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7화 고대 마룡의 둥지 (4)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난 뒤 카샤스 대공이 대여해 준 비공정을 타고 베르탈륨 광산을 향해 이동했다.
우리가 에센시아 제국에서 타고 온 기사단 전용 비공정은 후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기사단과 함께 타고 올 예정이라 부득이하게 한 대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타란 제국의 비공정은 그 상태가 좋아 보이진 않았다.
전사 형이 타란 제국의 비공정을 몰면서 약간의 불만을 늘어놓았다.
“와, 이거 생각보다 너무 후진데? 정말 제국 물건 맞아?”
따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 팀들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했다.
“타란 제국은 용이 더 주력이니까. 굳이 비공정을 운영하는 데 큰 돈을 들이진 않았을 거야.”
확실히 다른 나라와 달리 타란 제국은 용이라는 걸출한 이동 수단이 존재했다.
이동 속도나 기동력을 비교하면 비공정은 애초에 게임이 안 되겠지.
물론 대단위의 병력과 물자를 수송해야 할 시에는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때는 이런 비공정의 존재는 필수였다.
그렇기에 타란 제국 역시도 비공정을 소유하고는 있었다.
좀 많이 품질이 떨어지긴 해도.
나르샤 누나가 갑판의 바닥을 발로 툭툭 쳐보더니 혀를 찼다.
“재질도 안 좋네. 이대로 전투에 나가면 바로 추락하는 거 아냐?”
“흐음. 딱히 부정할 순 없겠네요.”
나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비공정의 질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다.
만약 이 상태로 조금만 강한 드래곤의 브레스에 직격이라도 당하면 꼼짝 없이 추락행이다.
“타란 쟤들은 용도 많으면서 그걸 재료로 비공정을 만들 생각은 없는 거야?”
“그건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어요.”
나르샤 누나의 말대로 용에서 나오는 모든 재료들은 어딜 가나 최고급으로 친다.
그것도 이런 비공정에 쓸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재료가 될 테고.
드래곤 본에 피부와 이빨 등으로 도배를 한 비공정이 있다면 정말 천금을 들여서라도 사고 싶달까.
당연히 내구도와 강성 모두 최상급.
어지간한 공격은 맞아도 흠집도 나지 않겠지.
전투함으로 쓰기에 이보다 적합한 비공정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게 가능한 타란 제국에서 정작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 전사 형이 한마디 거들었다.
“안 될걸? 타란 제국은 용을 숭배하는 제도가 있어서 함부로 용을 재료로 비공정을 만들지 못해.”
그러자 챠밍이 이상하다는 듯 다시 물어보았다.
“그래도 장비는 만들 수 있지 않아요? 시장에 보니까 꽤 많이 나와 있던데.”
“아, 이상하게 그건 또 되더라고.”
“뭔가 형평성이 맞진 않네요.”
둘의 말을 듣고 있던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해 보더니 알겠다는 듯 말을 꺼냈다.
“그거 아마 대체재가 없어서 그럴걸?”
대체재라는 말에 우리 모두의 시선이 재중이 형에게 가서 닿았다.
“그러니까 비공정은 대신할 수 있는 용이라는 훌륭한 비행체가 있잖아.”
“그렇죠.”
“하지만 반대로 전투 장비들은? 그걸 용이 대신해 줄 수 있어?”
“아…… 듣고 보니 그렇긴 하네요.”
재중이 형의 말은 간단했다.
비공정은 대체재가 있다.
반면 장비들은 그게 안 되니까.
용이 대신 싸워주는 게 아니라면.
기사단에게는 반드시 용을 재료로 만든 장비가 필요했다.
그 말을 다 들은 막내별이 혀를 차며 말을 꺼냈다.
“그냥 귀에 걸면 귀걸이네요.”
“큭. 그런 셈이지.”
“그런데 만약 우리가 용을 재료로 비공정을 만들면 어떻게 돼요?”
막내별이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말에 잠시 우리 모두의 몸이 경직되었다.
곧 전사 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했다.
“맞네. 그냥 우리가 만들면 되잖아?”
재중이 형도 괜찮다는 듯 말을 받았다.
“드래곤 본으로 만든 비공정이라……. 상상만 해도 좋은데?”
확실히 아직 드래곤 본으로 비공정을 만들었다는 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이건 자금도 자금이지만.
그만큼의 용들을 잡아야 겨우 제작이 가능한 물건이기도 했고.
아니.
자금도 무시할 수 없는 게.
만약 재료를 사서 만든다고 치면.
어지간한 녀석들은 시도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들어가는 돈이 상상을 초월할 테니까.
뭐 그냥 그저 그런 저급의 용들을 잡아서 만들려고 하면 어떻게든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런 비공정은 더 상위의 몬스터에게 한 번에 찢겨버릴 터.
그러니까 제대로 쓰려면.
최상의 등급을 가진 용들을 잡아서 비공정을 만들어 내야 한다.
“베르탈륨 광산을 털어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네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거긴 높은 등급의 용종들이 바글바글하니까. 재료가 어마어마하게 떨어질 거다.”
확실히 단시간에 재료를 모으기에는 베르탈륨 광산만 한 장소가 없다.
다만 조금 우려되는 점은.
“타란 제국 황제가 그런 비공정을 만드는 걸 두고 볼까요?”
그런 우려에 재중이 형이 전혀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그러니까 몰래 해야지.”
순간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 카샤스 대공 정도면 가능하겠네요.”
타란 제국 내에서 타란 제국 황제의 눈을 피해 뭔가를 할 수 있는 이는 카샤스 대공이 유일했다.
“그리고 어차피 드워프 대장로가 만들 건데. 우리야 재료만 가져다주면 되고.”
“확실히 바그날이라면 타란 제국의 법을 피해 갈 수 있겠죠.”
드워프 대장로는 애초에 타란 제국의 시민이 아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그런 제한에서는 자유롭다는 뜻이지.
몇 가지 이야기를 하면서 비공정을 타고 가는 동안 시간이 흘러 한 산맥의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슬슬 내리죠.”
“아아, 베르탈륨 광산이 어디 있는지 광고할 게 아니라면 말이야.”
재중이 형 말대로 우리가 이대로 비공정을 끌고 정확한 위치까지 가버리면 오히려 타란 제국 황제에게 베르탈륨 광산 위치를 노출 시키는 셈이 된다.
아직까지는 정확한 위치는 모르니까.
적어도 우리가 준비가 완전히 될 때까지는 모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어차피 알게 되더라도 말이지.
그렇게 먼 곳에서 내려서 모두 은신을 걸고 산맥의 숲을 헤치면서 달리기 시작했다.
마왕 헤르게니아가 우리를 따라 달리면서 의아한 듯 물었다.
“왜 여기서 내려?”
“아, 들키면 안 되거든. 저기 뒤 따라왔던 녀석들에게 말이야.”
그러면서 하늘 위로 시선을 보내자 몇 기의 용들이 몰래 뒤따라오다가 우리가 내리자 부랴부랴 지상으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그걸 빤히 바라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귀찮은 티를 팍팍 내면서 말했다.
“흐음…… 귀찮게. 다 죽여 버릴까?”
“아, 그건 참아 줘. 쟤들 죽여 버리면 타란 제국 황제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니까.”
일부러 비공정을 뒤따라오는 것까지는 봐줬지만.
여기서 더 따라오면 곤란했다.
“혹시나 더 따라붙으면 그때 가서 죽여도 괜찮아.”
“아쉽네.”
입맛을 다시는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안도감 비슷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언제라도 적을 죽여 버릴 수 있는 전력이라는 건.
그렇게 타란 제국 용기사들의 추적을 따돌리면서 그동안 비공정이 왔던 방향에서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저 녀석들이 아니었으면 굳이 오지 않았어도 되는 산맥까지 거치면서 말이지.
아마 이 근처나 비공정이 갔던 방향 그대로 우리를 찾아낸다고 한동안 바쁠 것이다.
한참을 달리자 시스템 메시지에 화련이 소유한 영지에 입장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도착했어요.”
“그래. 여기서부터는 안내를 받아야겠네.”
우리도 베르탈륨 광산의 정확한 위치는 모른다.
그걸 지금 아는 건 오직 화련뿐.
<주호> 도착했어요.
<화련> 생각보다 늦었네?
<주호> 추격을 따돌린다고요. 황제가 뒤를 붙였던데요.
<화련> 그 황제란 놈 참 끈질기네. 안 그래도 우리 영지에도 용기사들이 몇 놈 들어와 있어.
전에 화련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각 영지마다 가능성이 있는 광산을 찾기 위해 용기사들을 파견했다고.
아마 지금도 여기저기 기웃거리면서 찾고 있을 터.
<주호> 여기서도 조심해야겠네요.
<화련> 응. 내가 불러준 좌표로 바로 와.
그렇게 화련이 좌표를 알려주자 곧장 이동을 시작했다.
그 와중에 몇 번 용기사들과 마주치긴 했는데 은신 중이라 딱히 들키거나 하진 않았고.
직접 접근해서 전투를 한다면 들키겠지만 그것만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들킬 위험은 없었다.
산맥 깊은 곳에서도 정말 오지에 가까운 장소까지 들어가서야 내 감각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이런 데 있으니까 못 찾지.”
“그러게요.”
재중이 형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깊은 산맥 끝이라.
저들이 못 찾아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화련은 대체 여길 어떻게 찾았는지 모르겠네.
입구까지 가서 화련을 부르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화련이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로 던전 입구에 나타났다.
“고생…… 하네요?”
“말도 마. 쟤들 얼마나 센지 아직 2층도 채 못 뚫었어. 겨우 사냥 자리 유지하면서 버티는 중이라고.”
슬쩍 화련의 장비를 살펴보니 타란 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거의 최상의 장비를 갖추고 온 거였다.
물론 이보다 더 좋은 황실 장비들은 따로 있긴 한데.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는 아마 저게 최선일 터다.
거기다 필히 고강화까지 했을 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티기 힘들다라…….
“화련의 길드에 프로 팀 사람들도 있지 않아요?”
“걔들도 있지. 그런데 칼이 박혀야 뭘 해보지. 급소를 공격해도 대미지 엄청 반감된다고. 2층부터는 난이도 대폭 올라가고.”
“흐음. 생각 이상이네요.”
나와 화련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우리 팀들도 긴장감이 생기는 건 마찬가지였다.
화련 쪽 길드 유저들의 수준이 절대 낮은 게 아니니까.
거의 대부분이 프로 팀 유저들로 되어 있다는 걸 고려해보면 말이지.
그런데 화련이 조금은 다른 말을 했다.
“혹시 4층쯤 가게 되면 거기 우리 길드 애 하나 있을 거야.”
“방금 2층도 못 뚫었다고 하지 않았어요?”
“아니. 한 녀석만 지하 4층까지 들어갔어. 사실 걔 말고는 거기서 사냥이 안 되거든.”
“음…….”
이 말은 재중이 형의 흥미를 이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호오. 그런 녀석이 있단 말이야?”
이건 똑같은 장비를 가지고 몇 단계나 앞서서 사냥한다는 뜻이니까.
그건 곧 실력이 그만큼 차이가 난다는 말과 다름없었다.
무려 프로 팀들하고.
“휴. 말 드럽게 안 듣는 놈 하나 있어. 쟤 대신해서 데려왔는데.”
내 대신이라고?
전에 얼핏 들었던 것 같기도 한데…….
“가면 그놈 안 죽게 좀 잘 챙겨서 올려 보내. 그 녀석 죽으면 진짜 손해거든.”
곧 화련이 나와 우리 팀의 장비를 위아래로 쭉 훑어보고는 눈빛이 번뜩이는 게 보였다.
“그나저나 정말 화려하게 강화하더라?”
“아. 시스템 메시지에 다 올라왔죠.”
“그래. 아크 드래곤까지는 들었으니까 알겠는데. 설마 벌써 여기서 마왕을 잡았을 리는 없을 테고. 다 어디서 난 거야?”
그러면서 전사 형과 챠밍이 들고 있는 발뭉과 아이셔스 스태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의심스럽다는 화련을 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둘러댔다.
“전에 마왕 올펠도 잡아 봤잖아요.”
“야. 그건 마왕 스티어가 앞에서 몸빵 해준 거고. 그냥 붙었으면 죄다 죽었어.”
흠.
역시 이건 안 통하나?
그런데 딱히 숨길 만한 내용도 아닌지라 화련에게 말해 주었다.
“화련도 들렸잖아요. 마왕 바이카르의 비밀 창고요.”
“응? 방금 뭐라고 했어?”
“거기서 얻었다고요.”
내 말에 화련의 눈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못 믿겠다는 듯이.
“아무리 둘러봐도 저런 등급의 물건은 없던데?”
“음. 다 숨겨져 있었거든요. 잘 찾아봤으면 몇 개 건졌을 건데. 아쉽네요.”
“지금 약 올려?”
“딱히 그런 건 아닙니다만.”
“칫. 됐어. 내가 못 찾은 걸 누구 탓 하려고. 그래도 아쉽긴 하네. 마왕의 무구가 숨겨져 있을 줄은.”
역시 이런 점은 쿨하다니까.
거기에 영웅의 무기도 몇 개 숨겨져 있었다고 하면 더 약 오를 것 같아 말을 아꼈다.
그때 화련이 우리 뒤쪽을 빤히 바라보더니 내게 물었다.
“저쪽은 누구야? 처음 보는데? 새로 영입했어?”
지금 화련이 바라보고 있는 건 마왕 헤르게니아였다.
음.
내가 보기엔 성격이 둘 다 상극일 것 같은데.
가만 놔두면 마왕 헤르게니아를 자극할 것 같아 바로 말을 끊었다.
혹여나 마왕 헤르게니아가 화련을 죽여 버리기라도 하면 피곤해진다.
<주호> 마왕…… 이죠.
<화련> 뭐라고?
<주호> 마왕요. 마. 왕.
그러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주호> 마왕하고 친구 먹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