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6화 헤르게니아 (3)
이 헤르마늄 광산으로 들어온 에센시아 기사단 녀석들의 목적은 명확했다.
바로 에센시아 제국 황제가 원하는 물건을 찾는 것.
그것 하나 때문에 드워프들의 비위를 애써 맞춰 줘가면서 일을 진행하고 있던 중이었고.
얼마 전에 2기사단 녀석들과 마주쳤을 때도 드워프 장로인 맥크라이를 치켜세워 준다는 느낌보다는 오히려 하대하는 느낌이 더 강했었다.
제국 내에서 기사단의 직위를 가진 녀석들은 대부분이 귀족 집안이라고 보면 된다.
평소라면 그런 녀석들이 타 종족인 드워프들을 그렇게 우대해줄 이유는 없었겠지만.
지금은 확고한 목적이 있으니까.
그런데 이 상황에서 헤르마늄 광산 내 비밀 공간을 드워프의 장로인 맥크라이가 자신들에게 숨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다른 녀석들을 제쳐놓고 2기사단의 대표격으로 나섰던 기사 녀석이 머리를 슬쩍 맥크라이에게 들이밀면서 두 눈을 가늘게 뜨고는 경고했다.
“드워프 장로. 전 숨바꼭질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진 않습니다. 질문 놀이하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그러면서 바로 기세를 끌어올려 맥크라이를 압박했다.
“마음 같아서는 당신 같은 드워프들이야 이 자리에서 바로 목을 날려버려도 괜찮겠지만. 일단은 황제 폐하의 명이 있으니까 참는 겁니다.”
지금 바로 목을 칠 수 있으니 허튼짓을 하지 말라는 경고일까.
아니면 아는 것을 모두 뱉으라는 뜻일 수도 있고.
그리고 마지막에는 드워프 장로인 맥크라이에게 슬쩍 흘리듯 말했다.
“어딘가에 갇혀 있는 당신네들 왕의 후손도 생각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으음…….”
그 말을 듣자마자 맥크라이의 안색이 바로 굳어졌다.
<불멸> 저건 아주 대놓고 협박인데?
<주호> 흐음. 맥크라이가 잘해야 할 텐데요.
솔직히 맥크라이가 여기서 입을 열게 되면 정말 상황이 복잡해진다.
우리가 다시 에센시아 기사단의 복장으로 환복하고 녀석들을 기다렸던 것도 다 맥크라이가 입을 열지 않을 거라는 가정하에 하고 있는 행동이니까.
여기서 만약 일이 틀어지게 되면.
바로 에센시아 기사단과 칼부림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잠시 침묵을 지키는 맥크라이를 긴장된 눈으로 바라봤다.
우리 팀들 역시 마찬가지고.
<챠밍> 오빠. 괜찮을까요?
<이쁜소녀> 맥크라이가 말하면 어떻게 해요?
<막내별> 나쁜 놈들이네요. 애들 가지고 협박이나 하고.
<방패전사> 여차하면 싸워야겠는데.
<나르샤> 싸움 나면 바로 저 재수 없는 면상부터 쳐야겠어.
다들 한마디씩 하는 걸 보면.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 건 매한가지인 듯했다.
솔직히 대놓고 드워프 왕의 후손을 가지고 협박할 줄은 나 역시도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까.
아무리 그래도 동맹이라 할 수 있는 드워프일 텐데 대놓고 협박이라…….
녀석들이 평소에 얼마나 드워프들을 업신여기는지 잘 보여 주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맥크라이가 이내 못 이기는 척 기사단 녀석의 말을 들어주었다.
“음. 자네 뜻은 잘 알았네. 내 최대한 협조하지.”
“흠. 말을 잘 알아들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진작 이렇게 나오셨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고.”
그런데 그 이후에 맥크라이의 얼굴이 험악하게 바뀌며 그 기사단 녀석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왕의 후손을 두고 협박질 하면 내가 협조하는 일은 꿈도 꾸지 말게.”
그러자 기사단 녀석의 한쪽 눈썹이 기분 나쁘다는 듯이 꿈틀거렸다.
마치 저건 대들지 않아야 하는 녀석이 대들어서 기분 나빠하는 딱 그런 표정일까.
“이…….”
순간 화를 참지 못하기라도 한 듯 녀석의 기세가 확연히 거세지기 시작했다.
아예 대놓고 살기를 뻗치는 녀석을 보자 나와 재중이 형이 바로 손에 검을 가져다 댔다.
여차하며 튀어나갈 생각으로.
그런데 그때 뒤쪽에 대기하던 날카롭게 생긴 면상을 한 기사단 녀석이 팔을 뻗어 앞에 있던 녀석의 어깨를 강하게 붙잡았다.
“적당히 해라. 보는 눈이 많다.”
그리고 손에 하얀 냉기 같은 기운이 퍼지면서 앞의 녀석의 어깨에 서리를 끼게 만들자 화들짝 놀라 녀석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단장님. 이건…….”
“두 번 말하게 하지 마.”
단장이라 불리는 녀석은 아무런 기세조차 일으키지 않았지만.
오히려 앞에 녀석은 바로 기운을 줄이면서 순응했다.
확실한 상하 체계라고 해야 하나?
그게 아니면 뒤의 단장이라는 녀석이 앞의 녀석보다 압도적으로 강하더던가.
기세를 없앤 녀석이 단장 녀석의 말에 뒤를 바라보자 다른 기사단 녀석들이 이쪽을 전부 주시하고 있는 게 보였다.
“틈을 주지 마. 아직 목표를 확보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는 맥크라이가 아닌 단장에게 고개를 숙여서 사과를 했다.
사과 받아야 하는 쪽은 정작 맥크라이인데 말이지.
단장은 딱히 말을 하고 싶진 않다는 듯 다시 뒤로 빠졌고 앞의 녀석이 띠껍다는 듯 맥크라이에게 말했다.
“앞에 말은 못 들은 걸로 해주시죠.”
그 말에 맥크라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미 쏟은 말은 주워 담기 힘든 일이라.
기사단 녀석도 딱히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는지 그냥 모른 척 넘어갔다.
“그래서 황제 폐하께서 원하시는 물건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미 맥크라이의 기분을 죄다 상하게 해놓고 자기 물을 말만 묻는 녀석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재중이 형도 비슷한 생각인 듯 했다.
<불멸> 보기보다 생각이 없는 녀석이군. 보아하니 뒤에 녀석들은 경쟁자들 같은데 말이지.
<주호> 그러게요. 속을 긁을게 아니라 비위를 맞춰줘도 모자랄 판에 저러다니.
사실 지금 상황만 보면 오히려 기사단 녀석이 맥크라이에게 최대한 맞춰줘도 될까 말까한 상황이었다.
뭐 자신들의 2기사단들만 여기 있다면 또 모를까.
지금 여길 지켜보는 녀석들은 전부 소속 기사단이 달랐다.
<주호> 전사 형. 분명 저쪽 기사단은 황제 쪽 기사단이 아니었죠.
내가 한쪽 방향을 가리키며 물어보자 전사 형이 기사단 녀석들의 기사단 마크를 보더니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방패전사> 어, 쟤들. 겉으로만 황제의 직속 기사단이지. 사실 다른 황자 쪽 애들이야.
사실 겉만 봐서는 이걸 구분할 방법은 우리에게 전무했다.
하지만.
우린 이미 이 시대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저 기사단 중.
후에 어느 기사단이 검으로 거꾸로 쥐는지 역시도 잘 알고 있었고.
방금 2기사단의 단장이라는 녀석도 어렴풋이 아는 듯했지만.
꼭 그게 아니더라도…….
<주호> 경쟁이 붙었을 수도 있겠네요.
<방패전사> 아무래도 기사단 내부에서도 서열이 있을 테니까. 당장 같은 황제의 기사단이라고 해도 서로 견제하는 일은 분명히 존재해. 그리고 애초에 다른 녀석 소속으로 있는 녀석들도 있고.
<주호> 그곳에 우리가 파고들 틈이 있는 거죠.
<방패전사> 그렇지.
아무 대비책 없이 마냥 기사단 녀석들이 비밀 통로를 지나오길 기다린 건 절대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이런 계산이 깔려 있었으니까.
그리고 당장 녀석들이 맥크라이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는 것 역시도.
지금 이 헤르마늄 광산의 지하 사원을 제일 잘 아는 이는 다름 아닌 저 드워프 장로인 맥크라이였다.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뿐만 아니라 당연히 기사단 녀석들 역시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테고.
어떻게든 맥크라이는 건들지 못한다는 거지.
거기다 맥크라이가 데리고 온 우리도 마찬가지일 테고.
그리고 굳이 겉으로 보기에 같은 기사단인 우리를 죽이려고 하지 않겠다는 예상 역시 깔려 있었다.
<방패전사> 그 짧은 시간에 여기까지 생각했냐.
<주호> 그냥 제가 녀석들 같으면 우리를 죽일 것 같진 않더라고요. 여러 상황상.
덕분에 맥크라이와 우리는 무사하긴 했다.
다만 이제부터가 문제였다.
여기서부터는 저 녀석들이 어떻게 나올지 확실히 예상하기 힘드니까.
지금은 최대한 녀석들의 상황을 보아가며 맞춰가면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곧 2기사단의 녀석이 손을 휘저으면서 말했다.
“우선 주변 상황 파악부터 한다. 각 기사단은 협조하도록.”
역시.
이 녀석에게 저 기사단 전체를 총괄할 수 있는 권한은 존재하지 않았다.
<주호> 분명히 방금 협조라고 했어요.
<불멸> 아아. 들었어. 예상대로 이 녀석들 지휘체계는 하나가 아니야.
만약 이 2기사단이 모든 상황에서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면 분명히 대놓고 명령부터 내렸을 텐데.
지금은 협조라는 말로 대신했다.
다른 말로.
각 기사단은 각자의 판단에 의해 언제라도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황제의 사냥개인 2기사단 녀석들도 지금 상황이 달갑지 않은 듯 짜증나는 눈빛으로 다른 녀석들을 바라보았고.
불만 가득한 말투까지 나왔다.
“아, 그냥 우리끼리 해버리면 안 되나?”
“애초에 그냥 다 쓸어 버리면 간단하잖아.”
“실력도 없는 녀석들이 눈치만 빨라서는…….”
보아하니 2기사단의 움직임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다른 기사단 녀석들이 따라붙은 모양이었다.
교대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2기사단이 다른 행동을 하니 주목을 끌 수밖에 없었을 테고.
그 결과 지금의 묘한 대치가 된 듯했다.
만약 시간이 더 주어졌고 2기사단 녀석들이 더 조심스럽게 움직였다면.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건 저 2기사단밖에 없을지도 몰랐다.
그럼 녀석들의 의도대로 맥크라이는 안내인 역할만 하다가 끝에 가서는 결코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
어쩌면 쓸모가 없어진 상황에서 보자마자 우리를 죽였을지도.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마음대로 2기사단 녀석들이 행동할 수 없었다.
다른 기사단의 눈치도 봐야 하니까.
대놓고 같은 에센시아의 기사단인 우리를 눈앞에서 죽여 버리면?
아무리 2기사단이라고 하더라도 절대 이 상황에서 책임을 면하진 못한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호> 다른 기사단들과 접촉해 봐야겠어요.
내 말에 재중이 형과 전사 형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주호> 후보는 어디가 좋을까요?
접촉을 한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해서는 안 된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최대한 황제의 입김이 덜 들어간 녀석들을 골라야 한다.
그러려면 역시…….
<방패전사> 이후에 검을 거꾸로 쥐는 녀석들은…… 3기사단하고 7기사단이야.
그런 전사 형의 말에 우리의 시선이 쭉 돌아가 3기사단하고 7기사단의 마크를 찾았다.
<방패전사> 3기사단은 표면적으로 황제의 기사단이긴 한데. 녀석들의 대부분은 사실 4기사단과 함께 1황자의 세력일 거다. 그리고 7기사단들 일부는 3황자의 비밀 세력이고.
하나의 기사단 안에도 이미 다른 황자들의 입김이 강하게 들어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건 그만큼 황제의 장악력이 약해졌거나.
혹은 다른 황자들의 능력이 출중하거나 둘 중 하나겠지.
<주호> 드러내진 않으면 골라내긴 힘들겠네요.
아무래도 대놓고 내가 다른 황자들의 세력이라는 걸 표시하진 않을 테니까.
이쪽에서 접근하려고 해도 드러내주지 않으면 곤란하다.
<주호>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기사단의 명단까지 역사에 나와 있진 않죠?
내 물음에 전사 형이 아쉽다는 듯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방패전사> 그런 편한 명단이 있으면 벌써 써먹었지.
그때 듣고 있던 챠밍이 내게 한 가지 수를 말해주었다.
<챠밍> 오빠. 그래도 확실히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진 않아요.
<주호> 어떤……?
<챠밍> 그러니까. 여기서 저들을 전부 분류할 순 없지만요. 그래도 후에 영웅으로 들어서는 사람은 확실히 이름이 남아 있잖아요.
그리고는 챠밍이 눈짓으로 한 곳을 가리켰다.
<챠밍> 아마 저 사람이라면. 확실하겠죠?
70억분의 1의 이레귤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