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36화 (1,124/1,404)

#1135화 헤르게니아 (12)

현 상황은 우리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주었다.

그중 한 가지는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를 직접 우리가 상대하는 것.

지금은 기사단이 저 녀석에게 하나씩 죽어나가는 것 자체가 우리에겐 큰 부담이었다.

사실 그냥 죽어 버리는 것까지는 크게 문제될 건 없지만.

그렇게 죽은 기사단 녀석들은 바로 타락 천사 석상으로 변해 적으로 변하게 되니까.

가뜩이나 이쪽은 전력이 깎이는 데 반해 저쪽은 전력이 오히려 올라간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결국은 저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가 마음대로 기사단을 죽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게 우선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있었다.

일단은 장비.

맥크라이가 위장을 위해 우리에게 쥐여준 장비는 죄다 기사단 보급품 장비다.

어차피 위장을 하려고 준비한 물품이라 크게 퀼리티를 따지지 않고 준비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준비가 발목을 잡는 중이었다.

과연 이 장비를 가지고 저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를 막을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솔직히 이쪽은 무리지.

재중이 형과 내가 아무리 피해를 입지 않고 싸운다고 하더라도 애초에 장비의 격이 너무 차이가 났다.

확신하지는 못하겠지만 아마 스치기만 해도 바로 행동불능에 가까운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고.

“아무래도 저쪽은 힘들겠죠?”

“아아, 그래. 괴물은 싸울 수 있는 녀석들에게 맡겨야지.”

이미 재중이 형의 보급형 창 역시도 상당히 마모가 되었는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는 형태가 되었다.

저런 창으로 계속 싸운 것도 용하네.

내가 빤히 바라보자 재중이 형이 피식 웃으면서 손에 쥐고 있던 보급형 창을 바닥에 던져 버리고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다른 창을 잡아 올렸다.

“장인은 도구를 가리지 않는 법이지.”

솔직히 다른 사람이 저런 말을 했으면 웃기지 말라고 한 마디 했을 텐데.

재중이 형은 어떻게 저 말이 저렇게 잘 어울리는지.

정말 아무 무기나 주워서 싸워도 당장 1인분 이상 역할은 반드시 해낸다.

저 기사단 사이에 끼어서 아무 위화감 없이 섞여 싸운 걸 보면 뭐…….

잠시 주운 장비를 쳐다보고는 나쁘지 않다는 듯 휘둘러보고는 창끝을 한 쪽으로 겨누었다.

“당장 우리가 처리해야 할 건 저쪽이겠지.”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 네임드만큼 문제가 되는 게 저쪽이니까요.”

바로 타락 천사 석상이 된 기사단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회복술사 집단.

녀석들 역시도 석상화가 되어 주변으로 계속 힐을 넣어주고 있었다.

저 힐이 우리 쪽이었다면 사태가 이렇게까지 오진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적들의 회복을 도와주는 중이었다.

에센시아 기사단이 힘겹게 천사 석상들을 박살내놓아도 저 회복술사들만 있으면 완전 새것처럼 복구가 되어서 다시 날뛰는데 방법이 있겠는가.

“사기지. 저 조합은.”

공격력이 월등한 천사 석상이 회복까지 받으면 그야말로 최강의 방어력과 공격력을 동시에 지니게 된다.

그러니까 현 상황을 깨보려면.

어떻게든 저 회복술사들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회복술사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짧은 한숨을 쉬었다.

“보호가 상당하네요.”

“아아. 이 녀석들. 생각 이상으로 지능이 높아. 철저하게 회복술사 주변을 지키잖아.”

“마치 유저가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 저 방어를 뚫고 공격하기 쉽지 않을 거다.”

빤히 녀석들을 쳐다보다가 재중이 형이 말을 이었다.

“거기다 회복술사들도 방어가 상당할걸?”

그런 재중이 형의 말에 나 역시 동의했다.

“일단은 녀석들도 타락 천사 석상이니까요.”

이전에 녀석들과 싸우면서 확인한 것 중에 하나는.

타락 천사 석상이 되기 전 숙주가 되는 원본의 능력치를 상당히 반영한다는 점이었다.

기사단이 죽으면 기사단의 장비를 입고 변해 강력한 공격력과 방어력을.

그리고 그게 회복술사가 된다면.

지금처럼 회복 스킬을 쓰는 녀석이 될 테고.

이걸 다르게 생각해보면 기본적으로 회복술사를 베이스로 하기 때문에 녀석들의 방어가 약할 것이라 생각하기 쉬웠다.

아무래도 회복술사들은 로브를 입고 있는데다가 기사단처럼 방어에 특화되어 있진 않을 테니.

그런데 여기서 하나의 문제가 발생한다.

바로 녀석들이 타락 천사 석상이 되었다는 점.

일단 저 석상 자체가 굉장히 공격력과 방어력이 높은 편이었다.

굳이 기사단의 모습을 하지 않더라도.

타락 천사 석상이 가지는 최소한의 공격력과 방어력을 동시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거기에 추가로 회복 능력이 추가된달까.

이건 기사단을 상대하면서 확인했으니 거의 정확하다고 보면 된다.

“그래. 그냥 회복술사 잡듯이 쉽게는 안 잡아질 거야. 방어력도 높을 테니.”

“한 방에 못 죽이면…….”

“바로 주변에서 힐이 미친 듯이 쏟아지겠지.”

무려 회복술사들을 한데 모아둔 집단이었다.

조금만 피해를 봐도 바로 회복을 걸어 원래대로 돌려놓을 확률이 높았다.

아니 백이면 백 그렇게 된다고 봐야지.

그런데 그런 녀석들을 기사단 타락 천사들까지 상대해 가면서 죽인다?

“난이도가 최악이네요.”

“그래도 해야 해. 저 연결 고리를 지금 끊지 못하면 어차피 이쪽도 전멸이야.”

그러면서 점점 쓰러져가는 기사단들을 가리켰다.

확실히 계속 피해가 누적되면서 버틸 수 있는 기사단 수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게 눈에도 보였다.

이런 식으로 버티다가는 아마 채 10분도 되지 않는 시간 안에 모두 쓰러져 다 저 타락 천사 석상으로 변해 버릴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많던 기사단이 죄다 변해 버리면?

“괴물 네임드에 백이 가볍게 넘어가는 기사단 석상이라…….”

“끔찍하지?”

“아니라고는 못하겠어요.”

순간 고개를 돌려 챠밍 쪽을 바라보았다.

간간이 챠밍과 막내별이 힐을 돌려 기사단에게 주는 모습이 보였다.

어그로를 끌지 않기 위해 최소한으로 주고 있는데 저것도 사실 상당히 위험한 행동이었다.

아직은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가 거리가 있어 눈치를 못 채는 듯하지만…….

언제까지 안전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힐까지 끊어버리면 바로 무너질 테니 못하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차라리 챠밍을 공격으로 돌리면…….”

슬쩍 회복술사 집단 쪽을 보면서 말하자 재중이 형이 고개를 저었다.

“만약 광역기로 한 번에 끝내지 못하면 모든 어그로가 챠밍에게 쏠릴 거야.”

“그럼 안 되겠네요.”

전에도 챠밍의 광역기와 내 그랜드 크로스를 합쳐서야 겨우 쓸어버렸는데.

이번에는 내 쪽에서 쓸 수 없으니.

전력이 반쪽인 상황에서는 부담이 너무 크다.

“그냥 확 다 죽여 버리고 원래 장비 쓸까요?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하지만 이게 안 된다는 건 나도 알고 재중이 형도 안다.

그 상황은 이미 네임드와 기사단 전체와 싸워야 할 판이라.

말하면서도 계속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다 한 가지 지점에 가서 고개가 멈췄다.

“형. 우리 힘으로만 안 된다면. 도움을 좀 받으면 가능할 것 같지 않아요?”

“도움?”

“마침 제게 빚이 좀 있는 녀석이 있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시선이 닿은 곳에서는 7기사단의 로메로가 다른 기사단들과 블록을 형성해 열심히 싸우고 있는 중이었다.

“저 녀석 알아?”

“아, 그냥 목숨 좀 구해줬어요.”

“호오. 그렇단 말이지?”

재중이 형이 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녀석에게 달려갔다.

“로메로. 잠깐 나 좀 볼까?”

“바빠 죽겠는데 누가……!”

한껏 싸움에 취해 있던 녀석이 흘깃 고개를 돌렸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놀란 듯 앞의 석상을 쳐내고 뒤로 빠졌다.

“살아 있었냐? 안 보이길래 죽은 줄 알았다.”

“쉽게 죽어주진 않지.”

로메로가 빠지자 바로 다른 녀석이 블록을 만들면서 커버해 주었고 겨우 한숨 돌렸다는 듯 숨을 몰아쉬었다.

“후아. 정말 힘들군.”

장비 상태가 아주 개판이네.

천사 석상들과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는지 갑주가 너덜너덜할 지경이었다.

눈에서도 빛이 상당히 사라진 듯 탁한 느낌이 들었고.

희망보다는 절망에 가까운 느낌이랄까.

계속 버텨도 답이 없는 상황에서 죽음의 불안함이 가중되자 남은 건 저런 어두운 감정 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제국의 기사단이라 그런지 그런 절망을 애써 이겨내는 듯 했다.

나쁘지 않다.

만약 눈빛도 죽어 있었다면 무슨 제안을 해도 힘들었을 테니.

그런 로메로에게 바로 말을 꺼냈다.

“너, 나랑 일 하나 하자.”

“뭐?”

“어차피 이대로 있어 봐야 죄다 전멸할 뿐이야.”

내 말에 뭔가 반박할 말을 찾는 듯 하던 로메로가 곧 한숨을 쉬면서 힘 없이 대답했다.

“하. 뭐라 쏘아주고 싶은데 상황이 이따위라…….”

아마 이 녀석도 마음속에 전멸이라는 단어를 계속 심어두고 있었던 모양이다.

점점 안 좋아지는 전황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있을 테니.

그런 와중에 내가 제안을 하자 녀석의 눈에 살짝 빛이 돌아오는 듯 했다.

“방법이 있나?”

“있긴 한데. 쉽진 않을 거야.”

“뭘 해도 지금보다 어렵진 않겠지.”

이건 승낙이려나.

바로 로메로 녀석이 내게 손을 뻗었다.

그런 녀석의 손을 마주 잡아주자 녀석도 미소 지었다.

“뭘 할진 몰라도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다면. 한번 해보지.”

“좋아. 일단은…… 지금 네가 움직일 수 있는 녀석들이 얼마나 돼?”

내 물음에 잠시 고민을 하던 로메로가 전장을 돌아보면서 말했다.

“7기사단이라면 지금도 대부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기사단 소속들은 내 말을 듣진 않을 거야.”

“뭐 거기까지 기대한 건 아니고.”

솔직히 속으로 조금 놀라긴 했다.

다른 기사단은 애초에 기대도 안 한 거라 논외로 치더라도.

7기사단에서 기사 몇몇만 해도 충분히 많이 빼온 거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의외로 이 녀석이 7기사단의 상당수를 움직일 수 있다고 하니까.

“너, 단장이나 그런 거냐?”

“이거 참. 이래 보여도 내가 7기사단 부기사단장이다.”

하.

그래서 이 녀석에게서 복사했던 무기 상태가 생각 이상으로 좋았던 거였나?

그리고 전에 혼자서 타락 천사 석상들을 상대했던 것도.

적당히 실력이 있으니 가능했던 모양이다.

뭐 그 결과로 죽을 뻔하긴 했지만.

<주호> 이 녀석이 7기사단의 부기사단장이라는데요?

<불멸> 호오? 그래? 생각 이상으로 거물이었잖아?

곧장 로메로에게 농담을 살짝 섞어서 한마디 해주었다.

“난 또 약해 빠져서 말단인 줄.”

“큭. 여기서 한번 떠볼까?”

“그건 나중에 보고.”

그리고는 로메로 녀석을 보고는 곧장 본론을 말했다.

“그럼…… 7기사단을 전부 다 전투 라인에서 빼버려.”

“어?”

내 말에 순간 녀석의 동공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 흔들렸다.

“방금 내가 잘못 들었나?”

“제대로 들은 것 같은데?”

“아니. 미친 게 아니라면…….”

“안 미쳤으니까. 그리고 지금 상태로 계속 전선 유지하면 살아남는 건 가능하고?”

“……안 되겠지.”

부기사단장쯤 되면 바로 알 거다.

승산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걸.

로메로가 시선을 돌려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와 싸우고 있는 자신의 상관을 쳐다보았다.

“후. 단장님이 알면 당장 내 목을 쳐버릴 거야.”

“그 목을 칠 단장은 지금 여기에 없잖아.”

“이걸 진지하게 듣고 있는 내가 이상하군.”

그런 로메로에게 말을 이었다.

“고민할 시간도 얼마 없어. 이제 좀 지나면 전열도 무너질 거다.”

선택할 시간이 없는 건 사실이었다.

오래 끌어봐야 고작 5분 안팎일 텐데.

그때가 되면 선택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죄다 포위된 상태가 될 테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녀석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이 미친 짓 한번 동참해 보지.”

“좋은 선택이야.”

곧 로메로가 전장에 대놓고 외쳤다.

“7기사단 전체. 뒤로 빠져!”

그 외침에 전장에 있던 7기사단의 기사들이 전부 잘못 들었나 싶어서 로메로에게 시선을 돌렸다.

“네?”

“무슨?”

“여기서 빼라고요?”

“부단장님. 미쳤습니까?

돌아오는 대답은 거의 같았다.

그러자 로메로가 다시 한 번 크게 외쳤다.

“부단장 명령이다!”

그렇게까지 말하자 곧 7기사단들이 일제히 뒤로 빠져 로메로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상대하고 있던 타락 천사 석상들은 7기사단이 떨어져 나가자 오히려 이들을 무시하고 바로 다른 기사단들에게 달라붙기 시작했다.

“미친 놈들이!”

“돌았냐?”

“이 새끼들 지금 장난해?!”

당연히 다른 기사단들 쪽에서 욕설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런 상황을 보고는 역시나 하는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회복술사를 보호하는 것을 우선시하네.

만약 반대 상황이라면 7기사단을 억지로라도 따라붙었을 텐데.

7기사단이 우르르 몰려들자 바로 로메로에게 말했다.

“이제 다른 기사단은 오래 못 버텨.”

“후. 살아나면 항의가 빗발치겠군.”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하고. 그럼 지금부터 7기사단 전체를 써서 딱 한 곳만 뚫어줘.”

“뭐?”

“딱 한 번이면 돼. 할 수 있지?”

#1136 헤르게니아 (13)

웅성웅성.

갑자기 하달된 로메로의 후퇴 명령은 7기사단을 전부 당황하게 만들기 부족함이 없었다.

“이게 뭐냐…….”

“우리 빠져도 되는 것 맞아?”

“단장님이 아무 말 안 했는데…….”

“미리 이야기 된 것 아니었어?”

“부단장이 무슨 생각이 있겠지.”

이유를 모르고 부나방처럼 몰려드는 7기사단만큼이나 다른 기사단들도 곡소리가 나오는 건 똑같았다.

7기사단이 빠지는 자리만큼을 전부 커버해야 했으니까.

아니.

정확하게는 타락 천사 석상들이 그 자리를 파고 들어온 거지만.

어쨌든 이전보다 부담이 가중되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당연히 욕도 나오는 중이고.

모르긴 해도 이 전투가 끝나면 7 기사단은 공공의 적이 되어 있지 않으려나.

뭐 그것도 일단은 살아남아야 듣겠지만 말이지.

로메로가 한숨을 푹 쉬더니 내게 물었다.

“7기사단을 전부 써달라고? 기사단을 무슨 소모품 이야기하듯이 말하는데…….”

그러자 재중이 형에게 귓속말이 왔다.

<불멸> 오. 이 녀석. 예리한데?

<주호> 하하…….

맞다.

소모품.

그것도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발판이랄까.

그걸 대놓고 말했다가는 당장 7기사단이 우리 목을 치려고 할 테니 딱히 말하진 못하겠지만.

“중요한 일이다. 7기사단밖에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정확히는 그냥 로메로와 7기사단이 얻어 걸린 거다.

만약 로메로와 대화가 안 된다면 애초에 다른 방법을 택했을 테니.

그나마 확률상 보다 성공 확률이 높은.

이쪽을 택했을 뿐이다.

“휴. 내가 이걸 왜 듣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으니…….”

그러면서 로메로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단장 쪽을 쳐다보았다.

이 녀석의 상관인 7기사단의 단장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려나.

자신의 명령 없이 단독으로 부기사단장이 일을 벌였으니.

평상시라면 목이 날아가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기는 했다.

“나도 목을 걸었다.”

“알고 있어. 그러니 무조건 성공해야지. 아마 실패하면 바로 목이 걸릴 걸?”

“그 전에 걸릴 목이라도 있으면 좋겠군.”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서 웃음 지었다.

후.

졸지에 3황자 세력을 가져다 쓰는 셈인데 녀석은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진 않겠네.

“꽤 죽을 수도 있어.”

“이대로 버티다가 죽는 것 보다 낫다고 하지 않았나?”

곧 주변으로 몰려든 7기사단이 로메로에게 궁금한 것을 묻기 위해 다가오자 로메로가 한 손을 들어올렸다.

“대기. 곧 움직인다.”

그러자 7기사단 모두가 당황스러워하면서 멈칫했다가 곧 자신의 무기를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기사단에 대한 장악력도 나쁘지 않네.

“그래서 뭘 하면 되나?”

“간단해. 쐐기형 진형으로 적의 블록을 한 곳만 뚫는 거야. 지금처럼 사방으로 펼쳐져서 싸우지 말고.”

내 제안에 바로 로메로의 눈가가 비틀어졌다.

그리고는 따지듯이 답했다.

“우리라고 그 방법을 생각 안 한 건지 아나?”

“그런데 왜 안 했어?”

일점 돌파는 적의 방어를 깨는데 아주 좋은 방법 중에 하나였다.

특히 지금처럼 블록을 쌓고 단단히 버티고 있는 적의 라인을 뚫기에는.

“뚫고 들어가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뚫는 과정에서 좌우로 압박을 받게 되고 기사들이 너무 많이 죽을 거다.”

“그래?”

“예전이라면 한 번 고민이라도 해봤겠지만…… 지금은 우리 쪽에 회복술사가 없다.”

로메로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회복술사를 적들에게 다 뺏겨 버린 지금은.

한 번 치명상을 입게 되면 회복할 방법이 전무했다.

적의 몸통을 깎자고 이쪽은 목을 내줘야 할 판이라.

평소의 부기사단장이라면 내릴 수 없는 명령이고.

특히 저 단장이라는 녀석이 허락을 해줄지도 모르는 상황이기도 했다.

“그리고 한 번 뚫고 들어갔다가 빠르게 나오지 못하면 바로 사방이 둘러싸여서 포위된다.”

“그럼 전멸이지.”

“그걸 아는 녀석이…….”

그런 로메로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걱정하지 마. 안쪽으로 들어가는 건 나와 이쪽뿐이야.”

“뭐?”

“넌, 그냥 우리를 포위망 안쪽으로 들여보내 주기만 하면 돼.”

내 말을 다 듣고 난 뒤 로메로의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

마치 못 들을 걸 들었다는 표정으로.

“너…… 미쳤냐?”

“아니. 아직은 괜찮은 듯하다.”

“기사단이 다 들어가도 부족할 판에 단 둘이서 들어가겠다고?”

“잘못 알아들은 건 아니네.”

“하. 내가 지금 이런 어이없는 작전을 하겠다고 7기사단을 전부 빼왔다는 건가.”

그러더니 로메로 녀석이 날 반히 바라보며 물었다.

“성공 확률은?”

“네 생각보다 좀 높을 걸?”

“……미치겠군.”

“어차피 시간이 없어. 우리가 석상들을 쓰러뜨리는 숫자보다 저 녀석이 기사단을 죽여 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니까.”

그러면서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 쪽과 회복술사 집단을 바라보았다.

한쪽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기사단을 죽여대고.

반대로 회복술사 집단은 자신들의 석상들을 계속 회복시키면서 숫자 비율을 깨뜨리는 중이었다.

로메로가 이 말도 안 되는 작전을 하겠다고 나선 것도.

이렇게 얼마 지나지 않으면 곧 전멸한다는 걸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단장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행동한 거다.

“이 방법 밖에 없어. 우리 둘이서 저 기사단 블록을 다 뚫고 가기엔 벅차니까.”

아마 시간이 꽤 주어졌다면.

나와 재중이 형 둘이서 어떻게든 기사단 석상을 갉아먹으면서 균열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둘이서 하기에는 너무 시간이 부족했다.

거기다 장비 문제도 있고.

결국 7기사단의 힘을 빌리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잠시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로메로가 결정을 내렸다.

“하. 어떻게든 안으로 너희를 들려 보내 주기만 하면 된다는 거지?”

“그래.”

바로 로메로가 손을 들어서 외쳤다.

“7기사단 전원. 녀석들의 방어를 뚫고 일점 돌파한다.”

명령과 함께 바로 7기사단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7기사단 녀석들도 머리가 있으니 지금 내리는 명령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둘의 대화를 듣기라도 한 건지 곧 녀석들 중 몇몇이 앞으로 나왔다.

“선봉에 서겠습니다.”

“저도.”

“제가 제일 튼튼합니다.”

그리고는 앞 다투어 움직이더니 이내 하나의 쐐기 같은 진형을 만들어냈다.

재중이 형도 그 모습을 보고는 바로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꽤 훈련이 잘 되어 있잖아? 전방은 액스와 해머에. 사이드로 검방. 그 사이로 창병까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데?”

공격력이 가장 강한 녀석이 전방에서 뚫고 양 사이드는 방패병들이 따라붙어 양쪽으로 포위당해 공격당하는 걸 막는다.

그리고 창병들이 그 사이로 공격해 부족함을 메꾸는 방식.

진형도 단순해서 그런지 복잡한 명령 체계도 필요하지 않았고 문제가 생긴다고 해도 알아서 해결할 수 있다.

급조한 진형이지만 구성은 나쁘지 않았다.

“아, 그리고 이쪽에 창 좀 좋은 거 빌려줘.”

그러면서 재중이 형을 가리키자 곧 로메로가 하나의 창을 꺼내어 재중이 형에게 전해주었다.

“헤르마늄이 상당히 높게 섞인 창이다. 부단장급들이 쓰는 거니까.”

재중이 형도 창을 받아서 스펙을 보고 난 뒤 몇 번 휘둘러보더니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이거면 당분간은 버틸 수 있겠어. 나쁘지 않아.”

나쁘지 않다는 재중이 형의 말에 로메로의 표정이 약간 구겨지긴 했지만.

그런데 이 녀석은 알까 싶네.

재중이 형이 원래 가진 무기들이 얼마나 좋은 건지.

“그럼. 간다.”

로메로가 곧 진형에 합류하자 7기사단이 통째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쟤들 괜찮겠냐?”

“저렇게도 못 뚫으면 다른 방법 생각해 봐야죠.”

점점 기사단으로 된 타락 천사 석상들의 숫자가 늘어 이젠 쉽게 뚫기 힘들 수준이 되어 있었다.

7기사단뿐 아니라 다른 기사단의 죽은 이들의 숫자가 적지 않았기에.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못 뚫는 건 매한가지다.

“7기사단 전진!”

그리고는 기사단 전체가 오러를 끌어올리면서 하나의 거대한 창이 되어갔다.

그렇게 타락 천사들의 블록과 7기사단이 마주친 순간.

7기사단에서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나왔다.

“돌파!!”

“우오오!!”

“가자아!!”

“뚫어 버렸!!”

왜 이런 명령이 내려졌는지 의문을 가진 녀석들은 전혀 없이 지금의 상황을 깨기 위해 모든 힘을 끌어올려 돌파를 시도하자 견고했던 타락 천사의 전형이 앞에서부터 부서지기 시작했다.

“캬하악!”

“크어어!!”

“으어어!!”

양쪽이 한 점을 두고 격돌하는 순간 타락 천사들이 양쪽으로 튕겨나갔고 이내 7기사단의 선두부터 안쪽으로 파고 들어갔다.

“우리도 가자.”

“네.”

어차피 딱 한 번이다.

두 번은 이런 기회를 만들지 못할 테니.

그리고 우리 역시도 7기사단의 쐐기 안에 묻혀서 안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렇게 안쪽으로 들어오자 양옆으로 얼마나 거센 압력이 있는지 느껴졌다.

“계속 뚫고 지나가!”

“방패들은 버텨!!”

“찔러!!”

쾅쾅!!

콰지직!!

으드득!!

전방에서는 뒤를 신경 쓰지 않고 배틀 해머와 배틀 액스를 쉴 새 없이 휘두르며 전진했고.

검방과 방패병들이 양옆으로 서서 타락 천사들의 거센 공격을 그대로 방패와 몸으로 틀어막아 주었다.

그 사이로 창병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일격을 찔러 넣는 중이었다.

수시로 변형되는 타락 천사들의 각종 무기들이 그런 7기사단에게 끊임없이 쏟아져 내렸지만.

오직 이곳을 뚫겠다는 일념하에 모두의 정신이 하나의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오히려 이젠 기세 면에서 7기사단이 압도적인 느낌이 들었다.

원래의 같은 기사단이던 녀석들을 배어 내고 박살 내며 7기사단이 점점 뚫고 들어가자 어느 순간.

전방의 압박이 확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문제는 이쪽의 기사단 녀석들도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거지만.

급격하게 뒤를 신경 쓰지 않고 뚫는다고 그들의 몸 상태는 이미 전투를 더 이끌어가기에는 너무 많이 상해있었다.

그렇다고 여기서 빠지기에는 이젠 돌아갈 방법도 없었다.

“우오오오! 가즈아!”

“버티라고!!”

“오늘 여기서 뼈를 묻는다!”

다시 한 번 힘을 내서 외치는 7기사단을 본 재중이 형이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이 새끼들 마음에 드네.”

“그러게요. 생각 이상이네요.”

2기사단 같은 녀석들만 보다가 이 녀석들을 보니 안구정화가 되는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

곧 로메로가 내게 외쳤다.

“우린 여기까지다! 더는 못 들어가!”

이미 피투성이에 장비가 반쯤 박살난 로메로가 뒤를 돌아보며 함성 속에서 외치자 나 역시 외쳤다.

“고맙다!”

그리고는 재중이 형을 보고 말했다.

“가죠!”

“그래. 가자!”

바로 나와 재중이 형이 앞의 로메로 녀석의 위로 점프해 녀석이 눈치껏 받쳐주는 방패를 밟고 한 단계 더 도약했다.

그렇게 천사 석상들의 블록을 뚫고 넘어오자 드디어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회복술사들로 구성된 타락 천사 석상들이.

그 모습을 본 로메로의 외침이 다시 들려왔다.

“전부 박살내 버려!”

착지하자마자 바로 하나의 무기를 불러냈다.

그동안은 다른 녀석들의 눈치가 보여서 꺼내지 않았던.

검붉은 기운을 줄기차게 풀어내는 녀석을.

그리고는 회복술사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면서 외쳤다.

“네 녀석들의 잔치는 여기서 끝이야!”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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