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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34화 (1,122/1,404)

#1133화 헤르게니아 (10)

슬쩍 고개를 돌려서 원래 우리가 들어왔던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저곳은 확실히 막혀 있고.

아마도 저 통로는 이곳에서 전투가 일어나면 바로 막히는 구조로 되어 있는 듯했다.

전에도 그랬지만 이번도 똑같은 걸 보면.

그렇다는 건 당장 밖으로 빠져나가는 건 힘들다는 말인데…….

결국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지금 저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를 잡아내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 해서 아주 다른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에센시아 기사단 녀석들이 저 네임드의 시선을 끌어주는 동안.

적어도 이곳 지하 사원 안에서는 다른 타락 천사 석상들을 만나게 될 일은 없을 테니.

그러니까 기사단을 포기하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어쩌면 지하 사원의 끝까지 들어갈 수 있을지도.

잠시 고민을 하다가 어느새 재중이 형 옆으로 가 있는 라첼을 바라보았다.

흐음.

이 녀석도 문제긴 한데…….

여러 가지 고민이 머리를 스치면서 생각이 꼬이는 느낌이었다.

재중이 형은 내 대답을 기다리는 듯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었고.

그리고 우리 팀 역시도 옆으로 달려와 내 상태를 살피더니 안심한 듯 나를 쳐다보았다.

그런 우리 팀을 보고는 설명했다.

“흐음…… 지금 택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그러자 나르샤 누나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기사단과 타락 천사들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합류하거나 버리거나?”

“네, 뭐 간략하게 말하면 그런 셈이죠.”

에센시아 기사단을 버린다는 말에 라첼의 어깨가 움찔했다.

하긴 이 녀석도 일단은 기사단이니까.

그 안에서 어떤 대접을 받았던 말이지.

여기서 기사단을 버린다는 건.

저들이 모두 죽게 내버려둔다는 말과 똑같았다.

“우리가 도와주지 않아도 살 수 있지 않을까?”

“으음. 아마도 무리일 거예요.”

바로 시선을 돌려 재중이 형을 바라보자 재중이 형 역시도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힘들 거야. 저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라는 놈한테 회복술사들을 죄다 뺏겼거든.”

“보긴 했는데…….”

“그럼 전력비가 갑자기 확 기울어. 풀 전력인 상태로 싸워도 될까 말까 한데. 지금은 아예 상대도 안 되겠지. 그리고…… 단순히 회복술사 몇 뺏긴 걸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어.”

그리고는 재중이 형이 다시 전장 쪽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재중이 형의 시선이 닿은 곳에는…….

“크악!”

“살려줘!!”

타락 천사 석상으로 변해버린 기사단의 공격을 받은 에센시아 기사단의 기사 하나가 가슴에 검이 길게 박히면서 그대로 숨이 절명해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깊게 박힌 타락 천사 석상의 검이 마치 피라도 빨아들이는 듯 검신 전체로 혈관이 퍼지더니 이내 기사단의 가슴에서부터 피를 울컥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양분이라도 빨아들이는 듯이 거세게.

그렇게 온몸에서 핏기가 싹 사라진 에센시아 기사가 고개를 푹 떨구더니 이내 한 가지 변화가 보였다.

“그오오…….”

그 모습을 본 챠밍이 놀란 듯 말했다.

“오빠. 저건…….”

“그래. 아무래도 타락 천사들에게 죽는 순간 석상화가 되는 모양이야.”

얼마 지나지 않아 가슴에 검이 박힌 에센시아 기사가 무릎을 펴고 일어나더니 등 뒤로 하얀 날개들이 쫙 뻗어져 나왔다.

촤아악!

“크어어!!”

그리곤 우리가 아는 딱 타락 천사 석상의 그것과 동일한 녀석이 만들어졌다.

그것도 기사단의 장비를 착용한 채로.

전사 형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휴. 적이 또 늘어났네.”

“네. 저런 식으로 숫자를 늘리는 게 녀석들의 능력 같아요.”

그때 막내별이 지하 사원 안쪽을 바라보더니 뭔가 알겠다는 듯 외쳤다.

“아, 그럼……! 저 많던 석상들은 전부 침입자들이 변한 거겠어요.”

확실히 막내별이 말한 대로 왜 저렇게 석상 수가 많나 했더니.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쪽수를 늘려왔던 것 같았다.

전사 형이 표정을 굳히고는 내게 말했다.

“저런 녀석들이 안쪽에 더 있을 수도 있다는 거네.”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죠.”

내가 걸어서 들어갔던 장소까지는 확인했지만 그보다 더 안쪽에는 뭐가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망설이는 중이기도 했고.

과연 저 기사단들을 여기서 다 버리고 가는 게 맞는 선택일지.

혹 그 선택이 후에 우리 뒤통수를 치는 선택이 될지도 모르겠고.

제일 최악은.

지금 당장에야 버리고 갈 순 있어도 후에 이곳을 빠져나갈 때 저들을 마주쳐야 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었다.

어쨌든 현재 입구는 이곳밖엔 없으니까.

그래서 혹시나 해서 맥크라이에게 물어보았다.

“맥크라이 장로님. 여기 말고 다른 곳에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어요?”

내 물음에 맥크라이가 우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도 여기까지밖에 못 들어왔다. 다른 곳에 뭐가 있는진 모르지.”

“음. 일단 알겠어요.”

잠시 재중이 형을 불러서 물어보았다.

“형, 만약 저 기사단이 전부 타락 천사 석상으로 변하면 우리가 빠져나갈 수 있을까요?”

“전부 다 죽을 걸 예상하고 말이지?”

“네. 전부 죽는다는 예상 하에요.”

“음. 아무래도 어렵겠지. 저 네임드만 해도 어려울 텐데.”

그 말을 듣고 난 뒤 바로 결정을 내렸다.

“그럼 역시 살려야겠네요. 나중에 문제가 되는 것을 둘째 치더라도요.”

딱히 에센시아 기사단 녀석들이 예쁜 구석이 있어서 살려주겠다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녀석들이 죄다 타락 천사 석상으로 변해서 우리 뒤를 칠 때가 문제였다.

그리고 쪽수도 쪽수지만…….

바로 내 시선이 헤르게니아의 타락 천사들과 싸우고 있는 네 명의 기사단장들에게 가서 닿았다.

“저 녀석들이 타락 천사 석상이 되면 상대하기 정말 버거울 거예요.”

내 말에 재중이 형이 동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저 네임드를 상대로 버티고 있는 걸 보면 말이지. 그래도 회복술사도 없이 체력도 잘 유지하고 있고.”

기사단장이라 해서 그냥 기사들보다 좀 더 센 녀석들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지금 전투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거의 몇 단계 정도의 실력 차이가 있달까.

저들이 이름이 알려진 영웅은 아니지만.

최소한 영웅 라인의 발가락 정도는 걸칠 수준은 될 것 같았다.

지금 전투 진형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것도 순전히 저들의 힘이기도 하고.

하지만 아무리 저들이 잘 싸운다고 해도.

결국 타락 천사 석상들과의 전투에서 죽은 에센시아 기사단 녀석들이 하나둘 적들처럼 변해갈 것이다.

그럼 지금보다도 더욱 어려운 전투를 하게 될 터.

“합류하려면 지금뿐이겠죠.”

“아아. 더 늦으면 힘들겠지. 오히려 우리가 포위돼서 죽을 거야.”

“휴. 그럼 한 번 해보죠.”

그러다 잠시 멈칫하고 재중이 형에게 물었다.

“장비는요?”

“정체를 들키는 것 말이지?”

“네. 일단은 우리가 여기 있으면 안 되니까요.”

몰래 숨어들어온 상태에서 우리 장비를 죄다 오픈해 버리면 후에 에센시아 제국 황제의 귀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우리가 몰래 숨어들어왔다는 걸.

당장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이후의 일도 생각해야 한다.

“흠. 좋아. 그럼 최대한 기사단 장비로 버텨보고. 그래도 안 되면……

“네. 그때는 방법이 없겠죠. 형은 괜찮겠어요?”

이미 날 구한다고 보급형 창이 반쯤 이가 나간 상태였다.

“대충 몇 놈 죽이고 주워 쓰지 뭐.”

역시나 쿨한 대답에 나 역시 웃음 지었다.

“그러면 되겠네요.”

곧장 고개를 돌려 챠밍과 막내별을 보며 말했다.

“둘 다 힐을 나눠 주되 최대한 어그로를 끌지 않도록 해요.”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화살이 날아오는 표시를 해보이자 챠밍이 납득한 듯 대답했다.

“저 네임드 때문이죠?”

“응. 회복이 된다는 걸 알면 바로 둘을 노릴지도 몰라.”

고개를 돌려 전사 형과 이쁜소녀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챠밍과 막내별을 지켜주세요. 저하고 재중이 형은 전투에 나서야 할 거 같으니까.”

“알았다.”

“네. 잘할게요.”

굳이 저 난장판으로 이들을 들여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리고 여차하면 바로 자리를 이탈해야 하니까.

상황이 바뀌면 언제라도 빠질 수 있도록 최대한 외곽에서 지원만 하면 된다.

“나르샤 누나는 투명 화살로 지원만 좀 해주세요. 절대 어그로를 끌만큼은 싸우지 말고요.”

그리고 원거리에서도 가장 눈에 띄지 않는 건 역시 나르샤 누나뿐이었다.

애초에 화살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오케이. 잘 조절할게.”

그러자 우리 쪽도 진형이 바로 준비가 되었다.

나와 재중이 형은 적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직접 나서지만 우리 팀은 딱 지원까지만 한다.

그때 라첼이 내 팔을 잡으면서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면 물었다.

“어…… 난 뭐 하면 돼?”

“어?”

“나도 뭔가 해야…….”

“흐음.”

일단 이 녀석도 기사는 맞으니 최소한의 능력은 있을 테지.

실력이 아예 없다면 기사단 자체에 뽑히지도 못 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미래의 괴물이 될 예정인데.

그 정도 능력이 없을까.

“그럼. 혹시 저기 형하고 누나가 못 막고 뚫리면 그때 도와줘.”

그러면서 전사 형과 이쁜소녀를 가리켰는데.

라첼의 눈이 살짝 찡그려졌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그런데 딱히 거기에 대한 말은 하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아…… 알았어.”

응?

내가 잘못 본 건가?

뭔가 말을 하려고 했던 것 같으데.

아무튼 없는 것보다야 훨씬 나을 테니 안심하고 재중이 형과 앞으로 나섰다.

“나하고 거리를 너무 떨어지지 마. 여차하면 도와줄 사람은 둘 뿐이다.”

“네. 형도 조심해요.”

그리고는 바로 기사단의 보급 검을 복사했다.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

.

일단 마력은 전부 이쪽 위주로 돌리면 되려나.

최소한 르아 카르테라도 있으면 마력 흡수를 할 수 있을 테지만.

다른 오러까지 운영하기에는 아마 마력이 꽤 부족할 듯했다.

응?

그런데 르아 카르테 정도는 꺼내도 되지 않나 싶기도 하고.

저들이 내 검에 대한 정보가 있을 리도 없으니까.

하지만 일단은 조심하기로 했다.

혹여나 이전 제국에서의 전투로 알아보는 녀석이 나올지도 모르니.

우리가 앞으로 나서자 챠밍과 막내별이 각자 재중이 형과 내게 각종 보조 마법들을 걸어 주었다.

【 더블 헤이스트! 】

【 윈드 워크! 】

【 하이 스트랭스! 】

【 웨폰 블레싱! 】

.

.

“걸 수 있는 건 다 걸었어요.”

“응. 땡큐.”

“위험할 것 같으면 그냥 바로 장비 바꿔요.”

“알았어.”

그래도 걱정되는지 챠밍이 빤히 바라보자 웃음으로 대신했다.

“절대 죽어서 오진 않을 테니 걱정 말고.”

【 헤이스트! 】

【 대쉬! 】

그리곤 곧장 몸을 날려 한 기사단과 싸우고 있는 타락 천사 석상의 뒤에 붙었다.

아무래도 에센시아 기사들을 공격한다고 정신이 팔려서 내 쪽은 미처 파악을 하지 못한 듯했다.

전에 싸울 때도 봤지만.

전투 능력 자체는 원본의 그걸 그대로 답습하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렇다는 건 이 타락 천사 석상의 원본이 예전에 그렇게까지 강한 녀석은 아닐 거라는 소리겠지.

곧장 몸을 날려 기사단 보급 검을 휘둘러 타락 천사 석상의 목을 쳤다.

카아앙!!

역시.

이런 보급품으로는 몬스터로 변한 녀석들의 방어를 깨는 건 어려웠다.

게다가 내 쪽은 테르타로스처럼 능력을 뻥튀기해 주는 무기도 없었고.

레벨이 올랐다지만 스펙상 밀리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그 모든 단점들을 상쇄할 방법을 쓸 수밖에.

상대하고 있던 에센시아 기사 녀석이 깜짝 놀라 내 쪽을 보더니 눈빛을 빛내면서 다시 거세게 타락 천사 석상을 밀어붙였다.

계속 밀리다가 누군가 도와준다는 건 꽤 힘이 나는 일이니까.

그래.

조금만 더 녀석의 시선을 끌어 줘.

그리고 다시 타락 천사 석상이 기사단에게 시선이 돌아가는 순간.

보급 검을 다시 강하게 휘둘렀다.

그렇게 보급 검이 타락 천사 석상의 목에 닿는 순간.

바로 검을 손에서 놓아 버리고는 남은 하나의 보급 검을 교차해 그 위로 때려 박았다.

카가각!!

이전에는 뚫리지 않았던 것도 두 검의 크로스로 겹쳐서 박히자 타락 석상의 목을 그대로 파고 들어갔다.

【 웨폰 카피! 】

【 웨폰 카피! 】

그리고는 바로 다시 보급 검들을 만들어 서 박혀 들어간 위치로 정확하게 내려쳤다.

카가갹!!

쿠드득!!

“케에엑!”

풀썩!

무려 네 번에 걸친 타격을 정확히 한 점에 집중에서 박아 넣자 타락 천사 석상의 목이 그대로 갈려 나가며 석상이 힘을 잃고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에센시아 기사의 눈이 동그랗게 변하더니 더 없이 흔들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대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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