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6화 고대 마룡의 둥지 (3)
원래라면 타란 제국의 기사단을 총동원해서 베르탈륨 광산에 들어갈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무엇보다 내가 가진 용신검 아스카론을 그들에게 보였다가는 고대 마룡 레이드고 뭐고 목숨 걱정부터 해야 할 테니.
용신검을 빼돌렸다고 광고할 생각이 아니라면야…….
<화련> 레이드 시작하려고?
<주호> 아. 그건 아니고요. 고대 마룡 레이드 전에 우리가 쓸 사냥터가 필요해서요.
<화련> 그런 거라면야. 알았어. 어차피 너희랑 우리하고는 부딪힐 일 없으니까 사냥터 마음대로 써.
<주호> 네. 혹시라도 겹치지 않게 신경 써 주세요.
아마 휩쓸리면 화련 쪽 사람들도 목숨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으니까.
거기다 내가 용신검을 가지고 있다는 걸 나중에 어떻게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아직까지는 알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렇게 화련과의 대화를 끝낸 뒤 우리 팀을 다시 대공저로 불러 모았다.
“이건 소녀 꺼.”
먼저 이쁜소녀에게 재중이 형의 것과 같은 아크 드래곤 풀 플레이트를 전해 주었다.
“와와……! 대박!”
곧 만들어 올 거라고 예상은 했겠지만 이렇게 빨리 될 줄은 몰랐기에 놀라움이 커 보였다.
“안 그래도 중갑이 필요했는데 고마워요.”
“응. 이번엔 너도 꽤 고생해야 할 것 같으니까. 아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핑크로 커스텀했어.”
“잘 쓸게요.”
그러더니 바로 풀 풀레이트를 받아 착용해 보고는 신난다는 듯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헤헤. 중갑이다아~~!”
흐음.
저리도 좋을까.
하긴 생각해 보면 이쁜소녀의 방어구가 나와 재중이 형, 전사 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좋지 않았던 건 사실이라.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은연중에 좋은 갑옷을 원하고 있었을지도.
“아, 이건 나르샤 누나 겁니다.”
나르샤 누나에게는 중갑 대신 경갑을 전해 주었다.
“나도 잘 쓸게. 안 그래도 기사단 갑옷은 너무 안 맞더라고.”
“기사단 갑옷은 뭐…… 나쁘진 않지만 그렇다고 딱히 좋진 않잖아요.”
내 말에 나르샤 누나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로 챠밍과 막내별에게 마탑에서 제작한 아크 드래곤 로브를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잘 쓸게요.”
이쪽도 로브가 아쉬웠던 건 사실이라.
아크 드래곤 로브를 걸치고 난 뒤 옵션을 확인하고 난 뒤에 둘의 표정이 바로 놀라움으로 변했다.
“이거…… 정말 좋네요.”
“와…… 대박.”
난 이미 저 로브의 옵션을 봤기에 저들이 왜 저렇게 놀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지력하고 마력을 이렇게까지 높게 올려주는 로브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마력 회복 옵션도 엄청나네요. 이 정도면 광역기 한 번 쓰고 난 뒤에 조금만 기다려도 채워지겠어요.”
“꽤 좋죠?”
내 물음에 둘 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좀 좋은 정도를 한참이나 넘어서는 물건이라.
챠밍이 뭔가를 발견했는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심지어 기사단 경갑만큼 방어력도 높아요.”
그 말에는 나르샤 누나도 동감하는지 말을 이었다.
“아크 드래곤 경갑도 기사단 중갑만큼 방어력이 높아. 진짜 이거 입으면 몬스터들 사이로 뛰어들어도 안 죽을 것 같은데?”
“아…… 그렇다고 뛰어드는 건 안 됩니다.”
내 장난스런 말에 모두가 동시에 웃어 버렸다.
아크 드래곤의 재료를 써서 만든 아이템들은 기본적으로 원래의 아이템들보다 등급이 몇 단계 이상으로 높았다.
에센시아 기사단 장비들이 결코 낮은 게 아님에도.
당연히 이쁜소녀도 아크 드래곤 중갑의 방어력 수치를 확인해 보고는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했고.
“헤헤. 이제 제가 탱킹 할까요?”
“안 그래도 그러려고 입힌 거야.”
빠르게 아크 드래곤 세트들을 준비시킨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일단 전사 형이 타이탄 풀 플레이트를 입고 있어 어지간한 상황은 혼자서 버텨 줄 테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이쁜소녀 역시도 탱킹을 해야 할 상황이 줄곳 생길 터라.
여차하면 상황에 따라 재중이 형과 나까지 나서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베르탈륨 광산은 위험한 구역이기도 했고.
“아, 그리고 여기 악세 전부 착용하세요.”
그리고는 모두에게 아크 드래곤의 재료들을 써서 마탑에서 만들어온 악세서리들을 넘겨주었다.
일단 전사 형에게는 주로 마법 방어를 올려주는 악세서리 위주로 넘겨주었다.
“확실히 타이탄 풀 플레이트는 마법 방어가 낮으니까. 이쪽이 도움이 되겠네.”
“네. 아크 드래곤이 속성 방어 하나는 끝내주더라고요. 악세서리도 마찬가지던데요?”
“좋아. 이러면 어지간한 마법은 몸으로 때워도 되겠다.”
“들어가서 확인해 봐요. 어디까지 버텨지나.”
“오케이.”
전사 형은 일단 무조건 다 방어력 위주의 세팅이었다.
기사단 중갑보다 방어가 월등히 높은 아크 드래곤 풀 플레이트보다도 타이탄 풀 플레이트의 방어력이 상위에 있다는 걸 고려해 보면 물리 방어 쪽은 걱정 안 해도 될 테고.
거기다 발뭉 역시도 무기인데도 불구하고 방어력을 가진 마왕의 무구였다.
타이탄 라지 쉴드까지 하면 거의 걸어 다니는 요새나 마찬가지.
아마 전사 형과 PK를 떠서 바닥에 눕힐 수 있는 유저는 지금 시점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제대로 타격을 주려면 같은 마왕급 무구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이와 달리 이쁜소녀의 세팅은 아예 극 한 방을 노리는 구성이었다.
악세서리 역시 모두 타격력을 증폭시켜 주거나 크리티컬을 올려주는 쪽으로 세팅되었고.
무엇보다 진(眞) 토르를 각성시킨 게 컸다.
이쁜소녀의 등 뒤에서 이전보다 월등히 강렬한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토르를 보고는 물었다.
“그거 바그날이 풀어준 거지?”
봉인되어 통짜 헤르마늄의 힘을 제대로 내지 못했던.
그 봉인이 풀리자 이름도 바뀌었다.
극 (極) 토르.
아마 끝에 달한 무기라는 거려나.
“네. 대미지뿐만 아니라 특수 능력까지 있어요.”
“그거 기대되네.”
이전의 토르도 결코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그보다 더 강하다면 기대가 안 될 수가 없지.
통짜 헤르마늄을 쓴 같은 빛 계열의 내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와 거의 비슷한 힘을 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덕분에 이쁜소녀가 마왕의 비밀 창고에서 얻어온 무기는 아직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인벤에 잠들어 있었다.
그건 쓰는데 제한이 너무 많은 문제가 있었기에.
“전에 그건 아직도 못 쓰지?”
내가 물어보자 이쁜소녀가 정말 아쉽다는 듯이 울상을 지었다.
“히잉. 네. 쓸데가 없어요…….”
“흐음. 아마 성마전쟁에 뛰어들면 쓸 수도 있겠는데? 어쩌면 그때가 되면 정말 무서운 무기가 될 수도 있을 테고.”
큰 제한이 있는 만큼이나.
그 반대급부가 엄청나니까.
문제는 이걸 제대로 쓰려면.
정말 판을 뒤집은 상태에서 써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무기를 제일 좋아할 만한 사람은…….
슬쩍 마왕 헤르게니아를 바라보았다.
“왜?”
“아니. 그냥.”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나서 물어보았다.
“넌 전용 무기 없어? 너도 마왕이잖아.”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의 눈썹이 확 구겨지면서 화가 나는 듯 말했다.
“없어.”
“없다고?”
“어, 찾아야 해.”
얘도 아스티아와 비슷한 상황이려나.
이전에 아스티아는 전용 무기 액스사이더를 결국 찾긴 했는데.
생각해 보면 쉽게 구한 것도 아니었고.
“나중에 찾아보자.”
“어디 있는지는 알아.”
“안다고?”
“그런데 찾을 수가 없어.”
“그래? 어디 있는데?”
“아마도 부유 도시겠지. 마지막으로 떨어뜨린 게 대천사 앞이었으니까.”
부유 도시라는 말에 우리 팀 모두 표정이 굳어졌다.
“천사들이 바글바글한 그 부유 도시 말이야?”
“맞아. 거기.”
“골치 아프네.”
그나마 아스티아의 무구는 거래를 통해서 얻어냈다지만.
이건 거래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우리가 거길 치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때 챠밍이 의아한 듯 물었다.
“어떻게 마왕의 무구를 천사들이 들고 갈 수 있죠? 애초에 천사들은 잡지도 못하는 것 아니에요?”
그런 챠밍의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너무 쉽다는 듯 대답해 주었다.
“잡지는 못하겠지만. 주변 땅을 통째로 옮겨버리면 되니까.”
“아…… 그 방법도 있네요.”
이건 나 역시 생각해 보지 못했던 방법이라 조금은 놀라웠다.
아니 애초에 내가 잡지 못하는 무구가 없으니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 해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가 뭔가를 떠올리고는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말했다.
“그거 내가 나중에 찾아줄게.”
“응? 정말?”
“어. 아마 생각대로만 되면 불가능하진 않을걸?”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화색을 띠면서 답했다.
“찾아주면 아크 드래곤 꼭 만들어줄게.”
그 순간 내 시야 한쪽으로 퀘스트 목록이 떴다.
흐음.
설마 이런 것도 퀘스트로 주는 거려나?
아마 서로의 계약 같은 부탁이라 가능한 것 같기도 하고.
“오케이. 그 말 무르기 없다?”
전용 무기 좀 찾아주고 아크 드래곤을 받을 수 있으면 무조건 남는 장사다.
그리고 이건 마왕 헤르게니아의 협조를 더욱 확고히 하는 계약이기도 했다.
재중이 형이 궁금한지 내게 물었다.
<불멸> 뭔가 계획이 있어? 어떻게 부유 도시로 들어가는 것까지 돼도 빼오는 건 힘들 텐데?
<주호> 음. 아마 생각대로만 되면. 충분히 가져올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몇 가지를 말해 주자 재중이 형이 흡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불멸> 가능성 있네. 그럼 다음에 그쪽을 노려보자고.
그 뒤로 챠밍과 막내별의 세팅까지 마치고는 나 역시 사냥을 위한 세팅을 맞췄다.
일단은.
방어구는 그대로 마왕 올펠의 풀 풀레이트.
이건 가변형에 마왕 전용 방어구라 희귀하기도 했고.
내 감각을 활용하면 최대한의 위력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악세는 대부분 크리티컬 대미지를 증폭시킬 수 있는 종류로만 채워 넣었다.
재중이 형 역시도 비슷한 세팅을 했고.
“너하고 난 마무리 역할이야. 남은 걸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 하니까.”
“네. 알고 있어요.”
이 사냥의 목적은 딱 하나였다.
바로 용신검 아스카론.
이 녀석을 어떻게든 강력하게 만드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러려면 역시 막대한 제물을 용신검에 바쳐야 할 텐데.
그만한 용 계열의 몬스터가 있을 곳도 베르탈륨 광산 뿐이니.
“아, 맞다. 이거 다들 받아요.”
곧장 인벤에 있던 강화석들을 잔뜩 꺼내놓았다.
막내별이 깜짝 놀란 듯 내게 물었다.
“와. 이거 다 어디서 났어요?”
“타란 제국 황제한테 좀 뜯어냈죠. 레이드 준비에 필요하다고 하니까 주던데요?”
그러자 나르샤 누나가 내게 엄지를 척 세워 보였다.
“세상에. 타란 제국 황제를 삥 뜯다니. 역시 네가 최고다.”
“하하…….”
그도 그럴 것이 10강 무기 강화석부터 해서 방어구 강화석까지 아주 바닥에 널려 있었으니까.
이걸 유저들에게 산다고 생각하고 돈으로 환산하면 억 소리는 그냥 난다.
것도 하나도 아니고 우리가 넉넉히 쓸 정도로 가져왔으니.
“제국 창고를 싹 쓸어왔죠. 다들 강화부터 하세요.”
곧 한참 동안이나 시스템 메시지에 새로 10강이 떴다고 아주 광고를 해대는 탓에 난감한 상황이 펼쳐지기도 했고.
- 와씨. 옵션도 안 보이네. 저거 다 네임드 템이라는 거잖아.
- 네임드 맞음. 이름이 아크 드래곤이잖아. 드랍템으로 잔뜩 나온 듯.
- 아크 드래곤 아닌 것도 있는데?
- 발뭉? 이건 또 무기야?
- 발뭉이면…… 마왕 무기 아님? 전에 역사책에서 본 적 있음.
- 지금 뜨는 것들 전부 네임드 템 이상인 듯.
- 네임드 템 이상으로 끝나? 죄다 마왕급 무기들인데?
- 세상에 아이셔스도 있다. 진짜 미쳤네.
- 아이셔스? 그거 마왕 서열 2위 아님?
- 우와. 벌써 몇 개째야?
- 하. 우리 서버에 이렇게 10강 강화석이 많았음? 뭐가 계속 올라 오냐.
- 주호네 얘들 어디 제국이라도 턴 거 아님?
- 그러게. 쟤들이라면 충분히 가능성 있다.
- 벌써 제국 먹었을지도.
- 아니. 이 정도면 마왕들 썰고 다니는 중 아님?
놀람 반, 부러움 반이 이어지는 채팅 글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이템 이름도 좀 가려 줬으면 좋았을 텐데요.”
다른 유저들의 관심을 끌지 않기 위해 가급적이면 숨기려고 했는데 말이지.
이젠 그들도 우리가 얼마나 앞서나가는지 확연히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내 작은 한숨에 재중이 형이 어깨를 으쓱하면서 웃어 보였다.
“어쩔 수 없지. 한 번은 강화했어야 했으니까. 계속 10강 아래로 들고 다닐 순 없잖아.”
그 말에 딱히 부정은 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가는 사냥터는 여력을 남기고 갈 만한 장소도 아니니까.
“반대로 우리도 다른 녀석들이 뭘 얻는지 알 수 있잖아.”
“그렇긴 하죠.”
전신을 비롯해서 다른 랭커들이 뭘 어디서 어떻게 얻는지까지 시스템 메시지로 얼추 예상해 볼 수 있었다.
그들도 지금은 꽤나 놀랬을 것이다.
상상했던 우리 전력과는 너무 차이가 나니까.
그리고 이젠 본격적으로 따라붙으려 할 것이다.
뭐 가만히 있어줄 우리도 아니고.
“그럼 더욱 격차를 벌리러 가 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