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1화 신의 파편 (15)
아마 처음부터 몇 가지의 착각을 했기에 지금껏 찾아내지 못 했을 것이다.
일단 전대 르아 카르테의 주인이 남성일 것이라는 추측.
이 오해는 예전에 아스티아가 전대 영웅을 언급했을 때.
그 영웅이 여성일 거라는 언급을 전혀 해 주지 않았다.
물론 아스티아가 그걸 일부로 숨긴 건 아니겠지만.
남성이라 착각하기에 충분한 말들을 지나가듯 하기도 했었고.
재중이 형을 비롯한 우리 모두가 당연히 전대 영웅이 남성일 거라고 여기고 찾아다녔다.
그러니 당연히 찾아낼 수가 없지.
심지어 레오나 에센시아가 우리 시야 안에 들어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히 관련은 있지만.
당연히 그녀의 뒤에 다른 누군가가 있을 거라고 착각을 해 버렸다.
레오나 에센시아는 아니라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었으니.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거의 대부분의 인상착의가 지금의 레오나 에센시아 모습과 들어맞는다.
에센시아 제국 내에서도 특수하다고 할 수 있는 은빛을 띄는 머릿결이라던가.
이러한 특성을 가진 이가 제국에 거의 없다는 걸 고려해 보면 처음부터 의심을 했어야 했다.
레오나 에센시아를.
어쩌면 황녀의 신분이기에.
더 그런 의혹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고.
전대 영웅이 에센시아 제국 황실의 사람이라는 이야기는 역사서 그 어디에도 언급되지 않으니까.
의심되는 일은 또 하나 더 있었다.
지하 감옥에서의 일.
우리야 그곳에 당연히 있을 거라 여긴 레온 브라이더라는 전대 영웅을 찾아서 지하 감옥에 들어갔었는데.
그곳에는 전혀 다른 인물이 있었다.
이름만 레온 브라이더인.
영웅과는 거리가 너무 먼 그 NPC는 애초에 우리가 찾던 인물도 아니었고.
좀 특이했던 건 그 녀석을 옆에서 지키고 있던 사내였다.
후에 알고 보니 15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이었지.
어쩌면 여기서부터 의심을 했어도 충분히 찾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고.
레오나 에센시아를 따르던 15기사단.
그리고 그 기사단의 부기사단장 정도면 충분히 연결고리가 되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레오나 에센시아가 계속 비밀 던전에 집착하는 모습을 생각해보면…….
아마 늦던 빠르던.
언제가 되었든.
그녀가 비밀 던전 안에 있는 르아 카르테를 차지했을 확률이 높았다.
정령석이 가득한 비밀 던전.
그리고 레오나 에센시아 자체가 정력족의 혈통이니.
다른 이들보다는 공략에 월등히 유리하겠지.
거기다 그녀가 내게 했던 말도 떠올랐다.
자신은 비밀 던전을 공략할 방법이 있다고.
그때는 그게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었다.
그녀와 함께 비밀 던전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에야 우리가 알 방법은 없으니까.
이후에는 그녀와 떨어져서 헤르마늄 광산으로 갔으니 그걸 확인할 수도 없었다.
예상하기에 아마 그녀가 정령족이니 비밀 던전을 제집 드나들 듯 드나들 수도 있었겠지.
걸리는 건 비밀 던전에도 분명히 파수꾼이 있었을 텐데.
그건 레오나 에센시아가 처리하지 못했을 확률이 높았다.
기본적으로 지금 시대의 던전들은 대체적으로 난이도가 굉장히 높기도 한데.
그것도 에센시아 제국 내의 비밀 던전의 난이도는 말해 뭐 할까.
추가로 기사단을 데리고 들어갔다고 하더라도.
이전의 다른 황자나 황녀들이 모두 실패했다는 것을 봐서는.
그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난이도가 결코 낮지 않았을 터.
그런데 이 상황에 타란 제국의 괴물인 카샤스 대공이 끼어들어 버렸다.
카샤스 대공의 전투력 자체가 거의 마왕에 버금가는 괴물이라는 걸 고려해 본다면…….
레오나 에센시아가 어쩌지 못하는 파수꾼을 대신 처리해 주었을 테고.
그렇게 가장 큰 문제가 처리되면.
이후에는 레오나 에센시아의 독무대였을 것이다.
마치 그녀를 위해 준비된 무대처럼.
정령족이 정령신의 무구를 찾을 수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리고 그 와중에 카샤스 대공도 레오나 에센시아의 능력을 확인했을 것이다.
혈통에서 오는 숨겨진.
최강의 영웅이 될 만한 잠재력을.
거기다 정령신의 무구인 르아 카르테까지 소유한 이.
원 역사에서.
이 조건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이는.
내가 아는 한 딱 한 명뿐이다.
레오나 에센시아.
그러니까.
전대 최강의 영웅.
레온 브라이더는.
애초에 레오나 에센시아였다는 거다.
다른 숨겨진 누군가가 아니고.
<주호>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건 그녀밖에 없어요.
<불멸> 아아. 지금껏 헛발질 한 거지.
<주호> 성별이 왜 다르게 알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불멸> 뭐 남장이라도 하고 다녔을려나? 어차피 풀 플레이트를 착용하면 딱히 체격 말고는 달리 확인할 길도 없잖아. 철저히 얼굴을 숨기고 다니면 착각할 수도 있어. 좀 체구가 작은 남성이라고 여기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닐 테고.
재중이 형 말에는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만약에 황녀라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처음부터 모습을 작정하고 감췄다면.
최측근 정도가 아니면 절대로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기록이 불분명하다는 것도 문제였고.
레온 브라이더라고 생각되는 레오나 에센시아의 능력치가 너무 들쑥날쑥했다고 해야 하나?
어떨 때는 마왕을 상대할 정도로 강하다가.
또 다른 시점에서는 그보다 전력이 한참 약했으니까.
<주호> 어쩌면 계속 대역을 세웠을 수도 있겠어요.
<불멸> 그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여러 사람이지 않은 이상에야 전력이 그렇게 오락가락하진 않으니까. 지하 감옥에서도 그녀의 대역을 세워놨었잖아.
<주호> 네. 그렇죠.
우리가 생각했을 때 그때의 지하 감옥에 녀석 역시도 대역 중 한 명이었을 것이다.
레온 브라이더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주호> 레온 브라이더라는 영웅 자체가 레오나 에센시아 황녀가 만든 가상의 인물이겠네요.
<불멸> 그래.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 나름대로 뭔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영웅이겠지.
<주호> 그러고 보니 우리가 에센시아 제국에 도착했던 날. 황족 살해가 일어나는 날이었잖아요.
<불멸> 아. 그렇네. 레온 브라이더가 황족을 죽이지 아마. 흠. 이거 생각보다 황녀가 무서운 사람이었잖아?
황족을 알리바이가 완벽한 대역을 세워서 죽이는 일.
그것도 지하 감옥에 있는 녀석이라면 그보다 완벽한 알리바이는 없다.
이건 아무나 쉽게 생각할 만한 일은 아닌 거다.
<불멸> 큭. 우리 황녀님. 딱히 우리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도 앞으로 꽤 재밌는 일을 벌였겠어.
아마 원 역사대로 흘러갔다면.
제국 황제가 죽고 난 뒤.
1황자가 황위에 오르고.
다른 황자와 황녀들은 유폐되거나 제국에서 분리되어 빠져 나간다.
그중에 5황녀도 포함되어 있을 터.
그녀가 먼저 죽었다면.
애초에 레온 브라이더라는 인물도 나오지 않았을 테니까.
후에 최강의 영웅이라고 불리는 걸 보면.
에센시아 제국이 망하고 난 뒤에도 그녀는 계속 성장했을 것이다.
망하기 전에 제국 자체를 먹진 못했지만.
그녀가 강해진다는 건 사실이지.
뭐 지금은 우리가 개입한 덕분에.
그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라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전대 최강의 영웅이 되는 건.
예상하기에 정령신의 무구를 얻고 난 뒤가 될 테니까.
원래라면 한참 후에나 얻었어야 할 르아 카르테를 말이지.
그녀는 이미 손에 넣었다.
그것도 성마대전 초반부에.
거기다 에센시아 제국의 황제가 당장 죽을 것 같지도 않다는 것도 문제고.
<주호> 하. 역사가 너무 틀어져 버렸네요.
<불멸> 그러게.
최대한 역사가 어긋나지 않게 움직이려고 했지만.
이미 많은 부분에서 삐걱거리더니.
지금은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어긋나 버렸다.
이 순간에도 계속 원래의 궤도를 계속 벗어나는 중이기도 하고.
당장 레오나 에센시아만 해도.
원래의 성장 과정과는 전혀 다른 루트를 타버렸다.
아크 드래곤이 처들어오는 과정에서 제국을 지휘하며 제국 황제의 신임을 얻은 것부터 시작해.
이젠 존재하지도 않았던 신규 기사단을 얻을 예정이고.
무엇보다 르아 카르테.
또 역사에서 변해 버린 녀석은…….
미래의 최상급 영웅 중에 한 명인.
절망의 기사 라첼 공작.
이 녀석은 아예 탈선하는 수준으로 열차를 벗어나 버렸으니.
거기다 카샤스 대공은 아예 대놓고 에센시아 제국의 황위 계승에 간섭하는 수준이 되어 버렸다.
마왕 헤르게니아는 성마대전 중후반부에나 등장하는데.
이미 봉인이 풀려서 내 옆에서 놀고 있기도 하고.
성마대전의 최전선 격전지에서는 내가 정보를 확 풀어버리는 바람에 전쟁의 속도가 점점 가속화되어가고 있었다.
안 그래도 타란 제국에서 그것 때문에 전력을 더 강화하기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는 중이다.
잘 모르긴 해도.
에센시아 제국 역시도.
비슷한 움직임을 가져가지 않을까.
아.
그리고 에센시아 제국도 개방된 헤르마늄 광산을 벌써 개척 중이었으니까.
이쪽도 변화가 심한 건 마찬가지였다.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직접 나서서 기사단을 파견했는데.
그 과정에서 기사단들이 내게 몰살당하기도 했고.
이려면 앞으로 제국 역시도 뭔가의 변화가 생길 게 분명해.
원 역사라면 절대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연달아 일어나고 있다는 거지.
<주호> 휴. 이걸 대체 어디서부터 손대야 할지 감도 안 잡히네요.
<불멸> 이미 늦었지 뭐.
재중이 형도 원래의 역사대로 가는 건 이미 포기한 듯했다.
솔직히 나 역시도 같은 생각이니까.
어긋나 버린 건.
이미 잡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상황을 최대한 이용해 먹을 수밖에.
<주호> 레오나 에센시아를 만나 봐야겠어요.
정말 레오나 에센시아가 원래의 르아 카르테의 주인이라면.
한 번쯤은 그녀와 만나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해볼 필요가 있었다.
앞으로의 일정도 문제고.
<불멸> 그래. 타란 제국으로 떠나기 전에 이쪽도 정리는 하고 가야겠지.
<주호> 흐음. 그녀를 타란 제국으로 데리고 가면 좋을 텐데.
앞으로 전대 최강의 영웅이 될 그녀라면.
변수가 많은 지금.
옆에 두고 지켜보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었다.
<불멸> 아마 제국 황제가 절대 허락하지 않을걸?
<주호> 역시 그렇겠죠?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원하는 건.
신의 가호가 담긴 신의 파편.
그리고 그와 유사한 힘을 가진 물건은.
지금 레오나 에센시아가 소유한 정령신의 무구였다.
뭐 르아 카르테가 아직까지는 그냥 장식품 수준에 불가한 무기라 당장 뭔가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만.
제국 황제가 딴마음을 먹으면…….
아직은 약한 레오나 에센시아가 역사와 달리 중간에 사라지게 될 지도.
현재의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가장 위협이 되는 건.
다른 아닌 같은 에센시아 제국의 황제였다.
그녀가 가장 조심해야 하는 인물임에도.
아직은 벗어나지 못하는.
황녀라는 신분은.
쉽게 떨쳐낼 수 있게 아니니까.
만약 우리가 타란 제국으로 떠나게 되면.
그녀는 계속해서 제국 황제의 위협 속에 노출되게 될 것이다.
뭐 반대로 제국 황제가 그녀를 오히려 아낄 확률도 있긴 할 테지만.
그런 불확실한 가능성에 모험을 걸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내가 이래서 레오나 에센시아가 비밀 던전을 완전히 공략하지 않길 바랐는데…….
이젠 역사가 바뀌었으니 그에 맞는 대처를 할 수밖에.
시선을 돌려 날 보고 있던 카샤스 대공에게 말을 꺼냈다.
“카샤스 대공. 타란 제국의 사절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어느 정도지?”
내 물음에 잠시 생각하던 그가 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
“무엇이든.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게 많지.”
흐음.
그렇단 말이지?
호언장담하는 카샤스 대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럼. 네가 힘을 좀 써 줘야겠어.”
레오나 에센시아를 빼돌릴 방법을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