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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59화 (1,147/1,404)

#1159화 신의 파편 (3)

신의 파편을 봉인해둔 결계는 애초부터 금속의 정령으로 해결하려고 했으니까 큰 문제는 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천사들이 쳐놓고 간 결계는 이야기가 달랐다.

나 혼자서 저걸 지나오는 건.

대천사의 검으로 대천사의 가호를 쓸 수 있는 이상.

내게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기도 하고.

단순히 통과만 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왔다갔다할 수 있다.

하지만 마왕 헤르게니아는 다르다.

저 빛의 문은 순수하게 마왕 헤르게니아가 나오지 못하도록 만들어둔 결계니까.

다른 녀석들은 다 지나가도.

마왕 헤르게니아가 지나가는 순간 바로 문제가 생길 것이다.

고개를 돌려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물었다.

“네가 저 대천사의 결계를 통과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 물음에 그녀가 잠시 인상을 구기더니 쓴웃음과 함께 대답했다.

“바로 날 묶을 결계가 생성될 거야.”

“결계?”

그러고 보니 처음에 내가 빛의 문을 지나려고 했을 때 분명히 내 몸을 감싸는 뭔가가 결계를 만들기는 했었다.

대천사의 가호를 쓰니 그 결계가 바로 사라져 버렸고.

“힘으로 뚫을 순 없어? 이젠 신의 파편을 봉인한 결계도 없으니 힘을 제대로 쓸 수 있을 텐데.”

이건 그냥 단순한 내 가정이었다.

원래 마왕 헤르게니아를 봉인해 두었던 그 결계가 없는 이상 힘을 쓸 수 있을 거라는.

하지만 그녀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대천사들이 작정하고 만들어둔 결계라. 그것도 이 구조에만 쓸 수 있는 설치형 결계니까.”

“설치형? 결계가 따로 구분이 있던 건가?”

“그래. 보통 마법으로 즉시 구현해서 쓰는 결계는 이동형이고 구축 시간이 짧은 장점이 있는데 반해 다소 결계의 힘이 약한 편이야.”

아마도 지금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하는 건 유저들이나 NPC들이 쓰는 스킬들을 뜻하는 듯했다.

몸을 묶는 디버프류의 스킬이라던가.

스턴 같은 특수 효과를 내는 스킬들 말이지.

혹은 광범위하게 지역을 설정해 지연 효과를 주는 스킬들도 있을 테고.

종류를 찾자면 워낙 다양해서 나열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그 스킬들은 즉시 발현해서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반대로 지금의 이 설치형 결계는 다른 듯했고.

“하지만 이 대천사의 결계는 딱 이 곳만을 설정해서 설치해 둔 거라 위력이 굉장히 강해.”

“마왕인 너도 뚫지 못할 만큼?”

“흐응? 마왕을 멀로 보는 거야? 시간만 넉넉하면 뚫을 순 있어.”

“시간이 없다는 거네.”

“그래. 한 번 결계에 발을 들이고 나면 푸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 특히 이 결계는 주변 헤르마늄의 기운들까지 흡수해서 쓸 수 있도록 되어 있으니까.”

“헤르마늄이라 이거지?”

“대천사들이 결계를 만들어두고 수백 년이 지났는데도 유지되는 걸 봐.”

“확실히 그렇네.”

마왕 헤르게니아의 말대로 이곳 지하는 그야말로 헤르마늄의 보고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통로 어디를 봐도 헤르마늄 광석이 큼지막하게 박혀 있었으니까.

통로 전체가 환하게 빛을 낼 정도라면 진짜 어딜 캐더라도 헤르마늄이 툭툭 떨어질 것이다.

여기에 드워프들만 끌고 들어올 수 있다면.

그간 들인 시간 따위는 전혀 아쉽지 않을 정도로 헤르마늄을 캐 갈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런 수많은 헤르마늄들이 내는 기운들이 지금은 이 빛의 문을 지탱해주는 힘이 되어 주고 있었다.

우리는 그걸 억지로 지나가야 하는 상황이고.

일단 들어올 땐 마음대로였지만 나갈 땐 아니라는 거려나.

다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었다.

“시간이 좀 걸려도 힘으로 뚫을 순 있다 했지? 얼마나 걸리는데?”

“으응. 해봐야 알 텐데…… 아무리 빨리 하더라도 꼬박 하루 정도는 걸리지 않을까?”

하루.

꽤 애매한 시간이다.

정말로.

잠시 쓴웃음과 함께 그녀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이거 걸리는 순간 바로 대천사들에게 연락이 가는 구조라 했지?”

“높은 확률로.”

“흐음. 하루라……. 그럼 대천사들이 연락을 받고 여기까지 오는데 과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까?”

아직 대천사들의 이동수단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에 대해서 대답해 주었다.

“단순 워프면 연속해서 써야 할 테니 꽤 걸릴 테고. 대천사들의 부유 도시로 이동하면 그보다는 좀 덜 걸릴 거야.”

“부유 도시?”

“그런 게 있어. 대천사들이 운용하는 천계의 이동형 도시인데 이게 꽤 짜증 나거든.”

그러고 보니 전사 형에게 얼핏 들은 적이 있는 것 같다.

대천사들이 쓰는 대규모 이동 도시가 있다고.

아마 비공정의 상위 버전이라고 했던가.

“그리고 근처에 텔레포트가 가능한 대도시가 있다면 시간이 더 단축될 거고.”

“대도시…….”

그 순간 바로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에센시아 제국.

이곳은 아예 천사들과 기술 교류를 할 정도로 인맥이 형성되어 있었다.

당연히 천사들이 이용할 텔레포트 역시도 갖추고 있을 터.

아직 우리는 보지 못했지만.

분명히 있긴 할 거다.

“에센시아 제국에서 이곳까지 빠르면 몇 시간이면 날아올 텐데.”

우리처럼 몰래 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놓고 비공정을 타고 올 텐데.

그럼 여기 도달하는 시간은 순식간이다.

그것도 우리가 마왕 헤르게니아를 빼내기도 전에.

내 말에 그녀가 인상을 팍 쓰면서 말했다.

“아씨. 나가면 그놈의 제국 확 쓸어버려야겠어.”

“진정하지 그래? 네가 나가서 에센시아 제국을 쓸어버리면 바로 대천사들하고 전쟁이야.”

“그럼 대천사들 목도 싹 따버리면 되겠네.”

화가 났는지 발로 돌부리를 팍 차면서 외치는 모습이 왠지 투정부리는 아이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장 안 된다는 걸 알면서 화풀이하는 느낌이려나.

“그건 천천히 자리를 만들어줄 테니까 지금은 좀 참아주고.”

“진짜? 약속했다?”

“약속까지는 아니고.”

“칫. 말만.”

얘 앞에서는 뭔 말을 못 하겠네.

“지금 고민할 건. 대천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나가는 거야.”

그때 한 가지 생각이 들어서 그녀에게 말했다.

“꼭 정면으로만 나가야 하는 건 아니지.”

“응? 무슨 소리야?”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

“문이 있다고 문으로만 나가라는 법은 없잖아.”

“저길 뚫자고?”

“왜? 안 될 것 같아?”

내 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정말 신기한 녀석을 본다는 듯 입을 크게 벌렸다.

“와. 너 생각보다 더 미친놈이었네.”

“칭찬 아니지?”

“응. 저걸 무슨 수로 뚫어? 내가 가진 최종 스킬을 써도 안 될 거야. 너도 마찬가지고.”

“그래. 그랜드 크로스라도 그건 안 되겠지.”

그런데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

우리에게는 손발이 되어 줄 녀석들이 존재하니까.

“꼭 부수고 나갈 필요는 없잖아.”

“엥?”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듯 마왕 헤르게니아가 말똥말똥하게 눈을 뜨고 물어보자 좀 뜸을 들였다가 대답해주었다.

“드워프들.”

“아…… 맞네.”

나 같은 유저야 단순 파괴밖에 하지 못한다.

혹은 광산 채굴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일정 이상의 지형 파괴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하지만 반대로 드워프라면 어떨까.

그들은 우리와 달리 지형을 통째로 엎어버릴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필요하다면 그게 산이 되었다 하더라도.

싹 밀어버리고 길을 만들어내겠지.

그렇지만 이 방법에는 단 하나.

큰 단점이 존재했다.

한껏 기대에 찼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곧 나와 같은 생각에 도달했는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 이거 다 팔려면 한 세월이겠다.”

“역시 그렇긴 하지?”

좋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지금 할 수 있는 방법 중에는 최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하지만 반대로.

드워프들을 여기까지 데리고 와서 다시 파내는데 걸리는 시간은 상상을 초월할 터.

그리고 더 큰 문제는.

정작 드워프들이 여길 들어오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직접 들어와서 파야할 녀석들이 작업 자체를 하기 힘든 환경이라는 거지.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금속의 정령을 빤히 바라보더니 말했다.

“얘는 어때? 신의 파편을 봉인하던 결계도 멈췄잖아.”

“아. 그런가?”

확실히 가능성이 있는데.

대천사의 결계보다야 신의 파편을 봉인한 결계 쪽이 훨씬 등급이 높을 터.

윗 단계도 깬 녀석이 아랫 등급의 결계를 깨지 못하진…….

그런데 아쉽게도 금속의 정령이 고개를 저었다.

“안 돼.”

“안 돼?”

“응. 이 결계는 내가 관여할 수 없는 결계야.”

으음.

아무래도 뭔가 시스템적으로 안 되는 부분이 있는 듯했다.

혹 금속의 정령이 풀 수 있는 결계의 종류가 한정되어 있다던가.

하긴 존재하는 모든 결계를 죄다 금속의 정령이 풀어버리는 것도 말이 안 된다.

솔직히 신의 파편을 봉인한 결계를 푸는 것도 사기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라.

다시 기대를 했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풀이 죽은 듯 흐늘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아. 겨우 나왔는데.”

그러더니 눈에 불꽃이 확 튀면서 외쳤다.

“그냥 대천사들 불러다가 한판 떠 버려?”

“그건 좀 어렵지.”

아무리 아크 드래곤을 부릴 수 잇는 마왕 헤르게니아라고 해도.

지금은 그 아크 드래곤도 없는 상태였다.

무엇보다 대천사가 하나도 아니라 복수가 오면 대책 없는 건 매한가지고.

딱 둘만 되어도.

하나는 마왕 헤르게니아가 어떻게 상대한다 치면.

나머지 하나를 내가 상대해야 할 텐데.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거기다 대천사들 쪽은 지원군을 부를 수 있지만.

우린 더 이상 부를 마왕도 없다.

그걸 잘 아는지 마왕 헤르게니아가 다시 바닥의 돌을 팍 차면서 화풀이를 했다.

“에이. 아크 드래곤만 있었어도……!”

“아. 미안. 내가 부숴 버려서.”

그런데 지금껏 한 번도 물어보지 않았던 그녀가 내게 한 가지 사실을 물었다.

“아크 드래곤을 대체 어떻게 부순 거야? 아무리 마왕이라고 해도 혼자 힘으로는 힘들 건데.”

“꽤 고생했지.”

“고생으로 끝? 사실 나 그거 대천사들의 부유 도시를 상대하려고 만든 거란 말이야.”

“……그런 거였나.”

얘 봐라.

스케일이 장난 아니네.

그런데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럴만한 전력이긴 했다.

일반적인 드래곤하고 크기 자체도 달랐고.

그때 비공정을 몇 십 대나 꼬라박아서 겨우 잡은 거니.

아마 정상적인 방법으로 싸웠다면…….

어림도 없었겠지.

이로써 마왕 헤르게니아를 데리고 나가야 하는 이유가 더 확실해졌다.

“그리고 로가슈 왕국의 왕자는 또 뭐야?”

“아. 뭐 일종의 위장 신분?”

“역시 마왕인가? 왕국 하나쯤은 거뜬하네.”

감탄이긴 한데.

그렇게 치면 너도 마왕인 거 아니냐 하는 물음이 나오려다가 관두었다.

딱히 마왕 헤르게니아를 끌고 나갈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금 시간이 흘러 우리 팀들에게도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주호> 신의 파편은 손에 들어왔어요.

<불멸> 잘했다. 그럼 빠져나와.

<주호> 아. 그게 문제가 생겨서요.

그리고는 상황 설명을 다 해주었는데 딱히 저쪽에서도 방법이 나오진 않았다.

정 안 되면 혼자라도 나오라는 대답을 들었을 뿐.

확실히 혼자 나갈 것 같으면 너무 난이도가 낮긴 했다.

대천사의 검이 일종의 프리 패스 같은 물건이니.

이걸 들고 그냥 나가기만…….

그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가정이 확 스치고 지나갔다.

“하…… 이거 되면 진짜 웃기겠는데.”

“응? 왜?”

내 혼잣말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궁금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바로 대천사의 검을 들어올렸다.

【 웨폰 카피! 】

그리고는 레플리카 대천사의 검을 만들어내서 그녀에게 불쑥 내밀었다.

“야…… 너 갑자기 왜 이래?”

당황한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고는 씨익 웃으면서 대천사의 검을 거꾸로 쥐어서 손잡이를 넘겨주며 말했다.

“됐고. 일단 이거 들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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