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0화 성마대전 시대 마왕과의 조우 (10)
어째 나보다 얘가 더 신난 것 같은데?
죽이자는 건 정작 난데 지금은 마왕 헤르게니아가 더 신나 있는 모습에 잠시 웃음이 나왔다.
뭐 좋은 게 좋은 거려나.
의욕적으로 해주면 나야 땡큐지.
마왕 헤르게니아의 주변으로 마법진이 계속 소환되면서 익숙해 보이는 녀석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거…….”
“아까 봤지?”
확실히 보기는 많이 봤었다.
설마 저걸 더 들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 실험체 X 』
네임드급에 가까운 타락 천사가 내 옆으로 다섯 마리 더 소환이 되면서 내 눈을 의심케 만들었다.
그 녀석들이 일제히 고개를 스윽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보자 등에서 식은땀이 나려고 했고.
하지만 태연하게 마왕을 연기하기로 작정했으니 여기서 당황해서는 절대 안 된다.
아무렇지도 않게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말했다.
“내가 부숴서 없다면서?”
“응. 그런데 네가 부순 건 합성체야.”
합성체와 실험체는 뭔가 다른 건가?
뭔가 알 수 없는 말이긴 한데.
“흠. 그러니까 이 정도는 막 만들어 낼 수 있다 이건가?”
내 물음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고개를 저었다.
“안 돼. 남은 마지막 재료로 만든 거란 말이야. 그리고 이거 하나 만드는 게 얼마나 오래 걸리는데…….”
마치 더 부수면 너도 같이 부숴 주겠다는 것처럼 마왕 헤르게니아가 날 빤히 바라보자 두 손을 들었다.
“더 안 부술게.”
“응. 그러면 안 돼.”
확실히 이전에 봤던 네임드 타락 천사와는 다소 크기에 차이가 있긴 했다.
그 녀석은 수많은 석상들이 재료가 되어서 합쳐진 거라 그런지 크기가 컸는 반면.
이 녀석들은 그 녀석보다는 크기면에서 다소 아쉬운 점은 있어 보였다.
형태는 그 타락 천사의 형태와 거의 흡사하지만 말이지.
과연 이것들의 위력은 어떻게 되려나.
“얼마나 강한 거지?”
“음. 저기 있는 애들 정도는 충분해.”
그러면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손가락으로 2기사단과 5기사단 쪽을 가리켰다.
아마 그녀가 생각하기에 이 정도로 충분하다고 느끼는 듯했다.
뭐 괜찮으려나.
드래곤 실험체도 있는 데다가 이 타락 천사 실험체도 다섯 마리나 있었다.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이 녀석들을 누르지 못할 터.
무엇보다 마왕 헤르게니아 스스로도 이보다 더 강한 전력이니.
“그럼 수고 좀 해줘.”
내 부탁에 마왕 헤르게니아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 실험체들아.”
그녀의 명령이 떨어지자 실험체들이 일제히 어둠을 뚫고 드래곤 실험체의 덩치를 지나 2기사단과 5기사단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샤아악!!
날개를 활짝 펴고 바닥에 스치듯이 낮게 뻗어나간 녀석들이 일제히 팔을 변형시켜 날카로운 검들을 만들어내더니 이내 외곽에 쓰러져 있는 기사단 녀석들의 몸을 마구잡이로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크아악!!”
“크억! 뭐야!”
“살려줘!”
드래곤 실험체만 신경 쓴다고 그쪽에 전부 시선이 가 있던 상황에서 전혀 다른 형태의 녀석들이 달려들자 기사단 전체가 들썩였다.
“이건…… 타락 천사?”
“녀석이 또 나타났다!”
“전부 헤르마늄 장비 꺼내들어!”
“근데 왜 이렇게 작지?”
“내가 아냐! 일단 막아!”
챙챙!!
카앙!!
키이익!!
다섯의 타락 천사 실험체가 날아다니며 기사단 내부를 헤집는 동안 다시 드래곤 실험체의 입가가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꽤 좋네.
모든 시선을 타락 천사들이 끌고 그사이에 드래곤 실험체는 브레스를 준비한다니.
유저들이 하는 일종의 어그로와 거의 유사한 개념으로 전혀 다른 두 개체가 협조를 했다.
드래곤 실험체는 여기서 광역 마법사의 역할이려나.
그것도 신체가 단단한 탱커형이기도 하고.
눈치가 있는 기사단 중 한 명이 드래곤 실험체로 시선을 주더니 경기하듯 크게 외쳤다.
“브레스가 또 온다!!”
“이익!! 시선이 팔린 사이에!”
“전부 막아!”
이미 타락 천사들과 섞인 난전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한쪽에서는 아예 브레스로 그들 전체를 날려 버리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는 마왕 헤르게니아에게 물었다.
“저러면 타락 천사 실험체도 녹지 않아?”
보통 아군이 난전을 펼치고 있는 곳에다가 광역기를 때려넣는 마법사는 잘 없었다.
그게 어쩔 수 없이 너무 불리한 상황일 때는 그냥 우리 편이고 적군이고 같이 죽이자는 식으로 날릴 수 있기는 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니까.
“전혀?”
“응?”
그때 타락 천사 실험체들의 팔이 빠르게 뭔가의 형태로 일제히 변하는 모습이 보였다.
저건…….
라지 쉴드인가.
확실히 타락 천사 이 녀석들은 팔의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경하는 게 가능했다.
지금은 아예 방어를 위해 변형하는 듯 했고.
거기다 두 쌍의 날개가 녀석들의 몸 앞으로 일제히 말려들더니 신체를 감싸듯이 방어벽을 형성했다.
라지 쉴드와 날개를 이용한 이중 방어라…….
확실히 저러면 브레스를 견딜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
그렇게 다섯의 실험체가 방어를 위한 준비를 마친 순간.
드래곤 실험체의 브레스가 다시 한 번 통로를 긁어내면서 폭사되었다.
콰아아아!!
콰콰콰!!
“젠장할!!”
“전부 막아!!”
“피해!!”
이런 통로에서 드래곤의 브레스라는 건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기사단의 기동력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일단 피할 곳이 있어야 그걸 써먹는 거지.
사방이 막힌 장로에서 통로를 꽉 차게 날아오는 브레스라는 건.
감당하기 힘든 공격이었다.
기사단들의 상태를 빠르게 살핀 뒤 할 수 없다는 듯 크게 기합을 지른 2기사단장과 5기사단장이 눈을 맞추더니 동시에 정면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2기사단장의 검에서 푸른빛을 내는 얼음의 기운이 크게 일어났고, 5기사단장의 검에서도 하얀 빛을 내는 전격의 기운이 동시에 뿜어져 나왔다.
그동안은 나서지 않던 기사단장들도 이번에는 안 되겠다는 듯 전력으로 나와 함께 브레스를 향해 강력한 검격을 뻗어내었다.
거센 얼음의 기둥.
그리고 찢어내는 전력의 파도.
둘 다 맹렬한 기세를 뿜어내는 건 마찬가지라 지켜보는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었다.
흐음.
아마 기사단장들의 특수 무기인가?
아니면 저들의 능력일 수도 있을 테고.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눈빛을 빛냈다.
“헤. 꽤 좋은 무기들을 들고 있잖아?”
“그래?”
“응. 마왕들이 쓰는 것만은 못해도. 상위 마족들이 쓰는 수준 정도는 될 거야.”
“나쁘지 않네.”
확실히 나쁘지 않다.
상위 마족이라는 건.
이쪽에서 치면 거의 영웅급에 가까운 녀석들이라는 말이 되니까.
그러고 보니 기사단장이라는 위치 자체가 영웅들 말단 수준은 되어야 가능했으려나 싶기도 하고.
당연히 그들이 가진 무기도 쉽게 볼 수 없는 무기들일 것이다.
지금 상황에 르아 카르테를 꺼냈으면.
분명히 웅웅거리면서 울었을지도.
아니다.
이미 마신의 파편이나 대천사의 무기 같은 물건들을 먹어 봤는데 저게 성에 차려나?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저 기운들의 격돌을 지켜봤다.
콰아앙!!
키이잉!!
파지직!!
세 기운이 동시에 터져 나가면서 폭발력이 통로 전체를 크게 울려댔다.
그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미묘한 웃음기를 보이면서 말했다.
“생각 이상으로 강하네?”
마치 자신의 실험체를 평가라도 하듯이.
혹은 저 기사단장들을 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고.
기사단장들이 나서서 브레스의 정면을 막았지만 완벽하게 브레스를 막아내진 못해 사방으로 브레스가 밀고 들어가자 뒤에 있던 기사단들의 비명이 줄지어졌다.
“크아악!”
“으악!!”
방어를 한 녀석들도 있지만.
이미 한 차례 큰 피해를 입어서 그런지 추가적인 피해를 감당하지 못해 쓰러지는 녀석들이 속출했다.
이거 잘못하다가 내 밥그릇 다 뺐기겠는데.
“갔다 온다. 저 녀석들만 잘 처리해 줘.”
“알았어.”
은신 상태로 바로 마왕 올펠 플레이트를 입고 테르타로스와 마검을 동시에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가장 외곽에 널부러져 있던 기사단 중에 한 녀석의 옆으로 다가가 섰다.
아마 평소 같으면 조금이라도 이상함을 느꼈을지도 모르지만.
브레스에 당해 고통스럽게 뒹구는 녀석은 내가 코앞까지 다가와도 전혀 눈치를 못 챈 듯했다.
그런 녀석을 내려다보다가 빠르게 테르타로스와 마검을 함께 녀석의 목으로 박아 넣었다.
“크억!!”
완벽한 크리티컬.
현재 테르타로스는 LV.1 상태의 마왕 올펠의 스펙과 고유 능력을 고스란히 흡수해서 지니고 있는 상태였다.
내가 마신의 파편인 테르타로스를 들고 있을 때 마왕 헤르게니아가 날 보면서 마왕이라고 착각했던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일 테고.
그리고 그만큼의 내 스펙을 확연히 끌어올려 주는 게 지금의 테르타로스였다.
굳이 다른 녀석들의 스펙을 가져올 필요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의 압도적인 스펙이지.
마왕과 기사단 중 누가 강하냐고 물어보는 것 자체가 실례다.
《 테르타로스가 에센시아 기사단 로이스를 흡수하고자 합니다. 》
《 허락하시겠습니까? 》
아니.
미치지 않고서야.
그리고 반대로.
《 봉인된 마검이 높은 등급의 피를 흡수했습니다. 》
《 소유자의 체력 대신 흡수한 피를 소모합니다. 》
《 마검이 소유자에게 피의 고유 버프를 시전합니다. 》
《 마검이 소유자에게 피의 회복을 시전합니다. 》
《 마검이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잔여 체력 100/100% 》
굳이 꽉 찬 체력을 회복시켜 줄 필요는 없어도.
능력을 올려주는 피의 고유 버프는 꽤 쓸 만했다.
몇 개의 드랍템이 나왔지만 이건 일단 무시.
당장 이거 몇 개 줍자고 일을 거를 순 없는 노릇이라.
《 주호 님에게 『 용사 후보 전용 오러 Lv.10 (MAX) 』이 적용됩니다. 》
《 주호 님에게 『 경험치 제한 돌파 버프 Lv.10 (MAX) 』이 적용되어 레벨 제한이 15레벨로 적용됩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좋아.
역시 같은 아군 NPC라 할지라도.
일단 죽이고 나면 경험치가 오른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에센시아 기사단의 레벨은 결코 낮지 않았다.
레벨에 따른 그 능력은 둘째 치더라도.
어쨌든 레벨 자체는 높단 말이지.
사실상 기사단을 잡는 것보다 저 타락 천사 같은 것을 잡는 게 월등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들의 레벨이 그렇게 차이 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레벨은 근접하지만.
기사단의 능력이 압도적으로 낮아.
다른 말로 똑같이 공을 들일 거라면 기사단이 훨씬 수월하지.
잡기 어려워 힘들게 죽이나.
이렇게 쉽게 죽이나.
경험치라는 것에만 한정하면.
얻는 결과물은 동일하다.
그렇게 곧장 은신부터 시전했다.
【 은신! 】
하이딩 망토는 크리티컬을 적용되면 바로 은신의 쿨타임이 돌아오니까.
이렇게 한 방에 죽여 버리면 죽이자마자 바로 모습을 감추는 게 가능하다.
그리곤 레벨을 확인해 보니 15레벨이 풀로 올라가 있었다.
경험치 제한 버프가 해제된 지금은.
이 주변에 널려 있는 기사단은.
그야말로 경험치 밭이다.
곧장 행동부터 옮겼다.
푸욱!!
촤악!!
브레스의 폭발에 밀려 홀로 떨어져 나간 녀석들 위주로만 바로 접근해서 목을 따 버리자 레벨이 급격하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 주호 님에게 『 용사 후보 전용 오러 Lv.10 (MAX) 』이 적용됩니다. 》
《 주호 님에게 『 경험치 제한 돌파 버프 Lv.10 (MAX) 』이 적용되어 레벨 제한이 15레벨로 적용됩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레벨이 올랐습니다!! 》
.
.
아마 내일쯤 개인 레벨 랭킹을 보면 다들 뒤집어질 테지만.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쓰기에는.
지금의 이 경험치 밭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그렇게 통로 외곽을 돌면서 기사단 녀석들의 목을 한참 따고 다녔을 때.
갑자기 내 쪽으로 뭔가가 확 쏘아져 날아오는 게 느껴졌다.
파공음으로 봐선…….
검이려나?
쐐애액!!
살짝 몸을 비틀어 피한 다음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내가 있던 방향으로 검을 집어던진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2기사단의 부기사단장.
재중이 형에게 검을 들이댔던 그 재수 없던 자식이 기사단이 계속 죽어 나가자 이쪽으로 공격을 해보았던 모양이었다.
이거.
생각보다 빠르게 눈치챘는데?
그래도 기사단은 기사단이라는 건가?
“누가 감히 우리 기사단을……!”
허공을 보며 호통 치는 녀석을 보고는 피식 웃어 버렸다.
그래.
너도 빚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