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4화 타란 제국 (11)
카샤스 대공.
그리고 카베스 황제.
타란 제국에서 가장 강한 두 사람을 뽑으라면 대부분의 유저들은 이 둘을 선택할 것이다.
뭐 정확하게는 카샤스 대공을 더 많이 뽑긴 하겠지만.
유저들 사이에서 카베스 황제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기도 하고.
우리도 직접 마주치고 나서야 이 카베스 황제의 강함에 대해 알 수 있었으니까.
일반 유저들은 타란 제국 황제를 알현할 기회조차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일테다.
평범하게 타란 제국의 역사가 흘러갔다면.
카샤스 대공이 가장 강력한 영웅으로 남을 것이다.
지금 눈앞의 이 여성을 제외하고는 말이지…….
전사 형도 잘못 들었나 싶어서 내게 물었다.
<방패전사> 지금 카샤스 대공이 자기보다 강한 용혈이라고 했어?
벙찐 표정으로 내게 묻는 걸 봐서는 정말 놀라긴 한 모양이었다.
<주호> 네. 분명히 그랬어요.
<방패전사> 하. 이거 성마대전 역사서는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누락된 거야? 이렇게 중요한 걸 기록하지 않았다고?
<주호> 워낙 구멍 난 곳이 많잖아요. 유저들이 직접 뛰어야 알아낼 수 있는 것도 많고요.
<방패전사> 그렇긴 한데. 이건 정말 큰 사건인데? 카샤스 대공이 누구냐. 타란 제국의 성패를 쥐락펴락하는 인물이잖아. 그런 카샤스 대공보다 더 강하다니……. 그런데 어째서 역사에는 한 줄도 나오지 않는 거지?
<주호> 저도 모르죠.
여기서 몇 가지 생각해볼 만한 건.
일단 저 카샤스 대공의 누나로 불리는 인물은 성마대전이 제대로 흘러가기 전에 이미 죽어 버렸다는 가정을 해볼 수 있었다.
성마대전 중간에 다른 이유로 죽어 버렸을 경우도 충분히 가능하고.
카샤스 대공 말대로 그보다 더 강한 용혈이라고 한들.
죽어 버리면 어차피 역사사에 한 줄도 기록되지 않는다.
카샤스 대공이 그녀를 위해 나중에 기록해 놨을 수도 있긴 한데.
어차피 타란 제국 자체가 성마대전이 끝나며 망해 버리니까.
의미가 없기도 하고.
성마대전에서 활약할 정도가 아니라면.
유저들이 그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
우리가 그녀의 존재를 전혀 몰랐듯이.
카샤스 대공이 누님이라고 소개한 여성이 나와 우리 팀.
그리고 레오나 에센시아를 한 번 쭉 둘러본 다음.
우아함이 느껴지는 미소로 우리를 반겼다.
수수한 듯 간편하게 옷을 차려 입었지만.
그녀에게서 흘러나오는 고고한 아우라는 절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을 긴장시키는 듯한 몸짓 하나하나가 그녀의 말을 집중하게 만들었다.
짙은 보리빛 눈동자가 우리를 주시하더니 이내 인사를 했다.
“아이샤 타란이라고 해요. 부족하지만 타란 제국의 재상을 맡고 있답니다.”
부족하다고?
아니다.
적어도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그녀가 부족하다고 여기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카샤스 대공보다 강한 용혈이라는데.
그 자격이라면 차고 넘치지.
재상의 위치에서 일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말이야.
타란 제국은 애초에 용혈의 강함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나라였다.
그런 타란 제국에서 카샤스 대공보다 강한 용혈이 무슨 일을 하든 알게 뭔가.
이곳에선 그녀가 하는 일이 곧 그녀의 명함이 된다.
설사 그게…….
타란 제국 황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재중이 형이 아이샤 타란을 잠시 바라보더니 이해가 되지 않다는다는 듯 말했다.
<불멸> 흐음. 만약 진짜 카샤스 대공보다 용혈이 강하다면 타란 제국의 황제를 노려볼 만도 했을 텐데.
<주호> 역시 그렇죠?
<불멸> 그런데 재상이라……. 이 집안에 뭔가 있긴 한 모양이네.
내가 이상하게 여긴 점을 재중이 형 역시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미 알고 있듯이 타란 제국은 용혈의 강함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
그런데 카베스 황제보다 강한 카샤스 대공은 그냥 대공직을 유지하고 있고.
심지어 그보다도 더 강하다는 아이샤 타란은 그냥 재상직을 하고 있다.
이건 이상해도 어딘가 한참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샤 타란이 레오나 에센시아를 한 번 더 훑어보듯이 바라보고는 알겠다는 듯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꼭 저건 레오나 에센시아가 얼마나 강한지 재어 본다는 느낌이랄까.
불쾌하다는 느낌보다는 서로의 전력을 살피는 정도라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대가 에센시아 제국의 황녀겠군요.”
“네, 처음 뵙겠습니다. 그럼 아이샤 황녀라고 불러드려야 하나요?”
“그렇게 하세요.”
확실히 재상직을 하고 있긴 해도.
그녀는 엄연히 타란 제국의 황녀 신분이었다.
그럼 카베스 황제와는 관계가 어떻게 되는 거지?
보아하니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도 그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모양이었다.
만약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첫 만남에 저렇게 놀라진 않았을 테니.
그렇다는 말은 역시나 그녀의 존재가 다른 제국에조차 알려지지 않았다는 뜻이 된다.
<불멸> 레오나 에센시아도 전혀 모르는 눈치지?
<주호> 네. 여기 와서 처음 본 것 같아요.
<불멸> 꽁꽁 숨겨둘 정도의 황녀라……. 그것도 카샤스 대공보다 강한 그녀를 말이지?
<주호> 이상하긴 하죠?
<불멸> 카샤스 대공이 저 성격에 그럴 리는 없을 테고……. 이건 카베스 황제의 뜻이려나?
재중이 형은 아무래도 카베스 황제를 더 의심하고 있는 듯했다.
확실히 내가 생각해도 카샤스 대공이 굳이 그녀를 숨겨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아니면 숨겨진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전부 파악하기 힘들었다.
조금 파봐야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이샤 타란이 내 쪽을 보더니 미소지었다.
“로가슈 왕국의 왕자님이라고 하셨죠?”
“네. 주호 로가슈입니다.”
“반가워요. 아크 드래곤 퇴치에 대한 이야기를 요즘 재밌게 듣고 있답니다.”
일단 소문은 다 퍼진 듯하네.
그리고 타란 제국의 재상이라면 거의 대부분의 속사정을 다 알고 있을 테다.
우리가 왜 여기로 초청되어 왔는지까지.
곧 그녀가 조금은 짓궂은 질문을 해왔다.
“카베스가 그대를 꽤 곤란하게 했죠?”
흐음.
타란 제국 황제를 그냥 이름으로 부른다고?
이건 조금 힌트가 되려나?
적어도 이들과 카베스 황제 사이의 관계를 그렇게까지 나쁘진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마치 대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물어보자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꽤 환대하게 반겨 주시더군요.”
“좋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처음엔 좀 당황했을 거예요. 그 애가 좀 질투가 있는 편이라서.”
“질투인가요.”
그 말을 듣자마자 슬쩍 카샤스 대공을 바라보자 아이샤 타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눈길을 흘렸다.
방금 황녀가 말한 것은 카샤스 대공에 대한 질투를 뜻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때 재중이 형이 내게 말했다.
<불멸> 카샤스 대공이 카베스 황제의 동생이라고 했었지?
<주호> 네. 전에 그렇게 들었어요.
<불멸> 흐음. 자기보다 너무 잘난 동생이라 이건가……. 그것도 타란 제국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모을 정도로. 이거 꽤 피곤하겠는데?
<주호> 카베스 황제가 질투할 만도 하네요.
사실상 황제라는 것만 빼버리면 모든 점에서 카샤스 대공이 카베스 황제를 압도하는 상황이었다.
무력이나 인기 모든 면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아서 그렇지.
무엇보다 언제든지 타란 제국의 황위를 노릴 수 있는 자리에 지금의 카샤스 대공이 위치하고 있었다.
우리가 보기에 딱히 카샤스 대공이 황위를 잡으려고 하는 것 같진 않지만.
겉으로 보기엔 충분히 가능성 있어 보이는 모양새라.
그러니까 장로회까지 나서 카샤스 대공을 밀려고 했을 것이다.
차기 타란 제국의 황제로.
황제가 되기에 모든 점에서 빠지는 게 없으니.
<불멸> 카샤스 대공도 어떻게 보면 꽤 불편하겠는데?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속이야 전혀 알 수 없긴 해도.
만약 정말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 황제를 노리고 있지 않다면.
지금의 위치 자체가 카샤스 대공에게는 꽤나 부담이 될 것이다.
그리고는 재중이 형이 조금 더 앞서 한마디 말을 꺼냈다.
<불멸> 이건 까딱 잘못하면 바로 내전이지.
<주호> 역시 그렇죠?
<불멸> 아아. 카샤스 대공의 입장이 어떻게 되었든. 주변 상황이 카샤스 대공을 그냥 놔두진 않을 테니까. 그리고 카샤스 대공이 직접 나서지 않더라도. 카베스 황제 쪽에서 계속 균열을 내면 언젠가는 깨질 거다.
이건 예정되어 있는 파멸이라고 할까.
지금의 카샤스 대공은.
그 존재 자체로 타란 제국 황제에게 커다란 위협이 된다.
<불멸> 카샤스 대공이 이걸 모를 리는 없을 테고.
<주호> 똑똑하니 잘 알 거예요.
이제껏 지켜본 카샤스 대공은 굉장히 두뇌 회전이 빠른 녀석이었다.
이 상황을 절대 모를 리가 없다.
그러니 아까 대전에서도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던 거려나?
본인이 직접 나서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걸 잘 알고 있었을 테니.
그때 챠밍이 내게 흘리듯이 말했다.
<챠밍> 혹시 카샤스 대공이 쭉 전장에만 있던 이유가…….
<주호> 흐음. 아마도 네가 생각하는 게 맞을 거야.
원 역사에는 카샤스 대공이 대공이었던 시절에는 거의 전장에서만 살았다고 되어 있었다.
후에 타란 제국 황제가 된 뒤에야 제국에 머물렀지.
처음에야 타란 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영웅이라 그런가 싶기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챠밍> 카베스 황제와의 충돌을 피하려고 했던 걸까요?
<주호> 역시 그렇겠지?
둘이 붙으면 필히 한쪽은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그건 현재의 타란 제국 황제인 카베스 황제일 테고.
기록된 역사가 그걸 증명해주고 있으니까.
<챠밍> 그럼 카샤스 대공이 카베스 황제를 죽여서 용신검을 얻었겠네요?
<주호> 높은 확률로.
전에는 정확히 출처를 알 수 없던 용신검이지만.
이젠 알 수 있었다.
역사 속 카샤스 대공의 용신검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언젠가 한 번은 내전이 일어났을 것이다.
카샤스 대공이 카베스 황제가 들고 있던 용신검을 소유했다는 것을 보면.
반드시라고 할 정도의 높을 확률로.
카샤스 대공이 카베스 황제를 죽였을 테니까.
우리가 끼어들어서 역사가 꽤 바뀌긴 했는데…….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역사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타란 제국 황제 위를 차지하기 위한 내전이.
<챠밍> 결국 반으로 쪼개지겠어요.
<주호> 흐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현재 성마대전에서 온 힘을 모아 싸워도 부족할 판에.
타란 제국의 내전은 그에 역행하는 일이 된다.
내전을 한 번 치르고 나면.
제국의 힘이 약해지는 건 안 봐도 뻔 한 일이라.
이건 곧 마왕군에게 패배하는 데 큰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하지만 카베스 황제는 언제가 되었든 분명히 카샤스 대공의 목을 노리겠지.
그건 역시…….
고대 마룡이려나?
만약 용신검을 가지고도 승산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면.
충분히 고대 마룡을 노려볼 만도 하다.
고대 마룡까지 있다면.
아무리 카샤스 대공이 강하더라도 카베스 황제의 상대가 되진 않을 테니.
그런데 그때 챠밍이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내게 물었다.
<챠밍> 오빠. 그런데 카샤스 대공은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게 된 걸까요? 고대 마룡은 한참 뒤에 나오니까 그 전까지는 내전도 없어야 할 텐데.
<주호> 글쎄…… 뭔가 카샤스 대공이 제국에 없을 때 문제가 있었을 수도.
챠밍의 말을 듣고 나니 나 역시 계속 의문이 생겼다.
어차피 원 역사대로라면 카베스 황제는 미치지 않고서야 절대 카샤스 대공에게 싸움을 걸지 않았을 것이다.
고대 마룡이 없는 상황에서는.
아니, 적어도 용신검을 완전히 완성시키지 않는 이상에야…….
그때 순간 아주 말도 안 되는 가정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으음.
이거 정말 가능성이 있는 건가?
곧 아이샤 타란을 바라봤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 카샤스 대공에게 바로 물어보았다.
설마 아니겠지.
“혹시…… 용신검이 사람도 흡수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