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0화 고대 마룡의 둥지 (7)
베르탈륨 광산 던전 1층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 할 수 있는 크리스탈 리저드는 마왕 헤르게니아 덕분에 우리에게는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았다.
당연히 그 크리스탈 리저드를 제외한 녀석들은 사냥을 하기에는 딱 적절한 수준으로 그 난이도가 내려갔다.
그렇다고 나머지 녀석들이 약하다는 건 절대 아니었다.
이곳의 유저들이 접할 수 있는 최상단에 위치한 레벨대의 던전인 만큼 레벨이나 능력치가 낮은 건 절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반대로 우리에게도 믿을 구석은 충분히 있었다.
바로 전사 형의 몸빵.
이래 보여도 전사 형의 장비는 타이탄 풀 플레이트였다.
애초에 타이탄의 방어력 자체가 아크 드래곤과 맞짱 뜰 정도의 방어력이 나오는 녀석이니.
사냥터보다 다소 레벨이 낮다고는 해도.
몬스터들의 대미지가 무식하게 들어오는 일은 결코 없을 터.
전사 형도 이를 잘 아는지 먼저 앞으로 나섰다.
<방패전사> 일단 한 구역씩 해보고. 아직 확실히 버틸 수 있는지 모르겠다.
<주호> 네. 천천히 하세요. 시간은 많으니까.
시간이 많은 것도 많은 거지만.
일단 여기 사냥터도 독점이었다.
크리스탈 리저드 때문인지 화련은 1층을 그저 2층으로 가는 이동 통로 정도로만 사용한 듯했으니까.
그걸 잘 알 수 있는 건.
1층의 사냥터 자리가 될 만한 넓은 구역에 화련 쪽 유저들은 눈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감각을 퍼트려 봐도 딱히 걸리는 유저 역시 없고.
화련이 설명한 그대로네.
유저가 없이 오직 몬스터들만 즐비한 던전.
이런 환경이라면 용신검 아스카론을 키우기에는 더할 나위 없었다.
<방패전사> 이쪽은 시작한다.
<주호> 네. 혹시 위험하면 바로 불러요.
<방패전사> 처음인데 살살해야지.
정작 말은 저렇게 해도.
막상 해볼 만하다고 판단되면 정말 무식하게 몹을 몰지도 모르겠네.
그만큼 지금의 환경은 우리에게 좋았다.
애초에 조금이라도 좋은 사냥터는 유저가 많고 몬스터가 모자라서 마음대로 몰지 못하는 거지.
지금 같이 오직 우리만 사용하면.
원하는 만큼 몰 수 있을 테니.
그리고 내 감각에 멀리서 한 무더기의 몬스터들이 끌려가듯 일정한 간격으로 몰려가는 게 느껴졌다.
일단 저 정도려나?
“우리도 작업해야지.”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얼른 하라는 마음을 대신하듯 바닥을 발을 툭툭 찼다.
은근히 마음에 들었나 보네.
그도 그럴 것이 가만히 있으면 알아서 마력을 채울 수 있는 몬스터들을 가져다 바치는데 나쁠 리가 있나.
곧 바닥에 떨어진 베르탈륨 광석 몇 개를 들고는 던전 내부를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몇 개체의 크리스탈 리저드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베르탈륨 광석을 날려 녀석들을 끌고 달리기 시작했다.
다섯 마리 정도로는 안 돼.
방금 마왕 헤르게니아가 한 걸 보면 다섯 마리 정도로는 성이 차지 않는 듯했다.
실제로 한순간에 녀석들을 무력화시킨 걸 보면 아직 여력이 충분한 모양이었고.
그렇다면.
조금 더 무리해 보자.
이번에는 아예 훨씬 더 파고들면서 적극적으로 구석까지 돌아다니는 크리스탈 리저드들을 찾아냈다.
슉!
슉!
퍽!
그리고는 들고 있던 베르탈륨 광석을 계속 날려서 녀석들을 사냥터 자리에서 끌고 나왔다.
차마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장소는 조금 다른 방법을 썼고.
이렇게 던지면 되려나?
바로 팔을 옆으로 활처럼 휘게 만들어 손목에 스냅을 걸어냈다.
그리고는 내 손을 벗어난 베르탈륨 광석에 강렬한 회전이 걸리더니 큰 커브를 틀며 몬스터 무리들이 몰려 있던 외곽으로 반 바퀴 돌며 반대편에 있던 크리스탈 리저드를 정확히 맞춰냈다.
카악!
“이것도 하니 되네…….”
혹시나 해서 그냥 야구 선수들이 하는 것처럼 따라해 봤더니 꽤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걸 보니 나조차 흡족한 마음이 들었다.
다른 몬스터들은 일체 건들지 않고 최적으로 코스로 빠르게 달리면서 이런 짓을 벌이는 걸 누군가 본다면 꽤 재밌어할지도 모르겠는데.
한 번 재미가 들리니 이후에는 조금 더 아슬아슬한 커브를 걸어가면서 사냥터 끝에 있는 크리스탈 리저드들을 때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이번에는 통로가 벽으로 꺾여 있어 아예 반대편 시야에 보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베르탈륨 광석을 날렸다.
보이지 않는 통로를 따라 꺾인 광석은 그대로 사라져 버렸다.
퍼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르탈륨 광석은 전혀 시야가 없는 벽 너머의 크리스탈 리저드를 맞췄다.
이건 누가 보면 정말 미친 짓이라고 하겠네.
감각으로 크리스탈 리저드의 위치를 확인하고.
베르탈륨 광석에 스핀을 걸어 커브를 틀면서 넘어가 녀석들을 맞췄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하니 내가 달리는 동선이 굉장히 단순하게 변해버렸다.
복잡한 던전 사냥터의 벽들을 따라 이리저리 꺾여 있는 통로를 굳이 내가 달려가지 않아도 되니까.
직접 달려서 지나가게 되면 필연적으로 다른 몬스터들까지 내게 달려들게 된다.
뭐 마왕 헤르게니아가 있으니 우르르 끌고 간다고 하더라도 처리를 하긴 어렵진 않겠지만.
흡수 효율이 나오지 않는 다른 몬스터들까지 끌고 가면 꽤 귀찮아할 테지.
그런 면에서 보면 지금의 방식으로 굉장히 효율적이었다.
그렇게 순식간에 20여 마리의 크리스탈 리저드들을 내 뒤로 끌고는 다시 마왕 헤륵게니아가 있는 장소로 달려갔다.
우어!
카아악!
거대한 크리스탈 리저드들을 소 떼처럼 몰고 오는 내 모습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입가에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렇게 잘 차려진 밥상을 손수 끌고 오는데 싫어할 리가 있나.
“얼른 와.”
“말 안 해도 간다.”
그리고는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스무 마리의 크리스탈 리저드를 대령하자 그녀가 빠르게 뛰어다니며 그대로 녀석들을 바닥으로 눌러 버렸다.
쾅!
쾅쾅!
쿠웅!
일격 필살이라고 할까.
단순히 내지르는 저 가녀린 팔에 크리스탈 리저드들이 아무런 힘을 쓰지도 못하고 하나둘씩 제자리에 풀썩 쓰러져 내렸다.
이건 최소 전사 형보다 힘이 몇 배는 더 강해야 나올 수 있는 일격이라…….
거기다 스킬의 힘을 쓰지도 않는 듯하니 그보다 차이는 더 심하게 날 터.
무엇보다 정확하게 급소를 때리는 것도 아닌.
크리스탈 리저드의 갑주 정중앙을 때려서 박살 내는 중이니…….
이 성마대전 시대에서 마왕이란 존재들이 얼마나 강력한지 이제야 좀 실감이 나려고 했다.
심지어 아직 그녀의 상태는 베스트도 아니다.
어느샌가 녀석들의 등판을 이리저리 옮겨다니며 베르탈륨의 힘을 잔뜩 흡수한 그녀가 내게 물었다.
아직 전혀 만족하지 못하겠다는 듯이.
“더 없어?”
정말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억울하다고 하겠는데?
나 역시 정말 말도 안 되는 방식으로 크리스탈 리저드들을 끌고 온 건데.
마왕 헤르게니아에게는 확연히 부족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누군가 억울하냐고 물어본다면 전혀 아니다.
“네네. 더 가져다 올리죠. 일단 처리부터 하고.”
그리고는 용신검 아스카론을 들어 녀석들의 머리를 하나둘 내려찍었다.
《 용신검 아스카론이 크리스탈 리저드를 흡수했습니다. 》
《 용신검 아스카론의 봉인율이 0.07% 해제됩니다. 》
《 용신검 아스카론의 봉인율이 0.11% 해제됩니다. 》
《 용신검 아스카론의 봉인율이 0.17% 해제됩니다. 》
.
.
당연히 나 역시 그만큼 이득을 보는 중이라.
이런 식으로 계속 용신검의 봉인을 풀어낼 수 있다면…….
내겐 충분히 남는 장사다.
잠시 한숨을 돌리는 동안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어때요? 할 만해요?
<불멸>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1층 정도는 전사가 충분히 버틴다.
충분히 버틴다라…….
정말 괜찮은데?
지금 재중이 형이 말한 전사 형이 충분히 버틴다는 뜻은.
몬스터들을 다수 몰았음에도 몸빵으로 버틴다는 걸 말하는 거니까.
만약 힐이 잔뜩 들어가야 겨우 버티는 수준이었다면 저런 식으로 말하지는 않았을 터다.
<불멸> 아. 그리고 챠밍이 대박이야.
<주호> 네?
<불멸> 챠밍 혼자서 몬스터들 거의 반은 묶어 두는데?
<주호> 그래요?
<불멸> 어. 와서 보면 놀랄걸? 아주 자유자재로 위험한 순간은 다 묶어 버려. 덕분에 전사가 살판났다.
흐음.
챠밍이 그 정도로 할 수 있었나?
아마 자신이 가진 아이셔스 스태프의 능력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높아진 모양이었다.
어느 상황에 어떤 스킬을 써야 하는지 정확히 인지를 해야 가능한 일이니까.
<불멸> 실수로 우르르 몰려온 적도 있었는데. 챠밍이 중간에서 아예 통로 자체를 막아 버리더라니까? 몬스터들이 빙벽 너머에서 포효하는 걸 너도 봤어야 하는데.
<주호> 하하…….
음.
이건 내 상상 이상이네.
만약 저런 식으로 조절만 가능하다면.
던전 내에서 위험한 돌발 상황을 대부분 넘겨 버릴 수 있게 된다.
<불멸> 넌 어때?
<주호> 음. 제 쪽이 오히려 널널한 느낌이네요.
난 아예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일 위험 자체가 없는 상황이라.
무엇보다 몰린다고 하더라도 마왕 헤르게니아가 일제히 쓸어버릴 수준인데 말해서 뭐할까.
<불멸> 좋아. 당분간 이렇게 가자. 여기 경험치도 나쁘지 않고.
재중이 형도 지금의 사냥터에 충분히 만족한 듯했다.
생각해 보면 지금 우리 레벨대보다 월등히 높은 사냥터를 공략하고 있는 셈이라.
잡는 족족 막대한 경험치가 들어올 터.
거기다 우린 용사 버프를 받는 상황이라 경험치 제한과 레벨 제한으로 흘리는 경험치 자체가 없었다.
<불멸> 아. 그리고 너도 알겠지만 얘들 잡을 때마다 기여도 올라가. 그것도 상당히 높거든.
<주호> 그래요?
<불멸> 넌 안 올라?
<주호> 음. 전 용신검이 흡수를 해서 그런지 딱히 오르진 않네요.
<불멸> 그건 아쉽네. 일단 얻은 기여도는 전부 용사 버프로 쏟아 넣고 있다. 여기가 효율이 좋아.
기여도가 오른다라…….
그렇다는 말은 우리 팀이 가진 용사 후보 버프를 더 올릴 수 있게 된다는 뜻인데.
예상했던 대로 전부 용사 후보 레벨을 올리는데 집어넣는 중이었다.
나야 뭐 이미 용사 후보 레벨을 맥스로 찍은 상태라 큰 의미가 없기도 했고.
그리고 레벨은 어차피 나중에라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냥 높은 레벨의 몬스터들을 마구잡이로 잡아버리면 되는 일이라.
당장은 내 성장을 용신검에만 몰아주는 것 같아도.
이게 터지면 이야기는 완전 달라진다.
곧장 다시 달려 나가 1층 던전 곳곳을 돌며 크리스탈 리저드들을 몰아왔다.
이젠 아예 한 번 달리면 한 층 전체를 돌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고 할까.
그러다 보니 우리 팀이 몰이를 하고 있는 장소를 지나치는 일도 빈번했는데…….
어쩌면 내가 상상력이 많이 부족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어어어!
크어어어!
으아아!!
크르릉!!
마치 대기 순번을 받은 놀이공원을 들어가는 것인 양.
저 바깥 통로까지 줄지어 몰려 있는 수없이 많은 몬스터들을 보는 순간 아찔함이 느껴졌다.
그 중간에서 챠밍이 속도를 조절하는 중이었고.
거기다 나르샤 누나는 은신으로 바깥을 돌며 보이지 않는 화살로 몬스터들을 줄줄 땡겨 오는 것까지.
이 와중에 전사 형과 이쁜소녀가 동시에 탱킹을 번갈아가면서 했고.
막내별은 적절히 힐과 보조 스킬들로 그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재중이형이 그 안에서 날아다니며 마룡창을 휘두르며 죄다 목을 날리는 건 뭐 말할 필요도 없었고.
왠지 내가 없어도 너무 사냥을 잘하는 것 같아서 좀 서글픈 느낌도 없잖아 있었다.
실제 사정을 들어보면 딱히 그렇지 않긴 한데.
“후아. 진짜 토 나올 것 같다. 나르샤 그만 몰아와!”
“으앙! 아직도 줄이 멀었어요! 뒤에 잔뜩 있어!”
전사 형과 이쁜소녀의 울음소리.
챠밍과 막내별은 광역기와 힐을 돌린다고 정신이 없어 보였고.
나르샤 누나도 몰아온 녀석들의 숫자를 줄이느라 쉴 새 없이 활을 땡겨 댔다.
흐음.
이게 맞는 건가?
여기서 사냥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다들 너무 피곤해 보이는데?
그 와중에 재중이 형은 몬스터들 사이를 날아다니며 외쳤다.
“나르샤 멈추지 말고 계속 몰아 와! 사람 쉽게 안 죽어!”
“와…… 이 괴물…….”
여기서 유일하게 여유가 있어 보이는 건 재중이 형 정도랄까.
그야말로 전신을 방불케 하는 현란한 창 시위와 궤적이 아름답게 허공을 가르며 닿는 족족 몬스터들의 목을 날려댔다.
거기다 고대 마룡의 창에 내장된 광역기까지 써 가면서 순식간에 녹여 버리기도 했고.
특히나 너무 쉽게 갈려 나가는 몬스터들을 보고 의아함까지 느껴졌다.
아마 이렇게까지 몰 수 있는 건 재중이 형의 처리 능력이 월등히 앞서기 때문일지도.
“꽤 바쁘네요?”
사냥터를 스쳐 지나가면서 한마디 했더니 재중이 형이 씨익 웃었다.
반대로 우리 팀들은 다들 핼쑥한 표정으로 바쁘게 사냥하느랴 아예 내 쪽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아아, 여기 상성 너무 좋은데? 아주 살살 녹아.”
그러면서 다시 고대 마룡의 창이 빛을 발하자 용종들이 별반 힘도 써보지 못하고 녹아내렸다.
말 그대로.
몬스터들이 녹는다.
재중이 형의 저 창에.
그렇게 빤히 사냥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흐음.
역시 그런 거였나?
어쩌면 아래로 가는 길이 좀 더 수월해질지도 모르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