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7화 성마대전 시대 마왕과의 조우 (7)
이곳 갈림길이 있는 공동에 오기 전.
2기사단장을 일부러 도발한 건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지금 같은 상황을 염두에 뒀기 때문에.
챠밍이 놀란 듯 내게 다가왔다.
<챠밍> 오빠. 위험해요.
<주호> 응. 알고 있어.
그런 내 대답에 챠밍이 걱정된다는 눈빛을 감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챠밍> 꼭 이 방법이어야 해요?
<주호> 어. 아니면 여기서 녀석들을 떼어놓을 방법이 없어.
그러면서 2기사단과 5기사단을 쭉 둘러보았다.
굳이 2기사단장에게 하지 않아도 되는 도발까지 해가면서 무리수를 둔 건.
편을 완전히 가르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편을 가르는 또 다른 이유는…….
<주호> 죽일 놈하고 살릴 놈은 가려야 하니까.
솔직히 3기사단과 7기사단이 그때 내 편을 들지 않았다면 굳이 이렇게까지 해가면서 작전을 쓸 필요도 없었겠지만.
슬쩍 아이라 루벤과 타룬 벡스터를 바라보았다.
당장 여기서의 일만 고려한다면 딱히 녀석들을 살려야 할 이유 같은 건 전혀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야기가 달라.
거기다 굳이 우리에게 우호적인 세력을 그냥 버리는 건 또 그만한 손해라 생각했다.
곧 웃음을 보이면서 챠밍에게 말을 꺼냈다.
<주호> 그리고 난 죽으러 가는 게 아니라, 죽이러 가는 거야.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던 챠밍이 물었다.
<챠밍> 우리가 따라간다고 하면요?
<주호> 아니. 이건 혼자 움직여야 언제든 몸을 뺄 수 있어.
<챠밍> 휴. 알았어요. 절대 죽지 마요.
<주호> 안 죽어. 이번엔 조력자가 있으니까.
<챠밍> 그 마왕요?
<주호> 어. 그러니까 죽는 건 내가 아니라 저 녀석들이지.
비록 마왕 헤르게니아가 직접 나서지는 못 하겠지만.
이곳은 녀석의 권역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말로 이 구역에서 제일 무서운 놈이라는 거지.
<챠밍> 마왕이 제대로 협조해 줄지 모르겠어요.
<주호> 뭐 녀석도 걸린 게 있으니까.
마왕 헤르게니아에게는 봉인 해제라는 문제가 있다.
그걸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현재로선 나뿐이고.
좋든 싫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지.
그때 아이라 루벤과 타룬 벡스터가 다가왔다.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저 녀석 말은 무시해.”
지금 흘러가는 분위기는 3기사단과 7기사단이 함께 가고.
2기사단과 5기사단이 함께 가는 걸로 잠적 확정이 된 상태였다.
그런데 나만 쏙 빼서 저쪽에 붙어가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당연히 두 사람이 날 말리러 왔다.
“아뇨. 이렇게 하지 않으면 2 기사단장은 전혀 우리 뜻을 따라주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아이라 루벤이 우려된다는 듯 내게 말했다.
“저 녀석. 무조건 널 죽일 거야.”
“알고 있어요.”
“그걸 알면서?”
“제 몸 하나 빼낼 자신은 있으니 걱정 마시죠.”
내 대답에 그녀가 기가 찬다는 듯 나를 빤히 바라보다가 포기한 듯 대화를 끝냈다.
옆에서 타룬 벡스터도 비슷한 표정이었고.
음.
나쁘지 않네.
아직까지는 선택이 틀리지 않은 듯했다.
곧 재중이 형이 다가오더니 내게 물었다.
<불멸> 빠질 방법은 확실히 준비 한 거야?
<주호> 아. 준비는 해놨는데. 확실히 될지는 모르겠어요.
<불멸> 그럼 다른 방법을 쓸까?
<주호> 아뇨. 이게 제일 빠르고 확실해요.
<불멸> 좋아. 하지만 여차하면 알지?
<주호> 네. 장비를 다 써서라도 빠질게요.
당장 마왕 올펠 플레이트와 테르타로스만 들어도 어지간한 추격은 죄다 따돌릴 자신이 있었다.
그 말을 듣자 재중이 형도 날 놓아주었다.
<불멸> 조심해라.
그때 전사 형이 와서 내게 물었다.
두 개의 문 중 하나를 가리키면서.
<방패전사> 우린 그냥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거야?
<주호> 아마도요?
그러자 전사 형이 우려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방패전사> 이거 문제 있는 것 아닌가 싶은데.
<주호> 네?
<방패전사> 저 녀석들이 먼저 한쪽 문을 정해서 들어간다고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네가 뭘 준비한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잘못하다 반대로 우리가 함정에 들어가는 것 아냐?
전사 형의 추측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범위였다.
그도 그럴 것이 두 개의 문의 선택권은 아직 정하지 않았으니까.
그런 전사 형을 보면서 살짝 웃어보였다.
<주호> 상관없어요.
<방패전사> 어?
<주호> 녀석들이 뭘 선택하든. 전혀 상관없다고요.
그리고는 진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주호> 녀석들이 뭘 고르든. 무조건 직행할 겁니다.
지옥으로 가는 통로로 말이지.
그렇게 이쪽의 정리가 끝나자 2기사단의 부기사단장 녀석이 내게 다가왔다.
입가에 웃음기를 가득 채워서.
“건방진 녀석. 앞장 서.”
확실히 이 녀석은 적응이 되려다가도 안 되네.
마지못해 간다는 늬앙스로 녀석에게 대답해 주었다.
“그래. 내 꽁무니를 잘 따라와라.”
“이 새끼가……!”
그런 녀석을 보고는 웃었다.
안 그래도 곧 죽여 줄 테니 너무 설치지 말라고?
내 생각은 전혀 모르는 녀석을 제치고 두 개의 문 앞으로 가서 섰다.
왼쪽은 불길해 보이는 짙은 검은색.
그리고 오른쪽은 그와 대조적인 새하얀 색으로 된 재질을 알 수 없는 특수 재료로 만든 거대한 문이었다.
잠시 문들 앞에 서 있던 내가 검은색 문을 선택하려고 하자 바로 뒤에서 2기사단장의 제지가 들어왔다.
“하얀색으로 해라.”
“네네. 마음대로 하시죠?”
그렇게 하얀색 문에 손을 가져다 대자 이내 문이 자동으로 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쿠구궁!!
동시에 우리가 들어왔던 통로 쪽은 빠르게 통로가 막히면서 뒤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거였나?
되돌아갈 수 없다고 한 뜻이.
거기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기사단 중 누군가 당황한 듯 외쳤다.
“벽이 밀려들어온다!”
“이쪽도 그래!”
“천장도 내려오잖아!”
쿠구구궁!!
아마 어떤 기관 장치인 듯했는데.
문을 선택하고 난 뒤에는 이곳에 남아있지 못하게 한다는 건.
정말 말 그대로 이 장소를 없애 버린다는 뜻이었나 보다.
“빨리 문으로 들어가라고!”
“야야. 밀지 마!”
2기사단과 5기사단이 굳이 내가 발을 옮기기도 전에 먼저 문으로 들어가자 곧 바로 옆에서 검은색 문 역시도 열리기 시작했다.
아이라 루벤과 타룬 벡스터가 내 쪽을 보고는 말했다.
“다시 살아서 보길.”
“저 녀석에게 죽지 마라.”
각자 할 말을 하고는 곧 자신들의 기사단들을 데리고 검은색 문으로 사라졌다.
우리 팀 역시도 잠시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모두가 몸을 날렸다.
드워프 장로 역시도 빤히 나를 바라보다 같이 들어갔고.
그런데 끝까지 들어가지 않고 버티는 녀석이 하나 보였다.
“야! 살아남으면 꼭 라첼 남작가로 와!”
아.
이 녀석도 3기사단이었지.
이제 라첼은 기사단들보다 오히려 우리 쪽 사람들과 더 가깝게 붙어다는 모습을 보고는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나중에 보자.”
곧 양쪽 기사단들이 일제히 좁아져 가는 공동을 피해 각자의 문으로 사라졌고 나 역시 몸을 날렸다.
그렇게 문을 지나오자 뒤쪽의 문이 얼마 지나지 않아 쾅 닫히면서 완전한 어둠 속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흐음.
생각보다 신경 좀 썼는데?
아예 통로 자체를 어둡게 만들다니.
딱 고전적인 함정의 패턴 그 자체다.
하지만 기사단 녀석들은 딱히 동요하진 않았다.
곧장 마법 도구들을 꺼내 불을 밝히는 녀석들이 있는가 하면.
아예 간단한 마법 정도는 쓸 수 있는지 라이트를 시전하는 녀석들도 보였다.
하긴 기사라고 무기만 쓰란 법은 없으니까.
“전방 주시. 위험 요소 확인해라.”
“진형 유지. 섣불리 움직이지 마라.”
각자 정해진 훈련에 따라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정확한 진형을 구축하면서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전방은 이상 없습니다!”
“적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둠 속에서 안전하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2기사단장이 날 찾았다.
품에서 무기를 꺼내들면서.
흐음.
올게 온 건가?
이렇게 넘어오자마자 바로 행동에 옮기다니.
어지간히 몸이 달아 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녀석은 꺼내던 무기를 다시 집어넣고는 내게 말했다.
“네 녀석을 살려두는 이유는 아직 쓸모가 있어서다.”
“정찰하라는 뜻인가?”
“그래. 정찰 능력은 꽤 좋아 보이니.”
만약 내가 고른 검은 문으로 들어왔다면 녀석이 바로 행동을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이곳은 백색 문이다.
녀석이 직접 선택해서 들어온 만큼.
여기서 내가 어떤 꼼수를 부리진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 듯했다.
그리고 문이 한 번 열리면 뒤가 닫히는 걸 본 이상.
미리 이곳을 와봤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을 테니.
조금은 경계가 줄어들었다고 해야 하나?
뭐 그렇다고 저 녀석이 내게 칼을 들이밀지 않을 거라는 뜻은 아니었다.
그게 빠르든 늦든.
결국 한 번은 들어올 거다.
내가 소유한 검이 탐날 테니.
하지만 여기선 아니라는 거지.
마검과 내 정찰 능력 중에 저울질을 해본 결과.
정찰을 일단 우선시한 거다.
녀석에게는 마검을 얻는 것은 서브 퀘스트지만.
황제의 명을 해결하는 건 메인 퀘스트일 테니.
보다 중요한 게 해결된다면.
그때 이빨을 드러낼 것이다.
“원하신다면야.”
어차피 기사단들에게 둘러싸이면 피곤한 건 내쪽이라 바로 진형을 이탈해서 바깥으로 빠져나왔다.
그리고는 어두운 시야를 더듬으며 한쪽으로 달려 나갔다.
사실 이런 시야 같은 건 그다지 문제도 되지 않으니까 딱히 움직이는데 불편하다거나 한 점은 없었다.
곧 여러 개의 갈림길들이 나왔고 그대로 멈춰 섰다.
“어디 보자아…….”
그리고는 인벤에서 하나의 아이템을 꺼내들었다.
『 지하 사원 지도- D층 』
그걸 잡자마자 바로 내 시스템에 지도가 등록되었다.
그것도 내가 서 있는 이곳의 지형이 완벽하게 그려져 나갔다.
2기시단장 녀석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할 아이템이지.
이게 어디서 났냐면.
바로 마왕 헤르게니아가 쓰라고 툭 던져주고 간 물건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들어오진 않았다고.”
그리고 또 다른 아이템.
『 지하 사원 지도- E층 』
심지어 이건 반대편 문으로 들어갔을 때의 지도였다.
한마디로 이미 두 문 너머의 지도를 난 모두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이곳에 들어온 것이다.
이게 바로 2기시단장이 어떤 곳을 고르든 상관없던 이유 중에 하나고.
무엇보다.
내 옆의 공간이 스르륵 흔들리더니 뭔가가 갈림길로 뛰어 들어왔다.
굳이 내게 자신의 존재감을 감추려고 하지도 않았고.
“늦었잖아.”
“어. 여기 꽤 함정 같아 보이는데?”
“장난 좀 쳐 봤어.”
“그래. 준비는?”
“끝났어.”
“좋아.”
마왕 헤르게니아.
그녀가 재밌겠다는 표정 가득한 채로 내 옆에 서서 멀리 2기시단과 5기사단이 있는 방향을 빤히 바라보았다.
곧 입가에 잔인한 웃음을 짓고는 말을 꺼냈다.
“이번엔 죽여도 되는 거지?”
마치 그간은 참고 있어서 죽이지 않았다는 듯.
내게 선택권을 넘겨주자 나 역시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어. 싹 죽여도 돼.”
굳이 힘들게 3기사단과 7기사단을 따로 분리한 이유.
그건 바로 마왕 헤르게니아 때문이었다.
그녀가 굳이 기사단을 일일이 구분해 가면서 죽일 것 같진 않으니까.
아예 다 죽이면 죽였지.
귀찮게 따로 죽이진 않을 거다.
그때 생각난 게 있어서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아마 일반 석상 정도로는 안 될 거야. 저 녀석들이 그 정도는 부술 능력이 있거든.”
그런 내 조언에 그녀가 환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응. 그래서 특제 석상을 준비해 놨지.”
그리고는 마왕 헤르게니아의 옆에 거대한 마법진이 생겼고 곧 그 위로 뭔가가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소환이 끝나는데도 한참이 걸린 녀석을 보면서 어이없는 웃음을 지었다.
이거.
그냥 싸웠으면 우리가 개고생했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