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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86화 (1,174/1,404)

#1186화 용신검 아스카론 (2)

딱히 아이샤 황녀가 죽고 사는 것에는 그렇게 관심 있는 건 아니었다.

아이샤 황녀를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런 생각이 들까 싶기도 하고.

다만 저 황녀가 죽어 버리면 그때부터는 상황이 굉장히 골치 아픈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것도 카베스 황제에 의해서 말이지.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타란 제국의 내전부터 시작해 성마대전에 끼칠 영향까지.

단순히 황녀 하나가 죽고 사는 문제와는 결이 아예 다른 문제였다.

에센시아 제국에서 레오나 에센시아가 죽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쪽도 바로 죽어 나가서는 안 되는 위치에 있었다.

물론 아이샤 황녀가 만약에 얼마 가지 않아 죽게 되면.

원래의 예정되어 있던 타란 제국의 역사대로 흘러가게 된다.

카샤스 대공이 황제가 되는 코스 말이지.

뭐 이쪽도 나쁘지 않긴 한데…….

결국 그 방향대로 흘러가면.

성마대전에서 마왕군에게 대판 깨질 테니까.

그다지 추천하고 싶은 코스는 아니다.

꼭 원 역사를 지키고 싶다면 해볼 만은 하겠지만.

이미 역사 자체가 어긋난 곳이 한두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벗어나게 될 테고.

수많은 유저들의 개입이 아마 가장 큰 영향을 주게 되겠지.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벌써 두 곳 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이니까.

어차피 바뀔 수밖에 없다면.

원래 방향대로 갈 수 없다면.

최소한 우리가 원하는 방향 정도는 정해줘도 되는 것 아니겠어?

용신검 아스카론을 없애 버린다는 내 말에 카샤스 대공과 아이샤 황녀의 눈이 더할 수 없이 커져 내 쪽을 쳐다보았다.

“용신검을 없앤다고?”

“어. 어차피 그거 있어 봐야 여럿 죽기만 하고 안 좋잖아? 아예 깔끔하게 내가 없애 줄게.”

내 대답이 꽤 어이없었던지 카샤스 대공의 포커페이스가 바로 깨져 버렸다.

너무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오는 딱 그 정도의 표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아이샤 황녀를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카베스 황제에게서 용신검을 뺏어 버리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언젠지 모르겠지만.

결국 카베스 황제는 그 용신검에 아이샤 황녀를 제물로 바치게 될 테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그런 카샤스 대공에게 바로 경각심을 가질 만한 말을 해주었다.

“용신검. 그대로 놔두면 더 커다란 제물을 바쳐야 할지도 몰라.”

그리고 곧장 시선을 아이샤 황녀 쪽으로 돌리자 카샤스 대공의 눈가가 확 찌푸려졌다.

그런데 아이샤 황녀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어요.”

“예상을 했다는 겁니까?”

“그냥……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 중에 하나겠지요.”

다시금 보이는 슬퍼 보이는 아이샤 황녀의 표정에 카샤스 대공이 안쓰럽다는 듯 그녀를 쳐다봤다.

역시 카베스 황제 사이에 뭔가가 있나 보네.

아니면 예상을 했으면서도 무대응을 했을 리가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애초에 아이샤 황녀가 카베스 황제에게 용신검을 넘겨주지도 않았을 터.

“아이샤 황녀께서는 역시 알고 있었나 보네요. 용신검이 사람을 제물로 삼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피를 탐하는 정도가 아니라요.”

내 추측에 그녀가 잠시 하늘을 바라봤다가 이내 크게 한숨을 쉬면서 말을 꺼냈다.

“네. 예상하신 대로 용신검은 사람을 제물로 쓸 수 있어요. 그것도 용혈을 가진…….”

“황족 말이죠?”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를 보던 카샤스 대공이 뭔가를 눈치챈 듯 내게 물었다.

“설마 그 제물이 아이샤 황녀라는 거냐?”

“너, 이제껏 뭐 들었냐?”

나와 아이샤 황녀가 말하는 모든 것들은 한 가지 사실만을 가리키고 있었다.

카베스 황제가 아이샤 황녀를 죽일 거라고.

“아니. 아무리 카베스 황제가 제멋대로라고 해도. 머리가 돌아버리지 않고서야…….”

“사람이 질투에 미치면 돌아 버릴 수도 있는 거지.”

질투라는 말에 카샤스 대공도 걸리는 게 있는지 순간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것도 황제 위가 걸린 일이라면 안 그렇겠어? 나 같아도 가능성이 있으면 해 버릴지도 모르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사실을 부정하려는 카샤스 대공에게 다시 현실을 직시시켜 주었다.

“어차피 고대 마룡은 얻으려면 시간이 걸리고. 만약에 고대 마룡을 어찌어찌 테이밍한다고 쳐. 그게 만약 자신이 아니고 네가 된다면? 아니지. 그러기 위해서 고대 마룡을 얻으려고 한 거 아니었어?”

이전부터 생각했던 게 있었다.

카샤스 대공은 단순히 용을 광적으로 좋아하기 때문에 고대 마룡을 얻으려고 했을까?

하지만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이유 때문에 타란 제국 황제와 척을 지면서까지 저렇게 할 리는 없으니까.

하지만 고대 마룡이 없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면?

반드시라고 해야 할 정도로 필요하다면?

그때는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지지.

“어차피 너도 황제가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려고 고대 마룡을 손에 넣으려는 거잖아.”

딱히 타란 제국 황제가 되려는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카베스 황제가 마음대로 하려는 걸 두고 보려는 생각도 없는 듯했고.

그 타협점이 고대 마룡일 것이다.

이 고대 마룡은 카베스 황제를 견제할 수 있는 물건으로는 차고 넘치니까.

그게 용신검을 들고 있는 카베스 황제라고 할지라도.

아마 이 녀석이 에센시아 제국에서 아크 드래곤을 손에 넣었다면.

굳이 나를 이곳 타란 제국에 데리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필요가 없으니까.

애써 위험한 고대 마룡이라는 녀석을 깨우지 않더라도 충분하기도 하고.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카샤스 대공이 깊게 숨을 쉬더니 내게 말했다.

“부정하진 않겠다. 하지만 카베스 황제는 용신검에 사람을 제물로 쓸 수 있다는 건 모르지 않나?”

그런 녀석의 말에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카베스 황제는 이미 알고 있을 거야.”

이건 순전히 내 추측일 뿐이지만…….

분명히 카베스 황제는 용신검이 사람을 제물로 쓸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어떻게……?”

“아까 대충 카베스 황제를 보니까 사람 한둘은 그냥 죽여 버릴 것 같더라고.”

“그게 무슨 뜻이지?”

“흐음. 그러니까. 자기 밑에 있는 녀석들 목 몇 개는 쉽게 날려버렸을 거란 말이다.”

내 설명에 카샤스 대공과 아이샤 황녀의 눈이 다시 놀람으로 커졌다.

“이미 용신검으로 흡수를 해봤다는 거군.”

“충분히 가능성 있는 말이에요.”

그런 두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이샤 황녀를 향해 말했다.

“일단 황제의 신하들 중 다수는 용혈을 약하게라도 타고났을 겁니다. 맞죠?”

“네. 맞아요. 옅은 용혈이긴 해도. 어느 정도는 섞여 있죠.”

“그러면 그들을 죽였을 때 용신검이 반응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내 물음에 아이샤 황녀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지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아무리 옅은 용혈이라도. 일단 용신검은 반응할 거예요. 그것도 목숨을 가져간 상황이라면…….”

“그럼 카베스 황제가 확실히 알겠네요. 용신검의 제물이 용 외에도 있다는 걸.”

“네. 용신검이 알려줄 테니까.”

이로써 확실해졌다.

이미 카베스 황제는 용신검으로 용혈을 가진 누군가를 죽이면 강해진다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이샤 황녀에게 말했다.

“요근래 타란 제국성에서 죽어나간 직계나 방계가 있을까요?”

내 물음에 아이샤 황녀가 눈가를 찡그리면서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곧 말해 주었다.

“그러고 보니 카베스 황제와 대립하던 황족 중 한 명이 의문사를 당하긴 했어요. 당시에는 증거가 없어서 넘어갔었는데…….”

“누가 한 건지 모른다는 거죠? 그런데도 확신을 가지고 말하시네요.”

“알고 있을 때와 모를 때는 떠올리는 게 다르죠.”

한마디로 내 말을 듣기 전에는 의심할 게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말이었다.

“아마 찾아보면 더 있을 겁니다. 용혈이 옅은 녀석들로요.”

“그건 왜죠?”

“갑자기 고위 용혈들이 떼로 죽으면 이상하지 않겠어요? 아무리 의심을 하지 않으려고 해도요.”

카베스 황제도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직은 말이지…….

적어도 용신검이 어느 수준 이상 힘을 갖추기 전에는 마구잡이로 죽이지도 않을 테고.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죽이려고 했겠지.

그리고 그 죽음의 마지막은…….

“계속해서 텀을 두면서 적당히 죽여보고 그때도 성에 안 차면…… 다른 걸 노리게 되겠죠. 갈증을 한 번에 채워 줄 무언가를요.”

그러면서 다시 아이샤 황녀를 쳐다보았다.

“하아. 저 말이네요.”

“네. 용신검을 한 번에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잖아요.”

아이샤 황녀.

당신의 목숨 값으로 말이지.

그리고 원래라면 아이샤 황녀의 목숨줄은 상당히 오래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와중에 변수가 생겨버렸다.

바로 카샤스 대공.

카샤스 대공을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제 카베스 황제는 어떻게든 단기간에 강해지려고 할 거예요.”

“그건 나 때문이냐?”

“어. 너 원래라면 성마대전에 나가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네가 돌아와서 더 이상 야금야금 용혈들을 죽이기 힘들 테니. 거기다 이젠 고대 마룡까지 걸린 판이고.”

“위협을 느낀다는 거군.”

“여기서 네가 딱히 뭔가 하지 않아도. 이미 상황이 그래.”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아마도 카샤스 대공은 이런 상황이 되지 않길 바랐던 것 같은데…….

“너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잖아. 이대로는 안 된다는 걸.”

그저 부정하고 싶었을 뿐.

상황은 계속 나빠지고 있었다.

그런 카샤스 대공을 향해 대놓고 말했다.

“만약 용신검을 없애지 못한다면…….”

“못한다면?”

“네가 직접 카베스 황제를 죽여야 해.”

내 조언에 카샤스 대공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아니면 옆에 있는 아이샤 황녀가 죽게 될 테니까.”

“……그건.”

“장담하지. 무조건 황녀는 죽어. 그때 가서는 손 쓸 수도 없을 테고.”

아이샤 황녀 역시도 흔들리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마음으로 알고 있는 것과 대놓고 말해 주는 건 꽤 큰 차이이기도 하고.

어차피 원 역사에서는 카샤스 대공이 카베스 황제를 죽이긴 할 거다.

그때의 심정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서술되어 있진 않지만.

분명히 지금과 같은 표정을 짓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하아…… 돌아오자마자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카샤스 대공이 말은 저렇게 해도 분명히 뭔가 마음을 고쳐먹은 듯 굳은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정말 카베스 황제를 죽이는 것밖에 길이 없나?”

“아니. 내가 아까 말했잖아. 용신검을 카베스 황제에게서 뺏는 것.”

“차라리 죽이는 게 더 쉽겠는데?”

뭐 카샤스 대공 입장에서는 바로 가서 목을 따 버리는 게 더 편한 일일 수도 있다.

나도 그걸 더 선호하긴 하지만.

아쉽게도 아이샤 황녀가 반대했다.

“카베스 황제와 붙으면 그대로 내전이 일어날 거야. 지금 타란 제국은 너와 카베스 황제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반씩 나누어져 있으니까.”

그래.

저게 바로 카베스 황제를 안달나게 하는 원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오롯이 제국 황제가 가져야 하는 권위를.

카샤스 대공이 나눠 가지고 있는 꼴이니까.

곧 아이샤 황녀가 시선을 돌려 내게 물었다.

“방법이 있으니까 말한 거겠죠?”

“네. 당연히 없으면 말을 꺼내지도 않았겠죠.”

“무슨 방법인가요?”

카샤스 대공과 레오나 에센시아, 우리 팀 모두 내게 귀를 기울였다.

“일단…… 카베스 황제가 한 번이라도 성 밖으로 용신검을 들고 나오게 만들 수 있나요?”

내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아이샤 황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신을 기리기 위한 제식이 곧 열려요. 그때는 반드시 용신검을 가지고 나와야 해요. 그리고 제사장인 제게 용신검을 건네 용신의 안녕을 비는 의식을 하죠.”

그 말에 바로 눈을 반짝였다.

“딱 좋네요. 그거면 됩니다.”

“네?”

이렇게 쉽게 될 줄은 몰랐는데?

생각 이상으로 일이 잘 풀릴 것 같아 입가에 웃음이 흘러나왔다.

“용신검. 제가 확실히 없애 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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