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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81화 (1,169/1,404)

#1181화 타란 제국 (8)

몇 가지 세세한 조건을 걸고 난 뒤.

타란 제국 황제와 대공이 내게 용의 맹세를 걸자 바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타란 제국 황제 카베스가 용의 맹세를 시전합니다. 》

《 타란 제국 대공 카샤스가 용의 맹세를 시전합니다. 》

그들의 심장에서부터 각각 하나의 붉은 빛이 흘러나오더니 곧 하나의 용의 형상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저게 용의 맹세인가……?

그 용들이 내 주변으로 날아와 한참을 맴돌고는 그대로 내 몸으로 흡수되어 사라져 버렸다.

혹시나 어떤 위해가 있을까 싶어서 긴장했지만 딱히 그런 시스템 메시지는 나오지 않았다.

반대로 다른 시스템 메시지는 나왔지만.

《 용의 맹세의 조건을 수락하면 용의 맹세를 받아들입니다. 》

조건?

곧장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이전에 타란 제국 황제와 말했던 것들이 모두 조건으로 들어가 있었다.

아마 이건 내가 조건인 아크 드래곤의 잔해를 넘겨주면 바로 체결이 되는 그런 시스템인 모양이었다.

“여기선 좀 그렇고. 따로 자리를 만들어 주시죠.”

챠밍이 소유한 마왕의 스태프에 아크 드래곤의 잔해가 전부 저장되어 있는 걸 저들이 아는 건 꽤 곤란하지.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귀찮은 일은 피해 가는 편이 좋고.

아직 여긴 적의 본진이나 마찬가지니까.

내 말에 타란 제국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허가한다.”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어디 좀 조용한 곳 좀 수배해 줘. 넓으면 더 좋고.”

“흠. 알겠다. 아무도 접근 불가능한 곳으로 준비해 놓지.”

눈치는 좋다니까.

그리고는 레오나 에센시아를 비롯한 우리 팀을 모두 데리고 그대로 제국성 대전을 빠져나왔다.

잠시 우리를 막아서는 타란 제국 경비병들과의 실랑이가 있긴 했는데.

타란 제국 황제가 손을 들자마자 그들은 바로 물러섰다.

“귀빈의 대우를 하도록.”

이 한마디로 딱 상황을 정리해 버리자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그렇게 카샤스 대공의 안내를 받아 제국성을 빠져나오자 나르샤 누나가 살짝 투덜거리듯 말했다.

“기분 나쁜 곳이네.”

“뭐, 좀 그렇죠.”

“기껏 도와주러 온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어떻게 보면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 그들의 요청을 받아서 온 건 맞으니까.

막상 와보니 이 모양이라…….

거의 반강제로 이곳에 묶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화가 나도 무리가 아니겠지.

“좋게 생각해요. 어차피 한 번은 황제와 대면했었어야 했어요. 결과적으로 꽤 유리하게 됐잖아요.”

우리 팀들도 다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나르샤 누나가 먼저 한 소리하는 바람에 딱히 더 이상은 말은 하지 않았다.

그때 이쁜소녀가 궁금한지 내게 와서 속삭이듯 물어보았다.

“오빠. 그런데 우리가 확실히 이길 수 있는 것 맞아요?”

“아. 아직 설명을 안 해줬구나.”

그리고는 재중이 형 쪽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은 그저 피식 웃고만 있을 뿐이었다.

“나중에 형한테 물어봐. 지금은 좀.”

조금 떨어져서 일행을 이끌고 있는 카샤스 대공을 바라보자 이쁜소녀가 알겠다는 듯 환하게 웃음을 보였다.

아마 이건 대략 이해를 했다는 뜻이려나?

곧 카샤스 대공이 내게 다가와서 말했다.

“일단 대공저로 옮기도록 하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곧 우리를 맞이하는 화려한 마차들이 줄지어 나타났다.

“에센시아 기사들은?”

“곧 따라올 거다. 함께 가기에는 마차가 좁아서 말이지.”

음.

마차들이 생각보다 훨씬 큰데……?

뭐 나름 생각이 있겠다 싶어서 일단 그 부분은 내려놓았다.

딱히 에센시아 기사단에게 위험이 될 것 같지도 않고.

만약 타란 제국 황제가 뭔가를 하려고 했다면 벌써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나와 카샤스 대공, 레오나 에센시아만 한 마차에 올라타고 우리 팀은 따로 다른 마차에 올라타고는 곧장 대공저로 출발했다.

“의외네요. 제국성을 아예 못 벗어나게 할 줄 알았는데.”

“용의 맹세가 있으니까. 따라붙던 것들도 전부 사라졌군.”

그 순간 감각을 퍼트려서 마차 주변을 살폈는데 확실히 그간 멀리서 감시하는 시선들도 모두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용의 맹세를 받은 이상 불필요한 경계라 이건가?

반대로 내가 이 상태에서 용의 맹세를 깨버리는 것도 문제였다.

조건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의 패널티.

꽤 오랜 시간동안 용의 기운에 내가 가진 능력치 절반을 봉인당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망했을 시 드랍률 역시 어마어마하게 높게 책정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안 지키면 나 역시 개털이 된다는 뜻이 되겠지.

한쪽으로만 무조건 유리한 계약이었다면 타란 제국 황제가 이렇게 우리를 풀어주진 않았을 것이다.

잠시 카샤스 대공을 빤히 바라보고는 불만을 토해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굳이 타란 제국에 오지 않았을 거야.”

사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올 생각이었지만.

여기서는 엄살을 좀 떨어줘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카샤스 대공에게 마음의 짐도 좀 지어줄 겸.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한숨을 푹 쉬더니 의자 뒤로 몸을 뉘였다.

“……황제가 좀 욕심이 많지.”

“조금이 아니던데? 원래는 네가 고대 마룡을 맡는 것 아니었어?”

원 역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나온 질문이었는데 내 질문에 카샤스 대공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지?”

흠.

이거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았던 거였나?

시기상으로도 너무 빠르긴 한데.

조금은 뜨끔한 마음에 바로 말을 돌렸다.

“아니 뭐. 나 같아도 타란 제국에서 제일 강한 놈한테 밀어줬을 테니까.”

그 제일 강한 놈이 지금은 카샤스 대공이다.

앞으로도 그럴 거고.

그런데 문제가 좀 있는 듯 했다.

내 시선을 그대로 보던 카샤스 대공이 이번에는 전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뭔가 틀린 건가?

“카베스 황제는 절대 약하지 않아. 지금은 나보다 강하기도 하고.”

“……뭐?”

음.

이건 원 역사와 달라도 너무 다른데?

분명히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의 최강의 영웅으로 항상 묘사되곤 한다.

그런데 정작 카샤스 대공의 입에서는 전혀 다른 말이 나왔다.

그때 카샤스 대공이 옆에 있던 레오나 에센시아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보였다.

응?

갑자기 왜 레오나 에센시아를 바라보지?

혹시 앞에서 하긴 민감한 이야기인가 싶어서 말을 끊으려고 했는데 레오나 에센시아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제 앞에서 하기 어려운 이야기라면 하시지 않아도 좋아요.”

“아니다. 어차피 한 배를 탄 입장인데. 그리고 그대도 알아두는 편이 좋겠지.”

그러자 레오나 에센시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건 타란 제국의 내정에 관련된 이야기일 확률이 높았다.

타란 제국 황제를 언급하다가 말을 멈춘 것이었으니까.

바로 카샤스 대공이 나를 보면서 말을 꺼냈다.

“아까 전. 대전에서 내게 물었던 것이 있지 않나?”

“응? 어떤?”

솔직히 너무 많이 물어봐서 뭘 물어봤는지 잘 모르겠…….

그 순간.

확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내가 물어봤으나.

카샤스 대공이 대답하지 않은 내용은 딱 하나뿐이었다.

“용신검인가…….”

용신검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레오나 에센시아의 눈빛이 확연하게 달라졌다.

아무래도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도 이런 무구에 대한 관심이 많기도 하고.

특히 그간 정령신의 무구를 얻기 위해 했던 노력을 생각해보면 말이지.

그리고 그런 레오나 에센시아에게서 바로 말이 나왔다.

“용신검이라면…… 아스카론인가요?”

그 물음에는 카샤스 대공도 꽤 놀란 듯 레오나 에센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참. 그대도 알고 있었나?”

“그냥 좀 관심이 있었을 뿐이에요. 아마 대부분의 에센시아 황족들은 모르고 있을 거예요. 아니. 저와 제국 황제 정도만 알고 있겠죠.”

확실히 에센시아 제국 황제는 신의 물건들을 모으는 취미 아닌 취미를 가지고 있었지.

비록 아직은 하나도 못 모은 듯 하지만.

하지만 현재 그 누구보다 신의 물품들에 대한 정보가 많다는 건 사실이었다.

에센시아 제국의 정보력까지 총 동원하면 더 그럴 테고.

그런 황제니까 당연히 타란 제국의 보고나 마찬가지인 용신검 아스카론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 이쪽으로는 지대한 관심이 있는데다가 제국의 비밀 연구소에서 직접 일하고 있으니까.

신의 무구에 대한 정보력만큼은 남들 부럽지 않을 터.

“사실은 자료를 찾아보면서도 실존할 거라는 생각은 못 했어요.”

“용신검 말인가?”

“아뇨. 제가 가진 이 검이요.”

지금 그녀의 허리춤에는 내가 가진 검과 거의 유사한 형태의 르아 카르테가 걸려 있었다.

“솔직히 이 신의 무구를 얻기 전에는 그저 문헌의 기록 정도로만 여겼거든요.”

저건 어쩌면 레오나 에센시아 입장에서는 당연할 수도 있는 말이었다.

애초에 지금 시점에서 에센시아 제국에 신의 무구는 하나도 존재하지 않으니까.

보지 못한 것을 마냥 믿는 건 어렵기도 하고.

그런데 그 신의 무구 중 하나인 정령신의 무구를 얻은 지금은 확신하는 듯 했다.

고대 기록에만 남아 있는.

타란 제국에 존재하는 용신검.

실존할지 아닐지 모르지만.

자신이 얻은 이상 믿을 수밖에 없다.

이 상황에 내가 용신검을 언급하니 카샤스 대공이나 레오나 에센시아나 모두 놀랐겠지.

그게 서로 다른 이유긴 해도.

“맞아. 보통은 아무도 모르지. 신의 무구라는 건 말이야.”

그러면서 카샤스 대공이 날 빤히 바라보았다.

조금은 의심스럽다는 눈빛을 감추지 않을 채.

“주호 왕자. 그대는 어떻게 정령신의 무구를 알고. 거기다 용신검 아스카론까지 알고 있는 거지? 이건 아무리 로가슈 왕국의 정보력이 좋다고 해도 알 수 없을 텐데?”

역시 너무 정보를 많이 풀었나?

카샤스 대공으로는 충분히 의심을 할만한 상황이었다.

아마 내가 알기로 용신검 아스카론은 황족 대대로 베일에 싸인 물건이었을 것이다.

그런 물건이 전혀 외인에게서 나왔으니.

잠시 한숨을 쉬고는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아스카론. 용들의 신.”

그리고는 바로 말을 이었다.

“로가슈 왕국에는 모든 신들의 전승이 모아진 기록이 있어. 성마대전 훨씬 이전에 기록된.”

내 말에 카샤스 대공과 레오나 에센시아의 눈이 놀란 듯 크게 떠졌다.

“그런 기록이 있나?”

“세상에. 정말인가요?”

당연히 뻥이지.

애초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하지만 이들은 로가슈 왕국이 어디 붙어 있는지 전혀 모른다.

아마 성마대전이 끝나고 나서도 찾기 힘들 테고.

지금 같은 상황이면 영원히 모른다고 봐야지.

그럼.

그냥 거짓을 좀 섞어주는 편이.

앞으로의 일을 진행하는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흠. 전부는 아니지만. 타란 제국의 전승에 대한 내용도 있거든. 그리고 에센시아 왕국 역시도 마찬가지고. 아마 에센시아는 정령신의 최초 발현지 아니었나?”

레오나 에센시아는 더 놀랄 것도 없다는 듯 나를 빤히 바라봤다.

“……맞아요.”

이건 원 역사의 나중에 되어서야 겨우 나오는 문구였다.

르아 카르테가 에센시아 제국에 있다는 걸 안 순간부터 전사 형이 뒤져내서 찾아낸 문구.

그런 곳에 정령신의 무구가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타란 제국은 용신인 아스카론의 혈통이 이어진 셈이고.”

“……흠. 너무 정확하니 할 말이 없군.”

카샤스 대공도 졌다는 듯 혀를 내둘렀다.

용의 혈통이라는 것까지는 알고 있지만.

그 기원까지는 정말 비밀에 부쳐졌으니까.

이걸 외부인이 안다는 것 자체가 놀랄 일이다.

에센시아 제국에서 정령신의 무구를 가진 대영웅.

레오나 에센시아가 나오는 건 필연적인 일이고.

반대로 타란 제국에서 용신검을 가진 카샤스 대공이 대영웅으로 나오는 것 역시도 반드시 일어났을 일이다.

문제는.

왜 카샤스 대공이 안 가지고 있느냐인데.

아직 소유를 못한 건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그때 카샤스 대공이 굳은 표정으로 내게 말을 꺼냈다.

“전에 용신검이 어디 있냐고 물어봤었지?”

“그래.”

그리고 나온 뜻밖의 말에 나 역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용신검 아스카론을 가진 건…… 지금의 황제다.”

“뭐?”

하.

이거 대체 역사가 어디서부터 꼬인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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