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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51화 (1,139/1,404)

#1151화 성마대전 시대 마왕과의 조우 (11)

처음부터 끝까지 들키지 않고 죽일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부기사단장이 눈치를 채자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일입니까? 부단장님?”

“숨어 있는 적이 있다!”

비록 지금은 마왕 헤르게니아의 드래곤 실험체와 타락 천사 실험체들을 상대한다고 연신 밀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거지.

에센시아의 2기사단이 능력이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었다.

부기사단장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일부의 기사단들이 바로 후방으로 블록을 짰다.

그리고 그동안은 정면의 실험체들만 상대하면 됐기에 신경 쓰지 않았던 떨어진 기사단들을 하나씩 추슬러 블록 안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부상이 심해서 어차피 전투에 당장 투입할 수 없는 녀석들이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알아서 빠진 모양이다만…….

그런 녀석들까지도 눈치껏 블록 안으로 기다시피 몸을 숨겼다.

흐음.

좋은 시간은 다 갔다는 건가.

뭐 하지만 지금까지 그다지 나쁘진 않았다.

워낙 나와 기사단의 레벨 차이가 크다 보니 최대 경험치를 계속 먹어 레벨을 충분히 올릴 수 있었다.

아직 부족함은 느껴지지만…….

반대로 2기사단과 5기사단 쪽은 안 그래도 전방에 있는 실험체만 상대해도 힘든데 몸을 숨기고 있는 내 쪽까지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전방의 집중이 무너지는 듯해 보였다.

가만히 이곳에 있기만 해도 저들에게는 불편한 가시 같은 존재라 이거지.

하지만 마냥 이렇게 있을 수는 없었다.

죽이지 말라고 했지만.

저 실험체들이 거기까지 조절할 수 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

내 소중한 경험치들을 실험체들이 가져가게 할 순 없다.

그런데 딱히 끼어들 틈이 안 보이는데…….

녀석들이 철저하게 블록을 짜고 버티자 다섯의 타락 천사 실험체들 역시도 그 블록을 깨지 못하고 그들의 주변을 계속 맴도는 중이었다.

그렇다고 드래곤 실험체로 브레스를 쏘자니 2기사단장과 5기사단장이 각자의 무기를 써서 어떻게든 막아내는 상황이었다.

근거리에서 싸우는 녀석들은 블록으로 막고.

광역기가 날아오면 기사단장이 커트한다라.

뭐 당장 버티는 것만 고려하면 그다지 나쁜 선택은 아니긴 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쓰러져 있던 기사단들 일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기사단 중 일부가 회복스킬을 쓰는 것도 눈에 들어왔고.

흐음.

회복술사가 없어도 시간을 주면 회복은 할 수 있다는 거려나.

전에 분명히 기사단 녀석들도 따로 라이트 같은 보조 마법을 쓰는 것을 확인하긴 했는데.

회복마법도 포함되어 있다니.

효율은 낮긴 해도.

시간만 있다면 물약과 더불어 상태를 호전시키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은신을 한 상태로 이동해 다시 마왕 헤르게니아 근처로 왔다.

“응? 사냥 중 아니었어?

마왕은 이걸 사냥이라고 표현하는 건가.

하긴 생각해 보면 마왕에게 있어서 인간을 죽이는 건 그냥 사냥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을 테니.

딱히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긴 힘들었다.

“아, 녀석들이 눈치채 버려서 쉽게 잡긴 힘들겠어.”

그런 내 대답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의아하다는 눈빛을 보였다.

그러더니 곧 납득했다는 듯 잔인하면서도 천진한 웃음으로 물었다.

“아하! 지금 가지고 노는 중이야?”

“……아마.”

여기서 아니라고 하기는 힘들겠지.

적어도 녀석은 내가 대천사급의 타락 천사라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그리고 그 수준이라면 마왕과 완전히 동급이라고 봐야 했다.

그런데 그런 마왕급이 기사단 몇을 상대하기 힘들어서 빌빌거리는 모습을 보여 주는 건 녀석에게 의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기사단 쪽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으음. 그래도 쟤들 좀 강하긴 해. 실험체들을 여섯이나 투입했는데도 버티고 있는 걸 보면.”

그러자 나 역시 동조하듯 대답해주었다.

“저래 보여도 제국의 기사단이다.”

“헤에. 쟤들이?”

그 말에 다시 한 번 빤히 녀석들을 쳐다본 마왕 헤르게니아가 두 명의 기사단장들을 번갈아 바라본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쟤들은 거의 최상위 마족급이네. 실험체들이 고전하는 것도 이해가 돼.”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과 거의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기사단장 정도 되면 마왕급은 아니더라도 그 바로 아래의 마족 수준 된다고.

그리고 저기서 더 한계를 뛰어 넘어 발전하면 마왕하고도 치고받는 영웅급이 되는 거다.

미래의 라첼 공작처럼.

마왕들도 피해 가는 녀석이라고 서술되어 있으니.

“더 쓸 녀석들이 있어?”

혹시나 해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어봤지만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준비한 건 쟤들밖에 없어.”

으음.

마냥 뽑아낼 순 없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해 보면 이 마왕 헤르게니아는 마법사 쪽에 더 가깝다고 느껴졌다.

준비된 상태에서는 최상의 힘을 내지만.

아닐 때는 상대적으로 약해질 수 있었다.

잠시 실험체들과 기사단의 대치를 바라보다가 그녀를 보면서 말했다.

처음 드래곤의 브레스는 녀석들이 제대로 반응하지 못해 먹힌 거지만.

지금은 전혀 먹히지 않으니까.

이대로면 기사단들이 회복을 하고 점점 앞으로 밀고 나올 것이다.

시간을 오래 끌면 오히려 귀찮은 일이 생길 수도 있겠는데.

그런데 그런 내 시선에 갑자기 훅 들어오는 게 있었다.

흐음?

이거…….

괜찮을 수도 있으려나?

내가 제 자리에서 갑자기 쪼그려 앉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이상한 놈을 본다는 눈빛으로 날 쳐다봤다.

“뭐 하는 거야?”

“응? 아. 이거 좀 전에 녀석들이 싸울 때 떨어진 건가?”

그렇게 내 손에 들린 건 바로 헤르마늄 광석이었다.

크기가 각각 다르긴 하지만 바닥 전체에 우수수 깔려 있는.

헤르마늄을 캐려고 들어온 광부들이 봤을 때 환장할 만한 광경이기도 했고.

그렇게 헤르마늄을 보여주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질색하는 표정으로 뒤로 떨어졌다.

아.

얘도 일단은 마왕이었지.

헤르마늄은 천사들의 장비를 만드는데 쓰는 물건이었다.

확실히 마왕 헤르게니아가 싫어할 만도 해.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제대로 힘을 못 내는데 말이야.”

“그래?”

“헤르마늄 광산에 있는 것 자체가 내겐 곤욕이라고.”

그러고 보니 한 번도 마왕 헤르게니아가 제 힘을 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다 저 실험체들을 통해서 움직였을 뿐.

그러니까 지금의 이 환경은 마왕에게 최악의 환경이라는 뜻이겠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번에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보았다가 다시 한참 전투를 벌이고 있는 녀석들을 돌아보았다.

이거 되겠는데…….

곧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말했다.

“내가 신호하면 녀석들의 정면에 브레스 한 방 날려 줄 수 있어?”

“응? 신호하면?”

“어. 재밌는 거 보여 줄게.”

“그래?”

통상적인 브레스는 녀석들에게 그대로 막힌다.

드래곤 실험체가 브레스를 준비하는 과정이 그대로 보이니.

저 기사단장들이 바보도 아닌 이상 정면에서 날아오는 브레스를 그대로 맞아 줄 리도 없을 테고.

지금이야 언제 쓸지 모르니 경계하는 모습이지만.

이번에 브레스를 한 번 더 막고 나면 거리낄 게 없는 상황이라 바로 치고 나올 것이다.

그렇다면…….

계획이 섰으면 바로 실행해야지.

바로 테르타로스와 마검을 집어넣고는.

대천사의 검, 라페르나를 꺼내들었다.

여기서 다시.

【 웨폰 카피! 】

그렇게 두 개의 라페르나를 양손에 쥐고 스킬을 시전했다.

【 대천사의 가호! 】

《 대천사의 가호가 적용됩니다! 》

등 뒤로 영롱한 빛의 날개가 쫙 펼쳐졌지만 은신 상태라 녀석들은 딱히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혹시 기사단장 정도 되면 근처에 있을 때 눈치챌 법도 하겠지만.

그래서 일부러 거리를 더 벌린 것도 있고.

그리고 두 개의 라페르나를 겹쳐서 스킬을 시전하자 마력이 계속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정말 경악한 듯 화들짝 놀라면서 내 곁에서 떨어졌다.

“뭐야?!”

“응? 이거 처음 봐?”

“아니…… 누가 처음 본데? 너 대천사의 가호를 어떻게 쓸 수 있는 거야?”

“나 타락 천사라니까?”

“아! 그랬지……. 후아! 정말 미치겠네. 마왕이 대천사의 가호를 쓰고 있다고 말하면 아무도 못 믿을 거야.”

그 말을 하면서도 계속 거리를 벌려 떨어지는 걸 보면.

근처에 있기만 해도 대천사의 가호가 따끔따끔하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하긴 상성으로만 치면 거의 극과 극인 최악의 역상성일 테니.

그렇게 풀 차징까지 모은 뒤.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신호했다.

“지금. 브레스 날려.”

“그래.”

그러자 마왕 헤르게니아가 드래곤 실험체를 조작해 브레스를 준비했다.

이쪽에서 브레스를 쏘려는 모습에 기사단 쪽에서도 분주하게 움직임을 가져갔고.

“브레스다!”

“온다!”

그리고 기사단장 녀석들이 바로 기사단들에게 오더를 내렸다.

“브레스를 쓸 때 타락 천사들이 무력화된다. 우리가 브레스를 막는 동안 전부 전진해서 드래곤을 잡아!”

딱지치기로 기사단장 먹은 게 아니라는 듯.

지금 상황에 맞는 정확한 오더를 내렸다.

브레스를 방어하기 위해 잠시지만 타락 천사들이 몸을 웅크리고 방어 체계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순간이 기사단이 자유로워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했다.

저게 정답이다.

아마 나라도 같은 오더를 내렸을 테니.

“크아아아!!”

콰콰콰!!

곧 준비가 끝난 드래곤 실험체에서 브레스가 쏘아졌고.

두 기사단장들이 각자의 무기의 힘을 빌어 브레스를 정면에서 막아내면서 버텼다.

타락 천사들은 방어 체계로 바뀌어 움직이지 않았고.

“지금이다!”

기사단장이 악에 바친 외침을 터트리자 숨을 죽이고 있던 기사단들이 일제히 사이드로 벌어지면서 옅어진 브레스를 뚫고 정면으로 튀어나왔다.

“가자!”

“드래곤을 죽여!”

“기회는 지금뿐이야!”

우수수 뛰어나오는 기사단들의 선두에는 각 기사단의 부기사단장들이 검을 들고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익히 아는 그 재수 없는 녀석도 보였고.

그렇게 개떼처럼 브레스를 뚫고 튀어나와 드래곤에 접근할 때.

입가에 웃음을 보이면서 라페르나들을 천장을 향해 사선으로 들어올렸다.

“응. 안 돼.”

【 그랜드 크로스! 】

파아아앗!!

그리고는 라페르나들에서 뻗어나간 거대한 십자 형태의 빛이 길게 뻗어나갔다.

“어……?”

“무슨……!”

“뭐냐?”

갑자기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십자의 빛이 터져 나오자 화들짝 놀란 녀석들이 그 자리에서 못 박힌 듯 멈춰버렸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전부 공중으로 올라갔다.

콰과과광!!!

쿠아아앙!!

십자의 빛, 그랜드 크로스가 천장에 닿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했고 그렇게 닿은 빛은 눈부신 폭발과 함께 천장을 통째로 터트려 버렸다.

헤르마늄 광석들이 끝도 없이 박혀 있는 바로 그 천장 말이지.

“……미친.”

“피, 피해!”

“도망가!!”

그리고 그렇게 터져 나간 헤르마늄 광석들이 다른 광석들과 함께 비 오듯이 일제히 무너져 내렸다.

당연히 그 바로 아래에 있던 녀석들은…….

“으아아!!”

“깔린다!!”

“살려줘!!”

녀석들이 아무리 빠르다고 해도.

전체가 무너져 내리는 천장을 피해 도망갈 수 있을까.

쿠르르릉!!

콰르릉!!

끝도 없이 무너져 내리는 폭발 현장을 덤덤히 바라보고 있자 옆에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그 광경을 소름끼치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감탄했다.

“와…… 너 진짜 마왕 맞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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