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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억분의 1의 이레귤러-1129화 (1,117/1,404)

#1128화 헤르게니아 (5)

으으드득!!

드드드득!!

내 명령과 함께 길게 뻗은 통로의 좌우에 쭉 서 있던 합성된 타락 천사의 석상들의 몸이 풀려나며 일제히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전의 그때와 같이 천사 석상들의 머리가 기괴하게 꺾어지면서 여러 개의 붉은 눈들이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적대감이 가득한 눈빛으로.

마치 이곳에 침략한 인간이 누구인지 파악하는 것 같은 어둠속의 수백 개가 넘는 눈빛은 보는 것은 그 자체로 몸이 떨리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와는 달리.

내 손에는 지금 이게 들려져 있었다.

『 합성된 타락 천사의 핵. 』

전에 합성된 타락 천사가 합체될 때 녀석들을 부수면서 얻은 아이템.

그런데 이 드랍 아이템에는 한 가지 특이한 능력이 들어가 있었다.

- 이 타락 천사의 핵을 보유한 유저는 타락 천사들에게 공격 받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왜 이런 기능이 핵에 들어가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넓은 지하 사원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통과증 역할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이 아이템의 쓸모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최상의 효과를 발휘한다.

현재 난 우르르 깨어나는 수많은 천사 석상들에게 둘러싸여 있지만.

이들은 날 공격하지 않으니까.

그중 내게 가장 가깝게 깨어난 천사 석상의 붉은 눈이 내 쪽으로 향하더니 입이 쭉 찢어지면서 기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천사 핵. 인증. 완료. 통과. 가능. 』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천사 석상들에게서 듣던 목소리와는 확연히 다른 기계적인 목소리가 내게 전달되었다.

그때 재중이 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불멸> 어때? 되냐?

<주호> 네. 녀석들이 확실히 절 공격하지 않아요.

<불멸> 그거 참 좋네.

재중이 형과 이 아이템을 두고 의논을 했을 때는 그냥 이걸 가지고 한 명만 쭉 통과를 해서 지하 사원의 지형을 알아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중간에 기사단 녀석들이 들이닥치면서 그 계획이 좀 변경되어 버렸다.

바로 지금처럼.

그리고 마치 날 무시하듯이 하나둘 깨어나 내 곁을 지나치는 녀석들을 경계하듯 바라보다가 이내 녀석들이 일제히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

저 멀리서 무언가를 찾아낸 듯.

<주호> 형. 녀석들이 그쪽을 발견한 것 같아요.

<불멸> 큭. 이젠 이쪽이 고생하겠네.

<주호> 어그로 끌리지 않게 바로 뒤로 빠져요.

<불멸> 이미 뒤로 다 빠졌다.

미리 약속된 상황이 오자 재중이 형 쪽 역시도 행동에 들어갔다.

<주호> 그럼 이따가 봐요.

<불멸> 그래. 혹시 모르니까 그래도 경계를 풀지는 말고. 그 핵이 만능은 아닐 테니.

<주호> 네, 조심할게요.

재중이 형 말대로 이 천사의 핵 아이템이 쿨타임이 있다든가 하는 문제가 존재한다면.

갑자기 녀석들이 내게 달려들 수도 있는 노릇이라.

“후, 그럼 나도 좀 빠져 볼까.”

바로 하이딩 망토를 몸에 둘렀다.

혹시라도 모를 다른 녀석들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그리고 이 행동은.

꼭 천사 석상들을 피하기 위함은 또 아니었다.

천사 석상들이 우르르 내가 왔던 통로 쪽으로 쭉 몰려가자 하이딩 망토에 몸을 숨긴 채 녀석들을 몰래 따라갔다.

그리고 점점 헤르마늄의 빛에 통로가 밝아지더니 어느 순간 고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건 뭐야!!”

“적이다!”

“각 기사단 전투 진형으로!”

돌발 상황이었지만 기사단마다 일사불란하게 각자의 진형을 완벽하게 구축하는 걸 보면 확실히 훈련이 잘 되어 있는 기사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에센시아 제국을 대표하는 기사단이라면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런데 이 녀석들, 자신들의 기사단만 챙길 뿐.

누구 하나 나서서 맥크라이나 우리 팀을 보호하려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마치 각자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듯.

대놓고 죽이지는 않겠지만.

딱히 도와주진 않겠다는 거려나…….

어쩌면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고 생색을 내려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 보호를 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뭐 이미 우리 팀은 맥크라이를 잡아채고 바로 후방으로 빠진 상황이라 상관없긴 했다.

그리고 기사단 중에서 그런 우리 팀을 보고는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 녀석들도 몇 보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단은 제국의 기사단이니.

하지만.

이쪽도 할 말은 있지.

요직인 드워프 장로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고 하면 나중에라도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이것 역시도 재중이 형과 미리 이야기가 다 되어 있었고.

결국 먼저 어그로가 끌린 기사단들과 합성된 타락 천사들이 지하 사원의 입구에서 일제히 격돌하기 시작했다.

“블럭 대형 형성해!”

“라지 쉴드는 정면!”

“측면으로 녀석들을 돌게 하지 마라!”

“창기사들은 뒤쪽에서 견제하고!”

이미 이곳 헤르마늄 광산에 들어와 몬스터들과의 전투를 많이 치러본 녀석들이라 일체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리고 기사단 녀석들 역시 개개인마다 능력치가 높기도 할 테니까.

전면에 라지 쉴드를 들고 선 기사들에게서 동시에 푸른빛이 퍼지며 두텁게 오러를 펼쳐냈다.

그렇게 아무도 뒤로 보내지 않겠다는 듯 굳건한 덩치들이 앞을 막자 든든해 보이긴 했지만.

하이딩 상태로 그 모습을 본 내 입가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정도로 막을 수 있으면 우리가 그 고생을 안 했지.

끼기기긱!!

콰지직!!

정면의 합성된 타락 천사들과 라지 쉴드를 든 기사들이 부딪치자 처음에는 쇠가 갈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뭔가가 박살 나는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으아악!!”

촤아악!!

합성된 타락 천사의 거검이 라지 쉴드를 통째로 부셔버리면서 그와 함께 정면에 있던 기사의 몸을 절반으로 갈라 버렸다.

동시에 기사의 몸에서 피분수가 터져 나오며 사방으로 비산했고.

저건 기사의 오러가 타락 천사의 무기에 그대로 찢겨버렸다고 해야 하나.

돌풍 앞에 힘없는 촛불처럼 그대로 꺼져버린 오러는 다시 피어나지 못하고 바로 사라졌다.

그리고 그건 비단 그 기사 하나만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콰지직!!

콰지직!!

촤아악!!

촤아악!!

지하 사원의 통로를 막듯 일렬로 늘어선 탓에 부딪힌 기사들의 숫자가 상당했다.

그렇게 라지 쉴드를 들고 있던 기사들은 모두 한꺼번에 타락 천사의 무기에 찢기며 생을 달리했다.

그런데 그 순간.

눈이 찌푸려지는 상황이 일어났다.

몇몇 타락 천사들이 거대한 입을 쩌억 벌리더니 죽어서 바닥에 쓰러진 기사단 시체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콰득!

우드득!

콰드득!

기사들을 방어구째 통째로 씹어버리는 소리가 지하 사원 내에 울리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캬하학!!

시체 하나에 대여섯의 천사 석상들이 달라붙어서 서로 뺏기지 않겠다는 듯 경고음을 내며 물어 찢는 광경이란…….

사방으로 피가 튀었고 그 피가 묻은 천사 석상들이 더욱 환한 미소를 지어갔다.

마치 즐거움을 느낀다는 듯.

<방패전사> 와씨. 저건 안 보는 게 낫겠다.

<주호> 그러게요.

비위 약한 녀석들은 보는 순간 질려 버릴 광경이려나.

우리와 싸울 때는 한 명도 죽거나 쓰러지지 않아서 저런 모습을 볼 일이 없어서 그저 평범한 몬스터일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본 모습은 그런 예상과는 아예 다른 모습이었다.

저 멀리 바라보니 챠밍과 이쁜소녀, 나르샤 누나, 막내별의 표정이 하얗게 질려 있는 듯 했다.

아마 나중에 여기가 공개되면 가장 인기 없는 사냥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딱 그 정도의 잔인함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더 벌어졌다.

기사단을 잡아먹은 천사 녀석들의 날개가 뒤로 활짝 펼쳐지더니 신체와 날개가 모두 붉은 혈관 같은 것들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동시에 녀석들에게 폭발적인 기세가 뻗어 나왔다.

키아악!!

이거…….

생각보다 너무 심한데?

지금 녀석들의 저 이상한 변화도 변화지만.

무엇보다 기사단이 상대가 안 되는 게 더 문제다.

우리가 상대할 때와 달리 붉게 변해 버린 천사 석상들이 근처에 막고 있던 기사의 방어를 한 번에 뚫어내고 목을 들어 쥐더니 그대로 옆으로 꺾어버렸다.

“크억!!”

더욱이 천사 석상 녀석들의 공속과 이속. 그리고 힘이 동시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듯 보였다.

기사단 녀석이 아예 반응을 못할 정도로.

<주호> 형, 전력 차이가 너무 심한데요?

<불멸> 그러게. 저렇게 한 번에 찢길 줄은 나도 몰랐다.

아무리 그래도 기사단인데.

방어구에 헤르마늄을 전혀 안 섞어준 건가 싶기도 하고.

헤르마늄이 귀하다면 귀하지만.

이렇게까지 아낄 정도는 아닐 텐데.

그동안 캐낸 양도 제법 될 테고 충분히 장비로 만들 수도 이었겠지만.

결과는 예상과 전혀 달랐다.

마치 너무 쉽게 종이처럼 찢겨나가는 기사단을 보고는 오히려 우리가 당황할 정도였다.

기사단도 그렇게 마냥 당하기만 하진 않았다.

곧 각 기사단 내에서 머리로 예상되는 녀석이 오러를 뿜어내고는 각자의 무기를 들고 앞으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익숙한 빛으로 번쩍이는 무기를 들고 정면을 막아섰다.

“헤르마늄 장비가 없는 녀석들은 뒤로 빠진다!”

타락 천사들과 섞여서 어지러운 상황이었지만 중간에 나온 기사들이 어떻게든 막아내자 잠시나마 진형이 안정되어갔다.

그리고 뒤로 빠진 녀석들이 뭔가 다른 장비로 다 교체하는 모습을 보였다.

역시 가지고 있긴 한 거였나.

“대천사용 무구를 이런 데서 사용할 줄이야…….”

당황한 몇몇 녀석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대부분 저런 말이었다.

저들이 말하는 대천사용 무구라는 게 헤르마늄이 섞인 무기일 것이다.

하지만 기사단 내에서 대처가 빠른 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찢겨나간 기사단 숫자가 적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고스란히 저 타락 천사 석상들에게 흡수되어 녀석들의 힘이 되어버린 상태였다.

뒤늦게 나선 기사단 녀석들이 헤르마늄 장비와 타락 천사들의 무기가 부딪히는 순간.

다시 한 번 기사단의 진형이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크윽! 뭐 이런 녀석들이……!”

아마 이런 곳에서 저런 몬스터를 만난다고 예상하지 못했을 테지.

실력이 있는 녀석들이 달려들었음에도 겨우 평수를 이루자 진형은 뒤로 쭉쭉 밀려 나갔다.

설마 이렇게까지 밀려 버릴 줄은 몰랐는데.

원래 예상과 달리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가자 바로 재중이 형에게 연락했다.

<주호> 개입해야 하나요?

잘못하다가 우리 팀이 휩쓸릴 수도 있기에.

하지만 재중이 형의 선택은 달랐다.

<불멸> 아니. 아직 녀석들은 제대로 시작하지 않았어.

그러면서 재중이 형이 눈짓으로 한곳을 가리키자 기사단 중앙부에 여전히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몇몇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상황을 살피듯이 주변 기사단 녀석들에게 오더를 내리면서.

확실히.

저 녀석들…….

다른 기사단과 달리 뭔가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아니.

그냥 당황하지 않는 걸 봐서는.

그리고 무엇보다.

녀석들의 장비가 확연히 달라 보였다.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그런 빛들이 녀석들의 무구 전체에서 흘러나왔다.

<주호> 헤르마늄을 과하게 썼나 보네요.

<불멸> 아아. 저 녀석들. 애초에 천사들을 상대하려고 준비하고 나온 녀석들이야. 그게 아니라면 몇 녀석들에게만 저렇게 헤르마늄을 몰아줄 리가 없으니까.

처음 격돌 때 정면의 전력이 찢겨나간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고는 재중이 형에게 대답했다.

<주호> 흐음. 이거 생각보다 꽤 어렵겠는데요?

그리고는 이어서 진한 웃음과 함께 한마디를 더 했다.

<주호> 녀석들을 전멸시키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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