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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42화 (1,130/1,404)

#1142화 성마대전 시대 마왕과의 조우 (2)

조금은 어색하고도 난감한 상황.

마왕 헤르게니아가 나를 마왕이라고 알고 있는 이 상황은 좋게 해석하면 당장 그녀가 내게 위협을 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내가 마왕이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곧장 내게 칼을 들이밀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당장은 이쪽도 일단은 마왕이다 보니 마왕 헤르게니아도 쉽사리 덤비지 못할 테지.

서로 전력이 확실히 파악되지 못한 지금.

특히 마왕 헤르게니아의 입장에서는 같은 마왕과 싸우는 건 꽤 무리수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리고 그나마 안심이 될 만한 하나의 사실은.

바로 이 시스템 메시지.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중간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적어도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게 도움을 받은 것은 확실해 보이니까.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보자마자 칼부림부터 났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피아가 파악되지 않은 존재라는 건.

그만큼 본인에게 위협적인 상대라는 거니까.

무엇보다 마왕 헤르게니아는 지금 봉인에서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혹시라도 내가 위협되는 존재라고 파악했다면.

전력의 우위를 따지지 않고 바로 싸움을 걸어왔을 터.

그러니까 지금은.

이런 묘한 대치가 내게는 딱 필요한 상황이었다.

적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위협까지는 되지 않은.

그리고 적당히 도움을 준 전력이 있는.

딱 그만큼의 간격.

그때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내게 물었다.

“그런데 마왕이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이곳은 마왕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천사들이 결계를 쳐 놨을 텐데…….”

결계라고?

이상하다.

딱히 결계라 할 만한 것은 오면서 보지 못했는데.

여기서는 일단 모른 척.

알지 못하는 걸 애써 아는 척해 봐야 답이 나오지 않는다.

“결계? 모르겠는데. 내가 이곳에 왔을 때는 결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이건 일종의 시험이다.

당장이야 내가 마왕 헤르게니아를 도와준 셈이라 넘어갔지만.

그녀는 이 상황이 이상하다고 판단 될 경우.

언제라도 방황을 선회해서 우리를 공격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 테르타로스와 마검을 잡은 손을 꽉 쥐었다.

여차하면…….

여기서 그녀를 어떻게든 떨쳐내고 바로 우리 팀과 합류하면 되려나?

확률은?

지금 마왕을 단독으로 상대하는 게 가능한가?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치며 마왕 헤르게니아가 어떻게 나올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내 대답을 들은 그녀가 잠시 뭔가 생각하는 듯하더니 갑자기 한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그녀의 손에서 마법진이 하나 그려지더니 뭔가의 주홍빛 기운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칫.

역시 임기응변으로는 안 되는 거였나.

마왕 헤르게니아의 손에서 뭔가가 원형으로 퍼져 사방으로 뻗어 나가는 순간.

바로 발을 박차고 이곳에서 빠지려는데.

그녀가 조금은 놀란 눈치로 의외의 말을 꺼냈다.

“헤…… 파수꾼이 없어졌잖아?”

“어……?”

“이곳 광산의 파수꾼 말이야. 걔 진짜 엄청 센데……. 혹시 그것도 네가 죽인 거야?”

음.

여기서는 또 어떻게 대답해야 하지?

마왕 헤르게니아가 지금 뭘 말하는지는 확실히 알겠다.

이곳의 파수꾼인 아크 드래곤.

그녀가 방금 손에서 쏜 마법은 아마도.

어떤 디텍트 계열의 마법인 듯했다.

그 마법으로 아크 드래곤이 없다는 사실도 파악한 모양이고.

“으음. 일단은?”

뭐 단독이 아닌.

상당히 많은 자원을 투자하고.

꽤 난해한 과정을 통해 잡긴 했지만.

어쨌든 잡긴 잡은 거니까.

딱히 거짓말한 건 아니었다.

그러자 바로 마왕 헤르게니아에게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이야. 너 대단하잖아?”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친밀도가 상승합니다. 》

비록 대폭 상승은 아니지만.

어쨌든 방금의 이 답은 그녀에게도 나쁘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대체 어떻게 아크 드래곤을 잡은 거야?”

아크 드래곤인 걸 확실하게 알고 있네.

만약 다른 식으로 대답했다면 꽤 곤란했을지도.

그녀의 관심에 잠시 대답할 말을 찾다가 입을 닫았다.

이건 설명할 수가 없는데…….

그런데 그런 내 침묵을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건지 마왕 헤르게니아의 시선이 내가 들고 있던 두 개의 검으로 향했다.

“그래. 마신의 파편을 들고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겠어.”

굳이 내가 대답을 해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알아서 이 상황을 해석해버린 모양이었다.

음.

그런데 테르타로스와 마검만으로도 아크 드래곤을 잡을 수 있는 거였나?

마왕 헤르게니아가 보기엔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는 건데.

아마 이건 내가 마왕과 동급의 힘을 낼 수 있어야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혹은 지금은 미완성인 이 검들이 확실히 성장했을 때 가능하겠지.

그래도 여기서는 확실히 해둘 필요가 있었다.

아니.

오히려 아크 드래곤을 그녀가 버거워할지도 모르겠다는 판단이 들자.

내 손이 무의식적으로 인벤으로 가서 닿았다.

그리고는 곧장 하나의 아이템을 꺼내 들었다.

『 불완전한 키메라 아크 드래곤 하트 』

“이거면 대답이 된 건가?”

이 드랍템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아크 드래곤 사냥의 증거였다.

그렇게 아크 드래곤 하트를 꺼내들자 마왕 헤르게니아의 눈빛이 사뭇 달라졌다.

전까지만 해도 다소 팽팽한 긴장을 주는 눈빛이었다면.

지금은 놀랍다는 눈빛이랄까.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마왕 헤르게니아와의 친밀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

.

.

“응. 대답이 됐어.”

묘한 웃음을 보이는 그녀가 어느새 나와 간격을 좁혀 내 근처까지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게 한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왔다.

나와 내가 들고 있던 마신의 파편들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여기를 굳이 내 봉인을 풀어주러 오진 않았을 텐데. 역시 신의 파편 때문에 온 거야?”

다소 아쉽다는 표정과 함께 그녀가 하나의 물건을 언급했다.

신의 파편?

분명히 지금 그와 비슷한 퀘스트를 진행하고 있긴 했다.

《 메인 퀘스트 : 신의 흔적. 》

- 고대의 신들의 흔적을 찾아라.

- 고대 신 관련 NPC와 접촉하거나 신에 대한 정보 입수.

- 혹은 고대 신에 관련된 아이템 습득 시 연계 퀘스트 발동.

- 퀘스트 보상.

< 메인 퀘스트 : 고대 신을 찾아서 > 연계

그리고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다시 한 번 시스템 메시지가 울렸다.

《 메인 퀘스트 : 신의 흔적이 변경됩니다. 》

《 메인 퀘스트 : 신의 파편. 》

- 고대 신의 파편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 고대 신의 파편에 접근할 권한을 얻습니다.

- 고대 신의 파편을 습득 시 연계 퀘스트 발동.

- 퀘스트 보상.

< 메인 퀘스트 : 고대 신을 찾아서 > 연계

아무래도 이거 주소를 제대로 찾아온 것 같은데?

지금 눈앞의 마왕 헤르게니아가 신의 파편과 관련된 NPC 중 하나인 듯했다.

그런데 여기서 만약 내가 마왕 행세를 하지 않았었다면 어땠을까?

타락 천사를 잡고 난 뒤에 봉인이 풀리는 건 확실한데.

그다음 등장하는 건 마왕 헤르게니아다.

그렇다는 건.

이어서 바로 전투가 일어났을 확률이 높다는 거겠고.

이 마왕 헤르게니아를 잡아야 지금의 저 메인 퀘스트가 갱신되었을지도 모르겠는데…….

아마 꽤 높은 확률로 그런 상황이 일어났을 것이다.

마왕이라는 존재가 유저나 다른 NPC들을 살려둘 리가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얼떨결에 메인 퀘스트 하나를 그대로 건너뛴 셈이 되었다.

그것도 어떤 피해도 입지 않은 상태로.

거기다가 지금 이 마왕 헤르게니아는 내게 상당히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여 주었다.

최종 적이었어야 하는 메인 보스가 옆에 나란히 서 있는 묘한 상황이라…….

뭐 나쁘진 않네.

“신의 파편…….”

“응. 너 마신의 파편을 모으는 걸 봐서는 신의 파편도 찾으러 온 것 아냐?”

아무래도 이 마왕 헤르게니아는 내 목적이 신의 파편에 있다고 판단한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곳에 봉인되어있었던 그녀의 존재다.

왜 그녀가 이곳에 봉인되어 있었을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답은 바로 나온다.

신의 파편의 존재를 알고 있는 마왕.

그리고 그 마왕이 이곳에 있을 이유는.

딱 하나밖에 없으니까.

“네 목적도 신의 파편이었나?”

그런 내 질문에 마왕 헤르게니아의 입가가 웃음기로 가득해졌다.

“어머? 똑똑한 거 봐?”

“음…….”

“이러니까 더 마음에 드는데?”

“뭐?”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계속 묘한 미소를 지으면서 나를 바라보던 마왕 헤르게니아가 갑자기 눈빛을 진지하게 바꾸면서 내게 말했다.

“하지만 신의 파편은 네가 가질 수는 없을 거야.”

역시.

예상대로 마왕 헤르게니아는 이곳 지하 사원에 저 신의 파편을 가지기 위해 온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저 말은.

자신이 신의 파편을 가져갈 테니 내게는 기회가 없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을 테고.

일종의 경고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의외로 마왕 헤르게니아의 눈빛에는 적대적인 눈빛은 거의 찾아보기가 힘들었다.

으음.

보통은 이 상황에서 적대적인 제스처를 취하지 않나?

물론 단시간에 우호도를 꽤 올리긴 했지만.

어쨌든 둘 다 목표는 신의 파편이었다.

목표가 서로 겹친다면.

결국 그 끝은 경쟁일 수밖에 없고.

그런 의미에서 마왕 헤르게니아가 자신을 봉인에서 구해주긴 했어도 내게 협력할 일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여기서는 어떻게 하는 게 맞는 거려나…….

당장 신의 파편을 두고 마왕 헤르게니아와 적대적인 포지션을 취하면 이 녀석과 전투를 피할 길이 없게 된다.

과연 지금의 전력으로 이 마왕을 잡아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에센시아 기사단이야 일단은 마왕을 잡자고 하면 협조를 해줄 테니 전력에 넣을 순 있긴 한데.

마왕 헤르게니아도 아닌 타락 천사를 상대하는 것만 해도 그렇게 밀리고 고생했던 녀석들을 신용하기란 꽤 어려운 일이지.

물론 상성상 안 맞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기사단의 전력이 밀리는 건 사실이었다.

결국에는 우리 팀이 나서야 한다는 뜻인데.

그때는 아까처럼 어설프게 기사단 장비를 입고 싸워서는 답도 나오지 않는다.

타락 천사를 상대하는 것과 마왕을 상대하는 것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으니까.

전력을 숨겨놓고 싸울 만한 존재는 절대 아니다.

이전에 마왕 올펠과 싸울 때야 다른 마왕인 스티어가 함께 싸워 줬으니 그나마 격차를 메운 거지.

만약 그런 큰 조력자 없이 마왕과 치고받으라는 건.

다 죽으라는 뜻과 다름없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전력상 열세야.

당장 에센시아 제국군을 다 끌고 나오지 않는 이상은…….

한 가지.

여기서 다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했다.

바로 신의 파편 자체를 포기하는 방법이지.

그럼 굳이 이 마왕 헤르게니아와 충돌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우리가 먼저 건들지 않는다면 그녀도 굳이 우릴 적대하진 않을 듯 보이고.

휴.

목숨이 여러 개라면 모르겠는데.

일단 피해 갈 수 있는 건 피해 가야겠지.

아직 마왕은 직접 상대하기엔 좀 이르니까.

아마 재중이 형도 이 자리에 있었다면 같은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는 대답을 하려는데 마왕 헤르게니아가 먼저 정말 의외의 말을 꺼냈다.

“신의 파편의 결계를 건드는 순간. 대천사들이 바로 날아올 거야.”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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