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5화 성마대전 시대 마왕과의 조우 (5)
2기사단장과의 충돌 아닌 충돌 이후.
이곳의 분위기는 꽤 요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마치 완전히 둘로 나뉜 듯한 느낌이랄까.
저 멀리서 2기사단장과 5기사단장이 서서 이쪽은 노려보듯 쳐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반대로 이쪽은 3기사단장인 아이라 루벤과 7기사단장인 타룬 벡스터가 그런 그들을 주시하고 있었고.
전사 형이 다가오더니 묘한 눈빛으로 그들의 대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거 완전 파벌이 갈린 거 같지 않냐?”
“아, 전사 형. 아무래도 그래 보이죠?”
전사 형을 보고 다시 물었다.
“원래부터 저랬어요?”
“흠. 좀 그런 감이 없잖아 있긴 했는데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거든. 적어도 전투할 때는 서로 협조했었으니까.”
“예전 역사에서는 어때요?”
내가 물어보는 건 원 에센시아 제국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때의 상황을 알면 지금의 상황을 더 이해하기 수월할 테니.
잠시 생각해 보던 전사 형이 기억났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일단 3기사단은 1황자의 세력이니까. 결국은 이 녀석들이 황제의 주축 기사단이 된단 말이지.”
“그럼 원래의 2기사단은요?”
“거긴 뭐 열심히 삽질하다가 다 죽어나갈걸? 기록상으로는 1황자가 황위를 잡고 난 뒤에는 없어지거든.”
“다 죽인다는 건가요?”
“황제의 사냥개였으니 뭐…… 자신들의 편이 되지 않을 거라면 지워 버리는 게 나았겠지.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으음. 의외네요. 1황자라면 어떻게든 안고 갔을 것 같은데. 그것도 3황자와 대치 중이라면요.”
분명히 에센시아 제국의 황위 싸움은 1황자와 3황자의 양자 구도였다.
다른 황자나 황녀도 있긴 하지만 그들이 그렇게 주도권을 잡진 못 했으니.
그렇다는 건 결국 둘 중에 한 세력으로 2기사단과 5기사단이 편입됐을 확률이 높았다.
살아만 있었다면 말이지.
그런 내 대답에 전사 형이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2기사단과 5기사단이 3황자에게 넘어갈 바에 그냥 죽여 버렸다는 건 또 어떨까?”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자신의 패가 되지 않을 거라면.
그리고 그 패가 적의 손에 들어갈 확률이 있다면.
분란의 씨가 되기 전에 아예 제거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 중에 하나였다.
1황자가 기사단 전체를 두루두루 포섭해서 이끈다 해서.
그게 전부를 뜻하는 건 또 아닐 테니까.
어떻게 보면 중간에 껴서 이도저도 하지 못한 녀석들의 말로라고 해야 하려나.
잠시 2기사단과 5기사단을 쳐다보다가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는 건. 저 녀석들을 싹 죽여 버려도 역사에 큰 지장은 없다는 거네요?”
“어? 음…… 아마 그렇기는 할 텐데…….”
그리고 내 말에 전사 형이 두 기사단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쪽을 보면서 날카로운 이빨을 내세우고 있는 녀석들을.
전사 형이 날 돌아보면서 역시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흠. 지금 생각해 보니 죽여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그런 우리 둘의 대화에 재중이 형이 끼어들었다.
“뭔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고 계시나?”
“아. 저 녀석들을 어떻게 지워 버릴까 고민 중이에요.”
“호오. 거슬리는 건 없애 버리겠다?”
“문제 될까요?”
내 물음에 재중이 형이 역시나 미소를 지으면서 답했다.
“아니. 전혀. 안 그래도 마음에 안 들던 참인데. 잘 됐네. 그래서 방법은?”
재중이 형이나 전사 형이나 2기사단과 5기사단을 죽이는 것에 전혀 거리낌이 없어 보였다.
거기다 부추기는 모습을 보면 녀석들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했다.
일단 우리 팀에게 귓속말로 지하 사원 안쪽에서 있었던 일을 대략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다들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나르샤 누나가 먼저 내게 물었다.
“그 마왕도 진짜 독특하네. 어떻게 널 마왕이라고 착각할 수가 있어?”
“음. 장비가 죄다 마신에 마왕 쪽이었으니까요.”
“거기다 타락 천사도 네가 잡은 걸 봤고?”
“그런 셈이죠. 절 마왕이라고 생각하긴 부족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때 챠밍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결계라는 거 오빠가 깰 수 있는 거예요?”
“솔직히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가서 봐야 알 것 같은데. 그리고 믿을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고.”
그 말에 챠밍이 잠시 생각하다가 이내 떠 오른게 있는 듯 내게 말했다.
“금속의 정령요?”
“응. 마왕까지는 모르겠는데. 여차하면 신의 파편만 들고 튀지 뭐.”
이건 예전에도 해본 적이 있어서 아마 특별히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우리가 이 지하 사원을 끝까지 갈 때까지 저 녀석들이 가만히 있을까 하는 건데.”
그러면서 다시 2기사단과 5기사단 쪽을 넘지시 바라보았다.
우리 팀의 시선도 전부 그쪽으로 돌아갔고.
그러자 전사 형이 괜찮겠다는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쪽도 지원군이 있긴 하잖아.”
“네. 뜻하지 않게 생기긴 했죠.”
3기사단장.
아이라 루벤.
7기사단장.
타룬 벡스터.
일단 실력 면으로만 보면 그다지 밀릴 것이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들이 타락 천사를 상대로 싸우는 것을 보기도 했고.
정면에서 붙으면 또 이야기가 달라진 하겠지만.
하지만 기사단의 숫자가 문제였다.
재중이 형도 그걸 잘 아는지 내게 말했다.
“이쪽은 숫자가 너무 많이 상했어.”
“네. 알고 있어요.”
저쪽 기사단들이 몸을 사렸거나 혹은 이쪽이 상대적으로 실력이 달린다거나 하는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지금 상태에서는 숫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했다.
얼핏 살펴봐도 거의 두 배쯤 차이가 난다고 해야 하나?
당장 이곳에서 전투가 일어나면.
높은 확률이 3기사단과 7기사단이 전멸할 수도 있었다.
물론 2기사단과 5기사단 역시도 그만한 피해를 감수해야 할 테니 쉽사리 덤벼들진 못할 테고.
하지만 언제라도 일이 틀어지면.
충분히 검을 들이밀 만한 녀석들이기도 했다.
잠시 대화해 본 녀석들은 정상이라고 보긴 힘들었으니까.
전사 형이 살짝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당장은 공작가와 후작가의 후광이 있다고 해도…… 여차하면 죽이고 묻어버리면 된다고 생각할걸?”
그런 전사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특히 저 2기사단장 녀석은.
잠시 짧은 호흡을 쉬고는 눈빛을 빛내면서 우리 팀에게 말을 꺼냈다.
“그리고 반대로 생각해 보면.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다 죽여 버리면 문제가 없다는 거죠.”
재중이 형이 그런 내 말을 듣고는 피식 웃어 버렸다.
“큭. 몸 사려야 하는 녀석들은 저 녀석들이라는 거군.”
“그렇죠 뭐. 그럼 한 번 가볼까요? 안 그래도 녀석들이 다시 시비 걸러 오는 것 같은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2기사단의 그 재수 없는 부기사단장이 우리에게 저벅저벅 걸어오더니 날 딱 집어서 말했다.
“너. 정찰을 계속해라.”
아주 대놓고 지하 사원에 날 밀어 넣으려는 것을 보니 녀석의 속셈이 눈에 보이는 듯 했다.
그때 아이라 루벤이 나섰다.
“네 녀석의 상관에게 전해. 여기서부터는 진입 불가다.”
“으음. 어째서…….”
“내가 네게 일일이 설명해야 할 위친가?”
아이라 루벤이 직위로 찍어 누르자 오히려 부기사단장이 감히 대들 수 없는 신분임에도 그녀의 말에 반박했다.
“2기사단장님의 뜻입니다.”
“하! 지금 장난해? 회복술사들 다 죽어 나간 상황에.”
“그래도 전시 상황에서의 작전 지휘권은 2기사단장님이 가지고 계십니다.”
대놓고 작전 지휘권을 들이미는 부기사단장 녀석을 노려본 아이라 루벤이 기선을 돌려 2기사단장을 노려봤다.
그러자 2기사단장이 이죽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황제 폐하의 명이시다. 무조건 들어간다.”
“미친 새끼가.”
“지금 황제 폐하의 명을 거부하겠다는 건가?”
“…….”
“여기서 일정이 늦어지면 얼마나 노하실지 잘 안 텐데?”
일단은 황제의 직속 기사단이다.
명령을 함부로 무시할 순 없을 테고.
아이라 루벤이 이를 꽉 깨물고는 내 쪽을 보며 말했다.
“정찰 명령은 따르지 않아도 된다.”
이미 이 지하 사원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는 상황에 날 그냥 보내는 건 죽으라고 등 떠미는 것과 마찬가지.
확실히 얘는 좀 정상이네.
그런 아이라 루벤에게 웃으면서 답했다.
“괜찮아요.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하고. 쟤들은 전혀 할 생각이 없어 보이잖아요.”
7기사단장 타룬 벡스터가 옆에서 이를 갈면서 말했다.
“음. 이런 상황이 아니면 전부 죽여 버리고 싶군.”
호오.
마음에 들기까지.
둘 다 확실히 나쁘지 않다.
두 기사단장에게 손을 들어 만류하면서 말을 꺼냈다.
“정찰은 제가 갑니다.”
아니.
반드시 내가 먼저 가야 한다.
그래야 미리 그려놓은 그림대로 상황을 만들 수 있을 테니까.
괜히 여기서 서로 가겠다고 설쳐대다간 될 그림도 나오지 않는다.
“흠. 정말 괜찮겠나?”
타룬 벡스터가 묻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제 실력 알지 않나요?”
“음…….”
혼자 타락 천사를 잡을 정도라면 상당히 강하다는 걸 어렴풋이 알고는 있을 것이다.
그게 비록 마무리가 되었든 말이야.
어쨌든 잡은 건 맞으니까.
우리 팀을 보고도 말했다.
“그럼 갑니다. 정리 끝나는 대로 따라와요.”
“그래. 조심해라.”
그리곤 바로 몸을 날려서 다시 지하 사원 쪽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얼마나 빠져나왔을까.
미리 기다리고 있던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왕 헤르게니아.
그녀가 허리에 손을 얹고는 못 마땅한 듯 날 바라보며 말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아. 우리 쪽에 처리할 문제가 좀 있어서.”
“그 인간들?”
“어. 인간들 말이지.”
잠시 멀리 쳐다보던 그녀가 궁금한 듯 내게 물었다.
“왜 인간들을 저렇게 살려두는 거지?”
마왕인 그녀 입장에서는 이게 굉장히 궁금한 듯했다.
그리고 충분히 할 만한 생각이기도 했고.
이 시대의 마왕은.
사실 인간들은 그냥 적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것도 상대가 에센시아 기사단들이다.
그런 그녀의 질문은 이미 내가 예상한 질문 중에 하나였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녀에게 대답해 주었다.
“요즘은 인간 세계에 침투해 있는 마족이 제법 되거든.”
“헤…… 그래?”
“어. 그러니까. 난 그들의 수장 같은 거다. 안에서부터 그들을 무너뜨리는 거지.”
아마 재중이 형이 지금 날 보면 한마디 하지 싶다.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 한다고.
하지만 이 말은 의외로 꽤 효과가 있어 보였다.
내 말에 그녀가 더 없이 반짝이는 눈빛을 내게 보내며 말했다.
“재…….”
“재?”
“재밌겠잖아?!”
“…….”
확실히 얘도 정상은 아니야.
아마 마왕 중에서도 꽤 별난 녀석일 것 같다는 생각이 지금 막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니 마왕이 이런 곳에까지 와서 혼자 봉인 당해서 울고 있지.
“알면 너도 장단 좀 맞춰 줘라. 다 된 밥인데 괜히 망치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 그럼 나도 끼워 줄 거지?”
“뭐 알아서 해.”
본인이 좋아서 하겠다는데 말릴 생각은 없다.
그런 마왕 헤르게니아를 보면서 물었다.
“준비는?”
“다 됐어.”
“좋아.”
그렇게 다시 한참을 기다리다 기사단이 모여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전했다.
“뭔가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만…….”
모두의 시선이 내게 집중되자 다시 한 마디 말을 꺼냈다.
그것도 2기사단장을 빤히 바라보면서.
“아무래도 무리를 둘로 나눠야 할 것 같군요.”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