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2화 신의 흔적 (15)
빠지라는 챠밍의 외침이 지하 사원의 공간을 타고 울리자마자 전사 형이 바로 악을 썼다.
“젠장! 빠져나갈 수가 없어!”
지금 전사 형이 잡아두고 있던 합성된 타락 천사만 해도 수십이 넘어갔다.
수도 없이 밀어닥치는 녀석들의 공격이 전사 형의 발뭉과 타이탄 라지 쉴드가 거칠게 두들기는 소리가 지하 사원에 울려 퍼졌다.
카가각!!
키이익!!
콰앙!!
쾅!!
빠져나오려고 해도 타락 천사들에게 둘러싸여서 전사 형이 자력으로는 도저히 몸을 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크 배틀 필드로 녀석들을 붙들어두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러면 챠밍의 스킬에 전사 형까지 같이 휩쓸리게 될 것이다.
안 그래도 녀석들의 공격을 버틴다고 체력이 간당간당한 상태인데 잘못하다가는 챠밍의 공격에 전사 형이 먼저 쓰러져 버릴 수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챠밍은 뭔가의 스킬을 풀 차징을 해놓고도 차마 바로 쏘지 못하고 경고를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런 챠밍의 외침이 오히려 타락 천사들의 시선을 끌어버렸다.
몇몇 타락 천사들의 머리가 정상적으론 꺾일 수 없어 보이는 방향으로 뚝 꺾어지면서 그 붉은빛 시선을 챠밍을 향해 돌렸다.
서서히 그 녀석들의 시선이 돌아가면서 이젠 완전히 우리 쪽으로 신체를 돌려놓았다.
그 모습을 본 재중이 형이 외쳤다.
“칫, 이쪽도 발을 뺄 수 없어!”
그리고 이 상황은 이쁜소녀 쪽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악을 쓰듯 외치는 이쁜소녀의 모습과 맥크라이의 분전하는 모습들이 겹쳐 보였다.
“이익! 여기도 힘들어요!”
“버틸 순 있지만 이 이상은 무리다!”
나르샤 누나가 그나마 뒤쪽에 있긴 하지만.
이쁜소녀와 맥크라이의 빈틈을 막아준다고 거의 손이 쉬지도 못하고 난사하는 수준으로 지원을 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한 번 둘러본 뒤 살짝 숨을 내쉬고는 미리 준비하고 있던 차징을 풀어버렸다.
“오빠?”
“아무래도 전사 형부터 빼와야겠어. 저대로는 못 빠져나와.”
굳은 표정의 챠밍을 보니 아마 위력이 모자랄 것 같은 불안한 감이 드는 듯했다.
솔직히 나도 스킬 한 방에 녀석들을 모두 죽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으니까.
“뭐 어떻게든 되겠지.”
“알았어요. 어떻게든 해볼게요.”
“할 수 있겠어?”
내 말에 챠밍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라면……!”
뭘 할진 정확히 모르겠지만 일단 자신이 있어 보이니 바로 대천사의 검들을 들어 올렸다.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여력이 없었다.
원래라면 한 방 스킬에 모든 마력을 쓰려고 했지만.
상황이 이러면 어쩔 수 없지.
곧장 마왕 올펠의 풀 플레이트로 장비를 변경하고는 플레이트에 내장된 스킬을 하나 시전했다.
【 전투 형태 변형! 】
그러자 바로 내 마력을 쭉 빨아들이면서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가 변형되어갔다.
플레이트의 판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밀려들 듯 서로의 판을 연결하더니 이내 내 몸 전체를 감싸는 날카로우면서도 전체적으로 매끄러운 유선형의 전투 형태로 변형되었다.
빈틈이 하나도 없는 흑색의 갑주는 마치 레이드 때의 마왕 올펠의 갑옷처럼 완전히 내 몸에 밀착되었고.
온몸에 힘이 넘쳐나기 시작하면서 시야 역시 확 변경되었다.
보다 넓게.
그리고 자세하게.
온전히 내 감각이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동시에 귓가로 시스템 메시지가 울려왔다.
《 마왕 올펠 플레이트가 마력을 소모하여 전투 형태를 유지합니다. 》
《 해당 마왕의 능력 중 일부가 마왕 올펠 플레이트에 깃듭니다. 》
콰드드득!
단순히 주먹을 쥐었을 뿐인데 장갑이 반응해 손아귀에 그간 느껴볼 수 없을 만큼의 강렬한 힘을 부여해 주었다.
동시에 몸에 활기가 넘쳐났다.
지금이라면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상태랄까.
그렇게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의 변형된 검은 갑주 형태에 더해.
등 뒤로는 대천사의 가호로 인한 백색 날개가 화려하게 펼쳐져 있었고.
그 기운들 사이로 청백색의 용사 후보 기운이 몸을 타고 맴돌았다.
그야말로 혼종 중에 혼종.
마왕.
대천사.
용사.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존재들이 한 몸에 머물면 딱 이런 모습일 것이다.
“다녀올게.”
【 이중 가속! 】
그리고 바로 발을 박차자 그간 한 번도 내어보지 못한 속도로 몸이 순식간에 가속되면서 강한 압력이 걸려왔다.
여기서 한 번 더.
【 엑셀레이션! 】
파아앙!
이 스킬은.
이전에 아스티아가 썼던 스킬이기도 하고.
그간 봐왔던 마왕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바로 옆에서 나타났던, 바로 그 사기 스킬이었다.
아예 내 몸이 공중에서 사라지는 것 같은 딱 그런 느낌을 내는 삼중 가속 스킬이 지금 내 몸으로 온전히 시전되었다.
차마 눈으로 따라잡지도 못했던 스킬을 직접 써보는 건.
굉장한 쾌감을 주었다.
하지만 반대로 이 스킬은 컨트롤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혼자 자빠져서 바닥에 처박히기 딱 좋은 그런 스킬이었다.
강력한 압력감과 동시에 속도감이 차오르며 눈 깜짝할 사이에 전사 형을 둘러싸고 있던 타락 천사 석상들의 옆으로 이동되었다.
차마 타락 천사들이 시선을 옮긴 틈도 없이 말이지.
그대로 잡고 있던 라페르나를 휘둘러 제일 가까이 있던 타락 천사의 목을 쳐냈다.
콰지지직!!
파아아악!!
단순히 라페르나를 사선으로 휘둘렀을 뿐인데.
팔에 과도할 정도의 힘이 실리면서 거의 보이지도 않을 궤적으로 휘둘러진 라페르나의 검신이 타락 천사의 목에 닿자 엄청난 스파크가 일어나며 녀석의 목을 태우듯이 갈라내고 반대편으로 빠져나왔다.
흐음.
이 녀석들 대체 뭐지?
석상이긴 해도 분명히 천사들이고 헤르마늄 광산의 던전을 지키는 녀석들 아니었나?
그런데 어째서 대천사의 검에 이렇게 반발하는 반응이 나오는 거지?
잠시 의문이 들었지만 계속할 수는 없었다.
순식간에 타락 천사의 목을 갈라 버린 것과 동시에 다른 타락 천사 석상들의 검과 창들이 내가 서 있던 장소를 그대로 찍어냈다.
하지만 이미 난 이중 가속과 엑셀레이션의 힘을 빌려 그 자리를 벗어난 뒤였다.
잔상이 남을 정도의 움직임.
휴.
이 속도라면 정말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간 머릿속으로는 반응할 수 있지만 답답하게 따라가지 못하는 몸이 아쉬웠지만.
지금의 이런 반응력과 민첩이라면.
내가 그리는 움직임의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구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전사 형이 내게 외쳤다.
“이 녀석들 속성이 겹쳐 있어! 성 속성과 마 속성 둘 다 쓴다.”
그 말을 듣고는 바로 이해했다.
아무래도 이 녀석들은 정말 변종인 듯했다.
그간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하지만 반대로 내 입가는 웃음기가 머금어졌다.
“그럼 그냥 패면 되겠네요.”
솔직히 대천사의 검으로 성속성 몬스터를 공격했을 때 제대로 타격을 주지 못할 것 같아서 고민했었는데.
이젠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될 듯했다.
지금의 반응을 보면 확실히 타격을 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이쪽도 두 속성을 다 쓰고 있거든요.”
라페르나 자체가 성 속성 대미지를 줄 수 있는 무기인데다가 헤르마늄으로 만들어져 무기 자체도 녀석들의 신체에 밀리지 않았다.
거기다 대천사의 가호는 라페르나의 성 속성을 더욱 끌어올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용사 특성 버프.
이쪽은 대천사의 가호처럼 마 속성을 상대할 때 최적화된 버프라서 말이지.
용사 특성 버프는 내 기여도가 남아 있는 이상은 계속 유지가 된다.
여기에 추가로.
녀석들의 성 속성을 상대할 마 속성 공격력은.
바로 지금 입고 있는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가 대신해 줄 것이다.
지금 이 갑주의 착용으로 인해 마왕 올펠의 능력을 고스란히 가져다 쓰는 중이라.
마 속성 공격력 역시도 추가될 테니.
현재의 내 상태를 본 전사 형이 타락 천사들의 공격에 파묻히면서도 어이없는지 웃음 짓고 있었다.
“마왕에 천사에 용사까지. 종합 선물 세트네.”
전사 형도 이전에 마왕 올펠 플레이트를 써봤으니 내 상태가 어떤지 잘 알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아놔. 난 그 플레이트 제대로 쓰지도 못하겠던데…… 역시 제대로 된 주인은 따로 있나 봐.”
처음에는 단순히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가 방어력이 높아서 전사 형이 쓰기로 했었다.
그땐 전부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고.
딱히 불만은 없었는데.
정작 전사 형이 문제를 말했었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바로 이 전투 형태 변형을.
도저히 써낼 수가 없다고.
예전에 맥크라이가 자신이 만든 타이탄 풀 플레이트가 이 마왕 올펠의 플레이트에 비빌 수도 없다고 했던 건.
바로 이런 능력들 때문일 터였다.
평상시의 방어력은 마왕 올펠 플레이트가 확실히 낮겠지만.
실상 전투 상황에 들어가서.
이 변형을 쓰게 되면.
정말 타이탄 플레이트는 샌드백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되니까.
바로 타락 천사들 사이를 누비면서 녀석들의 팔과 다리를 하나씩 끊어 놓기 시작했다.
아쉽게도 이 혼종은 더없이 강력하긴 하지만.
그만큼 유지 시간이 짧은 것이 문제였다.
대천사의 가호부터 시작해 용사 버프와 마왕의 플레이트 모두 내 마력을 무식하게 잡아먹는 중이었다.
눈에 보일 정도로 마력이 푹푹 깎여나가는 것을 보고는 더욱더 손을 바쁘게 놀렸다.
모든 타락 천사들이 전사 형이 아닌 내 쪽을 볼 수 있도록.
그렇게 하나둘 전사 형에게서 녀석들을 떼어내자 전사 형에게 가는 공격이 서서히 줄어들어 갔고.
전사 형이 바로 몸을 빼내었다.
“오래는 못 끌어요! 얼른 빠져요!”
“알았다!”
전사 형은 챠밍이 있는 방향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몸을 날렸다.
이젠 아까의 수십 마리의 타락 천사들이 전부 내 뒤꽁무니를 쫓아다닌다고 해야 하나.
녀석들 역시도 날개를 펴고 가속으로 따라붙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내 쪽이 더 여유가 남아 기다릴 정도였다.
휴.
진짜 이거 중독되겠는데.
이러니까 마왕들이 그렇게 날아다녔나 싶기도 했다.
완전히 스펙을 가져온 것도 아닌데 이 정도 수준이면…….
어글을 끌고 돌면서 바로 이쁜소녀에게 달려가 달라붙은 녀석들의 목을 죄다 쳐냈다.
“너도 얼른 빠져!”
“네, 오빠!”
그리고 이쁜소녀와 맥크라이가 빠져나가자 재중이 형 쪽으로 달려갔다.
뒤에 타락 천사들이 잔뜩 달고.
“형은 굳이 안 빼줘도 되죠?”
“당연한 말을.”
이젠 적응이 됐는지 아예 네 마리의 타락 천사 사이에서 연습하듯이 버티고 상대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여유가 있는 듯 주변까지 살피면서.
보니까 재중이 형이 착용한 아크 드래곤 플레이트에서 묘한 빛들이 계속 번쩍이는 중이었다.
“아, 이거? 그 플레이트만 그런 능력 있는 게 아니라서.”
그러면서 녀석들을 피해 달리더니 내 쪽으로 붙었다.
녀석들의 공격이 재중이 형에게 스치지도 않는 걸 보면.
그 짧은 사이에 패턴까지 거의 다 익혀 버린 모양이었다.
“흐음. 그냥 놔둘 걸 그랬나 봐요.”
“더 몰리면 나도 힘들어.”
곧 내가 몰고 온 타락 천사와 재중이 형의 타락 천사가 겹치면서 이젠 누굴 따라오는지도 모르게 되어 버렸다.
“이제 챠밍 앞에 가져다 바치면 되는 거냐?”
“네. 깔끔하게 모아서 가면 되죠.”
그렇게 타락 천사들이 깔끔하게 한 줄로 모여 우리 둘을 따라왔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우리 둘 다 양쪽으로 갈라지며 동시에 챠밍에게 외쳤다.
“챠밍! 지금이야!”
“죄다 날려 버려!”
곧 챠밍의 아이셔스 스태프가 치켜세워지며 검은 기운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말만 기다렸어요!”