑히듯 따라 나온다는 점이었다.
이건 아마도 인식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 보니 옆의 녀석들을 건드리는 순간 링크가 되어 따라 나오는 거겠지.
뭐 여기까지는 그나마 괜찮은 편이었다.
몇 마리씩 계속 리젠이 되어서 몰려나온다면 잡기는 그럭저럭 수월할 테니까.
그런데 이게 맵 전체에 걸쳐서 움직인다면 어떻게 될까.
재중이형이 멀리 통로가 있는 어두운 곳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쪽에 또 몰려오지?”
“확실히 그렇네요.”
지금 내 감각에도 확연히 느껴진다.
재중이 형의 전투 여파에 용아병 마법사 몇 마리가 링크가 되어서 움직이고 있는 게.
그리고 저 녀석들을 건드리면 또 다른 녀석들이 다시 달려들게 될 것이다.
“아마 새로 오는 녀석들을 잡다 보면 이 근처에서도 아까 잡았던 녀석들이 리젠이 될 거야.”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글쎄. 근접이라면 좋겠지만…… 원거리는 꽤 까다롭거든. 그리고 전사가 새로 뜬 원거리 녀석들을 잡으려고 위치를 바꾸면 진형이 한꺼번에 엎어져.”
확실히 전사 형이 원거리를 끌어당기는 스킬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줄줄이 리젠이 되면 신경 써야 할 것이 한둘이 아닐 터.
잠시 통로를 바라보던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했다.
“하다가 영 힘들면 4층으로 가도 되고. 굳이 원거리가 많은 곳에서 씨름할 필요는 없으니까.”
재중이 형 역시도 원거리가 많은 곳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은 듯했다.
옆에 온 전사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거리는 몰이가 힘들어. 그리고 내가 어글을 한 번만 놓쳐도 바로 챠밍이나 막내별에게 우르르 마법을 날릴걸?”
“아. 그건 문제네요.”
챠밍과 막내별의 마법 방어가 전사 형보다 훨씬 높기는 했다.
같은 마법을 맞아도 들어오는 피해가 적다는 뜻이고.
그런데 문제는.
전체적인 체력.
그 절대적인 총량이 압도적으로 부족했다.
지금처럼 열 단위가 넘는 마법사들이 일제히 어글이 튀어서 공격당하게 된다면…….
“어글이 엉망이 되어서 난장판이 될 거야.”
주기적으로 안정적인 자리에서 몰이를 해야 경험치 누적이 쉬운 건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였다.
다른 말로 이건 변수를 최대한 줄여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고.
반복되는 단순한 노동일지도 모르지만.
그게 가장 효율적이니까.
이건 방금 재중이 형이 혼자의 능력으로도 몇 개의 방을 쓸어 담을 수 있음에도.
굳이 하지 않는 이유와 동일한 이유였다.
계속되는 움직임은 피곤이 쌓이기도 하지만.
안정적이지 않다.
전사 형이 슬쩍 나르샤 누나 쪽을 보면서 말했다.
“나르샤가 해도 되긴 하는데. 이렇게 마법사가 득실거리는 곳에서는 쟤도 힘들어. 그리고 지금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라.”
그 말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르샤 누나가 제3의 눈을 가지고 있어서 벽면 너머를 볼 수 있다고는 해도.
던전 내에서의 시야는 확실히 한정적이었다.
다시 전사 형이 날 빤히 보면서 물어보았다.
“어때? 저 너머는?”
그러면서 저 멀리 어둠을 가리키자 딱히 새로울 것이 없다는 듯 대답했다.
“음. 대충 구조는 알 것 같긴 해요. 몬스터들 배치도 그렇고.”
지금도 감각을 계속 퍼트려서 주변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둠 너머로 몇 개의 방이 있고.
어디서 벽면의 굴곡이 있는지.
그리고 그 안에 몇 마리의 용아병 마법사들이 돌아다니는 것까지도.
내 대답에 전사 형이 바로 엄지를 치켜세웠다.
“우리 최강 네비게이션!”
“음…… 그건 좀.”
“하하. 아무튼 지금은 너만 여기서 몰이가 가능할 거라는 거지.”
아마 시간이 지나고 맵을 정확히 알고 몹 배치도 익숙해지면 굳이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완전히 처음 도는 던전 같은 경우는.
내 쪽이 월등한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재중이 형이 나만이 할 수 있다고 한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전사 형이 한마디 말을 더 붙였다.
“그리고 넌 빠르니까. 어지간히 달라붙어서 바로 따돌릴 수 있잖아.”
“뭐 그렇긴 하죠.”
이속에서 마법사들에게 따라잡힐 일은 절대 없다고 보면 된다.
막다른 곳에만 몰리지 않는다면 말이지.
그런데 내가 그런 상황에 처할 일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쪽 방향으로 갈 일도 없으니.
“기동력도 그렇지만 체력도 네가 좋고. 유사시에 마법을 쳐낼 수 있는 것도 가능하잖아.”
“너무 띄워주는 거 아니에요?”
“흠흠. 지금부터 계속 일 시켜먹어야 하는데 이정도야…….”
“저 확 안 합니다?”
“하하…… 한 번만 해 주시죠.”
전사 형이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것도 우리 팀에선 나뿐이긴 했다.
전사 형이 내 옆에서 설명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때는 이렇게 하면…… 몰리거든. 그리고 여길 넘어가면 코스로 돌리고…… 겹치면…… 그럼 벽 너머로…….”
본인이 아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자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변수가 생기면 그냥 뿌리치고 빠져.”
“그건 제일 잘하죠.”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가 있으면 초가속도 가능하니까.
뿌리치는 것 자체에 문제는 없다.
설명을 다 들은 뒤 고개를 돌려 마왕 헤르게니아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쟤는 어떻게 하려고요?”
“헤르게니아? 음. 이쪽은 보험이지.”
“보험요?”
“문제가 생길 경우 긴급 대처반이라고 해야 하나? 내 쪽은 딱히 상관없는데.”
그러면서 챠밍과 막내별을 보는 걸 보면 역시 그쪽을 걱정하는 듯 했다.
확실히 마왕 헤르게니아라면 용아병이 얼마나 몰려도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위의 몬스터들이 아무리 모여 봐야…….
다른 방법으로 마왕 헤르게니아와 같이 돌아다니면서 죄다 쓸어버리는 방법도 있긴 한데.
이건 우리 팀에게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럴 거면 그냥 1층서 안정적으로 사냥하는 편이 훨씬 나은 정도지.
“일단 다녀올게요.”
“어, 조심하고.”
옆으로 온 챠밍이 한마디 거들었다.
“여차하면 그냥 돌아와요.”
“너무 걱정 마. 죽을 정도로는 안 몰아.”
그리고는 곧장 어둠 속의 통로로 뛰어들었다.
아까 쓸어버린 방을 너머 조금 더 넘어가자 바로 반응이 왔다.
그어어어!
카아악!
마치 반가운 먹이가 들어왔다는 듯 환영해주는 녀석들에게 미리 준비해 둔 베르탈륨 광석들을 던져서 맞추려는데 오히려 저쪽에서 먼저 마법들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것도 하나도 아닌 일곱발이 동시에.
거기다 반대 쪽 방에서도 인식이 되었는지 다섯 발의 마법이 연달아 날아왔다.
흠.
여기 그냥 오면 지옥이겠는데?
조금만 가까워졌을 뿐인데도 곳곳에서 마법 샤워가 쏟아지자 바로 이동하면서 자리를 벗어났다.
그러자 또 다른 방에서도 마법이 연사되었고 내 뒤쪽으로 수많은 마법들이 터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콰쾅!
콰아앙!!
쿠아앙!!
가만히 있었으면 그냥 훅 가는 딱 그런 그림이려나.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가 있긴 해도.
저런 식으로 집중 포화를 맞으면 이동조차 힘들 거다.
무엇보다 마법의 종류가 죄다 다르다는 것도 문제였다.
저 중에 뭐가 디버프인지 알 수가 없으니까.
이동 속도 제한이라던지.
경직.
시야 혼란 같은 거라도 걸리면 답도 없었다.
분명 화련이 알려준 것들 중에 그런 것들도 있었지.
제일 좋은 방법은 마법을 피하거나 쳐내는 것.
손에 든 르아 카르테와 용신검 아스카론을 빠르게 휘둘러 내 앞쪽으로 날아오는 마법들을 사선으로 쳐내었다.
마법들이 채 닿기도 전에 벽으로 튕겨나가 터지자 통로가 우르르 울리기 시작했다.
“무식하게 쏘아대네.”
얼핏 눈에 들어오는 것만 해도 이미 스무 발 정도였다.
흐음.
이 녀석들 잡으면 저 연사 능력도 어떻게 배울 수 있으려나 싶기도 하고.
그럼 챠밍에게 꽤 도움이 될 텐데 말이야.
그런 생각을 하면서 쭉 치고 달리자 대략 오십여 마리 정도의 마법사들이 내 뒤를 따라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
솔직히 마법사라서 이속이 낮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용아병이라 그런지 생각 이상으로 이속이 빨랐다.
아마 처음 여기서 사냥하는 유저들이 보면 기겁할 수준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마법사가 느리다는 편견을 아주 팍 깨주는 딱 그런 이속이었다.
물론 내가 잡힌다는 뜻은 아니지만.
너무 느리면 어떻게 몰까 고민도 되었는데.
딱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 했다.
통로를 원을 그리듯이 돌자 녀석들도 우르르 내 뒤를 따라 달려왔다.
그리고는 전사 형이 알려준 대로 옆 벽면을 타면서 달리자 녀석들 역시도 벽면에 딱 붙어서 내 뒤를 따라 달렸다.
여기서.
한 번 꺾고.
그리고는 코너에 딱 붙어서 다시 돌아 다음 통로로 들어서자 녀석들이 코너에서 개떼처럼 겹치더니 이내 한 점에 가까울 정도로 엉켜서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길게 달리던 녀석들을 한곳에 몰았다고 하는 게 맞으려나?
따라 잡힐만한 적당한 속도와 적당한 거리 유지.
그리고 통로의 벽면과 코너를 이용하면 이런 식으로 원거리들을 한 자리에 모는 게 가능했다.
그 와중에 마법들을 피하고 쳐내는 건 기본이고.
일단 30마리만 해볼까.
이 이상이 되면 전사 형도 버티지 못할 테니.
몇 번 더 코너를 돌면서 거의 30마리 가까이 모으자 바로 전사 형에게 연락했다.
<주호> 지금 갑니다.
<방패전사> 몇 마리?
<주호> 대충 30마리 정도요.
<방패전사> 오케이. 한 번 해보자.
그리고 다시 되돌아 와서 마지막 코스를 돌자 우리 팀이 대기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빠 왔어요!”
이쁜소녀가 먼저 발견하고는 외쳤고.
챠밍이 곧장 반응했다.
“조금 더 들어와요!”
“그래. 간다!”
뒤에서 수십 발의 마법을 피해가며 미리 준비한 위치에 도달하자 챠밍의 스태프에서 화려한 이펙트가 터지며 내 뒤에 일점으로 모인 용아병 마법사들을 일제히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 데몬 글래시어! 】
상위 마왕급에서도 최강의 광역 마법.
마왕 아이셔스의 어둠이 섞인 얼음 폭풍에 완전히 휩싸인 용아병 마법사들이 그대로 얼어붙으면서 움직임을 멈추자 챠밍이 크게 외쳤다.
“지금 전부 쏴요!”
바로 옆에서는 전사 형이 얼음 폭풍이 풀리면 뛰어들기 위해 대기 중이었고.
재중이 형은 미리부터 풀 차징하고 있던 스킬을 꺼내들었다.
고대 마룡의 창 최종기.
【 드래곤 버스터! 】
이쁜소녀 역시도 자신의 토르를 크게 들어올려 얼음 폭풍 위로 세차게 내려쳤다.
어마어마한 우레와 함께 얼음 폭풍 위를 화려한 금빛 전력이 터져나갔다.
동시에 나 역시도 빠르게 대천사의 검들을 꺼내서 녀석들을 향해 스킬을 난사했다.
【 그랜드 크로스! 】
과연.
이걸로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