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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77화 (1,165/1,404)

#1177화 타란 제국 (4)

계약?

타란 제국의 황제에게 계약이라는 말이 나오자 바로 고개를 돌려 카샤스 대공을 바라보았다.

오면서 딱히 카샤스 대공에게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기 때문에.

하지만 그 역시도 잘 모르겠다는 듯 의이한 눈빛을 보내는 건 똑같았다.

서로 미리 약속되지 않은 일인가?

그렇다는 말은 지금의 저 계약이 타란 제국 황제의 단독 행동이라는 건데…….

일단 제안의 내용이 무엇이 되었든.

내 쪽에서 듣기도 전에 거부할 권리는 없어 보였다.

당장 여길 박차고 나가면 또 모를까.

짧게 한숨을 쉬고는 타란 제국의 황제를 보면서 물었다.

“무슨 제안입니까?”

내가 들어보겠다는 제스처를 취하자 타란 제국의 황제 역시 이번엔 마음에 드는지 내게 제안했다.

“듣기로 대공을 통해 우리 제국과 준 동맹국을 맺었다지?”

준 동맹국.

사실 말이 좋아 동맹국이지.

실제 타란 제국과 실체가 없는 로가슈 왕국의 국력 차이는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이건 그냥 카샤스 대공이 날 붙잡기 위해서 내놓은 하나의 패라고 해야 하나?

준 동맹국이라면 타란 제국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고.

필요하다면 교역과 물자를 지원받을 수도 있다.

유사시에는 병력 지원까지도 가능할 테고.

다만.

정식 동맹과는 달리 한쪽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파기될 수 있다는 점이 다르지만.

당장 카샤스 대공이 파기할 리는 없으니까.

내 쪽에서 대놓고 깨지 않는 이상에야 거의 동맹국과 같은 효과를 볼 것이다.

“그렇습니다.”

내 대답을 들은 타란 제국의 황제가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제안을 꺼냈다.

“그럼, 내가 다시 제안하도록 하지. 로가슈 왕국이 타란 제국의 정식 동맹국이 되는 건 어떤가?”

뭐?

순간 카샤스 대공도 놀랐는지 몸이 움찔하는 게 보였다.

거기다 레오나 에센시아 역시도 마찬가지.

정식 동맹국이라는 건.

말 그대로 동등한 입장에 있는 국가 사이에서나 할 수 있는 장치였다.

국가 사이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대부분의 제한이 풀린다고 해야 하나?

군사 동맹뿐만 아니라.

교역에 따른 세금 같은 부분에서 특히 더 그렇다.

전에 전사 형에게 듣기로 타국에서는 절대 살 수 없는 특수 물품에 대한 권리까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거기다 이쪽은 한쪽이 파기하고 싶다고 쉽게 파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막대한 위약금을 지불하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피해 보상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현재 타란 제국이 굳이 다른 국가들과 교역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걸 고려해 볼 때.

이건 잡기만 하면.

그냥 돈방석에 앉는 일이 될 것이다.

절대 구할 수 없는 타란 제국의 교역품을 사서 나르기만 해도 어마어마한 돈을 벌 수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 이곳은 용의 나라다.

각종 용에 관련된 특수 아이템들이 즐비하게 준비되어 있을 터.

그중에서 타란 제국의 귀족이 아니면 절대 살 수 없는 물품까지도 있을 테다.

어쩌면 황족까지 제한이 걸린 물품이 있을 수도 있고.

이건 그런 물건들까지 접근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내가 그렇게 많은 기여도를 쌓은 에센시아 제국에서도 정식 동맹국을 제안하지는 않았다.

굳이 해봐야 어떻게 되었든 에센시아 제국의 손해거든.

로가슈 왕국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데.

단지 나 하나만 보고 정식 동맹을 맺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날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도 한몫했을 테고.

적어도 정식 동맹을 맺으려면.

타란 제국과 에센시아 제국처럼 서로 체급이 맞는 정도의 위치에는 있어야 한다.

이번에 맺은 상호방위조약 같은 것들 말이지.

그 정도로 커다란 계약은 애초에 서로 급이 맞아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실제 땅덩어리도 없는 로가슈 왕국과 체결하기에는 역시 무리다.

그런데 지금.

그 정식 동맹을 하자고 타란 제국의 황제가 제안을 해왔다.

이건…….

아무리 봐도 타란 제국이 너무 밑지는 장산데?

정식 동맹을 해봐야 타란 제국 쪽에서 우리에게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반대로 우린 그야말로 타란 제국을 프리패스로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설마 이 정도로 밑지는 장사를 하자고?

그것도 타란 제국의 황제가?

아무리 다른 제국과 교류가 없었다고 해도.

우리와 이런 동맹을 맺는 건 애초에 말이 안 된다.

그렇다는 건.

내게 그만큼의 뭔가를 바란다는 뜻일 텐데…….

카샤스 대공을 쳐다보자 그 역시 다소 당황한 듯 타란 제국 황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후에 나올 말들이 대충 예상이라도 되는 듯.

세상에 공짜는 없을 테니까.

휴.

어쨌든 들어는 봐야지.

이걸 받아들이던.

그렇지 않던 말이야.

“제게 바라는 게 있습니까?”

내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타란 제국 황제가 재밌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호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벌써 눈치챈 건가.”

“딱히 로가슈 왕국에서 타란 제국에 내세울 것이 없군요.”

나를 빼면 말이지.

당연히 타란 제국 황제도 그걸 원할 테고.

곧 눈빛을 반짝이던 타란 제국 황제가 이번엔 카샤스 대공 쪽을 바라보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고대 마룡. 그대가 그걸 내게 가져오면 된다.”

응?

방금 내가 잘못 들었나?

아니.

어차피 원 역사대로라면.

고대 마룡은 카샤스 대공에게 가야 하는 게…….

그 순간 머리에 스쳐가는 생각.

또다시 역사가 비틀어졌다는 건가?

아마 내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언제가 되었든.

결과적으로 카샤스 대공이 고대 마룡을 손에 넣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지.

아직 카샤스 대공은 충분히 준비되지 못했다.

원 역사와 다르게 레이드 일정이 너무 앞당겨진 것도 있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아까는 그냥 넘어갔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타란 제국 황제의 뒤에 있는 저 거대한 용.

어쩌면 저렇게 용을 거느리는 모습이 당연하다면 당연할 것이다.

일단은 용에 특화된 제국의 황제니까.

그런데 만약 저 황제 역시 용에 대한 욕심이 많은 거라면…….

아니.

이건 거의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다.

카샤스 대공만큼이나.

저 타란 제국의 황제 역시도 용에 대한 탐욕이 진하다.

특히 그게 전설에 나오는 누구도 가지지 못한 고대 마룡이라면 더 그럴 테고.

음.

하지만 원 역사에는 이런 일이 없었지 않나?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기록 자체가 잘못됐을 수도 있고.

혹은 아예 언급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타란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과의 관계가.

역사는 승자의 편에서 기록되니까.

당연히 최종적으로 고대 마룡을 손에 넣은 카샤스 대공 위주로 역사가 짜여졌을 터.

이건 어떻게 보면…….

원래 일어났었을지도 모를 역사 중간에 내가 던져진 셈이라고 보면 된다.

바로 재중이 형에게 연락을 넣었다.

<주호> 형, 그동안 뭔가 착각한 것 같아요.

<불멸> 왜? 황제가 이상한 짓이라도 해?

<주호> 네. 아무래도 제국 황제와 카샤스 대공. 이 둘이 서로 경쟁 관계인 것 같아요.

<불멸> 음? 그건 역사에 없는 내용인데?

역시 재중이 형도 모른다.

당연히 전사 형도 까맣게 모르고 있을 것이다.

<불멸> 전사한테 물어봤는데 얘도 모른다.

<주호> 네. 아마 역사에 기록 안 된 일이니까요.

<불멸> 흐음. 그래서 둘이 경쟁 관계라 이거지?

<주호> 이건 제 생각인데…… 이번에 고대 마룡을 손에 넣은 쪽이 타란 제국의 패권을 잡을 확률이 높아 보여요.

<불멸> 확실히 그럴 가능성도 무시 못 하겠는데. 카샤스 대공의 영향력을 고려해 본다면. 아까 봤지? 시민들하고 기사들이 죄다 나와서 환호하는 걸.

<주호> 아무래도 전쟁 영웅이잖아요. 인기가 그만큼 좋겠죠.

<불멸> 지금 시대가 시대인 만큼 강력한 영웅일수록 입지가 완전 다르겠지. 그리고 그게 원래의 황제를 능가할 정도라면…….

<주호> 제국 황제 역시도 위협을 느끼겠네요.

<불멸> 서로 죽고 못 사는 사이가 아니고서야. 이 정도로 카샤스 대공이 커버리면 어쩌면 당연한 거려나?

이윽고 재중이 형이 한 가지 가정을 내놓았다.

<불멸> 흠. 그래서 자꾸 카샤스 대공을 외부로 내돌린 건가? 그것도 성마대전 한복판에.

<주호> 황권에서 멀어지게요?

<불멸> 그렇겠지. 혹시 성마대전에서 죽어 주면 더 좋았을 테고. 강력한 위협을 없애려는데 자기 손을 쓰지 않고 죽이기에는 그게 최적일 테니까.

재중이 형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하나씩 부족했던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불멸> 문제는 그렇게 내돌렸던 카샤스 대공이 중간에 돌아와 버렸다는 거지. 그것도 에센시아 제국의 황녀와 로가슈 왕국의 왕자를 데리고.

아마 원 역사대로라면 카샤스 대공은 그때 그 시점에서 에센시아 제국에 오면 안 되는 인물이었다.

성마대전에서 한참 싸우고 있어야 할 인물이지.

그런데 중간에 우리라는 변수가 나타나 버렸다.

아크 드래곤 역시 마찬가지고.

그때도 카샤스 대공이 왜 에센시아 제국에 왔냐 다들 의아해하기도 했다.

없었어야 하는 인물이 있으니.

역사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고 해야 하나.

타란 제국 황제 입장에서도 어이없는 일이었을 테지.

나가 싸우라고 보낸 녀석이 타국에.

그것도 적대국인 에센시아 제국에서 놀고 있다니 더 말해 뭐할까.

그러다가 결국 여기까지 왔다.

<주호> 그 덕분인지…… 타란 제국 황제가 아주 후하게 조건을 주네요.

<불멸> 조건?

<주호> 네. 고대 마룡을 잡아와서 자신에게 바치면 정식 동맹을 맺겠다네요.

내 말을 듣는 순간.

재중이 형이 바로 웃음을 터트렸다.

타란 제국의 황제가 봤으면 바로 화를 낼 정도로.

<불멸> 크큭. 고작 그걸로? 참 웃기는 놈이네. 그래서 어떻게 하려고?

고작 그것이라.

재중이 형 말도 딱히 틀리진 않았다.

물론 정식 동맹을 맺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딱히 그게 없다고 문제는 또 아니었다.

무엇보다 타란 제국 황제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바로 카샤스 대공과 척을 치라는 뜻이 되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원 성마대전 역사 통틀어 가장 강하다는 몇 명에 손꼽히는 괴물과 척을 지는 건 웃기는 일이다.

그것도 카샤스 대공과 꽤 적대적일 지도 모르는 인물과 손을 잡는 건 더 문제고.

보아하니 타란 제국의 황제 역시도 용혈을 진하게 타고난 듯했다.

카샤스 대공과 마찬가지로 말이지.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거대한 용을 거느릴 수는 없을 테니까.

물론 카샤스 대공만큼 강력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일정 수준 이상의 용혈은 될 것이다.

애초에 경쟁도 되지 않을 정도라면.

이미 카샤스 대공이 타란 제국을 먹어치웠을지도 모르는 일이라.

고대 마룡을 원하는 것도 그것만 얻으면 카샤스 대공보다 앞설 수 있다는 확실한 자신이 있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내게 베팅한 물품이 잘못 되었다.

재중이 형도 말했지만 썩 내게는 매력적이지 않는 조건이라.

아쉽긴 해도.

없다고 문제될 건 없다.

순간 나도 모르게 속에 담고 있던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쯧. 걸려면 용신검 정도는 걸어야…….”

그 순간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카샤스 대공의 고개가 확 옆으로 돌아 내 쪽을 놀란 듯이 쳐다보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그간 보지 못했던.

경계하는 것 같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이기도 했고.

“너, 그걸 어떻게…….”

아차.

이건 실수했네.

아마도 지금의 이 시점에서는 용신검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물건일 텐데.

다행히 타란 제국 황제는 내 말을 듣지 못한 듯 반응이 없었지만.

이거 참.

이미 카샤스 대공이 들어 버렸으니 어쩔 수가 없다.

타란 제국의 최고의 비밀.

이걸 황족도 아닌 외부인이 알고 있는 것 자체가 문제니까.

슬쩍 카샤스 대공을 보면서 아주 작게 속삭였다.

“용신검 아스카론. 지금 누가 가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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