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9화 신의 파편 (13)
재중이 형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명확했다.
어차피 임자가 없는 고대 마룡을.
우리가 먼저 먹자고.
그것도 타란 제국을 이용해서 말이지.
<불멸> 굳이 힘을 보태 주겠다는데 안 써 먹으면 손해 아냐?
<주호> 으음. 그렇긴 하지만요.
일단 타란 제국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는가가 문젠데.
슬쩍 카샤스 대공을 쳐다보자 의뢰에 대한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지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흐음.
이건 잘못하면 카샤스 대공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다.
그런데도 재중이 형이 하는 말은 충분히 매력적으로 들렸다.
<주호> 만약 우리가 고대 마룡을 차지하면 카샤스 대공은 어떻게 하죠?
원 역사에서는 카샤스 대공이 고대 마룡을 소유한 영웅이었다.
다른 말로 역사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카샤스 대공 자체가 약해진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타란 제국 역시도 전력이 약해지게 된다.
뭐 딱히 타란 제국을 걱정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타란 제국은 인간군을 대표하는 제국 중에 하나니까.
그런 제국의 전력이 약해진다는 건.
곧 인간군 전체의 전력이 약해진다는 뜻과 다름없었다.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불멸> 어차피 타란 제국은 고대 마룡을 차지한 강력한 전력이 필요한 것뿐이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 역시 한 가지 생각으로 좁혀졌다.
<주호> 주인이 누가 되었든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요?
<불멸> 그래. 타란 제국 입장에서야 카샤스 대공이 고대 마룡을 소유해 주면 가장 좋은 시나리오겠지만. 만약 그게 성사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차선책이 있잖아.
<주호> 만약 우리가 먼저 차지하게 되면 그 차선책이 우리가 되겠네요.
<불멸> 그렇지.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타란 제국은 절대 우리를 어찌하지 못해.
이 형.
단 몇 가지 단서만 듣고는.
뒤처리까지 모두 고민을 끝내 놓은 상태였다.
<불멸> 타란 제국은 어찌되었든 고대 마룡을 소유한 사람을 잡아야 할 테니까.
카샤스 대공이야 어차피 타란 제국의 대공이니까 당연히 타란 제국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고대 마룡을 차지하면?
그 고대 마룡을 들고 날라 버린다면?
타란 제국 입장에서는 레이드를 하는데 자원은 있는 대로 들이고 결과는 붕 떠버리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뭐 이때야 타란 제국과 척을 치는 각오도 해야겠지만.
반대로 재중이 형 말대로 우리가 타란 제국에 협조를 해주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주호> 오히려 타란 제국에서 우리의 입김이 훨씬 강해지겠네요?
<불멸> 그래. 없어서는 안 되는 전력이 되어버리니. 그때가 되면 뭘 요구하든 다 들어줄걸?
저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단순히 우리가 타란 제국에 머무르기만 해도.
타란 제국이 행사할 수 있는 전력이 압도적으로 강해진다.
그리고 그건 다른 제국에 대한 견제와 함께.
천사들과의 기세 싸움에서도 마찬가지고.
반대로 우리가 에센시아 제국에 넘어가면.
에센시아 제국은 두 팔을 벌려서 환영하겠지.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수준으로.
단 이때는 정말 타란 제국과 전쟁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 제안은 나쁘지 않다.
안 그래도 우리끼리 고대 마룡을 상대하는 건.
꽤 부담되는 일이기도 했고.
우리에게 마왕 헤르게니아가 있긴 하지만.
그녀가 아직은 온전한 전력 상태가 아니라는 걸 감안해 보면.
역시 부담이 된다.
그 짐을 타란 제국과 나눠 가지는 건.
결코 나쁜 제안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짐만 지우고 열매는 우리가 먹는 셈이지만.
잠시 고민하는 척하다가 카샤스 대공에게 말했다.
카샤스 대공에게는 꽤 미안한 일이 되려나?
“협조하도록 하지.”
“호.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빨리 결정을 내렸군.”
“조건이 좋을 때 움직여야지.”
“좋아.”
《 메인 퀘스트 : 고대 마룡 포획. 》
- 용혈인 카샤스 대공을 도와 고대 마룡 포획.
- 고대 마룡을 처치 시 실패.
- 카샤스 대공이 사망하면 실패.
- 퀘스트 보상
퀘스트 기여도에 따라 보상이 산정합니다.
메인 퀘스트.
이 퀘스트가 메인이라는 건.
성마대전 역사 전체적으로 봐도 꽤 의미가 있을 퀘스트가 된다는 뜻이다.
특히 타란 제국 입장에서는 더 그렇고.
그만큼 큰 행사라는 거다.
이 고대 마룡 포획 퀘스트가.
그리고 이 고대 마룡 포획이 원래는 성마대전이 시작되고 한참 뒤에 일어날 일이라는 걸 감안해 보면.
난이도 역시 결코 쉽지 않을 터.
어쩌면 꽤 시간이 지난 후에 성장한 유저들이 대거 참여해야 하는 퀘스트였을지도.
<주호> 다들 수락했어요?
<불멸> 어.
<방패전사> 나도 했다.
<챠밍> 했어요.
<이쁜소녀> 저도요.
<나르샤> 지금 했어.
<막내별> 저도 했어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난 이 퀘스트를 유저들과 공유할 생각은 전혀 없다.
곧 카샤스 대공을 보면서 조금 난처하다는 듯 말했다.
“날 이대로 데리고 가면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그다지 좋아하진 않을걸?”
표면적으로 보면 난 에센시아 제국을 구한 타국의 왕자였다.
일단은 제국 황제에게 귀빈이라는 소리고.
거기다 에센시아 제국과는 준동맹국에 묶여 있다.
그러니까 그런 내가 타란 제국으로 넘어가는 걸 결코 달가워하진 않을 것이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하지.”
귀찮은 일은 알아서 처리해 준다는 거려나?
카샤스 대공 입장에서도 이건 꼭 성사되어야 하는 일일 테니.
“그래. 하지만 이쪽도 여기서 처리할 일이 있어서.”
그때 카샤스 대공이 날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5황녀 레오나 에센시아의 일인가?”
으음.
알아서 대놓고 말해 주니 내 쪽에서 편하긴 한데.
그런데 카샤스 대공이 정말 의외의 말을 꺼냈다.
“에센시아 제국의 비밀 던전에 있는 보물을 말하는 거라면…… 이미 그녀가 차지했다.”
“어……?”
순간 무슨 소리인가 싶어 다시 카샤스 대공을 쳐다보았다.
지금 잘못 들었나?
비밀 던전에 있는 보물이라면.
딱 하나뿐이다.
정령신의 검.
르아 카르테.
아니.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빠진 그 짧은 시간동안 레오나 에센시아가 비밀 던전을 공략하고 정령신의 검을 차지했다는 건가?
이건 시간도 문제겠지만.
애초에 레오나 에센시아가 보유한 전력 자체가 공략이 불가능한 수준일 텐데?
당황과 의문을 담아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주호> 형. 레오나 에센시아가 르아 카르테를 이미 빼냈다는데요?
<불멸>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주호> 방금 카샤스 대공이 말해줬어요.
<불멸> 가능한 일이…….
그러더니 갑자기 재중이 형이 알았다는 듯 내게 말했다.
<불멸> 이런……. 눈앞에 변수가 있잖아.
<주호> 네? 아……!
그리고 나 역시 눈치챘다.
가장 큰 변수 덩어리가 바로 앞에 버젓이 앉아 있다는 걸.
짧게 한숨을 쉬고는 카샤스 대공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네가 도와준 건가?”
“그래. 그녀에게 조금 힘을 빌려주었지.”
이거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튀어나오네.
설마하니 카샤스 대공이 도와줬을 줄이야.
그것도 그가 전력으로 힘을 보태줘야 이런 그림이 나올 수 있다.
이건 아예 대놓고 도와줬다는 뜻이지.
“어째서?”
솔직히 카샤스 대공을 그냥 두고 간 것도.
딱히 그가 에센시아 제국의 후계 구도에 대놓고 관섭하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카샤스 대공이 전력을 다해가며 도와줄 필요도 없었고.
레오나 에센시아와 손을 잡긴 했어도.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도와주다니.
완전히 계산 밖이다.
휴.
그냥 깽판이나 치지 않으면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우리가 없는 사이에 진짜 일을 저질러 버렸다.
그러자 카샤스 대공이 또 어이 없는 대답을 꺼내놓았다.
그것도 웃는 목소리를 담아.
“재밌을 것 같더군.”
“재미냐…….”
미치겠네.
카샤스 대공이 이런 성향일 거라고는…….
남의 나라 비밀 던전을 재미로 파고드는 게 정상은 아닌데.
곧 카샤스 대공은 이번에는 좀 진지한 표정으로 바꾸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후계 싸움이 형평성은 맞아야 재밌겠지.”
“추를 맞췄다는 건가?”
“단순히 검 하나로 기울어진 판을 뒤집을 순 없겠지만.”
이 녀석.
비밀 던전의 물건이 검이라는 것까지도 아는…….
아니다.
같이 공략했으면 당연히 알겠지.
그리고 카샤스 대공 정도면 르아 카르테가 단순한 검 정도가 아니라는 건 알 텐데?
딱히 그에 대한 언급이 없는 걸 보면.
말을 숨기거나.
혹은 정말 모르거나.
“제국 황제는?”
“이미 보고 받았을 테지.”
문제는 우리가 그 공략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내 쪽을 바라보던 카샤스 대공이 덤덤하게 말을 이었다.
“위장이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레오나 에센시아가 잘 처리하더군.”
“그런가?”
나중에 따로 확인해 봐야 알겠지만.
카샤스 대공이 그렇게 말했다면 아마 그럴 것이라 생각된다.
확신 없이 말할 녀석은 아니니.
“그럼 레오나 에센시아는 지금 어딧지?”
“흐음. 아마 지금쯤 새 기사단 창설을 위해 바쁠 텐데.”
“기사단?”
“제국 황제가 정식으로 기사단을 내려준다는군.”
“15기사단은…… 아니다.”
15기사단은 레오나 에센시아가 거느린 숨겨진 전력이었다.
제국 황제가 그걸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할 수도 있을 테고.
그리고 정식 기사단을 수여한다는 뜻은.
대놓고 레오나 에센시아에게 힘을 실어 주겠다는 뜻을 비친 셈이 된다.
“황녀를 제대로 후계 싸움에 참여시킬 생각인가?”
“그런 듯 보이는군.”
그간 누구도 공략하지 못했던 비밀 던전을 공략하고 나왔으니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보상 차원에서 기사단을 내려주는 것과 함께.
본격적으로 다른 황자와 황녀들과 경쟁을 시킬 것이다.
여기까지라면 나쁘지 않은 전개이긴 한데.
한 가지 위안 삼을 거라면 이젠 제국 황제가 우리 목을 노릴 위협이 없다는 게 다행이려나.
뭐 어차피 에센시아 제국을 떠날 마당에 거기까지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지긴 했다만.
당장 카샤스 대공도 가만있지 않을 테고.
카샤스 대공을 빤히 바라보면서 말했다.
“레오나 에센시아 뒤에 네가 있다는 걸 다들 눈치챘겠군.”
내 말에 카샤스 대공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 세력이 타란 제국이면 다들 꺼려할 거야. 황제도 마찬가지고.”
카샤스 대공이 뒤에 있다는 건.
곧 타란 제국의 힘을 이용한다는 뜻이 될 테니.
당연히 에센시아 제국 내에서 적대하는 세력들이 많을 것이다.
그것도 황위 경쟁을 펼쳐야 하는 입장에서는 더 그럴 테지.
“이 정도는 되어야 다른 녀석들과 게임이 되지 않겠나.”
하.
카샤스 대공 이 녀석.
완전히 끼어들기로 작정했잖아?
이 정도라면 진짜 대놓고 밀어주는 것과 다름없었다.
남들 보란 듯이.
이건 분명히 카샤스 대공에게는 마이너스일지도 모르는데…….
타란 제국에서는 오히려 에센시아 제국에 붙었다고 여길 수도 있고.
대체 레오나 에센시아가 뭘 어떻게 했길래 이렇게나…….
내 생각으로는 답이 나오지 않아 우리 팀에게 현재 상황을 간략하게 설명해 주었는데.
답은 의외로 빨리 나왔다.
전혀 생각지 못한 방향으로.
<챠밍> 오빠. 아무래도 카샤스 대공요. 수상하죠?
<주호> 응?
<챠밍> 레오나 에센시아 황녀에게 반한 거 아니에요?
<주호> 그게 말이 돼? 둘이 서로 얼마나 봤다고.
<챠밍> 뭐 보는 시간이 중요한가요.
그러자 이쁜소녀와 막내별도 덩달아 말을 했다.
<이쁜소녀> 맞아요! 상관없어요!
<막내별> 한순간에 파바박 한다니까요?
아니.
얘들은 뭘 이렇게 확신하는 거지?
<방패전사> 나도 모르겠는데…….
<나르샤> 그러니까 네가 맨날 욕먹는 거야.
<방패전사> 아니. 내가 뭘…….
<나르샤> 챠밍 말이 아마 맞을걸? 나도 한 표.
음…….
나르샤 누나까지.
<불멸> 뭘 고민해? 물어보면 되잖아.
<주호> 음. 혹시 저 카샤스 대공이 칼질하면 와서 막아 주세요.
아무리 그래도 이건 카샤스 대공한테 좀 무리수 아닌가 싶은데.
나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깊게 한 번 숨을 쉬고는 카샤스 대공에게 물어보았다.
“너 혹시 레오나 에센시아 좋아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