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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52화 (1,140/1,404)
  • #1152화 성마대전 시대 마왕과의 조우 (12)

    솔직히 처음엔 그랜드 크로스를 통로의 천장이 아닌 기사단에게 직접 써볼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랜드 크로스의 성 속성 자체가 악마형에게 특화되어 있는 스킬이다 보니 기사단에게 위력이 반감될 것이라는 우려를 없애긴 어려웠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랜드 크로스가 강력한 스킬인 만큼 어지간한 위력 이상은 먹히긴 하겠지만.

    기사단을 한 번에 쓸어버릴 정도의 효과가 나오지 않으면 이쪽도 곤란하단 말이지.

    그래서 결국 이 지하 사원 특유의 지형을 이용하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었다.

    그리고 지금 그 계획은 너무도 좋은 효과를 내었다.

    우르르릉!!

    계속해서 무너져 내리는 광석 더미들과 비산하는 흙먼지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애초에 지형이 파괴불가 속성이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겠지만.

    이 지하 사원의 통로 자체가 기존의 던전과는 좀 다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광석을 캘 수 있는 광산이라는 거지.

    그것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상당한 매장량을 가진 헤르마늄 광산이었다.

    당연히 이곳 통로에도 어마어마한 양의 헤르마늄 광석들이 존재했다.

    그걸 폭발력이 강한 그랜드 크로스로 터트려 버렸으니 우르르 무너져 내릴 수밖에.

    “으아아!!”

    “살려줘!!”

    광범위하게 떨어지는 광석 무더기를 피하지 못하고 그 아래로 기사단들이 죄다 깔리는 모습은 잔인하다면 잔인할 수도 있는 광경이라 누군가 보면 욕을 할 지도 모르겠지만.

    오히려 옆에 있는 마왕 헤르게니아는 즐겁다는 듯 그 광경을 보면 감탄하고 있었다.

    날 보면서 마왕이 맞다는 표현을 한 채로.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옅은 웃음과 함께 말했다.

    “이 정도는 기본이지.”

    마왕 헤르게니아와 다니려면 적절한 퍼포먼스도 필요했는데 방금의 폭발은 그녀에게도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때 재중이 형과 챠밍에게 바로 연락이 들어왔다.

    <불멸> 이거 무슨 진동이야?

    <챠밍> 혹시 그곳도 떨려요?

    거기다 우리 팀들 역시도 한 마디씩 연락이 들어왔는데 아마도 지금의 폭발이 다른 곳들에도 영향을 끼친 듯했다.

    <이쁜소녀> 지진 났어요?

    <막내별> 혹시 여기 무너지는 거 아니죠?

    <방패전사> 와씨. 바닥이 계속 떨리는데? 이거 괜찮은 거냐?

    <나르샤> 계속 가야 해? 아님 피해야 해?

    흐음.

    생각해보면 독립된 공간이 아닌 하나의 지하 사원에 전부 연결된 구조니까.

    이곳에서 이만큼의 폭발로 인한 지진이 일어났다면.

    다른 곳 역시도 그 진동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바로 연락을 넣었다.

    <주호> 진정해요. 방금 이건 제가 만든 폭발이니까.

    <불멸> 네가 했냐?

    <주호> 뭐 하다 보니 좀 과하긴 했지만요.

    <불멸> 대체 뭘하길래 여기까지 흔들려?

    <주호> 그냥…… 통로 좀 무너뜨렸어요.

    내 한마디에 재중이 형이 잠시 생각하다가 바로 뭔가를 눈치챘는지 다시 연락이 왔다.

    <불멸> 설마 기사단 애들 전부 파묻은 거 아니지?

    <주호> 그…… 설마가 맞을 걸요?

    <불멸> 크큭. 미친 놈 같으니라고.

    <주호> 극찬 감사합니다.

    재중이 형이 알았으니 바로 우리 팀에게 상황을 알려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장 우리 팀들에게 다시 연락이 왔다.

    <챠밍> 세상에…….

    <이쁜소녀> 대박!

    <막내별> 진짜 상상 그 이상이네요.

    <나르샤> 정말 다 파묻은 거야?

    <방패전사> 우와. 네가 미친놈인 건 알고 있긴 한데…… 가끔 좀 무섭다.

    음.

    이거 다 극찬 맞겠지?

    뭐 예전에 성 하나를 통째로 날린 적도 있었는데.

    거기 비하면 이건 약과지.

    그리고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있었으면 그걸 보고 꽤 즐거워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녀는 지금 머리 위로 계속 떨어지는 헤르마늄 광석 더미를 피하면서 바로 악을 썼다.

    “이익! 그만 좀 떨어져!”

    당연하겠지만.

    이 폭발이 통로에 주는 영향은 결코 적지 않았다.

    우리 머리 위의 천장 역시도 균열이 가면서 점차 갈라지는 걸 보면 말이지.

    무엇보다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헤르마늄 자체가 독이나 마찬가지라.

    본체가 아닌 저런 분신체가 순수한 헤르마늄 덩어리에 직격 당하면 그 자리에서 녹아내릴지도 모르겠다.

    곧장 마왕 헤르게니아는 자신이 소환한 드래곤 실험체의 그늘 아래로 들어가 피신했다.

    그렇게 드래곤 실험체의 덩치로 떨어지는 헤르마늄을 막자 겨우 살겠다는 듯 안도의 숨을 쉬는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그러고 보니 저 드래곤 실험체도 헤르마늄이 들어가지 않았던가?

    “그건 괜찮냐?”

    “응? 아. 얘는 변질된 거라 괜찮아.”

    음.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만든 이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겠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을 떨어져 내리던 광석들이 쌓여가고 통로의 진동이 잠잠해질 때쯤 비산하던 흙먼지들도 점차 가라앉았다.

    그리고 보여진 풍경은 예상했던 딱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수도 없이 무너져 내린 광석들의 사이로 간간히 기사단의 그것으로 보이는 팔 다리가 뻗어 나와 있는 기괴한 풍경.

    마치 지옥도를 연상케 하는 그 광경을 보면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뿌듯한 듯 자신의 허리에 손을 얹고 외쳤다.

    “이게 마왕이지.”

    흐음.

    네가 한 게 아니라 내가 한 건데?

    거기다 드래곤 실험체 밑에 숨어서 그 말을 하기에는 좀 그림이 안 나오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아직 끝난 건 아닌 거 같은데.”

    그런 그녀에게 말하자 의아한 듯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다 죽은 거 아냐?”

    “아니.”

    그 증거로 내 시스템 창을 바라봤는데 레벨은 전혀 오르지 않았다.

    만약 기사단 중에 누군가가 죽었다면 올랐을 텐데 말이야.

    그 짧은 사이에 어떻게든 목숨을 부지했던가.

    아니면 이런 단순한 폭발로는 압사시키지 못할 수도 있겠고.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하며 확인을 위해 앞으로 걸어갔지만 딱히 광석의 더미 사이로 뭔가 공격이 날아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때.

    내 감각에 뭔가가 걸려들기 시작했다.

    폭발이 일어나 무너진 통로 반대편으로 두 개의 움직임이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이건.

    기사단장 녀석들인가……?

    분명히 그때 기사단들을 앞세우고 본인들은 뒤에 남아 있었으니 이 폭발에 휩쓸리지 않았을 확률이 분명히 존재했다.

    운이 좋은 놈들이네.

    만약 먼저 달려들었다면 분명히 같이 깔려 버렸을 텐데 말이지.

    이래서 전쟁에서 머리들이 오래 살아남는 거려나.

    쫄병부터 보내놓고 죽어버리면 자기들은 피하면 되는 일이라.

    그리고 그렇게 운이 좋은 녀석은 하나 더 존재했다.

    “크으윽!!”

    몸이 반쯤 깔린 채로 딱 통로 폭발 범위의 바깥으로 나와 있는 녀석.

    2기사단 부단장.

    재중이 형에게 칼질을 했던 그 녀석이 지금은 꽤 심각한 피해를 입고 바닥에 뒹구는 중이었다.

    회복술사가 있었으면 어떻게든 회복을 해 일어났을 테지만.

    당장은 어렵겠지.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그 녀석에게로 걸어갔다.

    아직은 흙먼지 때문에 뿌옇게 흐려진 시야 사이로 누군가 걸어오자 부단장 녀석이 외쳤다.

    “거기 누구냐!”

    “어, 나야.”

    “넌……?”

    가까워지자 날 알아본 녀석의 표정이 바로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이 새끼!! 이게 무슨 더러운 짓이냐! 기사라면 정당하게 싸…….”

    은신을 풀어서 그런지 지금 내 얼굴을 확인한 녀석이 날 이전의 기사단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런 부단장을 보고는 어이없다는 듯 웃어버렸다.

    “아직 정신 못 차렸네.”

    아마 자신이 뭐에 당했는지 알지도 못한 모양이다.

    거기다 그랜드 크로스를 날렸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것 같고.

    그러다 녀석이 날 위아래로 쳐다보더니 흠칫 놀란 얼굴을 했다.

    “뭐, 뭐냐? 그 장비는…….”

    “아. 이거? 이제 좀 보이냐?”

    칠흑의 마왕 올펠의 풀 플레이트가 온몸을 감싸고 있고 복사했던 레플리카 버전은 내구도가 다해 깨져 사라진 상태라 한 손에만 순백 빛을 내는 대천사의 검이 들려 있었다.

    마왕의 플레이트와 대천사의 검의 조합.

    누가 봐도 이질적인 모습이랄까.

    무엇보다 이 녀석은 기사다.

    그것도 에센시아 기사단 중 강한 걸로 치면 손가락에 꼽히는 2기사단의 부단장.

    내가 착용한 아이템들이 무슨 물건인지는 확실히 모른다고 쳐도.

    적어도 그 기운 정도는 알 수 있을 터.

    그런데 놀랍게도 녀석의 눈이 더 없이 크게 떠지면서 경악했다.

    “어떻게…… 마왕의 플레이트를 네가…… 그리고 그 검은…… 대천사…….”

    응?

    이 녀석 설마 전에 마왕을 본 적이 있던 건가?

    마왕의 무구에서 나는 특유의 기운이라면 기사단 녀석들이 모를 순 없을 것 같기도 하고.

    전에 마왕 헤르게니아 역시 전투형일 때 이것과 유사한 플레이트를 입고 있었으니.

    한 번이라도 봤다면 눈치 챌 법도 했다.

    그런데 대천사의 검도 알아보는 걸 보면 어디서 대천사 역시도 본 적이 있는 모양이었다.

    의외로 견식이 넓은데 말이야.

    하긴 에센시아 제국의 2기사단이면 마왕이나 대천사들을 근처에서 볼 일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그런 녀석을 내려다보고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해 주었다.

    “아. 내가 일단은 마왕이거든.”

    “뭐?!”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표정인 녀석에게 친히 알려줬다.

    “그 잘난 기사단이 아니고. 마왕이라고.”

    순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녀석의 눈이 깜빡거리다가 이내 정신을 차린 건지 내게 악을 질렀다.

    “마왕이라고?! 처음부터 우릴 노린 거냐……!”

    이 녀석.

    내가 대천사의 검을 들고 있는 건 벌써 잊어버린 건가?

    마왕이라는 말에 잠시 이성을 잃은 건가 싶기도 하고.

    “아. 딱히 너흴 어쩔 생각은 없었는데 말이야. 처음부터 죽일 생각도 없었고.”

    이건 정말이다.

    첫 만남에 이 녀석이 대놓고 재중이 형의 목에 검을 들이밀었다던가.

    그 뒤로도 계속 우릴 소모품으로 써먹으며 죽으라고 등 떠밀지만 않았다면.

    조금 상황이 달랐을 지도 모른다.

    지금의 3기사단과 7기사단처럼 말이지.

    그 녀석들은 지금 재중이 형과 함께 안전한 통로 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똑같은 기사단들인데.

    그들이 해온 지난 행동들로 인해.

    지금의 분기점이 생긴 것이다.

    한쪽은 살고.

    다른 한쪽은 죽는.

    “무슨 개소리냐!”

    이놈은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지가 이제껏 한 행동들은 기억도 안 나는 듯 했다.

    그러면 기억나게 해줘야지.

    “쯧. 넌 네 녀석 죽으라고 자꾸 등 떠미는 놈들을 그냥 두냐?”

    내 핵심을 찌르는 말에 녀석의 인상이 확 구겨졌다.

    “젠장! 그건 네 녀석이 하위 기사단이라……!”

    “그러면 버려도 되고? 내가 마왕이 아니었으면 난 이미 죽었겠는데?”

    순간 말문이 막혔는지 녀석이 입을 꾹 닫아버렸다.

    아주 기사단을 소모품 취급하는데 익숙해진 녀석이라 굳이 이렇게까지 찍어줘야 생각나는 듯했다.

    “됐고. 그냥 죽자.”

    굳이 녀석에게 다 설명해줄 필요는 없어 대천사의 검을 들어 올리자 그제야 대천사의 검이 다시 눈에 들어온 듯 했다.

    화들짝 놀란 녀석이 네게 악을 쓰며 물었다.

    “어떻게 마왕이 대천사의 검을……!”

    “들 수 있냐고?”

    궁금증을 풀고 싶은 녀석에게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곧 죽을 놈이 그거 알아서 뭐하게?”

    그리고는 그대로 대천사의 검을 부기사단장의 목에 내려박았다.

    푸욱!!

    “커억!!”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눈에서 빛이 사라지며 몸이 축 쳐졌다.

    곧 녀석이 죽음의 빛으로 사라지며 레벨이 올랐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고.

    워낙 피해를 크게 입은 상태라 이 정도로 충분히 죽일 수 있다는 거겠지.

    곧 시선을 돌려 저 멀리 너머의 두 녀석의 움직임에 모든 감각을 집중했다.

    아무래도 저 녀석들은 멀쩡해 보이는데.

    휴.

    녀석들을 상대하려면.

    나도 그만큼의 준비가 필요하겠지.

    그리고는 곧장 마검을 꺼내고는 스킬을 하나 시전했다.

    【 피의 축제! 】

    그러자 무너진 광석들의 사이로 핏줄기가 줄기줄기 뽑혀 나오며 시스템 메시지가 연이어 계속 올라왔다.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그렇게 가파르게 오른 레벨을 확인한 후 만족한 미소와 함께 대천사의 검과 마검을 꽉 쥐었다.

    “이제 좀 해볼 만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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