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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65화 (1,153/1,404)

#1165화 신의 파편 (9)

원래라면 타란 제국 쪽은 에센시아 제국에서 충분히 전력을 쌓고 난 뒤에 작업할 예정이었는데…….

이젠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어졌단 말이지.

전과는 달리 지금 우리 상황이 꽤 많이 바뀌었으니까.

첫 번째로는 내 레벨.

솔직히 네임드를 잡은 것만으로는 원하는 만큼 레벨을 충분히 올리긴 힘들었다.

보통은 한 마리뿐인 일회성에 그쳤기 때문에.

그런데 중간에 상황이 확 변해 버렸다.

그건 바로 에센시아 제국 기사단.

이들이 한꺼번에 내 손에 죽어 나가면서 그간 부족했던 레벨을 엄청나게 올려 주었다.

뭐 여기에는 용사 후보의 버프도 한몫했고.

만약 용사 후보의 버프가 없었다면 아무리 많이 죽였다고 하더라도 레벨은 그다지 많이 오르지 않았을 터.

지금 생각해 보면 제국 황제에게 고마워해야 하려나?

그리고 두 번째는.

마왕 헤르게니아의 존재였다.

현재 내가 얻을 수 있는 전력 중에서.

압도적이라고 할 만큼 강력한 마왕.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가 우리에게 붙었다는 점은.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가능성을 만들어 준다.

한마디로 운신의 폭이 굉장히 넓어졌다고 해야 하나?

우리가 에센시아 제국에서 계속 머물러야 하는 상황을.

마왕 헤르게니아라는 존재 하나로 완전히 깨 버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남은 하나는.

바로 이번에 헤르마늄 광산에서 얻은 신의 파편.

솔직히 에센시아 제국 내에서 앞으로 얻을 수 있는 아이템 중에서는.

이 신의 파편이 가장 좋은 물건이 아닐까.

물론 에센시아 제국에 충분히 좋은 아이템이 즐비하겠지만.

애초에 그런 아이템들과 신의 파편은 그 줄기부터가 다른 아이템이었다.

인간들이 만들 수 있는 아이템과 신급 아이템을 비교하는 건 신의 파편에 실례지.

뭐, 이 신의 파편을 활성화시키려면 그만큼 고생해야 하겠지만.

어쨌든 굳이 에센시아 제국을 고집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거다.

5황녀인 레오나 에센시아의 일이 좀 걸리긴 하지만.

당장 이쪽은 문제가 없을 듯하고.

제국 황제가 하루아침에 돌연사 하지 않는 이상에야 바로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것이다.

거기다 반은 마족인 라첼 역시도.

우리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녀석의 성장 과정이 이미 뒤집힌 상황이라.

이쪽에서 뭔가를 해줄 방법이 없기도 하고.

그냥 알아서 잘 크기를 바라야 하나?

잠시 대화를 멈췄던 화련에게서 다시 연락이 들어왔다.

<화련> 그쪽에서 일정은? 무슨 던전인가 공략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고 보니 분명히 마지막 연락 때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마 그때는 대충 둘러댄다고 했던 말 같은데.

그걸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뭐 결과적으로 정말 헤르마늄 광산 쪽 던전을 공략한 셈이라 거짓말을 한 건 아니긴 했다.

물어본다면 당당히 말해줄 수 있을 정도로.

<주호> 적당히 마무리 지었어요.

<화련> 무슨 던전을 그렇게 빨리 공략해? 그때 연락하고 얼마 지나지도 않았잖아.

<주호> 생각보다 별거 없더라고요. 조금 돌다 보니 금방 끝나던데요.

내 말에 화련이 다시 말을 멈추더니 어림도 없다는 듯 되물었다.

<화련> 그 거짓말 어디까지 믿어주면 돼?

<주호> 하하…….

그런데 그때.

화련이 한숨을 크게 쉬면서 말했다.

<화련> 너, 대체 무슨 던전을 돌았길래 레벨이 몇 백씩 뛰어?

<주호> 알고 있었어요?

<화련> 와…… 장난해?

음.

솔직히 내 레벨이 올라간 지 얼마나 됐다고.

화련이 벌써 알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예 개인 기록에서 내 레벨만 쳐다보고 있지 않는 이상에…….

<주호> 설마 저 스토킹…….

<화련> 미쳤어?

<주호> 역시 그건 아니겠죠.

그럼 뭐지?

어떻게 화련이 이렇게 빨리 알 수 있…….

그때 화련이 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화련> 커뮤니티에 그 난리가 났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주호> 네?

<화련> 너 아주 1면 기사 찍고 지금 조회수 폭발하고 있더라. 폭렙도 이런 폭렙이 없다고.

<주호> 으음…….

아무래도 누군가 정말 내 레벨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렇게 알 수가 없지.

<화련> 벌써부터 전 서버 랭킹 1위의 복귀라고 아주 난리도 아니던데.

<주호> 아직 1위 찍으려면 멀었어요.

내가 레벨을 그렇게 올렸지만.

그 긴 시간 동안 다른 유저들도 놀고 있던 것만은 아니니까.

아직도 상위권 유저들과의 격차는 분명히 존재했다.

그런데 화련이 꽤 예리한 질문을 해왔다.

<화련> 너 대체 용사 후보 특전을 어디까지 찍은 거야?

<주호> 그것도 알아요?

<화련> 그럼 모르겠어? 나도 타란의 귀족인데.

아.

확실히 화련이 그 정도 정보에는 접근할 위치에 있긴 했다.

<화련> 얼마나 몬스터들을 갈았는지 모르겠는데.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레벨을 올리려면…… 최대치로 찍었다는 거려나?

<주호> ……노코멘트 하죠.

<화련> 와. 내가 맞았네. 얼마나 기여도를 쓸어 담았으면 그걸 맥스로 찍어?

음.

말할수록 손해 보는 것 같은 건 괜한 기분일까.

하나씩 까발리는 기술이 꼭 누구를 보는 듯했다.

옆에서 나와 화련의 대화를 지켜보던 재중이 형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

“얘 봐라. 알 건 다 아네.”

“그러게요. 확실히 귀족위가 정보가 잘 들어오긴 해요.”

정확히는 화련이 돈으로 해결했겠지만.

어쨌든 그것도 능력이 있어야 알 수 있는 거니까.

하지만 화련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이미 내가 신의 파편을 구했다는 사실을.

이건 일개 귀족 수준의 정보력으로는 절대 확인조차 불가능하다.

당장 제 앞마당에서 제국 황제도 속아 넘어가는 판인데.

<주호> 알다시피 제가 아크 드래곤을 잡았잖아요.

<화련> 그러니까. 그게 말이 되냐고.

<주호> 음. 이미 확인해보지 않았어요?

아마도 화련이라면 에센시아 제국으로 사람이라도 보내서 확인했을 것이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타란 제국에도 어느 정도 소문이 나지 않았을까.

성마대전의 재앙 중에 하나인 아크 드래곤을 잡았으니.

특히 용에 대해서는 진심인 나라.

타란 제국이기도 하고.

<화련> 안 그래도 타란 제국의 귀족 회의에서도 연일 난리였어. 너네 나라 초빙한다고.

<주호> 네?

<화련> 몰랐어? 지금쯤 에센시아 제국에 정식으로 타란 제국의 사신이 갔을 텐데?

<주호> 두 제국끼리 서로 사이가 좋진 않을 텐데요?

내가 아는 에센시아 제국 황제라면 사신의 말을 들어보지도 않고 쫓아낼 지도 모르겠다.

<화련> 그것까진 모르겠고. 당장 너희 안 데려오면 목을 잘라 버린다는데 어련히 알아서 할까.

<주호> 아마 목이 날아가겠네요.

사신이 누군지 몰라도 애도부터.

<화련> 그런데 지금 에센시아 제국에 타란 제국의 대공이 가 있지 않아?

<주호> 정말 모르는 게 없네요.

<화련> 혹시라도 만나면 조심하고. 카샤스 대공은 정말 용에 대해 진심이거든. 널 죽이고 잔해라도 얻어내려고 할 지도 몰라.

대화를 듣던 재중이 형이 나를 빤히 보고는 물었다.

“너, 쟤한테 카샤스 대공에 대해서 말 안 해줬냐?”

“음. 그땐 그냥 대충 넘어갔었죠.”

분명 고대 마룡의 원주인이 카샤스 대공이라는 말까지만 하고 말을 끝냈었다.

그때는 베르탈륨 광산에 대한 지분이 더 중요했으니까.

슬쩍 재중이 형을 보고는 머쓱한 표정으로 물었다.

“돌아가면 카샤스 대공이 절 죽이려고 하겠죠?”

“아아. 가면 무조건 싹싹 빌어라. 영웅에게서 널 구해낼 자신이 없다.”

카샤스 대공을 퇴짜 놓은 것도 모자라 에센시아 제국에 버리다시피 하고 왔으니.

녀석이 회까닥 돌아버려서 내게 칼침을 놓아도 할 말이 없을 정도였다.

무려 한 제국의 대공을 말이지.

<주호> 으음. 카샤스 대공에게 죽지는 않을 거예요. 아마도요.

그때 화련이 뭔가 눈치챘는지 내게 물었다.

<화련> 너 이미 카샤스 대공을 만난 거야?

<주호> 만나긴 했죠. 버리고 오기도 했고요.

<화련> 버리고 와? 그게 무슨 말이야?

<주호> 음. 조금 복잡한데…….

<화련> 카샤스 대공 상대로 장난쳤다가 목이 남아나질 않을걸? 마왕하고 거의 동급이라니까.

잘 안다.

거기다 그 동급인 마왕이 지금 내 옆에 있기도 하고.

여차하면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카샤스 대공을 막아달라고 해야 하나?

<주호> 잘 알고 있어요. 그보다는 전에 조건들은 아직 유효하죠?

<화련> 그래. 베르탈륨 광산을 처리해 주면.

<주호> 베르탈륨 광산 지분 7할. 그리고…….

<화련> 고대 마룡.

화련이 이런 걸로 장난칠 사람이 아니라는 건 잘 안다.

물론 그 안에 숨겨진 속셈이 있긴 하지만.

과연 화련이 판을 깔아준다 하더라도.

그 물건을 제대로 챙겨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주호> 그럼 타란 제국에 도착하면 보죠.

<화련> 바로 올 거야?

<주호> 일단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한데. 아마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화련> 최대한 시간 단축시켜 봐. 우리도 언제까지 이 베르탈륨 광산을 타란 제국에 숨기고 있을 순 없으니까.

<주호> 그러죠.

화련의 말도 아주 틀린 건 아닐 터다.

곧 각 제국에서도 자신들의 제국 내 가능성 있는 광산들을 탐색하기 시작할 테니.

성마대전에 필요한 자원을 긁어모으기 위해.

아니.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도 그렇게 오랜 시간이 남아 있는 건 아니다.

화련과의 대화를 마치자 재중이 형이 부러운 듯 웃으면서 말했다.

“에센시아 제국의 헤르마늄 광산에서 5할. 이번 일이 잘 되면 베르탈륨 광산에서 7할인가? 돈을 갈퀴로 쓸어 담겠는걸?”

그 말에 나 역시 웃어보였다.

재중이 형 말이 틀리진 않았으니까.

두 광산 모두 무려 각 제국 내에서 가장 큰 광산들이었다.

헤르마늄과 베르탈륨의 채굴량 역시 어마어마할 테고.

제대로 유지만 된다면.

지금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자금이 들어올 터.

무엇보다 헤르마늄 광산의 5할은 아예 국가 대 국가로 계약까지 걸려 있는 상황이었다.

이걸 제국 황제가 마음대로 깰 수 있다고 보긴 힘들지.

뭐 작정하고 우리와 적대하면 어쩔 수 없긴 한데.

그래도 딱 하나 우려되는 점이 있긴 했다.

“제국 황제가 신의 파편을 빼돌린 걸 눈치채면요?”

내 걱정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그 녀석이 알 방법이 있나?”

“하긴 그렇겠네요. 위장도 확실했고.”

“대천사의 결계가 유지되는 한 황제는 모를 거야. 나중에 안다고 해도 흔적도 남지 않을걸?”

“그럼 혹시 대천사들이 추적할 수도 있을까요?”

“대천사? 그쪽은 잘 모르겠네. 워낙 알려진 게 없는 놈들이라.”

“언제 한번 알아보긴 해야겠네요.”

어떤 방식으로는 추적이 가능하다면.

미리 제거해 두는 것도 방법일 테니.

그러다 뭔가 떠올라 재중이 형에게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정 안 되면…….”

“안 되면?”

“둘이 싸움 붙여 버리죠, 뭐.”

내 말에 잠시 생각하던 재중이 형이 숨은 뜻을 이해했는지 역시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큭. 너 진짜. 성마대전을 개판으로 만들 생각이구나?”

“누군가 우릴 건들지만 않는다면 가만히 있을 거예요. 역사대로 흘러가도록.”

“그래. 우릴 건들지만 않는다면 말이지.”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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